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서로에게 일을 "만들어서" 줘온 역사를, 이런 남성연대를 볼때마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일 잘하는 여성들을 위한 기회는 앞으로 점점 늘어나리라 예상한다. 그리고 여자들끼리 그런 기회를 더 만들어야 한다" (이북, 41% 지점,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이 되자')
듣는 귀와 보는 눈을 가진 자들이 제대로 분노할 수 있고, 그 분노의 에너지가 변화를 일으키는 투쟁의 용기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다혜 작가의 책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빡침이 반갑고 기쁘다. 하지만, 이다혜 작가가 여성들을 위한 기회가 늘어날 거라고 희망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과연 무엇이 희망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국 사회도 그리고 더더욱 한국 사회도 잘 알지 못하지만, 지난 달 한국에서 만난 여자 변호사와의 대화가 꽤나 오래 내 머리 속에서 머물러 있다. 한명의 샘플을 두고선,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사실 변화는 우리 모두의 한 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에...그 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그 변호사는 '직원으로 여자를 더 이상 채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여자들은 따지기 좋아하고, 공평하길 원하고, 회사에 헌신적이지 않고, 토를 달고....등등 즉 이런 모든 이유를 한 마디로 이야기 하면, 본인이 일 시켜먹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반면에 남자들은 그 변호사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와서인지, 시키면 토 달지 않고 하라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게 일을 잘하는 것이란다.
미국 학교 다니면서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중에 하나는 '질문하기'였다. 수업시간, 그룹과제, 세미나 참석 등등 모든 상황에서 질문하는 사람은 적극적이고, 배우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질문의 행위는 절대적으로 높게 평가 받는다. 그 질문의 질은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질문 자체의 중요도는 바로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왜냐하면 아주 사소하고 바보같은 질문이라도, 그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핵심을 짚는 내용으로 갈 수 있거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여전히 질문하는 행위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질문하는 행위를 지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사람이 질문 할 수 있다는 것은 즉, 모든 사람의 의견과 생각은 존중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을 잘한다는 건 무엇으로 평가되어지는 것일까? 시키는 일을 어떠한 질문 없이 토 달지 않고 상사가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일을 잘한다고 여겨진다면, 1~2년 군대라는 실습장에서 빡세게 연습해본 남자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여자들도 군대가 아니어도 이미 그 전의 사회에서 비슷한 연습을 하고 살아왔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도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남자들은 군소리 없이 잘 적응해 보이는 것 같고, 여자들은 잘 적응하지 못한 '사회 생활에 적합하지 않는 자'로 남아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는, 수년간의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억누르면 살아온 세월에 대한 보상(reward)이 남여에 따라 다르게 부여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이 개고생 했는데 남자들만 수고했다고 칭찬 받게 되는 상황이다. 간혹 보상의 혜택을 받은 소수의 여성들 (출세한 여성)이 혜택을 받지 못한 여성들을 향해 본인의 행로대로 왜 잘 따라오지 못하느냐 질타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여성의 출세는 오히려 남성들이 두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남성 공화국 만세!
능력과는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남성들간의 '연대'가 여성들끼리는 왜 어렵기만 한 걸까? 남성들은 뻔뻔하게 능력을 배제한 연대를 지속하고 있는데, 여성 연대는 왜 '능력'까지 배려한 진보적 연대를 강요당하는지....다행히 반가운 예가 있다. 샤대학의 잘나가는 김모교수님(여자)의 연구실 대학원생은 여자만 뽑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아직까지는 전후무후한 일이다. 능력에 따른 분배는 아직 섣부르고 이상적인 이야기다. 우선 해야할 일은, 뚫린 입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이 사회를 향해 계속 질문해보자. 그리고 억울해서 출세한 여자든, 억울하지 않았어도 출세한 여자들 (사실 출세할 필요까지 없다) 모두 김모교수님과 같은 연대에 동참하길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