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 뚝딱 홈메이드
다카기 나오코 지음, 손이경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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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쓸 것을 내가 만들어 쓰는 일, 꽤 매력적이다. 나도 이런 걸 좋아하고 해 본 적도 있다. 성공해서 잘 쓴 적도 있고 만든 게 마음에 안 들어 금방 버리고 만 것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 시도하지 않게 되었는지. 재료값도 얻지 못하는 결과물, 노력도 추억도 못되는 물건, 사서 쓰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는 계산이 되면서 더 이상 만드는 일에 성의를 갖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만화책을 보니, 그랬던 내 마음이 잔잔히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어쩌면 다시 시도를 해 보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싶어지면서. 상품처럼 금방 잘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게 내 작품이겠는가. 삐뚤빼뚤, 울퉁불퉁, 터덜터덜, 그래도 내 손길이 구석구석 미친 작품이라면 그게 내 작품인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팔 것도 아니고, 약간은 자랑할 만도 하겠으나 자랑하지 않으면 또 어떠랴, 만드는 일은 대상의 크기가 얼마만 하든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 같은 모양새인 것을. 


없는 상태에서 있는 상태로 만들어 내는 일은 어쨌든 신비한 일이다. 글을 쓰는 것도 노래를 만드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리고 물건을 만드는 것도. 맞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같은 기쁨을 주겠구나. 이 작가는 뭐든지 하나하나에 참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이든 먹는 일이든 만드는 일이든. 


칠판이랑, 앨범이랑, 보자기랑, 마그넷은 나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y에서 옮김201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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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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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살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지'처럼. 이메일이 나오기 전, 핸드폰이 나오기 전. 한 마음이 다른 마음에게 가 닿기까지의 시간을 지켜 냈던 시절. 이 소설은 읽는 이를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그래서 많이, 오래 슬펐다.

와조라는 눈이 먼 늙은 개와 집을 떠나 여행자로 살고 있는 화자. 화자는 만난 사람들에게 이름 대신 번호를 붙여 준다. 자신이 붙인 번호로 사람을 기억하는 능력이 아주 대단해 보였는데 그 또한 삶의 한 방식이었던 것. 우리는 누구나 제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니까. 

여행지에서 만난, 번호를 붙인 이들에게 화자는 편지를 쓴다. 답장을 받으면 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하면서. 답장이 오나 안 오나, 누군가 나를 불러 주나 안 부르나. 와조와 함께 하는 여행은 편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지만 안 할 수가 없다. 화자에게는 삶이 딱 이만큼의 공간만 허락하고 있었으니까. 다시 생각해도 서글프네. 떠돌아야 했던 배경이, 그렇게 배경을 설정해야 했던 작가의 안간힘이.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 몸과 마음에 각각 입은 상처는 어느 선에서 나누어지는 것일까. 점이나 선이 아니라 아마도 입체적 공간이겠지. 그 어딘가에 다들 어느 정도는 물린 채 살고 있는 것이겠지.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일 텐데. 나의 오만과 자만과 비겁과 허영을 먼저 헤아릴 일이다. 다른 이를 나무라거나 함부로 동정하기 전에.

이 작가의 글, 이번에도 내게 큰 감동을 준다. 기쁘다, 계속 읽을 글을 주는 것이니.  (y에서 옮김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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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대산세계문학총서 62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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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다. 시집인데 두껍다. 시집이라면 얇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가볍게 물리쳐 준다. 정확하게는 시선집이다. 작가가 평생 발표한 작품들 중에 골라서 모아 놓은 책. 실린 작품이 약 200편 가까이 되는데 작가가 뽑았다는 건지 번역가가 뽑았다는 건지 모르겠다. 몰라도 나로서는 상관이 없었고. 작가는 폴란드 사람, 노벨상을 1996년에 받았다. 앞서 어떤 책에서 이 책의 정보를 얻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그 사이에 잊었다. 이 또한 나에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고. 이렇게 읽을 수 있으면 되는 셈이니.  


나는 시집을 읽을 때면 시 전편보다 시 구절을 찾아서 옮기곤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이 일이 어려웠다. 너무 거대했으므로, 너무 많았으므로, 너무 하염없었으므로. 그래서 전편을 골라 옮겼다. 이 또한 만만하지는 않았다. 더 옮기지 못한 게 섭섭할 따름이다. 예전처럼 누군가와 이 책으로 모임과 토론을 하는 일이 생긴다면, 각자 마음에 드는 시 10편, 혹은 5편 뽑아 와서 이유랑 말해도 좋을 것 같다는, 이런 막막하고도 즐거운 생각도 해 보았다.  


폴란드어로 쓴 시는 우리네 시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어떤 점이 다른지 살짝 궁금했다. 번역된 모습으로만 읽어서는 분명히 다 받아들이지 못해 빠뜨리는 것이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알아낼 방법도 없다. 그럼에도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먼먼 나라의 시 구절에, 시인의 호소에, 마음은 있는 대로 헝클어진다. 외국 시에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나는 좀처럼 갖지 못했던 일렁임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좋은 글은, 좋은 생각은, 위대한 사명은 이런 영향력으로 울려 퍼지는 것이로구나. 


비유가 짙어서 어두운, 우리 작가들의 시 세계가 갑자기 떠오른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시, 소설보다 산문보다 더 가깝게 더 가볍게 여기면서도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을 점잖은 무게에 깃들이고 싶은 시가 그립다.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못 읽었을 뿐.  (y에서 옮김20220201)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려나? - P24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P34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으로 소유할 순 없다. - P79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단 한순간만이라도,
어디로 가는지 잊은 적이 있었던가? - P203

지나간 옛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 - P216

모래 알갱이는 보편적이건, 개별적이건,
일시적이건, 지속적이건,
그릇된 것이건, 적절한 것이건,
이름 없이 지내는 익명의 상태에 익숙하다. - P276

선한 인간은 독하지 못하고, 독한 인간은 선하지 않다. - P288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 P307

나는 너보다 더 오래 살았다.
이렇게 멀리서 네 생각에 잠길 만큼
딱 그만큼만 더. - P343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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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착각 - 허수경 유고 산문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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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의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시작되는 글이다. 착각해서,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시인은 원하는 만큼 착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까. 그 착각이 아름다움을 입고 시로 탄생하는 것일까. 모두 8편의 글, 한 편 한 편은 짧지 않은데 책은 짧게만 느껴진다. 아쉬워서,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마음에, 더 짧고 얕게 느껴지는 분량인지도 모르겠다.

읽기는 좋은데 마냥 쉽게 읽혀지는 글은 아니다. 산문이라고는 하지만 시가 곳곳에 스며 들어 있다. 둘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으나 구별할 줄 모르면 글을 읽는 재미와 보람이 확 줄어들 것 같다. 모호한 듯, 착각하며 읽어도 좋은, 나는 자꾸만 시인이 권하는 착각의 길로 들어선다. 이런 착각이라면, 이렇게 따뜻하고 이렇게 애틋하고 이렇게 그리운 착각이라면 오래오래 머물러 있고 싶다.

작가가 시인이니 다른 시인의 시도 많이 읽었겠지. 이 작가의 글에서 인용되고 있는 시들은, 평소 내가 즐겨 읽는 취향의 글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이 작가가 가져온 글이 아니었더라면 유심히 볼 것 같지는 않은 글들인데, 나는 아껴아껴 조목조목 읽었다.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런 시들을 찾아내어 따로 적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추측을 해 보면서. 이렇게 이중으로 읽는 방법도 경우에 따라서는 좋은 독서가 된다. 내가 좀더 수준이 높아진 듯한 착각을 할 수 있으니.

우리나라를 떠나 독일에서 살다가 독일에서 떠난 시인이다. 독일에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여럿이다. 떠나서 살 수밖에 없었을 작가만의 인연이 있었을 게다.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은 이제 없고 남아 있는 글들로 그녀가 남긴 서늘한 아름다움만을 느낄 수밖에.

마음의 안에서 밖으로 빈 바람이 지나갈 때 읽어 보면 또 좋아지리라 싶다. (y에서 옮김202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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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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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그의 글이 좋아진다. 더 좋아질 것 같다. 그래서 좋다.

내가 어렸다면, 많이 어렸다면, 그래서 글을 잘 써 보겠다고 연습할 시간이 넉넉할 만큼 어렸다면, 어쩌면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어렸다면, 그런 때에 이 책을 보고 이 작가의 글을 읽었다면, 나는 그의 글을 천천히 옮겨 적었으리라. 스무 살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소설가는 소설을 쓸 수 있을 만큼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경험을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왔다. 둘 중에서도 더 좋은 것은 직접 경험일 것이고, 간접 경험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간접 경험은 곧 글을 쓰는 사람의 상상력과 창의력의 크기와 깊이를 수반해야 하는 것일 테니, 기억력보다 더 큰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나는 어느 부분 기억력보다 상상력을 더 무게 있게 여기나 보다. 은연 중에 그렇게 여겨 왔던 것도 같다.)

이 작가는 내가 생각하는 상상력의 힘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겪지도 않았을 텐데(이건 순전히 나의 짐작이지만, 실제로 겪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믿고 싶은 대로 짐작할 것이니까) 어떻게 이렇게 그려낼 수 있는지. 마치 작가는 자신의 눈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풍경을 이야기로 바꾸어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산을 보면 산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숲을 보면 숲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지나가는 사람을 봐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가만히 서 있는 나무를 봐도 그 나무에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이 작가.

쓸쓸했고 하염없이 잠겨들었다. 이 계절에 이 글을 읽어서 좋았고, 좋은 만큼 서글펐다. 세상에는 정열적으로, 하루하루를 아낌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세상은 아닌 것이라는 것을 보는 일은 즐겁지는 않았으나 내게 위로가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심정으로, 그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방송이나 책으로 마치 오늘만 살아도 좋을 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를 접하다가 이 책 속의 인물들을 만나고 있자니,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생.

열심히 살고 싶어지게 만든다기보다는 그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보라고 하는 것 같은 소설. 살아있으니 살라고 하는 것 같은 소설. 살기 힘들다고 굳이 죽어보겠다는 심정 따위는 건드리지 말고, 남보란 듯이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보람 있게 살아보라는 것도 아니고, 계절이 지나가는 것처럼 바람이 지나가는 것처럼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처럼 그렇게... 내 젊은 날의 어느 한때가 그러했던 것처럼... (y에서 옮김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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