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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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말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믿을 만한 말을 하는 것인가, 거짓을 품고 속이면서 하는 말인가. 이 경우, 듣는 쪽에서도 듣는 이의 역량만큼 알아듣게 될 것이다. 자신이 진실한 만큼만 상대를 진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헤세가 전하는 오래된 말들(글들). 막 새롭지는 않다. 대부분 어디에선가 본 적 있는 듯한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헤세라는 사람을 떠올리며 읽고 있으면 예사롭게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한번 더, 한번 더 보고 읽게 된다. 그리고 내 마음을, 내 기억을, 내 태도를, 내 생각을 헤아린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되뇌면서.


정확하게 내가 계산을 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 나이든 헤세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이가 얼마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닐 테니까. 다만 자신의 생을 돌아보는 나이가 사람마다 다가올 것이다. 이 책에서 헤세가 그러는 것처럼. 헤세의 글을 읽고 내가 그러는 것처럼. 이렇게 돌아볼 때, 나는 나의 지금이 서글프지 않아서, 초라하지 않아서, 기죽지 않아서 좋다. 게다가 남들과 비교해 볼 때(비교할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작고 좁은 시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내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또 고맙다. 나는 나대로 괜찮게 나이들어 가고 있다는 기분을 확인한다.  


같은 형태의 책이 한 권 더 있다. 마저 정리를 해야겠다. 


헤세의 이 수필집에는 그림이 같이 실려 있다(전에도 이런 책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작가가 그린 작품들일 것이다.  작가의 글과 그림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게 참 마음에 든다. (y에서 옮김20230222) 




적당한 쾌락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삶이 주는 맛을 이중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기쁨을 간과하지 말라는 조언도 꼭 하고 싶다. - P14

지친 몸을 추스르고, 일상의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거창한 쾌락이 아니라 사소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 P21

하늘이 있는 풍경으로 더 자주 시선을 옮기고, 나무가 있는 자연으로 더 자주 발걸음을 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더 확보하며, 아름다움과 거대함의 비밀을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말이다. - P77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다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 P81

향유, 즉 쾌락을 즐긴다는 것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찌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제거한 후 남은 달콤함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한다는 것은 한 번 향유했던 쾌락을 아득한 먼 곳에 보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롭게 되새기는 것을 말한다. - P100

마음이 무거울 때 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노래를 부르고, 경건하게 행동하고, 술을 마시고,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짓고, 산책을 나가는 거다. - P137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은 우리에게 모든 민족과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연대감을 준다. - P140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상대로 싸우고 매듭을 풀었다가 또다시 매듭을 짓고는 한다. 그런 행위가 마침내 끝이 나면 완전한 이해와 흠 없는 조화, 그리고 완결된 미소와 긍정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고 목표가 마침내 달성되면 우리는 비로소 미소를 지으며 숨을 거둔다. - P189

항상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쓴다고는 하지만, 유머리스트들이 내세우는 제목과 주제는 모두 구실에 불과하다. 사실상 그들의 주제는 예외 없이 단 한 가지뿐이다. 즉 별난 슬픔과 더러운 인간사, 그리고 삶이 그토록 비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근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다. - P245

알고 보면 인류가 항상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며 철저히 현실적이거나 유용한 것만 따지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탐욕스럽거나 타산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내게 근사하고도 묘한 경험이다. - P284

시인이나 음악가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그의 어둠이나 고통 혹은 근심이 아니다. 그들은 순수한 빛, 즉 영원한 유쾌함 가운데 한 방울을 우리에게 나누어 준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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