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좋아하세요? - 단팥빵과 모란
구효서 지음 / 문학수첩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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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단편소설 '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를 읽고 이 책을 읽은 터라 스스로 줄거리를 미리 봐 버린 셈. 어떤 이야기인지 알고 읽는 것이니 사건의 전개 자체보다 각각의 인물과 사연을 어떻게 구현하였는지, 작가의 문장은 어떤 맛을 전해 주는지에 주목하여 읽었다. 읽는 중에는 재미있고 단팥빵처럼 달콤하였으나 끝내고 나니 쓴맛이 감도는 게 뭔가 싶다. 


설정이 약간 거슬렸던 것일까? 단팥빵을 찾아 나서는 이유 같은 것? 죽기 전에 다시 먹고 싶은 단팥빵이라? 내게는 왜 그런 게 없나 싶은 심술 따위로? 인물들은 각자 자기 입장에서 찾고 또 찾는데 이렇게 찾는 것이 단팥빵인지 사랑인지 운명인지 사명인지 어쩌면 그 모두일지도. 나는 딱히 찾는 게 없어서 삐딱해졌던 것일까? 찾는 이들이 부럽다는 심정으로? 마침내 알게 되는 인물들 간의 관계도 산뜻하지는 않았고. 


전국에 빵집으로 유명해진 곳이 참 많다. 사연이 있는 집도 있을 것이고 사연이 깃든 소비자들도 있을 것이다. 밥집이 아니라 빵집이라는 게 또 다른 낭만을 느끼게 해 주기는 하는데 빵을 좋아하지만 빵과 관련된 특별한 사연이 없는 나로서는 공감이 덜할 수밖에. 대상에 대한 애착도 집착도 없는 편인 내가 가끔 이럴 때는 서운해진다. 마치 행복을 조금 덜 얻는 기분이 되는 듯하여.


이 작가의 글을 계속 읽어 볼 테다.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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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계절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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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을 계속 읽다 보니 내 방식과 취향에 따른 특징을 찾아내게 된다. 이게 용어가 가진 고유의 특성에 맞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나는 나대로 계속 내 것에 맞춰 읽을 것이고 틀렸다고 해도 내 독서의 기쁨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요소일 테니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쩐지 나의 SF 독서 레벨이 한 단계 오른 느낌을 얻는다. 세계관이라거나 가치관이라거나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세상에 대해 익숙해지고 있다고나  할까. 예전에 다른 소설을 읽을 때는 말이 된다 안 된다 하는 간단한 기준만으로도 거리감을 느끼곤 했는데 이 소설에서는 이게 싹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낯설고 말이 안 된다고 여겨졌던 것들까지 다 품으면서 ‘그래, 세상을 만든다는 건 이 정도의 차원이어야 해.’라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으니.


상상만으로 세상을 만들어 보는 일. 상상만으로도 나는 벅차기만 한데 작가는 이를 글로 나타낸다. 만들어 낸다. 그리고 독자인 나를 살아 보게 한다. 따라다니자니 힘들고 고단한데  또 흥미진진하고 궁금하다. 2권과 3권을 잔뜩 기대하게 한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성공을 준 셈이다. 책을 읽는 것에도 성공과 실패가 있다면 말이지.


작가가 만들어 낸 세상의 이름은 고요 대륙이다. 지구의 구성 형태와 비슷한데 규모가 작게 보인다. 세상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이 정도의 과학 지식이 배경으로 작용해야 하는 모양이다. 이것대로 하나의 우주를 이루도록.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런 세상이 하나 정도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믿게 될 만큼.


낯선 2인칭 화법. ‘너는 ~~ 한다’고 하는 서술도 읽다 보니 익숙해진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누가 이렇게 부르는지 알게 되고 그 효과까지 알게 되면서 감탄하게 되기도 하고. 여러 번 감탄하며 읽은 셈이다. 이름을 가진 이들이 서로 어떤 형태로 연결되고 있는지 그것들을 파악하면서도 그랬으니.       


한번도 본 적 없는 낯선 공간을 알려 주려면 묘사가 뛰어나야 한다. 그림으로 그리고 싶을 만큼 고요 대륙의 곳곳에 이끌렸다. 도시도, 건물도, 길도, 집도, 방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아직 없는 형태라서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에게는 세상은 커녕 집 한 채도 아주 새롭게 만들어 낼 능력은 없는 것 같다.   (y에서 옮김202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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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13
라즈웰 호소키 지음, 이재경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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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을 좋아하지 않아서 먹어 본 게 얼마되지 않는다. 먹어 봤다는 것조차 이름도 맛도 구별되지 않고 그저 짰다는 것과 한입에 얼마 먹지 못한다는 것 정도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젓갈이라는 게 술꾼들에게는 괜찮은 안주가 되나 보다. 젓갈에 어울리는 술이 있다는 것도 술 한 모금에 젓갈 한 쪽 머금는다는 것도 그저 신기하다. 이번 호에서는 특별히 이 젓갈에 관한 내용이 돋보였으니. 


음식에 관한 정보가 없고, 기껏 본 것조차 기억 안에 품고 있지 못하다 보니,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라 좋을 때도 있는데 가끔은 홀로 궁시렁거리게 된다. 본 것 같은데 모르겠단 말이지,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젓갈을 고급으로 여기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성게알젓, 해삼창자젓, 숭어알젓이 3대진미로 대접받는다고 한다. 글쎄, 그 젓갈이 그 젓갈 같겠구만, 아는 사람은 또 각기 다른 맛으로 음미하겠지. 그리고 좋아하겠지. 술 한 잔 들이키면서.  


술은 못 마시고 술 마시는 분위기만큼은 그럴싸하다고 여기는 딱한 나. 이 만화 시리지가 아직도 한참 남아 있어 행복한 기분이다. 마치 술꾼이 사서 마시고 싶은 술을 대기시켜 놓고 있는 듯한 기분이 아닐까? 가을 밤에 노변에서 술 마시며 얘기 나누는 모습은, 그곳이 편의점 옆이라도, 나는 낭만적으로 보이기만 하니.  (y에서 옮김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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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
구효서 지음 / 세계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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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11편으로 알찬 재미를 얻은 소설집. 이제라도 읽은 게 얼마나 다행스러울 정도였는지. 이 작가의 글을 한동안 못 보고 있다가 '랩소디 인 베를린'을 읽은 후 찾아서 읽었다. 하루 한 편씩만 읽기, 한꺼번에 다 보고 말면 서운하고 말 듯하니. 그러나 이 약속도 못 지키고 마지막 세 편을 한숨에 다 읽고 말았다. 좋은 것은 좋을 때 더 좋아해야지, 웅얼거리면서.


허술한 구석이 없는 글들이다. 흔하든 흔하지 않든 소재에서부터 주제에 이르기까지, 낱말 하나부터 문장을 넘고 문단을 또 넘어 전체에 다다르기까지, 흥미는 물론 반전까지 어느 하나 튀거나 빈 곳 없이 단단하게 꽉 채워져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읽었다. 나는 어떻게 하여 이렇게 벅차게 읽을 수 있게 되었나, 작가에게 감탄하다가 읽는 나에게서도 대견함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나를 칭찬하게 만들어 준다.


표제작인 '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는 장편소설 [빵, 좋아하세요?]로 거듭나 있다. 같이 읽었더니 여러 모로 신기하였다. 짧고 치밀하게 모아 놓은 생각을 길고 느슨하게 풀어나가면서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작업이라니. 소설가들은 저마다 여러 생을 살겠네, 싶은데 이게 또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 같아 은근히 가여워지는 기분이었다. 


'더 먼 곳에서 돌아오는 여자'는 내내 가슴 아팠다. 아픈 만큼 화가 났다. 두드려 부수고 싶을 정도로. 그럴 대상이 없다는 것이 지독히 억울했지만, 있다고 해도 하지도 못하겠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먼 곳에서 돌아와 애틋하게 찾고 또 찾고 있겠지만, 찾고 보니 더 더 먼 곳으로 떠나간 이여, 울지도 못하고서. 작가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써야 한다는 것을, 써서 독자의 화를 돋워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작가도 독자도 우리 모두가 이 부족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른 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다. 새 책을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계속 읽기를 기원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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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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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말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믿을 만한 말을 하는 것인가, 거짓을 품고 속이면서 하는 말인가. 이 경우, 듣는 쪽에서도 듣는 이의 역량만큼 알아듣게 될 것이다. 자신이 진실한 만큼만 상대를 진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헤세가 전하는 오래된 말들(글들). 막 새롭지는 않다. 대부분 어디에선가 본 적 있는 듯한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헤세라는 사람을 떠올리며 읽고 있으면 예사롭게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한번 더, 한번 더 보고 읽게 된다. 그리고 내 마음을, 내 기억을, 내 태도를, 내 생각을 헤아린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되뇌면서.


정확하게 내가 계산을 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 나이든 헤세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이가 얼마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닐 테니까. 다만 자신의 생을 돌아보는 나이가 사람마다 다가올 것이다. 이 책에서 헤세가 그러는 것처럼. 헤세의 글을 읽고 내가 그러는 것처럼. 이렇게 돌아볼 때, 나는 나의 지금이 서글프지 않아서, 초라하지 않아서, 기죽지 않아서 좋다. 게다가 남들과 비교해 볼 때(비교할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작고 좁은 시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내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또 고맙다. 나는 나대로 괜찮게 나이들어 가고 있다는 기분을 확인한다.  


같은 형태의 책이 한 권 더 있다. 마저 정리를 해야겠다. 


헤세의 이 수필집에는 그림이 같이 실려 있다(전에도 이런 책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작가가 그린 작품들일 것이다.  작가의 글과 그림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게 참 마음에 든다. (y에서 옮김20230222) 




적당한 쾌락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삶이 주는 맛을 이중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기쁨을 간과하지 말라는 조언도 꼭 하고 싶다. - P14

지친 몸을 추스르고, 일상의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거창한 쾌락이 아니라 사소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 P21

하늘이 있는 풍경으로 더 자주 시선을 옮기고, 나무가 있는 자연으로 더 자주 발걸음을 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더 확보하며, 아름다움과 거대함의 비밀을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말이다. - P77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다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 P81

향유, 즉 쾌락을 즐긴다는 것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찌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제거한 후 남은 달콤함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한다는 것은 한 번 향유했던 쾌락을 아득한 먼 곳에 보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롭게 되새기는 것을 말한다. - P100

마음이 무거울 때 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노래를 부르고, 경건하게 행동하고, 술을 마시고,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짓고, 산책을 나가는 거다. - P137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은 우리에게 모든 민족과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연대감을 준다. - P140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상대로 싸우고 매듭을 풀었다가 또다시 매듭을 짓고는 한다. 그런 행위가 마침내 끝이 나면 완전한 이해와 흠 없는 조화, 그리고 완결된 미소와 긍정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고 목표가 마침내 달성되면 우리는 비로소 미소를 지으며 숨을 거둔다. - P189

항상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쓴다고는 하지만, 유머리스트들이 내세우는 제목과 주제는 모두 구실에 불과하다. 사실상 그들의 주제는 예외 없이 단 한 가지뿐이다. 즉 별난 슬픔과 더러운 인간사, 그리고 삶이 그토록 비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근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다. - P245

알고 보면 인류가 항상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며 철저히 현실적이거나 유용한 것만 따지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탐욕스럽거나 타산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내게 근사하고도 묘한 경험이다. - P284

시인이나 음악가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그의 어둠이나 고통 혹은 근심이 아니다. 그들은 순수한 빛, 즉 영원한 유쾌함 가운데 한 방울을 우리에게 나누어 준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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