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의 여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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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살면서 비밀을 갖게 되기도 한다. 내 비밀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도 모르는 내 비밀이라, 비밀인 줄도 모르게 자라고 있을 나의 서사 몇 조각들. 궁금하지만 궁금한 대로 모르는 채로 살아가게 될 것 같은데. 이번 책에서 알게 되는 캐드펠 수사의 비밀. 당혹스러웠으나 또 이해가 되었고 이쪽 저쪽으로 연결을 잘 시킨 작가의 구성 능력에 감탄했다. 출생의 비밀이 허구의 세계에서는 이토록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다니. 내가 현실 세계의 한 면을 아주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전이 있는 나라에서 살기란 얼마나 고단한 노릇일까. 어느 쪽에 붙어야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그래도 지배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민일 것이고. 아무런 권력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평민 계층의 사람들은 언제 어디로부터 삶을 습격당할지 모르는데, 누군가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 삶을 지킬 능력도 없고, 나는 이 소설로 또 삶의 속성을 배운다. 살아 남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놀라운 능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캐드펠 수사는 이웃 수도원으로부터 환자 수사를 보살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수사를 돌보면서 실종된 귀족 남매를 찾아야 하는 일에도 얽힌다. 그 안에 사랑도 있고 배신도 있고 범죄도 있고 죄의식도 있고 사람이 갖고 있고 드러낼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이 다 담겨 있다. 캐드펠 수사는 능력도 뛰어나지, 다 헤아리고 다 찾아내고 다 배려한다. 휴 베링어와의 관계는 또 얼마나 멋지고 부러운 모습인지.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벗이 한 명만 있어도 삶이 참으로 부드러워질 것만 같다. 소설이라서 가능한가? 


몇 권 읽었지만 이 작가의 반전 전개에는 익숙하지 않다. 21권을 다 읽도록 끝내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른다.(내 독서 능력이 그래 왔으니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듯) 그래서 매우 재미있다. 결말의 평온한 분위기만큼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면서도 위기-절정 대목에서는 두근두근한다. 어쩌겠는가, 그만큼 실감나게 묘사가 되어 있는 것을. 


주요 인물들은 이어져 있으나 사건은 독립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12세기, 잉글랜드 내전, 십자군 원정, 베네딕도 수도원, 이들 배경이 상당히 흥미롭다. 호감으로 관심을 계속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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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275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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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시를 읽으면 어지러워진다. 나는 시를 읽으면서 어지러워지는 그 상태를 즐긴다. 마음을 흔드는 시, 생각을 괴롭히는 시, 살아있는 일에 의심을 갖게 하는 시, 그러면서도 끝내 살고 싶게 하는 시...  


이제까지 이 시인의 시가 왜 내 마음을 잡아 끌었는지 제대로 몰랐는데 바로 그 어지럽다는 느낌을 확인하고 나니 내가 이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된 기분이다. 괴로워하고 아파하면서도 시를 쓰는 시인, 시의 독을 몸에 퍼뜨리기를 간절히 원하는 시인, 내가 원하는 어떤 것처럼. 


평온한 나날들. 특별한 그 무엇이 없는 나날들. 고통도 괴로움도 환희도 없는 그저 그런 날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날들이 평범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했던 순간으로 여겨지겠지만 지나가고 있는 동안에는 무료하기만 하여 그 무료함 때문에 삶을 한심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날들. 나의 오늘이 그러하여, 그저 그런 오늘의 지루함에 지쳐 있는 나에게 이 시인의 시들은 반갑게도 어지러움을 준다. '너, 살아 있는가' 하면서. 


같은 것을 보면서도 왜 다르게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같은 삶을 살면서도 왜 다르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픈 마음이어서 아프게 느끼고 내가 넉넉한 마음이어서 넉넉하게 느끼는 것일까. 시를 따라 가다가 마음이 밟혀서 다 넘지를 못했다. (y에서 옮김200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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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 (완전판) -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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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몇 권 읽지도 않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매권에서 보여 주는 작가의 추리 기법에 놀라고 만다. 이렇게 전개시킬 수도 있는 거구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신선하고 대담한 장치들이 이미 이 작가에 의해 쓰여졌던 것이구나, 앞으로 얼마나 더 놀랄 일이 있을 것인가, 아직 안 읽은 작품들이 수십 권 있는데......


재미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읽고 있다. 계속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하는 불안감도 든다. 생각해 보면 달리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닌데 이렇게 연달아 추리 소설을 읽고 있으니 마음 한 켠이 불안한 거다. 이래도 괜찮다며, 이렇게 풀어져 있어도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는 내가 좀 낯설다. 그동안 참 일 많이 하고 살아 왔던 모양이다.


푸아르 탐정이 등장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믿음직하다. 그의 시선을 아무리 붙잡고 따라 가려 해도 나는 번번이 놓친다. 작가의 서술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범인을 제대로 추측했다. 추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니겠지 의심했다. 내가 추측하는 상황마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장치라고 여겼다. 막상 범인이 밝혀지고 나니 그때까지 겪었던 나의 모든 혼동이 기가 막혔다. 이렇게 맺어 놓았구나, 대단한 결말이구나, 


추리 소설을 더 바랄 것 없을 정도로 읽을 수 있는 지금의 내 상황에서 한 편 한 편을 알뜰하게 탐구해 보고 싶은 건 아니다. 읽고 잊고 또 읽고 잊어도 나는 좋겠다. 이걸 하나하나 따지면서 내가 놓치고 지나간 것들의 앞뒤 맥락을 새로 맞추는 일을 해 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장차 추리 소설을 쓰려는 것도 아니고, 읽고 즐기는 정도에서 이만큼 만족스러우면 되는 것이니까. 


자, 이제 다음으로는 무엇을 읽어 볼까?     (y에서 옮김201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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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 시인선 86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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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6월 23일, 나는 이 시집이 출간되자마자 곧 샀던 모양이다. 그리고 참 열심히도 읽었던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펼쳐 본 시집에는 오래전 내가 읽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줄친 흔적으로, 별모양으로, 혹은 읽으면서 떠올랐을 것이므로 사라지기 전에 잡아두었을 또다른 나의 말들로.


어쩌다 이렇게 지나간 것들이 가슴 저리게 와 닿을 때가 있다. 다행히 이 시집처럼 여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면 다시 한번 행복한 가슴저림을 누릴 수도 있겠지만, 사람처럼, 기억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라면 다시 아파할 수도 없다는 안타까움에 더욱 애타는 마음이 될 것이다.


이 시인의 시들은 참 겸손하다. 어찌 이리도 낮은 곳에서 노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마치 시인이 기다리는 당신 혹은 그대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 때문에 울고 나 때문에 가슴 아프고 나 때문에 잠못 들고 있는 누군가가 내게도 있어 준다면, 내가 울고 내가 아프고 내가 잠못 드는 것과는 또다른 사랑으로 행복할 텐데. 나는 시집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파 행복했다. 외롭지 않았으므로. (y에서 옮김20020107)

[인상깊은구절]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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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 하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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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귀엽고 소심하고 통쾌한 복수라니. 이번에도 내가 시원하게 속아버리고 말았지만, 속았다는 게 더 유쾌했다. 나름 궁리해 보느라고 했는데, 아직 이 작가의 속셈을 파악하기에는 길이 멀다 싶다. 겨울을 배경으로 해서는 어떤 맛있는 디저트로 제목을 만들어 내고 이야기를 꾸며 낼지 기대가 된다.

 

가벼워 보이는 소설이라고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자꾸 이런 취향의 소설을 찾아 읽게 되면서, 내 안의 어떤 면이 이런 소설을 붙잡아 끌고 있나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아니고, 일본 작가의 소설이면서 먹을 거리를 소재로 삼고 있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사소한 사건과 치밀한 전개 덕분에 대번에 반짝이는 일상으로 바뀌는 삶의 풍경들. 내가 내 현실에 지쳐 있는 탓이다. 어떻게 바꾸어 볼 수도 없이.

 

맛있어 보이는 음식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글을 골라서는 정작 내 입으로 먹고 싶어 하지는 않으면서 계속 읽고 있다. 내 정신의 허기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멈추게 될지 모르겠다. 아직은 좀더 읽고 싶다는 이 가벼운 욕심을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y에서 옮김2017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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