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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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빗소리는 '미'로 들리다가 칠월의 빗소리는'솔'로 들리는 세상, 그립다. 요즘처럼 뜨겁기만 하고 습기는 잔뜩 뿜고만 있는 채로 머물러 있는 공간에서 버티기가 쉽지 않다. 제습기로 빨아들이고 말 일이다.

김연수의 소설들은 내 마음에 들었다가 안 들었다가 한다. 여전히. 이 책에 실린 소설들도 내 마음의 온기와 냉기를 오간다. 아직은 전적인 지지자가 못 되고 있다. 독자인 나로서는 좀 슬픈 일이다. 모두 마음에 들었으면 읽는 내가 더 행복했을 텐데.

재기발랄하다는 문장은 톡톡 나를 두드려준다. 상쾌해서 좋다. 게다가 거의 함께 보냈다고 해도 좋을 젊은 시절의 어떤 시간 마디들이 동질감을 불러 일으켜 준다. 작가가 그려 놓았듯이 내게도 그런 시절이, 그런 감정이, 그런 설렘이, 그런 후회가 있는 것이다. 지나가 버려서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가끔은 불러 보아도 좋을 추억 혹은 회한.

2010년부터 2013년에 이르는 기간들의 작품들. 나도 살아 있었을 텐데, 내 삶의 흔적은 어디에 남아 있을까. 아니, 나는 본래 남기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닌데.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아주 무거운 추로 자리잡고 있다. 이후로도 오래오래 서글프고 쓸쓸한 우리 역사가 될 것이다.

한국소설이 맥을 못 춘다고 하는데, 이유가 뭔지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보려 한다. 내가 다른 나라 소설에 비해 우리 것을 붙잡지 않으려는 이유와도 통하는 게 있을까. 무엇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까. (y에서 옮김201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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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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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루시'를 먼저 만나고 이 책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시간 여행이다. 신기한 점은 내가 떠난 시간 여행은 루시의 생이었는데 자꾸만 나를 만나고 있더라는 것. 내가 루시인 것인지, 루시의 엄마가 나의 엄마이기도 한 것인지, 루시의 딸이 내 딸은 아니었는지, 오락가락 갈팡질팡, 그럼에도 소설은 퍽 재미있었으니 나는 남은 두 권도 아주 기대하고 있다.


소설가는 언제부터 소설을 쓰게 되는 것일까? 어려서부터 쓰다 보니 소설가가 된 것일까, 소설가가 되겠다고 작정하면서 글을 쓰게 되는 걸까? 나로서야 도통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이것마저 다 알아내지는 못할 듯하다.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한 말과 함께. 


길지 않은 분량, 읽기 편한 편집, 루시가 처한 형편에 따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고는 있지만 전혀 헷갈리지 않는 전개 방식. 무엇보다 루시가 자신을 정확하게 들여다보려는 지점과 이에 대한 정직한 서술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도저히 내보이지 못할 것 같은 정직한 태도, 자신을 향한 냉혹한 사랑. 나는 루시가, 루시를 창조한 작가가 많이 부러웠다.


엄마를 다시 생각해 본다. 세상의 엄마와 나의 엄마.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딸과 나를 딸이라 부르는 엄마. 앞서 읽은 '에이미와 이저벨'에서의 모녀 관계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의무와 사랑과 허락 사이에서 나는 이기적으로 고민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불편한 고민을 해야 하느냐고, 투덜거려 보지만 나는 이 투덜거림조차 마음에 들어 한다. 잘 읽고 있구나 싶어서.


루시는 아팠고 아팠던 이후에 결국 윌리엄과 헤어진다. 그래,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상황이 이해된다. 현실에서든 소설에서든. 다음 권에서는 어떻게 나를 사로잡으려나.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임을. ... 우리는 생각한다. 늘 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얕보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우리 자신을 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를.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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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3 1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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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4 1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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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틀 스타일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
배명훈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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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 이 정도의 분량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면 그 또한 어떤 의도가 있을 텐데, 생각해 볼만한 문제일까. 이 책도 딸이 권한 책이다. 작가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작가의 글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기억에 없고, 더 알아보겠다는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읽었어도 내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는 것일 텐데, 딸은 세 번째로 좋아하는 작가라고 당당히 나에게 권했는데, 이번에도 딸의 취향과 일치하지는 못하는 느낌이다. 


글의 구성을 거꾸로 생각해 본다. 작가는 어떤 순서로 글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다 읽고 보니 집필의 과정이 궁금하다. 어떤 생각이 먼저 있었고, 그 생각을 어떤 식으로 전개시키고 발전시켰는지. 로봇이 있었고 전쟁이 있었고 성형이 있었을까. 동시에 있었을까. 마구 섞이면서 작가를 사로잡았을까. 글을 쓰면서는 독자들이 어떤 순서로 생각을 전개해 나가기를 기대했을까. 작가가 제시하는 반전은 반전의 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그래서 소설의 감동을 얻는 데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했을까. 소설을 자꾸 읽다 보니 소설가의 의식이 궁금해진다. 뭘 궁리하고 사는 사람들일까, 혹은 이렇게 궁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소설가가 되는 것일까.


소재와 발상은 신선하게 보였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모자랐다. 읽을 게 없다는 느낌. 그래, 그거구나, 보이는 장면들은 무수히 전개되는데 읽을 게 없다는 아쉬움, 이 책을 권하는 딸과 이야기를 읽고 싶은 나의 취향 차이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아직 요즘 소설의 트렌드에 맞추지 못한 탓일 수도 있고. (y에서 옮김201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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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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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은 낯설다. 낯선 것이 반갑다고 하면 진취적인 쪽이라고 하고, 낯선 것이 거북하다고 하면 고루한 쪽이라고 하려나? 나는, 이 시집을 읽고 보고 한 나는, 어느 쪽이라고 해야 할까? 스스로 생각해 보지만 잘 모르겠다. 이 글을 다 쓰고 맺을 때쯤에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로서는, 허수경의 시를 읽을 때는, 시집의 형식이 어떠하든, 이를테면 가로책이든 세로책이든, 보통 시집보다 크기가 크든 똑같든, 여백이 많든 적든, 시의 길이가 길어서 에세이처럼 보이든 어쩌든, 시집의 형식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냥 시만 읽는다. 시만 읽기에도 벅차서 다른 시 바깥의 것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시집의 형식이 바뀐 것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시집을 하나 더 사서 봐야만 할 것 같다. 


그녀의 시를 읽고 있으면 자꾸만 나를 떠나고 있는 나를 본다. 지금 여기 있는 나를 떠나서 과거 저 먼 곳으로 혹은 이 땅 너머 먼 곳으로 막무가내로 떠나는 나를 본다. 나는 그게 좋다. 그녀의 낯선 언어들 틈에 낀 채로 멀리멀리 가 보는 나, 거칠고 험한 곳과 지쳐 쓰러질 만한 곳과 가엾은 아이들이 울고 있는 곳과 춥고 어둡고 기분 나쁜 곳들. 현실에서는 내가 도저히 가 볼 것 같지 않은 곳들만 골라서 데려가는 그녀의 시어들. 


그녀의 젊은 날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덕분인지도 모른다. 기억 속 젊은 그녀가 매혹적인 노랫말로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고 한들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여전히 젊기만 하고 나는 이끌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옛날의 말투가 남아 있는 몇몇의 구절 앞에서는 변하지 않는 그녀를 확인하고 흐뭇해진다. 내 기억이 고마워서.


내가 시로 읽어내는 그녀는 그녀의 본질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다를 것이다. 내가 어찌 몇 편의 시로 그녀를 읽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생명, 아이, 생명의 탄생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진다. 전쟁이든 문명이든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슬픔의 근원들을 향한 그녀의 적의를 느낀다. 내가 읽어낸 그녀가 그녀의 작은 일부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잘못 읽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고. 


시간이 바뀌고 다시 이 시집을 읽었을 때는 지금보다 더 많이 느낄 수 있기를. (y에서 옮김201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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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사나이 할리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나중길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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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스웨이트라는 노신사가 화자다. 외모 면에서 대단하게 그려져 있지 않은 이 노신사,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에 집중을 해야 하나 어쩌나 할 때 이 신사 앞에 신비한 사나이가 나타난다. 신출귀몰, 정말 어느 순간에 나타났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만다. 그러면서 새터스웨이트에게 자극을 준다. 당신은 이 일에 주목을 해야 할 것이라고, 그러면 당신이 뭔가를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직접적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새터스웨이트는 할리퀸의 말만 듣고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상황을 마주한다. 영감을 얻고 추리도 하면서 누군가의 얽힌 고리를 풀어 주곤 한다. 때로는 살아 있는 사람의, 때로는 이미 죽은 사람이 억울하게 남겨 둔 수수께끼 같은 고리들을. 


이번 책은 급박한 사건이나 흥미진진한 사건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1920년대 영국 상류층에서 있었을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을 영국 너머 다른 지방까지 배경으로 삼고서 이야기로 펼쳐 내고 있다. 그때도 그런 일이, 그때는 그런 일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앞서 읽은 이 작가의 책에서 새터스웨이트라는 인물을 만난 기억이 없다. 푸아로 경감의 친구라고도 하는데, 봤던가? 돈 많은 채로 나이 들면, 그 돈을 달리 쓸 데가 없이 홀로 여유로우면, 새터스웨이트라는 이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생을 구경하는 데에 자신의 시간을 쏟게 되는 걸까? 살짝 부러워지는 시절이다. (y에서 옮김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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