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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점점 더 그의 글이 좋아진다. 더 좋아질 것 같다. 그래서 좋다.
내가 어렸다면, 많이 어렸다면, 그래서 글을 잘 써 보겠다고 연습할 시간이 넉넉할 만큼 어렸다면, 어쩌면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어렸다면, 그런 때에 이 책을 보고 이 작가의 글을 읽었다면, 나는 그의 글을 천천히 옮겨 적었으리라. 스무 살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소설가는 소설을 쓸 수 있을 만큼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경험을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왔다. 둘 중에서도 더 좋은 것은 직접 경험일 것이고, 간접 경험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간접 경험은 곧 글을 쓰는 사람의 상상력과 창의력의 크기와 깊이를 수반해야 하는 것일 테니, 기억력보다 더 큰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나는 어느 부분 기억력보다 상상력을 더 무게 있게 여기나 보다. 은연 중에 그렇게 여겨 왔던 것도 같다.)
이 작가는 내가 생각하는 상상력의 힘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겪지도 않았을 텐데(이건 순전히 나의 짐작이지만, 실제로 겪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믿고 싶은 대로 짐작할 것이니까) 어떻게 이렇게 그려낼 수 있는지. 마치 작가는 자신의 눈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풍경을 이야기로 바꾸어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산을 보면 산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숲을 보면 숲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지나가는 사람을 봐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가만히 서 있는 나무를 봐도 그 나무에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이 작가.
쓸쓸했고 하염없이 잠겨들었다. 이 계절에 이 글을 읽어서 좋았고, 좋은 만큼 서글펐다. 세상에는 정열적으로, 하루하루를 아낌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세상은 아닌 것이라는 것을 보는 일은 즐겁지는 않았으나 내게 위로가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심정으로, 그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방송이나 책으로 마치 오늘만 살아도 좋을 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를 접하다가 이 책 속의 인물들을 만나고 있자니,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생.
열심히 살고 싶어지게 만든다기보다는 그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보라고 하는 것 같은 소설. 살아있으니 살라고 하는 것 같은 소설. 살기 힘들다고 굳이 죽어보겠다는 심정 따위는 건드리지 말고, 남보란 듯이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보람 있게 살아보라는 것도 아니고, 계절이 지나가는 것처럼 바람이 지나가는 것처럼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처럼 그렇게... 내 젊은 날의 어느 한때가 그러했던 것처럼... (y에서 옮김2010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