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요정 베루프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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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하지 않았고, 감동했고, 먹먹했다. 내 마음을 읽는 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도 이렇게 어렵고 흥미롭구나. 나는 참 무심하게 편리하게 가볍게 살고 있구나. 이 작가는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전혀 사소하지 않게 꽤 의미 있는 일로 만들어 내는 재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풍경의 지점도 시간의 흐름도 주위 사람의 표정까지도 어느 하나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다 읽고 나면 잊어 버려서 스스로에게 좀 서운하기는 하지만)  


줄거리를 요약한다면 지극히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는 줄거리에 잡히는 게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담아 놓은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 감각에 빠져 들게 된다. 나는 나를 이렇게 보았는데, 나는 너를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나를 그렇게 여겼던가...... 이게 무슨 재미란 말인지. 갈등이 아님에도 긴장감은 살아 있고, 싸우는 게 아닌데도 애가 타고, 울부짖는 게 아닌데도 눈물은 글썽이고, 주장하지도 않는데 분노는 일고. 


내가 일본어를 모른다는 점이 일정 부분 아쉽다. 일본어로 제시하는 퍼즐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 가게 되는데 글자가 주는 정확한 의미까지 알아볼 수 있다면 한층 재미있었으리라. 이후로 더 읽어도 좋겠다.  (y에서 옮김201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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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왔지만
다카기 나오코 지음, 고현진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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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인에게는 도쿄에 가서 사는 것이 우리에게는 서울에 가서 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리라. 그 나라 수도에 가서 살고 싶어하는 시골 사람들에게는 꿈처럼 갖게 되는 소망 하나로서. 그러니 태어날 때부터 수도에서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제 부모의 자녀 키우는 안목에 고마워할 수도 있을 테고,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어찌 우리 부모님은 서울로 가서 사실 생각을 못했을까 아쉬워할 수도 있을 테지.

 

그리고 또 하나 더. 제 인생의 공간을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때 중요한 선택을 하는 순간이 온다. 서울로 갈까 가지 말까 하는 것. 상급학교 진학이 그 순간이 될 수도 있고, 직장이 될 수도 있고 결혼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 순간에 그 사람의 그릇 크기가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에서 살 수 있는 사람과 살기 힘들다고 여길 사람.

 

이 작가는 과감하게 도쿄로 간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떨고 움츠러들고 울기도 하면서 견딘다. 좋아하는 일을 끝내 이루어낼 때까지. 결국 성공했으므로 성공한 이야기를 보는 느낌은 편안하다. 고생했던 이야기조차 느긋하게 읽힌다. 다행이다 싶고 잘 되었다 싶다. 실패했더라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내가 좋아하는 그림도 못 보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실패는, 실패를 하면 정말 성공의 거름으로 삼게 될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도 아닌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거울삼아 성공으로 갈 테고, 어떤 사람은 실패만 하다 쪼그라들고 말기도 할 텐데. 실패하면서도 성공을 할 것에 대한 기대감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런 사회적 배경만 주어진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조금 나은 모습으로 여유를 얻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살기 고단하지 않았던 적은 인류 역사상 없었노라고 하지만, 그래도 보는 것마저 힘들 때는 이미 그 시절을 무난하게 지나온 사람으로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y에서 옮김201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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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거리 추정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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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설명하기 어려운 이끌림이다. 지극히 사소한 사건과 배경을 바탕으로 이렇게 진지하고 의미 있는 생각을 이끌어 내다니. 소설가의 역량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테고 이 작가의 소설에 빠지는 내 취향의 덕분일 수도 있겠다. 너와 나의 거리, 너와 나의 관계에는 얼마나 많은 사건과 의미들이 담겨 있던가. 


관계가 곧 삶이라는 말을 최근에 어느 책에서 본 것 같은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 나쁜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등 나도 아주 오랜 기간 시달려 보았다. 우리 삶이라는 게 이 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으며 포기도 체념도 한몫 단단히 차지했다. 그리고 지금은 비교적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적어도 고통 없는 관계 유지에 이르게 되었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는데, 둘러 보니 나만 갖고 있던 어려움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고등학생 몇몇을 중심으로 서로 간의 미묘한 감정과 관계 형성에 주목하고 있다. 사랑이나 질투와 같은 격렬한 감정 싸움이 아니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아주 기본적인 호감과 거부감의 확인이다. 내가 너에게 어찌하여 호감을 느끼게 되었을까, 너는 나에게 어떤 연유로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을까. 오해라고 할 것까지도 없는 지극히 사소한 감정의 엇갈림 혹은 눈치 채지 못한 순간의 감정 변화들.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한 순간의 감정 파동으로 사람을 대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영향을 받고 만다면, 우리는 또 얼마나 불완전한 감정의 동물이 되는가. 


글을 많이 쓰는 작가가 아니라고 한다. 앞선 책들에서도 내 욕망의 근원을 들여다보게 하더니 이 책도 좋은 인상을 남긴다. 괜찮았다. (y에서 옮김201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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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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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보고 먼저 한 일. 예전에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었다는 기억이 났고, 그 책의 후속편이 나왔다는 정보를 봤고, 이 책을 빌렸고, 읽었다. 예전 책의 줄거리를 기억하고 못하고는 상관없이 이 책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었고 의미를 얻었다. 정작 우리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더 모르는 상태가 되어 버렸지만.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노인으로 등장하는 올리브. 역시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잭. 각각 자녀가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세상에서 살고 있고, 부모이지만 더 이상 자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처지로 상실감을 느끼는 두 사람은 재혼을 한다. 사람은 혼자서도 살 수 있고 누군가와 함께 살 수도 있겠는데, 나이와 환경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듯하다. 그래도 시간이 또 흘러 마침내 올리브마저 혼자 남는 상황이 되고 보니 나는 좀 섬뜩했다. 아, 이 시간이 나의 죽음 자체보다 더 두려운 순간일 수 있겠구나 하여.


소설은 교사였던 올리브와 이런저련 인연으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마치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속사정을 하나하나 밝혀서 이야기로 꾸밀 수도 있다는 듯이. 사람 사는 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했으니. 그래서 행운보다 불운이 더 크게 작용하고 행복보다 불행이 더 오래 느껴지는 막막한 현실을 서로 나누자고 말하는 듯이. 주인공도 늙어가고 있고 글을 읽는 당신도 늙어가고 있고 우리 모두 언젠가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한 사람씩 이승을 떠나게 될 것이니 미리 체험해 보자는 듯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병들고 죽고. 그래, 이 과정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사는 것이지. 살아 있는 동안 사는 것이지.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땅 반대쪽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고, 이 전쟁으로 전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는 살아 남고, 누군가는 살아서 이 모든 것을 한탄하며 보고 있고.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살아가야 하는 모양이다. 참 헛헛하다.


내 나름으로 평화롭게 소설을 읽고 있는 이 처지가 엄청 고맙고 엄청 미안한 기분이다.  

무서운 것은 인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이 누군지, 혹은 뭘 하는지 모른 채 살아왔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것이 그의 내면에 전율을 일으켰고, 그는 그것을 자신이 느낀 대로 정확히 표현할 단어조차-스스로-잘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대해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고 느꼈다. 그것은 바로 눈앞에 큰 맹점이 존재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정말로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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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4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04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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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내일이 오늘보다 나으리라 기대했다. 믿었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과 같은 날이 계속된다면 시간에 지는 것이라고, 시간에게 이기고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제 생각해 보니 참으로 피곤하고 지치는 기대였던 것을. 


잔잔하게 잘 읽힌다. 애잔하다. 미국의 메인주가 어디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동부의 위쪽 끝부분, 캐나다 국경과 바다에 잇닿아 있는 지역. 미국의 시골도 우리네 시골과 비슷할까. 비슷한 정도의 꿈과 욕심을 갖고 비슷한 좌절을 겪으면서 살아갈까. 그럴 것 같다. 그런 동질감이 잘 느껴졌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이야기로 비추어 추측해 본다. 아파트라면 약간 거리감이 있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 같고. 삶의 일상적인 영역,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아는 사람들의 삶. 기쁨이거나 고통이거나 희망이거나 절망이거나 하다못해 죽음과 사랑에 이르기까지. 오손도손, 지지고 볶으면서 사는 형편, 그로부터 받게 되는 위로와 안도감들. 삶은 슬퍼도 계속되고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특별한 일은 그다지 없는 것이다. 


마냥 착하기만 한 사람도 없고 마냥 예쁘기만 한 사람도 없고 또 마냥 악하기만 한 사람도 없는 이런저런 세상. 죽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가도 다른 사람의 삶에 기운을 얻기도 하고, 의외의 도움이 되어 주는 자신의 인생을 깨닫고는 새로운 의욕을 느끼기도 하고, 살아 있다면 살만한 이유와 가치는 충분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올리브 아줌마가 약점을 갖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어서 도리어 흐뭇할 정도였다. 


나이가 더 들어도 소설만큼은 계속 읽을 수 있을 조건들, 시력이라든가 소설책 구입이라든가, 이 또한 거창한 꿈이 되고 말 것인가. (y에서 옮김20150617)    

세상은 언제나 슬프게 돌아간다. 그리고 새 시대의 여명은 언제나 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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