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275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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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시를 읽으면 어지러워진다. 나는 시를 읽으면서 어지러워지는 그 상태를 즐긴다. 마음을 흔드는 시, 생각을 괴롭히는 시, 살아있는 일에 의심을 갖게 하는 시, 그러면서도 끝내 살고 싶게 하는 시...  


이제까지 이 시인의 시가 왜 내 마음을 잡아 끌었는지 제대로 몰랐는데 바로 그 어지럽다는 느낌을 확인하고 나니 내가 이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된 기분이다. 괴로워하고 아파하면서도 시를 쓰는 시인, 시의 독을 몸에 퍼뜨리기를 간절히 원하는 시인, 내가 원하는 어떤 것처럼. 


평온한 나날들. 특별한 그 무엇이 없는 나날들. 고통도 괴로움도 환희도 없는 그저 그런 날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날들이 평범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했던 순간으로 여겨지겠지만 지나가고 있는 동안에는 무료하기만 하여 그 무료함 때문에 삶을 한심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날들. 나의 오늘이 그러하여, 그저 그런 오늘의 지루함에 지쳐 있는 나에게 이 시인의 시들은 반갑게도 어지러움을 준다. '너, 살아 있는가' 하면서. 


같은 것을 보면서도 왜 다르게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같은 삶을 살면서도 왜 다르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픈 마음이어서 아프게 느끼고 내가 넉넉한 마음이어서 넉넉하게 느끼는 것일까. 시를 따라 가다가 마음이 밟혀서 다 넘지를 못했다. (y에서 옮김200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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