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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격이 있는 산문'이라는 말을 가끔 들먹인다. 내게는 구분이 되는 잘 영역이다. 읽을 만한, 여러 모로 도움이 되는, 계속 읽고 싶은, 읽는 동안 읽는 내가 기특해지면서 읽고 있다는 자부심이 드는, 이런 책이 있어서 아직 세상이 인문학적으로 괜찮다는 안도감이 드는 글과 책, 이 책처럼.
작가의 문체는 부드럽지 않다. 나긋나긋하지도 않다. 메마른 듯 간결하고 강건하다. 살짝 주눅도 든다. 가끔은 나무람을 받는 기분도 드는데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운이 생긴다. 이런 근사한 생각의 말을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이, 들을 만큼의 가치를 가진 사람인 것만 같아 착각이라도 고맙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요하게 읽었으나 읽는 내 속은 전혀 고요하지 않았다.
소설가의 산문을 읽으면 주로 소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 점으로 인해 더 좋아진다는 것을 확인하면 무척 즐겁다. 읽는 이로서의 사명, 읽는 이로서의 의무, 읽는 이로서의 보람,... 등으로 나는 나를 부추긴다. 더 읽어 보자고.
마지막 대목에서 좋은 구절을 만났다. 아무렴, 대작가가 하시는 말씀이니 새겨 들어야지. 나도 언제까지 읽을 것이라고 계획을 세운다거나 결심을 할 필요는 없겠다. 비록 눈도 어두워지고 있고 침침해져서 자꾸만 안약을 넣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읽으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작가가 써 주시는 한 나는 읽고 행복하면 좋을 일이다.
문학에 유사종교적 기능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종교의 거울이다. 인간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 P38
알지 못하는 영역을 남겨두어야 한다. 설렘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모르는 사람으로 있어야 한다. 무지의 영역을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고향에 이르지 말아야 한다. 고향에 이르렀더라도 완전히 정착하지는 말아야 한다. - P64
사실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사실은, 자기들의 확신을 보장해주고 강화시켜 줄 수 있을 때만 중요하다. 이미 가지고 있는 확신을 보장해주고 강화시켜줄 수 있는 사실만을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배제한다. 혹은 자기 확신을 보장해주고 강화시켜줄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하여, 왜곡하여 받아들인다. 그렇지 않은 사실은 부정한다. 말하자면 확신에 의해 사실이 비틀어진다. 확신은 사실을 부정하기도 하고 왜곡하기도 하고 창작하기도 한다. 희망, 혹은 증오, 혹은 두려움에 의해 무언가가 덧붙거나 떨어져나간다. - P200
너무, 지나치게 사람을, ‘자아’를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 P204
불만은 자기가 얻은 결실이 자기가 기울인 노력에 비해 충분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얻은 결실과 자기 것을 비교할 때 생긴다. 자기보다 덜 일한 사람이 자기와 같은 대접을 받거나 자기와 똑같이 일한 사람이 자기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될 때 생긴다. 다른 사람이 어떤 결실을 얻었는지,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 모를 때는 생기지 않던 불만이 다른 사람이 얻은 결실, 받은 혜택을 알게 되는 순간 생긴다. 비교하는 순간 생긴다. - P242
언제까지 걸을 거라고 미리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걸으면 된다. 언제까지 쓸 거라고 미리 결심할 필요가 있을까. 글을 쓸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쓰면 된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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