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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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애매하게 재미있었다. 확 빠져들지는 않았고 훅 잡아당기지도 않았으며 좀 미지근하게 그러나 은근하게 붙잡고 있게 했다. 이건 무슨 재미인 거지? 알아볼 틈 없이 읽어 나갔다. 괴테가 진짜 다 말해 놓았는지 궁금하게 여기면서.

일생을 대상 하나 혹은 사람 한 명에 몰두하여 연구하며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박사라고도 전문가라고도 하겠지. 세상 어떤 사람보다 잘 안다고 스스로도 자부하고 주위로부터도 인정받는다면 그가 아는 범위는 어떤 말로 얼마만큼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내게 가장 큰 목소리로 던진 질문이다. 굳이 답은 필요하지 않는, 내 정신 안에서 굴리고 다루며 놀 것으로서의 질문.

소설가가 젊다. 젊은 소설가는 나이 든 주인공인 도이치를 괴테 전문가로 내세운다. 도이치 뒤에 있을 젊은 작가, 나는 글을 읽는 내내 괴테에 대한 젊은 전문가를 자꾸 찾는다. 얼마나 일찍 얼마나 많이 읽고 찾고 정리를 해야 했을까? 괴테를 얼마나 숭배해야 이런 세상을 창조해낼 수 있을까? 괴테는 이런 물음에도 답을 알려 주었을까?

괴테가 쓴 유명한 책 몇 권은 나도 읽었다. 분명히 읽었다고. 기억에는 통 남아 있지 않지만. 읽었다는 이 말 한 마디만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딱 이만큼만. 그러니 책 속에 있는 괴테가 한 말들은 모조리 처음 보는 말들. 도이치가 이 말들의 출처를 찾아가는 과정들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연구자란 이런 자질과 품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도이치의 가족이 나누는 대화만 봐도, 풍습만 봐도 연구자의 가족이란 이런 풍경을 연출해 내는구나 또 감탄하였고.

애매한 재미도 색다른 재미가 된다는 것을 알겠다. 강렬하지 않아도 인상에 오래 남을 수 있는 것처럼 번쩍번쩍 하지 않아도 글맛의 여운이 길게 흐를 것을 짐작한다. 작가에게 괴테만큼 영향을 미쳤을 정도의 어떤 사람이 내게는 왜 없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도 제법 많은데 내게는 소설가로서의 소질이 전혀 없었다는 증거인 것일까, 이런 맹랑한 생각도 해 본다. 누구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하나의 대상에만 매달릴 수 있는 건 분명히 적성이자 능력이겠다.

그래도 괴테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다면 내 삶이 좀더 풍성해졌을 텐데 싶어 아쉽다. 이 또한 한계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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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4 08: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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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4 0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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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ㅣ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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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알려 주는 공간들이 있다. 먼먼 훗날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지금의 우리 시대를 대표해 주는 것 중 하나가 되리라는 것을 알겠다. 과거의 소설을 통해 지금 우리가 그 시절을 알려 주는 공간을 알아차리는 것과 같이. 이를테면 주막 같은 것.

편의점은 오로지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누군가는 아주 불편하게 지내야 한다. 지내는 정도를 넘어 살아야 할 정도로. 편의점을 이용하는 사람과 편의점을 지키는 사람과 편의점을 관리하는 사람. 다르다. 처지도 대우도 마음가짐도.

편의점을 소재로 삼은 글을 몇몇 보았다. 대체로 이용자 쪽보다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편의점 주인도 등장하기는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처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주인. 고단하다. 보고만 있어도 그렇다. 24시간을 열어 놓고 있어야 한다는 배경. 누구를 위하여? 고객? 아니면 돈을 벌어야 하는 쪽?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들을 처리하는 방법도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버리지 못하고 먹는 것으로, 먹어야 하는 것으로, 먹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처리하는 사람의 낯선 이야기들. 처음 알았을 때는 좀 떨었던 것 같다. 이렇게 살지 않고 있어서 다행스럽고 고맙구나,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은 또 얼마나 이기적이면서도 두렵게 느껴지는가, 편의점은 나에게 더 이상 편한 곳이 못 되겠구나, 물건을 살 때마다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온갖 상상들 때문에.

소설은 아주아주 유명했고 나는 이제야 읽었고 제목만큼 불편했으며 2권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막 들지는 않는다. 힐링 소설이라는 크나큰 소개의 말을 보았는데 어느 대목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순해진다는 것을 느꼈을까? 나는 그것이 많이 궁금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시절이 되고 말았다. 수명이 길어지기도 했고 직업으로 갖고 누릴 시간이 팍팍 줄어들기도 했고 세상이 확 변하기도 했고. 정규직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살 수 있는, 어쩌면 살아야 할지도 모를 세상이 되고 있다는데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막막하고 답답하게만 보인다. 그래도 우리는 또 꾸역꾸역 살아가겠지만.

아르바이트 점원을 걱정하는 편의점 주인이 좀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쓸데없을까? (y에서 옮김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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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불명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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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에서 혹은 망상 속에서 가져 보는 꿈, 나에게 돈이 너무너무 도저히 다 쓸 수 없을 만큼 많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 언제나 마음껏 쓰고 싶은 만큼의 돈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이런 상상은 헛웃음까지 불러일으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해 보지 않을까? 나는 가끔 해 보는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고.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소설은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펼쳐진다. 주인공은 아니다. 중요 인물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이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나 어쨌나 이건 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고. 이번 편에서는 결말의 반전에 좀 많이 놀랐다.이렇게까지 숨겨져 있는 진실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으니까. 작가가 짐작하는 독자의 추리 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소설로 대결하는 마음이 상당히 흥미진진했으리라 싶다. 특히나 나처럼 도통 범죄자를 추리해 내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마플 여사나 푸아로 경감이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국 경찰 중에서도 아니, 어느 나라든 뛰어난 형사는 있을 것이고, 이번 편에서는 제솝이라는 형사가 뛰어난 활약을 보인다. 형사의 실제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자국인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의 장관까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이 대목만큼은 소설답다 싶고.

아랍의 석유 부자들처럼, 요즘 같으면 인터넷 관련으로 성공한 덕에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세계 경제나 정치나 문화나 심지어 학문의 영역까지 쥐고 흔들 수 있을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들려고 한다. 정말 그 경지에 이르면 지구 위 세계를 지배하고 싶다는 권력욕이 생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까? 달리 할 일이 없어서? 도덕심은 없고 잔머리만 잘 굴리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내게 생길 일은 아니고 그저 상상만 해 보는데도 불쾌해지려고 한다.

소설이니까 벌을 받을 사람은 분명하게 벌을 받게 되는데 작가가 늘 이야기하는 사람의 본성에 대한 내용은 두고두고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정말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더 많은 걸까? 아니, 선한 마음을 발휘하는 일보다 악한 마음을 발휘하는 경우가 더 잦은 걸까? 이 마음을 다스리고자 우리가 이렇게 널리 그리고 오래 궁리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그러는 것일까? 사람은 정말 어떤 존재인 걸까? (y에서 옮김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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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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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벼워지고 상쾌해졌다. 어떤 식의 부담도 느끼지 않게 해 주는 글을 읽는 것도 가끔은 필요하다. 글을 읽는다고 늘 무언가를 고민하고 공유하면서 해결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그 또한 곤란할 테니까. 그저 끄덕끄덕, 가끔 갸웃?, 그래그래, 이런,... 하면서 가볍게 시간을 누릴 수도 있어야 한다고, 이제 나는 여유롭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내 나이보다는 젊지만, 작가 말처럼 젊은이라는 말을 듣지는 못하는 사십대 초반의 아줌마. 아줌마이기 전에 여자. 단순하면서도 진지한 작가의 시선과 생각에 많이 공감한다. 늘 되풀이되는 일상을 지겹다고 여기지 않고 고맙게 받아들이는 태도, 가까운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그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평범한 삶의 진수를 본다. 위로처럼 내 자신에게 건넸던 말, 인생이라는 게 대단한 건 아니지 않겠는가, 오늘이 어제 같기만 하고 내일이 오늘 같기만 하다면 그것으로두 충분히 고마운 것을.

작가가 한 또 다른 말처럼, 실속 없는 수다를 떤다고 닥친 고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잠시 아픈 고민을 잊어두어도 좋을 때가 있다. 잠시 잊었다가 다시 끄집어내어 생각하면 좀 전보다는 생각할 힘도 더 생기고 해결책도 하나 더 마련할 수 있으니까. 고민만 내리 한다고 해서 나아지지는 않더라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도 알고 있고.

화려하지 않고 소탈하고 소박해서 좋다. 마치 내가 사는 평범한 모습을 인정해 주는 것만 같다. 멀리 이웃 나라의 모르는 아주머니가. 대단하지 않은 것들, 그저 그런 것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전해 오던 모든 것들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게 된다. (y에서 옮김201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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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손가락의 아픔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홍현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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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영화 또는 드라마를 보고 난 기분이다. 백 년쯤 전에 어찌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던 건지 독자로서 고마울 정도다. 이제까지 읽었던 이 작가의 글과 약간 다른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구성의 다양한 측면에서도 뛰어난 작가였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다.

그림이 있다. 그림 속에는 예쁜 집이 그려져 있다. 주인공은 그림 속의 집을 실제로 본 기억이 있다. 그 집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 많은 일과 사람들이 엮여 있고 서로 간의 사정은 감춰져 있으며 의문은 끝없이 일어난다. 어떤 일들이 더 일어날 것인지 궁금해진다.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는 사건(살인)이 먼저 일어나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고드는 방식이라면 이 소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곳을 향하여 자꾸만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지막까지 가야만 이제까지 온 길이 다 보인다.

시간을 잊고 이야기에만 빠져 들기에 이 작가의 책만한 게 없다. 틈틈이 다른 책들 사이에 읽는다. 기분 전환용이라고 해도 좋겠다. 무거운 책, 부담스러운 책, 아픈 책, 어려운 책, 죄책감을 남기는 책, 멀고 긴 책들을 읽다 보면 잠깐 벗어나고 싶을 때가 생긴다. 독서에도 여유와 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이 소설의 주인공인 부부 탐정이 다른 소설에서도 등장하는지 기다려봐야겠다. (y에서 옮김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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