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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계절 ㅣ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평점 :
SF소설을 계속 읽다 보니 내 방식과 취향에 따른 특징을 찾아내게 된다. 이게 용어가 가진 고유의 특성에 맞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나는 나대로 계속 내 것에 맞춰 읽을 것이고 틀렸다고 해도 내 독서의 기쁨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요소일 테니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쩐지 나의 SF 독서 레벨이 한 단계 오른 느낌을 얻는다. 세계관이라거나 가치관이라거나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세상에 대해 익숙해지고 있다고나 할까. 예전에 다른 소설을 읽을 때는 말이 된다 안 된다 하는 간단한 기준만으로도 거리감을 느끼곤 했는데 이 소설에서는 이게 싹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낯설고 말이 안 된다고 여겨졌던 것들까지 다 품으면서 ‘그래, 세상을 만든다는 건 이 정도의 차원이어야 해.’라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으니.
상상만으로 세상을 만들어 보는 일. 상상만으로도 나는 벅차기만 한데 작가는 이를 글로 나타낸다. 만들어 낸다. 그리고 독자인 나를 살아 보게 한다. 따라다니자니 힘들고 고단한데 또 흥미진진하고 궁금하다. 2권과 3권을 잔뜩 기대하게 한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성공을 준 셈이다. 책을 읽는 것에도 성공과 실패가 있다면 말이지.
작가가 만들어 낸 세상의 이름은 고요 대륙이다. 지구의 구성 형태와 비슷한데 규모가 작게 보인다. 세상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이 정도의 과학 지식이 배경으로 작용해야 하는 모양이다. 이것대로 하나의 우주를 이루도록.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런 세상이 하나 정도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믿게 될 만큼.
낯선 2인칭 화법. ‘너는 ~~ 한다’고 하는 서술도 읽다 보니 익숙해진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누가 이렇게 부르는지 알게 되고 그 효과까지 알게 되면서 감탄하게 되기도 하고. 여러 번 감탄하며 읽은 셈이다. 이름을 가진 이들이 서로 어떤 형태로 연결되고 있는지 그것들을 파악하면서도 그랬으니.
한번도 본 적 없는 낯선 공간을 알려 주려면 묘사가 뛰어나야 한다. 그림으로 그리고 싶을 만큼 고요 대륙의 곳곳에 이끌렸다. 도시도, 건물도, 길도, 집도, 방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아직 없는 형태라서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에게는 세상은 커녕 집 한 채도 아주 새롭게 만들어 낼 능력은 없는 것 같다. (y에서 옮김2023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