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자국 외 - 2008년 제9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해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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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러 명이 써 놓은 소설집을 읽고 이렇게 우울함을 느끼기는 처음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어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서글프고 고단하면서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 것을 이렇게 매일매일 아둥바둥 살아야 하나, 무슨 영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지금 참고 견디면서 내일을 꿈꾸어야 하나.


2008년 수상작품집이니 2007년부터의 우리 시대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의 현재 삶의 모습일 텐데, 정말 한 편 한 편 우울하기 짝이 없다. 막연히 사는 게 힘든 모양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거야, 이렇게 기운이 안 나서야... 싶던 것들이 이 책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내 비록 오래 살아온 게 아니지만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인데, 지난 날 아무리 암흑같은 세월이라고 해도 그때는 버틸 무언가가 숨은 빛처럼 우리를 끌어당기고는 있었는데. 


늙어가는 것도 두렵고 죽음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일도 지긋지긋할 것 같다.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찌 이리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살아서는 살만하다 싶은 마음이 생겨야 하루하루가 그래도 좋은 것이 될 수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계속 살아야만 하나 그리고 왜 살아야 하나 싶어진다면 얼마나 기막힐 것인가. 


이만큼의 집중력을 쏟아 읽기도 어려운데, 또 이만큼 맥빠지는 독서여서 더욱 처량하다. 책 탓이 아니라 시대 탓이라고, 아무리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해도 기운이 되살아나지 않는 독서 후기다. (y에서 옮김200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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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6 (완전판) - 엔드하우스의 비극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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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이라는 게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말이라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돈이 아주 많은 사람들은 살아서 다 못 쓰다 보니 그걸 또 누군가에게 남겨 주려고 하는데, 사고는 항상 그 지점에서 일어난다는 것. 소설에서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내가 모를 뿐 현실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기는 한 걸까? 답을 알고 싶을 만큼 궁금한 건 아니지만. 


작가는 오래된 건물을 사건의 배경으로 삼는 걸 좋아한다. 이번에는 엔드하우스라는 집이다. 집 주인은 '닉'이라는 아가씨이고 푸아로 탐정과 헤이스팅스가 등장한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한 푸아로의 의도가 실수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 장면에서는 나도 좀 당황했다. 이건 희생자에게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에도 완벽하게 속아 넘어 간 독서가 되고 말았다. 늘 이렇게 잘 속기도 힘든 노릇인데. ㅎㅎ


띄엄띄엄 읽으니 재미있다. 꽤 많은 작품을 읽은 편인데도 지루하다거나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게 대단하게 여겨진다. 작가의 능력이 뛰어난 것일 테지, 설마 내 부족한 기억력 탓은 아니겠지? 읽을 수 있을 때 읽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이제 정말 몇 권 남지 않았다. (y에서 옮김201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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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15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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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책을 모으는 재미도 있지만 와카코가 보여 주는 분위기에 나 홀로 빠지는 만족도가 아주 크다. 눈으로라도 이렇게 혼술을 즐길 수 있을 줄이야. 술 이름도 술의 적당한 온도도 너무너무 맛있다는 안주까지도 도대체 아는 것은 없지만, 이쯤 되면 직접 마셔 보고 싶은 생각이 들만도 하건만, 나는 눈으로만 마시고 먹는다. 그래서 아무리 과음과 과식을 해도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다. 취하는 맛이 좀 덜한 게 섭섭하기는 해도. 


보고 또 봐도 그 내용이 그 내용이 그 술이 그 술이고 그 안주가 그 안주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매번 쓰는 말이지만 이렇게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다음 편을 기대할 수 있는 건 작가의 능력과 내 호감도 때문일 것이다. 번호 순서대로 꽂아 놓은 책을 보고 있으면 마치 보험처럼 적금처럼 든든하다. 언제 어느 때, 한가로울 때, 혹은 지겨울 때, 아무 권이나 뽑아 볼 수 있으리라 싶어서.


코로나 19로 인한 상황이 통제되고 다시 예전처럼 자유로운 일상을 되찾게 되면 사람들은 또 모여서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혼술의 맛과 기쁨을 알아버린 사람들이 또 그들 방식대로의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어떤 태도를 취하든 이제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과 답을 예전보다는 찾아낸 사람이 많아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술이든 밥이든 생까지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기를.   (y에서 옮김202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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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 윤대녕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1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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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간절해지는 순간이 있다. 집에 있는 책을 읽으면 되겠지만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새로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 본다. 이 책이 나온다. 반달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에게 없다. 실려 있는 소설 제목을 보니 낯익다. 출판사에서 작가의 대표작을 뽑아 엮은 책인 것 같은데 작품이 겹치더라도 이 책 또 가지면 되지 하는 욕심으로 구했다. 결과로 보면 잘 한 선택이다.

책에 실린 작품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옆에는 이 소설이 실린 것으로 내가 갖고 있는 책의 제목이다.

January 9, 1993. 미아리통신 - [은어 낚시 통신]
지나가는 자의 초상 - [남쪽 계단을 보라]
상춘곡
빛의 걸음걸이 -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
찔레꽃 기념관
탱자 - [제비를 기르다]
대설주의보 - [대설주의보]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 - [대설주의보]
반달 - [도자기 박물관]

세상에나, 두 편이나 나에게 없었다. 이 책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이 두 편은 못 읽었던 게 된다. 이제라도 이렇게 볼 수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의 몇 가지 되지 않는 수집 품목 중에 이 작가의 책이 있는 건데 놓치면 서운해서 안 되지. 문학수상집에 작가의 글들이 실리곤 하는데 그 수상집을 사지 않으면 특정 작가의 특정 작품을 얻을 방법이 없을 수도 있겠다. 이 점은 신경써야 할 사항이다.

오랜만에 읽어서 그랬던가, 낯익음과 낯설음이 거듭되었다. 익숙한 듯 와 닿는 문장들은 여전히 신비로웠고, 마음을 일깨우는 비유들은 보고 또 보아도 새로웠다. 급기야 나는 몇 줄을 옮겨 적어 본다.

- 안개 서린 저 고요한 빛의 잔주름 속에

- 어차피 모든 그리움은 상처의 원인이다. 나중에 상처로 변해 그리웠던 만큼 가슴에 남게 된다.

- 삶은 결코 후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 몇 년 전에 달 여행을 떠났다 방금 지구로 돌아온 사람 같았다.

- 북극에서 퍼 온 빙수를 온몸에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 그녀가 그예 맨발로 울타리를 넘어왔다.

- 봄비를 파뿌리처럼 하얗게 벗겨 놓고 있었다.

이제는 시도해 볼 수도 없는 일이 되고 말았지만 진작 해 보지 못한 일이 후회스럽다. 이 작가의 글을 잘 활용하면 은유와 직유를 가르치는 데 퍽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아마도 나는 이 작가의 글을 나 혼자서만 보고 품고자 했을 것이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가 빼앗아 갈까 두려워 그러는 것처럼. 어리석게도, 이런 건 나누면 배가 되는 건데.

실려 있는 첫작품인 'January 9, 1993. 미아리통신'은 1993년에 쓰인 글이고 마지막 작품 '반달'은 2013년에 쓰인 글이다. 20년이 한 권에 담겨 있다. 나는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출간년도를 먼저 확인하고, 그 때 내가 어떤 처지였나를 떠올렸다. 1993년은 딸을 낳은 해였고, 젊었을 때였고, 그래서 또 그만큼 힘들기도 한 때였다. 이렇게 작품 하나와 내 시절을 비교하면서 2013년에 이르고 보니 묵직한 감회가 저절로 들었다. 어느 한때인들 소홀하지 않은 때가 있었으랴. 책을 덮을 때쯤엔 그만 울컥해지기까지 했으니 이게 무슨 일이람, 잠깐 당황했다.

모든 게 다 가을 탓이다. 이 작가의 글을 찾게 되는 것도 가을 탓이고, 까닭 모를 우울을 나무라게 되는 것도 가을 탓이고, 어지러운 나랏일에 짜증이 많이 나는 것도 가을 탓이고, 오늘 같이 맑은 날 수학능력시험을 치는 우리네 교육 현실이 불만스러운 것도 가을 탓이고,...... 무능한 자존심을 회복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읽어도 소설 속 인물들은 어찌 이리 한결같이 쓸쓸한 생을 견디고만 있으려고 하는 것인지. 나는 또 왜 이게 이리도 좋아서 잠기는 것인지. 그러나저러나 작가의 새 책은 언제쯤 선물되어 오려나. (y에서 옮김2018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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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14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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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째. 같은 형식의 다른 소재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혼술의 시간을 그린 이야기. 술이 맛있는 건지 안주가 맛있는 건지, 둘다 맛있겠지만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계속 부른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에 응하면서 마시고 또 마신다. 과음은 절대 안 한다. 절제된 음주로 충분히 누리는 혼자만의 시간, 이 공간이 부럽고 그리운 게다. 내가 이렇게 오래 이 만화를 보고 있는 것은.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술과 이 안주로 만화를 그리려고 하는데 어떤 내용으로 펼쳐 볼 것인가. 작가가 대단한 걸 구해 와서 엮는 게 아니다.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 안에서, 그럼에도 빛나는 생각의 조각을 붙잡아서 삶의 의미를 짚어 보게 한다. 그게 일 자체가 되기도 하고 일에 임하는 자세를 들먹이기도 하고 자신의 성격을 이용하기도 하는 등 조금 더 나아질 것을 꿈꾸는 시간을 한 잔의 술과 더불어 누린다. 나태하지 않아 보이고 게으르지도 않아 보이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습, 스스로를 참 잘 돌보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만화가 지겨워지거나 흥미를 잃게 되는 때가 온다면 그건 내가 사는 일 자체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무료할 때면 지난 호의 아무 책이나 다시 펼쳐 들어도 나는 또 반짝이는 일상을 보게 될 것을 믿는다.

작가가 매번 만들어 내야 하는 소재와 배경을 내가 굳이 염려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가끔은 이런 고민이 보이지 않는 작품들을 어쩌다 보게 되는 경우가 있어 덧붙여 둔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려면 다른 사람이 만든 좋은 작품을 많이 보기도 해야 할 것이라는 것, 그냥 억지로 만들어 낸 작품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독자로서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게 되니까. (y에서 옮김20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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