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잔 인생 한입 35
라즈웰 호소키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고 또 봐도 재미있는 만큼 술꾼들에게는 마시고 또 마셔도 시원할 것이다. 여름철의 생맥주. 뜨거운 날은 뜨거운 대로 장마철은 장마철대로. 지금은 아직 뜨겁지도 않고 장마가 온 것도 아니지만 생맥주의 시원한 거품맛만큼은 기대가 된다. 실제로는 잘 마실 줄도 모르면서. 

이번 호는 평범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매일매일의 평범한 일상처럼 평범한 술과 맛있는 안주로 내 눈을 달래 주었다. 이만큼 누리는 일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제는 안다. 크든 작든,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어떤 사고만 없어도 고마운 시절이니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술에 맞춰 다른 안주를 챙겨서 마시나 보다. 몰랐다. 안주로는 하나만 먹는 줄 알았으니까. 마음 맞는 사람 몇몇이 각자 원하는 술에 원하는 안주를 시켜서 같이 나눠 먹는 맛. 나는 참 나눠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시킨 내 것만 먹는 게 마음 편했으니까. 다른 사람이 시킨 것들을, 특히 고기 관련 요리를 잘 먹지 못해서 그럴 수도. 

많이 잘 먹고 마시는 사람이 아주 가끔 부럽기는 하다. 오늘처럼. 건강을 지키는 선에서 좋은 유전자를 물려 받은 것이리라. (y에서 옮김202405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더 낫고 말고 할 게 없다는 자포자기적인 말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삶은 사람마다 다르게 작용하고 있고, 한 사람의 삶 안에서도 더 나은 날, 덜한 날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매일매일을 이토록 치열하면서도 숨가쁘게 살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왜 태어났는지는 묻지 말라고 했지? 자연 세계에서 우리는 그저 태어났을 뿐이고 태어났으니 삶의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그래서 잘 살아 가야 한다고.


소설을 읽을 때면 이 생각이 자꾸 난다. 남의 이야기, 그것도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인데 나는 내 삶과 내 현실을 비춘다. 어떨 때는 내가 더 나아 보이고 어떨 때는 내가 좀 초라해 보인다. 아무리 맥빠지게 만들어도 나는 자꾸 읽을 의지를 얻는다. 우리 소설에서는 더더욱 자주, 또 강하게.


김연수의 소설은 내게 오락가락 와 닿았던 편인데, 이 책 안에 글들은 다 좋았다. 더 빨리 읽었으면 더 좋았을 것인데,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구나 여겼다. 제목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만 같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 오지 않을 것이므로, 오지 않을 것을 짐작하므로, 오지 않을 것을 알아서 서글프기만 하다고, 그래서 쓴다고, 썼을 것이라고 내 멋대로 생각했다. 


여덟 편의 글들. 하루에 한 편씩 눌러 쓰는 기분으로 읽었다. 연달아 두 편을 읽고 싶지 않았다. 이 중에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내 기분을 오래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이 작가가 그려 내는 그리움이 이렇게나 절절했던가, 나는 어찌하여 미처 읽어 낸 적이 없었던가. 이어서 읽은 ‘사랑의 단상 2014’는 또 어떠했나. 사랑 따위 더 이상 없는 감정이라고 여기고 있는 나를 지나온 먼 시절로, 사랑만이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믿었던 그 어린 때로 돌려 세웠다. 2014년은 작가를 참 아프게 했을 시절이었음을, 어느 새 10년이 흐르고 있음을, 게으른 독자는 이렇게 고맙게 깨닫는다. (y에서 옮김202401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텔 대신 집에 체크인합니다 - 일상에 집중하는 공간 탐험 비법
해리어트 쾰러 지음, 이덕임 옮김 / 애플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모르는 내용은 아니다. 그럼에도 읽을수록 끄덕였다. 이런 글은 고맙다. 나를 각성시켜 주니까,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있는 나를 분명하게 나무라니까, 이 나무람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고 어서 따라야지 하는 생각을 강하게 하도록 해 주니까. 그럼에도 내 실천력은 아직 모자랄 뿐이지만.

여행을 하는 이유는? 여행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여행을 한 것을 자랑하는 이유는? 나는? 너는? 이유는 다 다른 것 같은데도 또 다 비슷하게 느껴진다. 나를 남들에게 보이기, 나를 남들로부터 인정받기, 내 존재를 남의 시선으로 확인받기.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분명히 아닐 것 같고. 저마다 살아 있는 이유를 찾는 과정의 하나일 테다. 게다가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자신을 내보이기 좋은 세상이 되기도 했고.

여행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여행하는 사람 따로, 여행지에 살고 있는 사람 따로. 더불어 사는 데에 한계선을 넘은 지역이 자꾸 나온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여행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살기 힘들어진다는 역설, 우리 눈앞에서 보고 있다. 사람이 덜 있는 곳으로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 이 자체가 모순이기도 하니까. 나는 되고 너는 하지 마라? 꼭 정치가들이 하는 짓 같아서 마음이 언짢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는 일, 좀 했다. 이제는 다른 것보다 신체적인 이유, 건강상의 조건 때문에 안 하려고 한다. 할 수 있다면 나는 더 하고 싶어 했을까? 여행을 하고 싶은데, 비행기도 타고 싶은데, 못하니까 이 책으로 내 변명을 삼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부인하지 못하겠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것으로 삼을 말들을 수집하고 있었으니까. 여행을 하지 않는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할 이유를 얻고 싶었으니까. 

다 구했다. 이만하면 충분했다. 비행기를, 배를, 차를 타고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집 안에서도, 집 주변에서도, 조금 더 나아간 동네에서도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는 방법을 만족할 만큼 얻었다.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또 멀리 저 멀리 가 보게 되는 수도 있겠지만. 여행을 아예 안 가겠다고 다짐하겠다는 마음, 이건 아니다. 열어 놓고 싶다, 그래도. 

또 그래도 집에 잘 머물러 있고도 싶다. 청소하며 여행하고 밥을 하며 여행하고 슈퍼에서 쇼핑을 하며 여행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여행을 하는 것. 그러는 동안 내가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것. 잘 지내기도 하고 심심해서 변덕을 부리기도 하고 만족했다가 불만을 터뜨렸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나를 달래면서 매일을 여행지에서 보내는 기분으로 살아보는 것. 

이 책을 읽는다고 여행할 사람이 여행을 하지 않게 되지는 않겠지만 여행을 못해서 실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법 위안이 되어 줄 것이라고 여긴다. 꼭 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y에서 옮김20240912)    

다른 하늘, 다른 태양 아래서 우리를 둘러싸던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본질적인 나 자신이 드러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 P15

다른 곳에서 뭔가 다른 것을 경험하고 일상적 자아를 벗어 버리고 싶은 갈망, 그 욕망을 아무래도 내팽개칠 수 없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이 가진 본질적인 욕구로, 궁극적으로는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이질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 P16

아파트에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서 가끔은 읽고 있던 책이나 잡지를 내려놓은 채 밝은 빛 속에서 눈을 끔벅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때론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 P60

어느 새 당신은 더는 먼 곳을 그리워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 그 자체로 충만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집에는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이 있으니까. 호텔에서 제공하는 베개가 아닌 내 몸에 딱 맞는 베개가 놓은 깨끗한 침대, 비가 오건 햇볕이 쨍쨍 내리쬐건 상관없이 필요한 옷이 모두 진열된 옷장,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깨끗한 물. 그리고 잘 열리고 잘 닫히며 열린 하늘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 P66

세상은 스스로를 낭비하고 소비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며 그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따라서 지구상의 공간을 당연하게 여기고 우리의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 P124

인간의 진정한 임무는 자신의 삶과 행동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다. - P162

완벽한 평화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 P164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165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여행 안내책자와 삽화집, 여행사의 카탈로그 같은 것을 참고해 어디든 여행해 보라. 꼼꼼하게 여행 계획을 세우고, 그 모든 것을 가장 눈부신 색으로 칠하되, 장 데 제셍트처럼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곳엔 가지 말라. - P185

아무리 일상이 우리를 통제하고, 스트레스가 우리를 갉아 먹고 삶이 악취를 풍긴다 해도 언제나 가능한 일이 또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다. - P2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술 한잔 인생 한입 34
라즈웰 호소키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다츠는 꽃을 보며 술을 마신다. 나는 꽃을 보며 술을 마시는 내용의 만화를 본다. 몸과 마음을 더 건강하게 해 주는 쪽은 내 쪽이리라 혼자 웃으며 본다. 술을 마셔도 취하고 꽃을 보아도 취하고 만화를 보면서도 취한다. 저마다 취할 줄 아는 게 많을수록 세상 살 맛이 더 날 것 같다. 이왕이면 돈은 적게 들고 심신은 더 평온하게 해 주면 좋고.

늘 마셔도 또 마시고 싶은 술처럼, 계속 보는데도 달리 새로운 내용이 없는데도 나는 자꾸 이 만화를 찾아 읽고 있다. 수집품이 되었다. 다 모을 때까지, 구하고 또 보겠다. 번호 순대로 세워 놓고 보면 멋질 듯하다. 마치 누군가 비싼 술병을 늘어놓고 흐뭇해 하는 것처럼 만족스러울 것이다. 

더 기대하는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또 기대한다. 모순이군.  (y에서 옮김202404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3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1996년에 나온 '식빵 굽는 시간'과 1999년에 나온 '가족의 기원'. 그 시절에 이 작가의 글을 좋아했다고 기억하고 있으므로 나는 이 두 편도 읽었을 것이다, 당연히. 각각의 책도 찾아보면 나에게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이사하면서 정리했을지도. 


작가의 이름도 소설 제목도 이렇게 분명한데 내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글을 읽는 내내. 이렇게나 인상적인 반전과 놀라운 관계 설정에 대해 이토록 까마득하다니. 나는 완전히 잊은 내 기억력에 또 놀라고 그만큼 재미있는 글에 대해 감탄했다. 지긋지긋한 가족 이야기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전개하고 있는 소설. 어느 새 30년이 지난 작품들이 되었구나. 사람 사는 모습은 30년 정도로는 그다지 바꿀 수 없는 모양이구나. 소설따라 내 나이도 흘렀을 텐데 소설만 아득하고 나는 여전히 철없는 사람으로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아쉬우면서도 다행스럽다. 


가족은 어떤 관계라고 해야 하나. 가족은 어떤 관계여야 하나. 그런 게 따로 있을까? 가족도 다른 관계와 같은 게 아닐까? 가까우면 가깝고 멀면 멀고 다정하면 다정하고 냉정하면 냉정하고. 가족이라서, 가족이니까, 가족끼리 뭘 그래... 같은 것들이 이제는 폭력이 되기도 하는 시대. 어느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가족이라면, 희생시켜야 하는 것이 가족이라면, 참 마음에 안 드는 가족 관계다. 


무능한 사람이 있다, 많을 것이다. 나를 생각해 봐도 자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신의 삶에 무능하고 가족의 삶에도 무능하고 그럼에도 살아 있고 살아 있을 수밖에 없고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폐를 끼치고 본인은 그럴 의지나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님에도 하는 일마다 안 된다고 하는, 그런 무능한 사람들. 가족을 덩달아 병들게 하는 사람.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고 현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도 사람의 기본값 중에 하나일까. 원래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못난 존재를 기반으로 태어난 것일까.


소설은 어둡고 답답했다. 어떤 쪽으로도 해결이 되거나 답을 구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을 배경으로 잡고 있으니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한데 속상하지는 않았다. 사는 게 그런 거지, 싶은.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지, 싶은. 지금의 내 처지가 소설 속 인물들의 처지와 같은 게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어쩌나, 저들을 도울 수 있기는 한가?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나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는데. 소설은 읽는 마음을 한없이 추락시키면서도 사람과 삶과 문학에 대한 기대만큼은 놓지 않도록 당겨 주었다.


현재 나오는 소설을 읽는 것도 벅차지만 지난 시절에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강해진다. 서글프면서 즐거운 독서가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