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여름 2025 소설 보다
김지연.이서아.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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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소설을 읽는다, 쓰고 보니 매계절마다 이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계절 감각을 이 책 시리즈로 확인하는 것, 혼자 근사하게 여긴다. 세 편의 우리 소설, 소설 한 편의 값을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도 색다르다. 비싼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나면 돈을 번 기분이 드는 일,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의 소비자가 된다.


김지연의 '무덤을 보살피다'를 읽으면서 뜨끔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람을 못 믿는구나, 소설에서마저 의심으로 시작하는구나, 언제 나를 해칠지 모르는데 사람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겠구나, 소설 속 화자의 상황에 이입하면서 자꾸만 현실을 거부하게 된다. 안전하지 못한 세상, 오그라드는 신세,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었으니 어쩌 살아가게 될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서아의 '방랑, 파도'를 읽고 보니 서늘하다. 살아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어느 때, 왜 살아야 하는지 의욕이 생기지 않는 어느 때, 당신은 살고 있군요 감탄이 생기는 어느 때, 죽음이 문득 잡혀서 느껴지는 것 같은 어느 때. 소설과 현실이 오락가락 하는 동안 작가의 의도를 헤아려 보았지만 딱히 답이 궁금하지는 않았다. 배경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함윤이의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는 답답하게 읽었다. 글이 답답한 것이 아니라 글 속 화자가 처한 사정이 답답해서, 이런 불분명한 사람들이 실제로 있는 것만 같아서, 이런 불분명한 사람들 때문에 내 삶이 위협을 받는 것만 같아서, 불안해서, 불쾌해서, 거북하고 싫어서. 점점 솔직해지는 나를 마주하면서 소설을 놓았다. 작가와는 반가운 만남은 아니었으나 인상적이었다.


이 뜨거운 여름은 얼마나 계속 이어질까. 읽을 글이 있어서 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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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6 - 듄의 신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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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책을 다 읽었다는 보람? 같은 건 안 든다. 그냥 길고 긴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다. 아무도 점검해 주지 않는 나만의 숙제로. 읽는 중에 영화도 보았고 감탄도 했고 기대도 했다. 작가가 이 이야기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데, 번역본도 여기까지라는데, 책을 끝냈어도 끝난 느낌이 안 들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만 듄을 떠나 내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오겠다, 온다, 왔다. 만 년 이후의 세상이라도, 먼먼 우주의 어딘가라고 해도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약간의 실망을 안고서.  

SF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책 저런 책을 돌다가 이 작가의 책을 본 것이었다. 잘했고 그만큼 만족스럽다. 분량만 해도 어지간히 길었으니 읽었다는 성취감이 크다. 세상의 어떤 이는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에 이런 거대한 상상을 하고 있었단 말이지. 지금 우리는 어떤 상상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는 데에 도무지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신기하고 부러울 따름이다. 

과학기술이 점점 더 발전하게 되면 정녕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고 제어할 수 있게 될까? 다른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을 읽는 일이나 그 마음을 통제하고 결정하기까지 하는 일, 힘이 더 세고 덜한 것을 마음 통제력으로 확인하는 일 따위들. SF 속 세상에서 기계나 장치는 발전할 만큼 발전시킨 것 같고 마음 혹은 뇌 구조 영역이 남은 듯한데. SF 작가들이 뇌과학이나 심리학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만큼.

사람을 복제시키는 기술, 복제시키면서 기억까지 저장시키는 기술, 그래서 죽어도 다시 깨어나 영원히 살아간다는 설정. 나는 그런 삶을 바라지는 않겠다. 영원히 산다는 게 상이 아니라 벌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도 알고 있고. 우리의 삶이 가치로울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폴의 생애, 레토 2세의 생애는 긴 이야기 안에서 생동감이 퍽 강했다. 레토 2세의 시대가 끝난 이후로는 혼란한 상태가 이어졌는데 6권에 이르기까지 확실해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없애려고 궁리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의 집단처럼, 마치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처럼. 누가 세상의 주인인지 각각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이마다 할 말은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세상의 주인 같은 것 안 하고 싶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일 뿐. 다른 삶의 주인들과 손을 맞잡고 살아가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구할 일은 다른 이에게 맡기지, 뭐. 아, 해서는 안 될 사람이 하겠다고 나서는 그 꼬락서니는 말려야 하는데......(y에서 옮김202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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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8
라즈웰 호소키 지음, 이재경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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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째에 이르니 술의 세계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8권이나 되어서야 알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역시나 나는 먹고 마시는 쪽에 대해서는 늦어도 너무 늦는 건가 싶다그렇다고 딱히 불편한 건 없지만 둔한 건 둔한 것이니까.


술을 잘 혹은 즐겨 마시는 이들은 술과 같이 먹는 안주에 대해서도 이 만화의 주인공만큼이나 신경을 쓸까이왕이면 더 맛있게더 신나게더 즐겁게 먹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 테니 그 열정 자체는 짐작이 가는데한 발만 더 들어서서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이렇게 이렇게 같이 먹으면 더 맛있고이 술과 이 안주는 아니란 말이지술 자체가 아니라 술 마시는 일에도 전문가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요즘은 먹방 운영도 능력인 시대이기도 하고이 만화의 주인공처럼 실제로 마실 수 있는 사람이 개인 방송을 운영한다면 인기를 얻겠다는 생각도 든다당사자의 간 건강에 대해서는 모르겠고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영향을 받는 일 없이오로지 상상으로만 마시고 먹고 취해 보는 이 독서아직까지는 마음에 드는 일이다그래서 계속 볼 생각에 계속 주문도 하고 있는 중이고그러면서 어떤 술도 어떤 안주도 실제로 먹고 싶다거나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나 자신도 꽤 신기한 사람이다.


책은 만화 에피소드 사이에 작가가 그와 관련되는 산문을 실어 놓은 구성이다만화에서는 별로 찾아내지 못했는데 산문에서는 오타가 더러딱 신경 쓰일 만큼 꾸준히 보인다번역자 쪽인지 편집자 쪽인지 글을 소홀하게 여긴 듯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섭섭하다.(y에서 옮김202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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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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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이 있는 산문'이라는 말을 가끔 들먹인다. 내게는 구분이 되는 잘 영역이다. 읽을 만한, 여러 모로 도움이 되는, 계속 읽고 싶은, 읽는 동안 읽는 내가 기특해지면서 읽고 있다는 자부심이 드는, 이런 책이 있어서 아직 세상이 인문학적으로 괜찮다는 안도감이 드는 글과 책, 이 책처럼.


작가의 문체는 부드럽지 않다. 나긋나긋하지도 않다. 메마른 듯 간결하고 강건하다. 살짝 주눅도 든다. 가끔은 나무람을 받는 기분도 드는데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운이 생긴다. 이런 근사한 생각의 말을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이, 들을 만큼의 가치를 가진 사람인 것만 같아 착각이라도 고맙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요하게 읽었으나 읽는 내 속은 전혀 고요하지 않았다.


소설가의 산문을 읽으면 주로 소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 점으로 인해 더 좋아진다는 것을 확인하면 무척 즐겁다. 읽는 이로서의 사명, 읽는 이로서의 의무, 읽는 이로서의 보람,... 등으로 나는 나를 부추긴다. 더 읽어 보자고.


마지막 대목에서 좋은 구절을 만났다. 아무렴, 대작가가 하시는 말씀이니 새겨 들어야지. 나도 언제까지 읽을 것이라고 계획을 세운다거나 결심을 할 필요는 없겠다. 비록 눈도 어두워지고 있고 침침해져서 자꾸만 안약을 넣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읽으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작가가 써 주시는 한 나는 읽고 행복하면 좋을 일이다.  

  

문학에 유사종교적 기능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종교의 거울이다. 인간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 P38

알지 못하는 영역을 남겨두어야 한다. 설렘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모르는 사람으로 있어야 한다. 무지의 영역을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고향에 이르지 말아야 한다. 고향에 이르렀더라도 완전히 정착하지는 말아야 한다. - P64

사실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사실은, 자기들의 확신을 보장해주고 강화시켜 줄 수 있을 때만 중요하다. 이미 가지고 있는 확신을 보장해주고 강화시켜줄 수 있는 사실만을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배제한다. 혹은 자기 확신을 보장해주고 강화시켜줄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하여, 왜곡하여 받아들인다. 그렇지 않은 사실은 부정한다. 말하자면 확신에 의해 사실이 비틀어진다. 확신은 사실을 부정하기도 하고 왜곡하기도 하고 창작하기도 한다. 희망, 혹은 증오, 혹은 두려움에 의해 무언가가 덧붙거나 떨어져나간다. - P200

너무, 지나치게 사람을, ‘자아’를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 P204

불만은 자기가 얻은 결실이 자기가 기울인 노력에 비해 충분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얻은 결실과 자기 것을 비교할 때 생긴다. 자기보다 덜 일한 사람이 자기와 같은 대접을 받거나 자기와 똑같이 일한 사람이 자기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될 때 생긴다. 다른 사람이 어떤 결실을 얻었는지,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 모를 때는 생기지 않던 불만이 다른 사람이 얻은 결실, 받은 혜택을 알게 되는 순간 생긴다. 비교하는 순간 생긴다. - P242

언제까지 걸을 거라고 미리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걸으면 된다. 언제까지 쓸 거라고 미리 결심할 필요가 있을까. 글을 쓸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쓰면 된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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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5 - 듄의 이단자들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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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이 넘도록 아라키스를 지배한 레토2세가 물러나고. 레토2세를 폭군으로 부른 이들(혹은 단체)이 그 다음의 지배권을 갖기 위해 벌이는 미묘한 갈등 관계와 그로 인한 싸움들이라니. 개인은, 개인의 삶은, 어쩌면 전체 역사 구조에서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것일까. 종의 유지가 아무리 중요한 생명의 과제라고 해도, 나는 낱낱의 개인의 삶에 가치를 매기고 싶은 쪽이라. 한낱이라고 불리든 말든.


여러 집단이 등장하고 각 집단의 이익을 위한 인물들이 나서고 이 인물들이 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서로 간의 눈치를 보면서 협상을 해 나가는 과정.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현대 역사의 이익 집단이나 국가나 기업을 대입해 넣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 것이려니, 저절로 끄덕여진다. 전쟁과 권력과 이익과 이기심의 본질에 관하여. 이를 생각하기 위해 이 긴 글을 읽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쨌든 이 모든 시간들이, 한 인간으로서는 겪을 수 없는 긴 이야기들이 내 하찮은 의식을 흔들어 놓기에는 충분했으니까. 그것도 내 삶을 겸허하게 돌아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일로.


사람은 어떨 때 상상하게 될까를 많이 떠올려 보았다. 지금의 처지가, 조건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를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고 싶기는 한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일이라고 여겨질 때, 말이 되든 말든 과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든 말든 해 보는 상상이라면. SF적 상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소설로 어느 정도 짐작한다. 내가 맞게 짐작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내 상상의 영역이므로 기꺼이 허락하련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설정, 사람이 죽지 않도록 먹어야 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걸 또 만드는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한다는 설정, 인간의 정신과 육체적 경험을 대대로 이어받는다는 설정, 우수한 유전자만으로 사람을 교배시킨다는 설정, 이런 일에 직접 참여하기 위한 계급과 권력을 갖기 위해 취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상상까지. 작가는, 자신이 살던 시절에 이런 생각을 많이 해 보았던 것일까. 2차 대전 이후의 냉전 시대라니 어느 정도 짐작해서 알 것도 같다.  


5권에 이르니 시간에 대한 내 인식이 살짝 달라진 느낌이다. 우리네 한 평생이 길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는데 또 한편으로는 잠깐이기도 하다는 것.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이 우주에 어떤 자리로 작용하는 것일지.  


'아트레이데스' 가문이라는 조건을 다루는 작가의 태도가 신경에 거슬린다. 가문, 유전자, 혈통... 이게 인간 집단 사회에서는 아주 중요하다고 하는 것 같은데, 특히 지배하는 쪽 입장에서, 6권에서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y에서 옮김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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