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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열두 방향 ㅣ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12월
평점 :
SF소설을 즐겨 읽는다,고 생각한다. SF가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소설을 이르는 것인지 내 힘으로는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SF소설을 읽고 있고 즐기고 있다. 이러면 되는 것 아닌가? 다만 나의 SF 독서 앞에는 여러 층의 벽들이 놓여 있다. 넘어선(내 생각에) 벽도 있고 넘고 있는 벽도 있으며 도무지 벽 근처에도 못 가는 글도 있다. 이 또한 이런다고 무슨 문제가 되랴. 나는 계속 읽고 있으니.
이 작가의 글은 읽기에 쉽지 않다. 특히 인물의 이름, 땅의 이름에서 걸린다. 신비롭다. 그럼에도 걸려 머뭇거린다. 스윽, 나아가지 못한다. 외우든가 무시하든가 해야 다음 글로 들어설 수가 있는데 번번이 잡힌다. 이런 이름이라니, 어떻게 이런 이름으로 지었을까? 소설가의 능력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분야가 이름을 짓는 일이 아닐까 여기면서 나는 맴돈다. SF소설이 가져야 할 중요한 장치 하나로 삼는다. 머뭇거리게 하는 지점에 찬사를 얹는다.
모두 17편의 소설들. 내게로 단숨에 확 다가온 글도 있었고 아무리 따라잡으려고 해도 자꾸 물러서는 글도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어떻게 내가 다 품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이 작가의 글인데. 섭섭하지 않게, 조금 위축된 기분으로, 이만하기 다행이지 하는 마음으로 정리한다. 기회가 생긴다면 또 읽어 보게 되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이 글에서 남겨 두며.
책 제목에는 열두 방향이 나오고 소설은 17편이 담겨 있다. SF소설이 다룰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소설마다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여행, 다른 차원, 과학기술의 양면성, 가상 세계 등등. SF 소설의 개별적인 특징을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될 소설이라는 생각, 여기까지만 해 본다. 내가 탐색할 것은 아니어서. 아무튼 이 책으로 나의 SF 소설 영역을 넓힐 수 있어서 무척 기분이 좋다. SF에 진짜와 가짜가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방식대로 구분 지어 보는 일도 흥미로운 일일 테니까.
샘레이는 무척 매력적이었고 오멜라스는 진정으로 떠나고 싶은 곳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샘레이는 없고 오멜라스는 곳곳에 있다. 내가 SF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