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가 - 나에게 주는 최고의 이완과 휴식 인요가
폴 그릴리 지음, 이상희 옮김, 지문 감수 / 판미동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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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기를 익힐 때 이론은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실기를 혼자 익힐 경우 얼마나 효율을 얻을 수 있는가. 여러 종류를 여러 차례 해 본 내 경험으로는 사람에게 직접 배우는 것이 제일 좋았다고 말하게 된다. 아무렴, 당연한 말이겠지. 알지만 여러 사정상 사람에게 직접 못 배우고 있을 뿐이고 그래서 혼자 해 보게 되는 것일 텐데. 혼자서 하다 보니 이래저래 시행착오 과정도 길다.

요가를 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다기보다는 나는 좀 궁금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동작이 내 몸의, 내 정신의 어느 부분을 어떤 원리로 건들이고 있어서 내가 괜찮아지는 것인지. 안 하게 되면 왜 나빠지게 되는지. 할 줄 아는 동작은 어떻게 해서 되고 있고 몇 년이 흘렀음에도 여지껏 안 되는 동작은 어디서부터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인지. 

요가원 선생님으로부터 몸의 움직임은 계속 배우고 있다. 원리나 이론을 간단하게나마 가끔씩 말씀해 주시는데 종종 나는 의문이 생기고 그때마다 책을 찾아 보게 된다. 동작 중에는 질문을 할 수가 없고 요가가 끝나면 내 궁금증이 무엇이었는지 이미 잊은 후이고. 

이 책에는 내가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을까? 그런데 나는 무엇이 궁금했지? 모르겠다. 그냥 본다. 요가를 양요가와 인요가로 나누기도 한다는 것을 이 책으로 알게 되었다. 알았다고 딱히 달라질 건 없겠다. 그러려니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요가를 가르칠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이론을 체계적으로 익혀야 할 것도 아니니 재미있게 보기만 해도 된다.

이 책은 내가 본 요가 관련 책 중에 동작보다 이론에 해당하는 내용이 많은 편이다. 들어 본 말도 있고 처음 보는 내용도 있다. 설렁설렁 가벼운 마음으로 넘긴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계속 본다. 재미없다고 느끼고 있는 호흡법(나는 아직도 동작과 호흡이 섞이고 있는 상태라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는 수준이다)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읽고 새긴다. 계속 요가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 책에서 말하는 차크라의 경지에 이르게 될까? 꼭 그러고 싶은 건 아니지만. 

책에서는 인요가를 양요가와 서로 보완하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둘 중 하나만 요가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활동이 특히 중시되는 요즘의 요가 분위기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한 차원의 요가로 여기면 된다는 말에 쉽게 설득이 된다. 당연한 말이다. 음과 양은 합쳐져야 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일 테니. 대상이 무엇이든.

다행히도 또 고맙게도 책에 나오는 인요가의 기본 동작들은 나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실기에 이론을 입혀도 좋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y에서 옮김20250111)

중요한 것은 요가 수련이 몸의 조건과 자신의 변화에 맞춰 함께 살아 숨쉬며 자라고 진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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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바꾸는 하루 10분 자세 교정 -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근육 교정 운동 75
김민지 지음 / 길벗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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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보는 종류의 책이다. 사진책으로 그림책으로 받아들인다. 깊은 생각 없이 보는, 순간의 경고에 뜨끔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물리치지 못하는 책. 책을 보고 있을 게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눈으로만 부지런을 떤단 말이지. 그것도 하지 말라는 자세를 딱 취한 채로.


요가를 하는 중에 궁금해질 때가 많다. 안 되는 동작은 왜 안 될까?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되기는 하는 동작인데 아프면? 아픔을 참고 유지해야 하나, 그만두어야 하나? 이 경계는 어디지? 조금씩 나아지는 동작도 있고 현상 유지만 해도 고마운 동작이 있으며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동작 사이에서 나는 늘 오락가락한다. 이 나이에는 되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욕심을 낼 일도 아니고.


인간은 두 발로 서서 활동하며 산다. 인체의 모든 기관과 근육들이 문제를 얻게 되는 근본 이유 중 하나다. 네 발로 엎드리는 자세가 요가에서 기본이 되는 까닭도 알겠다. 요가를 비롯한 온갖 자세 교정은 평소 일상에서 취하는 자세를 뒤집는 데에 있기도 하고. 몸이 나빠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일이기도 하고. 


설렁설렁 넘기면서 진단과 해결책에 유의하며 살펴보았다. 지금 내게 아주 급히 필요한 자세는 없었고 실려 있는 대부분의 동작은 내가 하는 요가 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특별히 두통 완화에 도움이 되는 동작을 새겨 둔다. 


어떤 동작이든 한 번이라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나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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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9 2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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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0 09: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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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2023 24호 - Vol 24 : 나는 어떤 지능을 가졌을까?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24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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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주제는 '나는 어떤 지능을 가졌을까"이다. 지능은 사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일까? 혹은 높은 지능이 사는 데 얼마나 필요한 조건일까. 막연하게 높은 지능이 좋을 것이라고 지능이 높으면 공부도 잘하고 관계도 잘 맺고 살아가는 데 많이 유리할 것이라고... 여기서 유리하다는 건 생물학적으로 유리한 게 아니라 경제적 그리고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데에 유리하다고 한 게 아닌지 하는 생각에 이르고 보면, 더 말을 이을 수가 없게 된다.

머리가 좋다거나 AI가 인간의 지능을 이겼다거나 하는 기준들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나는, 내 지능은, 내가 내 지능에 기대는 바는, 내가 살고 있는 데에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끼칠까. 나는 잘하고 있나? 잘 살고 있나? 책을 읽는 내내 함께 한 물음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정답은 없고, 내가 선택하는 방향만 찾을 수 있을 뿐인 조금은 허무하고 조금 더 필요한 질문들. 

머리가 좋다고 지능이 높다고 다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다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지능 검사도 한 시절의 평가 기준일 따름이니. 자신에 대한 탐구를 좀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 나이와 관계없이 진로 선택과 관계없이, 늘 자신의 안팎을 돌보아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이를 마땅히 현실 상황에 잘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천천히 해 본다. 이 잡지는 나를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늘 이끌어 준다.  (y에서 옮김20240327)

좋은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생각을 올바르게 적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르네 데카르트) - P15

의식 있는 존재와 대면할 때 우리는 심오한 무언가를 경험한다. - P20

AI가 섬뜩한 진짜 이유, 다시 말해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기저에는, 법칙에 속박된 기계가 우리를 대체하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어서가 아니다. 어쩌면 기계만큼이나 자유롭지 못한 인간 존재를 AI가 넌지시 보여준다는 게 섬뜩한 것이다. - P23

개의 지능은 퍼즐을 얼마나 잘 푸느냐가 아니라 기분을 얼마나 좋게 해주느냐와 더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아니라 무조건적 사랑과 더 밀접하며, 각자도생보다는 가족의 행복에 더 밀착해 있다. - P40

중요한 것은 읽을 줄 아는 것이 아니라 읽은 내용을 이해하고 성찰하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는 읽는 것에 별 의미가 없다.(심지어 읽기는 기억과 관찰의 무의식적 특성을 파괴하기도 한다.) - P50

이 모든 논의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덕을 ‘이해‘하는 것과 덕을 ‘이행‘하는 것을 구분한 아리스트텔레스가 떠오른다. "우리는 덕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해지기 위해서 연구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단순히 감정에 대해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더 쪽똑해지고 기민해지기 위해서 공부한다. - P65

문득 단호한 표정이나 상냥한 미소를 짓고 조언하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꼭 안겼을 때 느꼈던 온기, 나를 위한 깜짝 파티에서 느꼈던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 별말 없이 불쑥 찾아오던 친한 친구의 모습도 생각난다. 결론은 명확하다. 외로움의 참된 치유법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 관계를 맺지 못하면 외로움의 문제는 계속 골칫거리로 남을 것이다. 외로움은 실리콘밸리의 최신 발명품으로 해결되거나 치유될 수 없다. 차라리 다행이다. - P105

지금 당신은 10년 전보다 나은 사람인가? - P144

우리가 하루 동안 결정하는 모든 것이 이정표다. 그렇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먹는 것과 사는 것,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가 미래의 나에게 가는 긴 여정에 세우는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에 대해서만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 밖의 결정은 사소하다고 생각한다. - P151

‘젊음‘은 이데올로기다. 승계되는 이데올로기. 이렇게 생각해보면 편하겠다. 나이가 든 늙은 사람들은 꽃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꽃은 청춘이고 이데올로기고 아름다움이다. 청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이미 승계한 노인들은 꽃 앞에서 그 추억에 젖는 것 아닐까.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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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마법사 어스시 전집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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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와 함께 판타지 문학의 3대 걸작 중 하나라고 하는 작품이다. 앞의 두 작품은 영화도 안 봤다. 마법이라고 하는 요소가 뭔지 허황되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비슷한 이유로 해피포터까지도).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이 작가의 다른 단편집을 보고 받은 인상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쳤는지도 모르겠다고 여기면서.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통해 마법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되었다. 편견을 버린 정도가 아니라 마법을 예찬하는 정도까지 된 듯하다. 내가 마법을 썩 좋아하지 않았던 건 황당하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인간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게 컸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 이런 것이었다. 소설이라는 세계가 원래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지만, 내 기준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으로 이런 내 생각이 바뀌었다. 작가가 바꿔 준 것이다.

 

마법사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마법을 배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고된 공부에 속하는지.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보다 더 어려울 듯해 보이는데. 실기도 그렇고. 그런데 마법학교에서도 인성 교육은 한계가 있나 보다 싶었다. 실력이 뛰어난 학생일 경우 인성이 나쁘다고 퇴출시키거나 거를 수가 없으니. 그래서 나쁜 마법사도 생기는 것이고 마법사끼리 싸움도 일어나고 그러는 중에 깨닫는 마법사도 나오고. 얼마나 인간적인지 웃음이 나올 정도였으니. 마법사는 신과 가까운 쪽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점, 그것도 엄청 열심히 마법을 배우고 익혀야만 제대로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책은 시작이다. 이 책 속의 주인공 게드는 어렵고 고된 과정을 거쳐 마법사가 되고, 마법사가 되는 과정에서 잘난 척하다가 스스로 시련을 맞는다. 이 시련을 이겨 내는 과정이 참으로 근사했다. 마법 세계의 이야기만은 아니니까. 여기서 책 속의 판타지는 우리네 현실을 불러들인다. 저마다의 그림자를 만나는 일로. 그림자라는 것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스스로 거느려야 하는 것이고 스스로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이 그림자가 자칫 악으로 돌아서려고 하는 순간까지도 스스로 붙잡아서.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불러들이고는 놓친 악의 그림자에 끌려 가 버리고 만다는 설정까지도.  

 

길어지는 격리의 시간들, 마법의 세계로 한 발 더 들어서야 할까 보다.(y에서 옮김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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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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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을 즐겨 읽는다,고 생각한다. SF가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소설을 이르는 것인지 내 힘으로는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SF소설을 읽고 있고 즐기고 있다. 이러면 되는 것 아닌가? 다만 나의 SF 독서 앞에는 여러 층의 벽들이 놓여 있다. 넘어선(내 생각에) 벽도 있고 넘고 있는 벽도 있으며 도무지 벽 근처에도 못 가는 글도 있다. 이 또한 이런다고 무슨 문제가 되랴. 나는 계속 읽고 있으니.


이 작가의 글은 읽기에 쉽지 않다. 특히 인물의 이름, 땅의 이름에서 걸린다. 신비롭다. 그럼에도 걸려 머뭇거린다. 스윽, 나아가지 못한다. 외우든가 무시하든가 해야 다음 글로 들어설 수가 있는데 번번이 잡힌다. 이런 이름이라니, 어떻게 이런 이름으로 지었을까? 소설가의 능력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분야가 이름을 짓는 일이 아닐까 여기면서 나는 맴돈다. SF소설이 가져야 할 중요한 장치 하나로 삼는다. 머뭇거리게 하는 지점에 찬사를 얹는다.


모두 17편의 소설들. 내게로 단숨에 확 다가온 글도 있었고 아무리 따라잡으려고 해도 자꾸 물러서는 글도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어떻게 내가 다 품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이 작가의 글인데. 섭섭하지 않게, 조금 위축된 기분으로, 이만하기 다행이지 하는 마음으로 정리한다. 기회가 생긴다면 또 읽어 보게 되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이 글에서 남겨 두며.


책 제목에는 열두 방향이 나오고 소설은 17편이 담겨 있다. SF소설이 다룰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소설마다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여행, 다른 차원, 과학기술의 양면성, 가상 세계 등등. SF 소설의 개별적인 특징을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될 소설이라는 생각, 여기까지만 해 본다. 내가 탐색할 것은 아니어서. 아무튼 이 책으로 나의 SF 소설 영역을 넓힐 수 있어서 무척 기분이 좋다. SF에 진짜와 가짜가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방식대로 구분 지어 보는 일도 흥미로운 일일 테니까.


샘레이는 무척 매력적이었고 오멜라스는 진정으로 떠나고 싶은 곳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샘레이는 없고 오멜라스는 곳곳에 있다. 내가 SF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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