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 시인선 86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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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6월 23일, 나는 이 시집이 출간되자마자 곧 샀던 모양이다. 그리고 참 열심히도 읽었던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펼쳐 본 시집에는 오래전 내가 읽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줄친 흔적으로, 별모양으로, 혹은 읽으면서 떠올랐을 것이므로 사라지기 전에 잡아두었을 또다른 나의 말들로.


어쩌다 이렇게 지나간 것들이 가슴 저리게 와 닿을 때가 있다. 다행히 이 시집처럼 여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면 다시 한번 행복한 가슴저림을 누릴 수도 있겠지만, 사람처럼, 기억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라면 다시 아파할 수도 없다는 안타까움에 더욱 애타는 마음이 될 것이다.


이 시인의 시들은 참 겸손하다. 어찌 이리도 낮은 곳에서 노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마치 시인이 기다리는 당신 혹은 그대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 때문에 울고 나 때문에 가슴 아프고 나 때문에 잠못 들고 있는 누군가가 내게도 있어 준다면, 내가 울고 내가 아프고 내가 잠못 드는 것과는 또다른 사랑으로 행복할 텐데. 나는 시집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파 행복했다. 외롭지 않았으므로. (y에서 옮김20020107)

[인상깊은구절]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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