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째. 같은 형식의 다른 소재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혼술의 시간을 그린 이야기. 술이 맛있는 건지 안주가 맛있는 건지, 둘다 맛있겠지만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계속 부른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에 응하면서 마시고 또 마신다. 과음은 절대 안 한다. 절제된 음주로 충분히 누리는 혼자만의 시간, 이 공간이 부럽고 그리운 게다. 내가 이렇게 오래 이 만화를 보고 있는 것은.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술과 이 안주로 만화를 그리려고 하는데 어떤 내용으로 펼쳐 볼 것인가. 작가가 대단한 걸 구해 와서 엮는 게 아니다.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 안에서, 그럼에도 빛나는 생각의 조각을 붙잡아서 삶의 의미를 짚어 보게 한다. 그게 일 자체가 되기도 하고 일에 임하는 자세를 들먹이기도 하고 자신의 성격을 이용하기도 하는 등 조금 더 나아질 것을 꿈꾸는 시간을 한 잔의 술과 더불어 누린다. 나태하지 않아 보이고 게으르지도 않아 보이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습, 스스로를 참 잘 돌보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만화가 지겨워지거나 흥미를 잃게 되는 때가 온다면 그건 내가 사는 일 자체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무료할 때면 지난 호의 아무 책이나 다시 펼쳐 들어도 나는 또 반짝이는 일상을 보게 될 것을 믿는다.작가가 매번 만들어 내야 하는 소재와 배경을 내가 굳이 염려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가끔은 이런 고민이 보이지 않는 작품들을 어쩌다 보게 되는 경우가 있어 덧붙여 둔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려면 다른 사람이 만든 좋은 작품을 많이 보기도 해야 할 것이라는 것, 그냥 억지로 만들어 낸 작품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독자로서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게 되니까. (y에서 옮김2020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