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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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이라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대단한 집중력으로 빨려 들었던 책이다. 서머셋 몸, 더할 수 없이 내게 와 닿은 작가다.

전달자의 관점을 취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을 전해주는 방식. 소설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사건을 고스란히 전해 듣는 기분이 들도록 서술하고 있는데, 알면서도 작가의 의도대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믿어 주고 싶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요? 순진한 척 하면서.

삶에 대처하는 자세는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유지되며 어떻게 발전되어 나가는 것일까. 개개인의 인간들은 제 삶을 꾸려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고(남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더라도 본인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서로는 서로의 삶을 지켜보면서 선택하고 평가하고 비판하고 존경할 테지. 소설을 읽으면서 자칫 무거울 수도 있을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해 보게 되다니, 그리고 내 삶의 진로를 끊임없이 짚어 보게 되다니. 소설 읽기의 매력, 바로 그것이라고.

래리는 살아 있는 인물인 것처럼 느껴진다. 깊이 끌린다. 가까이 이런 사람이 있다면 경외감으로 지켜보게 될 듯하다. 그러나 내가 맺는 인연의 취향은 아니다. 거리감 있게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할 사람. 다소 벅찬 인물이다. 이자벨은, 같은 여자로서, 얄밉다. 얄밉다는 것은 내가 숨겨 놓은 내 욕망의 일부와 닿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못하는 것을 하는 여자,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당당하게 행동으로 표현하는 여자, 내가 거부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여자, 그러니 열등감에 수치감에 질투심에 얄미워할 수밖에.(요즘은 소설을 읽으면서 그동안 꽁꽁 숨겨 왔던 내 욕망들을 만나는 일이 잦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내가 나를 모른 척 해 왔구나.)

소설 속 서술자처럼 나이 들어 가고 싶다. 작가의 분신일 수도 있겠는데, 아주 지혜롭고 여유 있는 노인으로 보인다. 생과 사람에게 적절한 거리감을 누릴 능력을 갖게 되면, 이렇게 될까. 나는 아직도 내게 있는 어떤 영역의 열망 때문에 혼자 울고 웃는데, 이제는 어른이 되었으면 싶다. (y에서 옮김201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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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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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좋은 글과 바람직한 생각을 읽는다. 읽는 마음이 내내 흐뭇했다. 읽고 있는 내가 대견했고, 글을 써 주시는 작가와 책을 내 주시는 출판사가 고맙게 여겨졌다. 못하겠다 했으면 오로지 독자 입장인 나로서는 영영 얻을 수 없는 기쁨이었을 테니까.

공부는 하면 할수록 즐겁다. 시험 따위 없는, 그저 내가 원하는 공부라면. 알고 싶고, 알아서 어떤 식으로든 쓸모 있는 이가 되고 싶고, 쓸모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까지 알게 됨으로써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바람으로 하는 공부라면. 남이 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찾아내고 구해서 익히고자 하는 공부라면. 어려워도 어려움만 있는 게 아님을, 어려움 뒤의 희열과 보람과 성취감을 알아버렸으니.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인간이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해 온 학문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내 능력이 너무도 하찮아서 앞선 이들이 연구해 놓은 것을 읽는 일만도 벅차다. 벅찬데 즐겁다. 세상에 이만한 유희도 즐거움도 달리 없을 듯하다. 끝이 없는 분야일 테니. 독자로서 한 분야 한 분야를 조금씩 핥아 보는 일도 어려운데 이 책처럼 두루 통합시켜 들려주는 작가가 있으니 그저 고마울 밖에. 재미있다고 유익하다고 신기하다고 놀랍다고 감탄하면서 읽었다.

작가가 뇌과학→생물학→화학→물리학→수학 순으로 구성한 이유를 알고 읽어도 모르고 읽어도 괜찮으리라 싶다. 읽기 시작하면 모든 지식이 정신없이 다가오고 정신없이 다가오는데도 낱낱이 파악이 되면서 이해도 되고 앞서 읽은 내용을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어도 다음 내용을 마주하는 데에 거부감이 들지 않으니. 담겨 있는 내용을 모조리 외울 작정이 아니라면 읽는 마음이 가벼워도 괜찮지 않을까. 특히 문과 쪽 사람이라면 이만큼의 폭도 대단히 넓힌 셈일 테니.

25일(화), 운이 좋아서 요조X유시민X장강명 북토크에 참여했다. 작가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내가 복이 많구나 여겼다. (y에서 옮김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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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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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즐겨 읽는 SF소설 영역에 담을 수 있는 우리의 소설이다. 반갑고 또 고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우리 지구인만 있을까 하는 의문은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가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소설로도 영화로도 종종 만나곤 했는데. 우리 작가들 중에서도 이런 내용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텐데. 몇 편은 읽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 작품집만큼 마음에 들었다고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 편 한 편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다.

최근에 읽은 제임스 P. 호건의 <별의 계승자>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영화 <콘택트>가 떠오르기도 했다. 배명훈의 <첫숨>까지. 비슷한 느낌의 글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도 이 책 속의 소설들은 뚜렷하게 구별이 되었다. 각각의 글에서 각각의 새로움을 보았다. 단편소설집일 경우 받아들이는 인상의 높낮이가 고르지 않을 수도 있는데 다 좋았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아프고 고단한 우리 사회의 차별의 문제를 이토록 근사하게 꾸며 낼 수 있다니.

스펙트럼
낱낱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공생 가설
소설집 안에서 가장 멋지게 읽은 작품이다. 어쩌면 나도 이런 그리움을 알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돌아갈 곳이 없는 노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혼자서 묵묵히 갈 수 있다면 더욱 막막할 텐데.

감정의 물성
감정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상상, 읽기만 하는데도 예사롭지 않다.

관내분실
엄마의 삶, 함부로 추측할 수가 없는 것인데 가끔 어떤 몹쓸 개인이 모든 엄마를 욕되게 만들어 버리곤 하지.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다시 차별로 돌아온다. 문명이 발달했다고 해도 차별의 속도를 따르지는 못하나 보다. 우리는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

내 과학적 상상력의 폭과 깊이를 번역글이 아닌 우리 글로 우리 정서로 키웠다. 재미있는 소설이 더 많아질 것이다. (y에서 옮김201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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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19 소설 보다
우다영.이민진.정영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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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 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이 가운데 정영수 작가를 새긴다. 세 편을 읽으니 가려 내기가 한결 수월하다. 7~8편이 실려 있는 작품집보다 집중력이 나아진 듯한 기분이다.

우리 소설가들의 글을 꾸준히 읽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내 취향이 아닌 글도 있겠지만 계속 읽고 있는 것만으로 작가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나만의 생각이라도. 그러다가 정영수와 같은 이름을 얻고 이 작가의 책을 찾아 더 읽게 되고 그렇게 독서의 폭을 넓히고 응원도 하다 보면 우리 소설가들의 세계도 그만큼 더 커지고 깊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작가들이 작가로서의 자리를 잡기까지 장편보다는 단편소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단편소설에서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가 그 인상에 힘입어 읽은 장편소설에서는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유 중의 하나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짧은 호흡과 긴 호흡의 글이 다르기는 하지. 읽는 것만으로도 다른데 쓰는 일은 오죽 하랴.

젊은 작가들의 장편소설을 지원하는 멋진 후원가는 없을까. 제 겉모습 꾸미는 일이나 제 몸과 정신을 상하게 하는 일에 돈을 뿌리는 돈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확 바꿔 주는 그런 일은 기대하면 안 되는 걸까.(y에서 옮김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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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2 -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편 유럽 도시 기행 2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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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이 책에 나오는 도시 이름이다. 작가가 여행담을 들려 주는 도시 넷. 이 가운데 나는 앞의 세 도시에 가 보았다. 가 보았을 뿐,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은 지극히 적다. 그마저도 내가 가서 보았다는 기억인지 사진으로 기억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것이 아닌 다른 이의 자료에서 얻은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라는 게 내게는 이런 것인 모양이다. 가 보았다는 기억의 있고 없음.

글은 좋고 만족스럽다. 네 도시에 대해 온통 내가 모르는 것들을 익히는 기분이다. 분명히 내용의 일부는 그곳에서 직접 들었을 것이고 다른 경로로 접하기도 했을 것인데 작가의 글로 처음 보는 듯이. 내가 가진 장점 중의 하나, 기억력이 모자라서 들을 때마다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 그래서 홀로 뿌듯해진다는 점. 곧 잊어버린다는 점은 무시하고.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보람 없이, 아무 의도 없이, 멍하게 돌아다니는 여행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 얻지 못하면 억울하다는 듯 손해라는 듯 매달린다. 그런 때가, 그런 마음으로 떠돌던 여행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질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을 오갔다. 다녀온 보람이 있는 건가, 굳이 안 가도 되었던 건가 오락가락하면서.

내가 직접 가 본다고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문가가 달리 전문가가 아닌 셈이다. 그러니 가서 본다고 해도 준비해야 할 몫은 따로 있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을 들고 이 책에 있는 내용을 짚으면서 작가가 안내하는 경로로 따라가 보는 여행 같은 일. 확인하는 재미도 있고 거듭 읽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꼭 좋다고만, 꼭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가고 싶은 생각까지는 들지 않고 이 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이대로도 좋았다.

시간이 흐르고 이 책을 읽었다는 기억마저 아득할 즈음, 이 책으로 네 도시를 다시 여행하려고 한다. 내가 가는 것보다 나을 여정임을 믿는다.(y에서 옮김202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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