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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왔지만
다카기 나오코 지음, 고현진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일본인에게는 도쿄에 가서 사는 것이 우리에게는 서울에 가서 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리라. 그 나라 수도에 가서 살고 싶어하는 시골 사람들에게는 꿈처럼 갖게 되는 소망 하나로서. 그러니 태어날 때부터 수도에서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제 부모의 자녀 키우는 안목에 고마워할 수도 있을 테고,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어찌 우리 부모님은 서울로 가서 사실 생각을 못했을까 아쉬워할 수도 있을 테지.
그리고 또 하나 더. 제 인생의 공간을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때 중요한 선택을 하는 순간이 온다. 서울로 갈까 가지 말까 하는 것. 상급학교 진학이 그 순간이 될 수도 있고, 직장이 될 수도 있고 결혼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 순간에 그 사람의 그릇 크기가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에서 살 수 있는 사람과 살기 힘들다고 여길 사람.
이 작가는 과감하게 도쿄로 간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떨고 움츠러들고 울기도 하면서 견딘다. 좋아하는 일을 끝내 이루어낼 때까지. 결국 성공했으므로 성공한 이야기를 보는 느낌은 편안하다. 고생했던 이야기조차 느긋하게 읽힌다. 다행이다 싶고 잘 되었다 싶다. 실패했더라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내가 좋아하는 그림도 못 보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실패는, 실패를 하면 정말 성공의 거름으로 삼게 될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도 아닌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거울삼아 성공으로 갈 테고, 어떤 사람은 실패만 하다 쪼그라들고 말기도 할 텐데. 실패하면서도 성공을 할 것에 대한 기대감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런 사회적 배경만 주어진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조금 나은 모습으로 여유를 얻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살기 고단하지 않았던 적은 인류 역사상 없었노라고 하지만, 그래도 보는 것마저 힘들 때는 이미 그 시절을 무난하게 지나온 사람으로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y에서 옮김2017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