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
듀나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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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곳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문제는 정황상 일어날 수밖에 없고, 어떤 문제는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맞기도 하고, 어떤 문제는 누군가의 악의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이런 문제를 누가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에 따라 그 사회와 구성원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되는데.      


소설은, 특히 SF소설과 추리소설은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아주 온건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상상이지만, 간절한 바람을 담은, 너무도 해결하고 싶은, 그러나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아서 소설이라는 글로 호소하는.


나는 이 작가의 글을 좀 무서워한다. 상상이, 표현이, 감추고 있는 감정이 내 취향을 약간 벗어나 있다. 잔인하거나 살벌하거나 끔찍하거나 대체로 그런 쪽이라. 그럼에도 나는 또 읽는다. 이 정도는 읽을 수 있겠다는 경계선 바로 안에 있다고 여긴다. 결말이 내 취향에 아주 가까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글의 표현에서 무서움을 좀 느꼈어도 주제는 썩 마음에 든다. 한결같다. 벌 받을 사람은 벌 받기. 그게 살인이라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방법에 의해서라고 해도.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입장으로 스멀스멀 움직이게 만드는 글힘을 보여 주면서. 소설이니까, 소설 안에서는 이렇게라도 평화와 안정을 찾아보라고, 이렇게 해서라도 현실을 살아나가는 의욕을 끄집어 내 보라는 듯.


현실의 어떤 면이 얼마나 정의롭지 못하면 이렇게라도 가상 세계를 지키고 싶은 것일까. 듀나의 글이라도 계속 읽었으면 하는 시절이다. (y에서 옮김202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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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가고 여름 민음의 시 313
채인숙 지음 / 민음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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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을 때 내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이 시집, 대단하다, 나에게는. 거의 대부분의 시에서 얻는다. 좋은 느낌으로, 서글픈 느낌으로, 아득한 느낌으로, 슬픈 느낌으로…… 어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어떤 느낌들로. 


장마가 길어지고 장마 안에 파묻혀 있다 보니 이 시집 제목마저 절절해진다. 여름이 가고도 여름, 비가 내리고도 비, 장마가 간 뒤에도 장마일까. 날씨가, 기후가, 계절이, 사람 마음을, 사람 기분을 이렇게나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다니, 맑은 날이, 화창한 날이, 상쾌한 날이 무지무지 기다려진다. 


통영의 사량도에서 태어나 삼천포(지금은 사천시)에서 자라고, 지금은 인도네시아에서 살고 있다는 시인. 내가 알 만한 바다와 전혀 모르는 바다가, 내가 알 만한 여름과 전혀 모르는 여름과 함께 일렁인다. 신나는 여름 바다로 떠오르는 게 아니고 대체로 서럽다. 구경하는 바다가 아닌, 살아 남아야 하는 바다로 여겨져서 그런가, 나는 좀 심하게 이런 내 감정을 구박한다.    


그럼에도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떤 사랑인지 구체적으로 묻지 못하겠으나 짐작으로 충분하다. 사랑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면, 사랑이 아직도 그만한 힘을 갖고 있다면, 나는 사랑을 믿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나무라지는 못하겠다. 뉘라서 사랑하는 마음을 멋대로 흔들 수 있을 텐가.


올 여름이 힘들다. 이 시집 덕분에 잠깐이라도 여름의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 되기를.(이 시집을 선물해 주신 woojukaki님께 고마운 인사를 전합니다.) (y에서 옮김20230717)



당신을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했는가를 생각하는,
밤은 쓸쓸하다 - P17

삶이 아무런 감동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에
번번이 놀란다 - P19

왜 나는 이리 천천히 늙어 가는 것일까 - P21

나의 위로는 모든 당신이었으나
당신의 위로는 언제나 당신 눈물뿐이었다 - P23

당신이 없어도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망고나무 그늘이 둥글게 자랍니다 - P25

독을 품은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한때 내 팔 위에 앉아 쉬었던 새들을 향해 한 점 눈물을 뭉쳐 독화살 촉을 겨누고 말아. - P26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는 것은 그것의 중심을 지키는 일이지 - P28

살아 본 적 없는 생은
여태 모두의 것이므로 - P30

밀려오고
스러지는 것은
파도의 일이 아니라
바람의 일 - P32

어떤 사랑도 다시는 나를 불러 세우지 말아다오 - P35

곧 허물어질 것들에만
생을 걸었다고 - P37

눈이 멀도록 저녁놀을 보리 - P43

시를 쓰는 것은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고 - P44

기이한 슬픔이 목울대를 치고 저녁 그림자가 초조한 걸음으로 사라졌다 - P46

격자무늬 창문마다 다른 풍경이 저물고
여행 가방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우네 - P49

내가 당신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거리는
여기까지라고 - P51

언제쯤이면
당신과 나의 아득한 시차는
한 잔 술에 뒤섞여 사라지고 말 것인지 - P53

모든 이야기에는 먼지가 덮이기 마련이라네 - P60

본 적 없는 생을 붙들고 함께 우는 것 - P63

말하지 못한 것은
말할 수 없었던 것 - P65

가난과 고향을 팔아서 시를 적는 일이 지겨웠지만
가난하지 않은 시인을 여태 본 적은 없었다 - P71

너의 우주를 떠도는 별들의 안부를 궁금해하지 말고 - P74

마지막 인사는 짧았고 후련했다 - P78

낮은 파도가 밤의 팔뚝에 얼굴을 부빌 때
끝내 말하지 못하는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 P80

어디에도 내 방은 없지만
마음 얹힐 일은 아니지 - P82

나무는 맹목적으로 자라고
한때 내 사랑도 그러하였다 - P84

어떤 애타는 마음도 없이 여름을 지난다 - P86

길가 쪽으로 창문이 난 식당에서 우리는 다정하고 조금 수다스럽다 - P90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는 시는 희망이 있는 걸까요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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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한정 봉봉 쇼콜라 사건 - 하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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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데 다 읽고 난 뒤에 문득문득 느껴지는 오싹함이 있다. 이 작가의 소설에서 종종 만나 보는 맛. 그게 그때 그러했다는 말이지? 뒤늦게 찾아오는 얕은 깨달음처럼, 깊은 성찰 같은 게 아니라 단순하게 와 닿는 확인같은.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고 나면 새삼 재미있는. 이번 소설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아니 위험한 사건을 다루었던 것이다. 고바토에게도 오사나이에게도 그리고 마냥 한가한 독자인 나에게도.

봉봉 초콜릿은 하루에 하나만 먹을 것. 꽃병에 꽃이 담겨 있을 때는 물을 주는 것을 잊지 말 것. 편의점에는 CCTV가 있다는 것도 기억할 것. 나의 똑똑함을 자랑하지도 내보이지도 말 것.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수수께끼 같은 일에 좀더 주의를 기울일 것.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본 다짐 사항들이다. 지키는 대로 못 지키는 대로 흥미로울 듯하다. 내 삶의 색다른 무늬를 채우는 일 같은 것들.

하권을 읽으면서 봉봉 초콜릿을 먹어 보리라 했는데 구해 먹기도 전에 글을 다 읽어 버렸다. 이건 내게 좋은 일이었다. 재미있는 소설은 재미있게 읽는 일만큼 좋을 것이 더 없을 테니. 읽을 책이 많이 있는데 봄철, 여름철, 가을철 사건들을 다시 보고 싶은 이 마음은 또 어쩌란 말이냐. (y에서 옮김20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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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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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글에서는 좀처럼 받지를 못한다. 쓰인 글과 읽는 나 사이에 막이 서 있는 듯하다. 짧은 소설이라고 해서 경쾌한 기분을 기대했는데 실려 있는 소설들은 분량이 적어도 무거웠다. 주제가 무겁다고 해도 글에서 흐르는 경쾌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읽는 마음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아무래도 마음이 멀어진다. 계속 읽어 보려는 내 시도가 무색해진다.

소설이 좋아서 느낌을 적을 때는 말이 절로 나오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는 계속 머뭇거려진다. 나와 안 맞는 글일 뿐일 텐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내가 제대로 전해 받지 못했을 뿐일 텐데. 내가 원하는 독서 속 세상과 작가가 그려 내는 작품 속 세상이 어긋나 있을 뿐일 텐데. 나는 무엇을 어디에서 놓치고 있는 것일까. 굳이 이러고 있을 만큼의 연결고리는 맺고 있다는 것만 확인한다.

내 마음에 드는 인물을 끝내 못 만났기 때문일까. 글과 같이 실려 있는 그림에 더 머물렀다. 글의 맥락에 맞춰 그려진 그림인데 글보다 여운이 깊게 남는다. 누구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y에서 옮김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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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한정 봉봉 쇼콜라 사건 - 상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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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 초콜릿이 어떤 것인지 찾아 보았다.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군. 오사나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고바토에게 이걸 주었단 말이지? 소설을 읽는 중에 갑자기 먹어 보고 싶어졌다. 이 초콜릿을 먹으면서 소설을 읽는다면 이것도 나름 만족스러운 사치가 되겠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상권을 다 읽을 때까지 초콜릿은 못 먹고 말았지만.

신기하게도 앞서 출간한 봄철, 여름철, 가을철 에피소드들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함께 어떤 일들을 해결했다는 건 알겠는데 내용이 통 생각나지 않으니 이 상태로라면 새로 읽어도 또 재미있을 듯하다. (이미 읽은 책 중에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다시 읽기도 한다. 이 경우의 내 건망증을 참 좋아한다. 좋아하는 글을 거듭 읽어도 지루하지 않으니.)

교통사고가 났다.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함께 걸어 가던 중에 고바토가 차에 치이는 뺑소니 사고. 3년 전에 동급생이 당한 사고가 있었던 자리 근처에서. 입원해 있는 상태로 고바토는 3년 전의 사고와 자신이 당한 사고를 비교하고 추리한다. 사고가 일어나는 경위와 뺑소니를 친 범인을 추리해 내는 과정이 묘하게도 재미있고 빠져 든다.

가벼운 듯 경쾌한 듯한 문체지만 남기는 분위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찮은 단서라도 기어이 찾아 내어 사건 해결에 이용하는 두 인물의 용의주도함이 대견하고 이는 곧바로 작가의 의도로 이어진다. 어떻게 이렇게 연결을 해 놓을 수가, 감탄하도록.

하권을 읽으면서는 봉봉 초콜릿을 꼭 먹어 볼 테다.(y에서 옮김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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