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일본책 - 서울대 박훈 교수의 전환 시대의 일본론
박훈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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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옛날에 한 일을 다 알고 있다......' 사실 한국인만큼 일본을 비판할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일본에 오랜 기간 고초를 겪었고 일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의식에 기초한 일본 비난은 더 많은 사람을 장기간에 걸쳐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일본 비판을 통해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민족주의가 아니라 자유와 민주, 법치와 인권, 평화와 복지의 세상을 여는 담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일본도, 세계인들도 우리를 존중할 것이며, 한국인들도 그를 통해 한 차원 높은 단계로 고양될 것이다.         p.8

 

일본 근대사 최고 권위자 서울대 박훈 교수가 막연한 혐오와 적대감을 걷어내고 일본과 한일 관계를 새롭게 바라볼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어 공분을 사고 있는 요즘 읽기에 좋은 책은 아닌 것 같지만, 마음을 다잡고 읽어 보았다. 저자는 한국의 일본에 대한 감정을 '모르는 대상에 대한 공포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대상에 대한 비하가 콤플렉스'처럼 엉켜 자리하고 있다며, 먼저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한국과 일본의 장단점과 다른 점과 비슷한 점을 짚어 보고, 근대사의 성패를 살펴보며 반일을, 혐한을 넘어서 새로운 관계를 도모해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일치단결하는 지점이 바로 '반일'이라고 말한다. 식민지 된 지 110년이 넘었고, 해방된 지 8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반일 민족주의는 약해지기는커녕 더 기세를 떨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반일 담론들이 과학, 학문적 근거하거나, 건전한 상식에 기초하지도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이다. 그러니 목청만 높이는 대신, 차분히 앉아 생각하고 공부하고 조사해서 신중히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저자가 그동안 <경향신문>과 그외 몇몇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가깝지만 판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두 나라의 상호 인식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한국 시민들만큼 일본에 '관심'이 많은 경우도 달리 찾기 힘들 것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에 경쟁심을 불태우고, 그 동향에 신경을 쓰며 자주 비교한다. 젊은 세대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본 여행, 일본 음식, 일본 문화가 우리의 일상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러나 그 '관심'에 비해 일본을, 특히 일본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자문해보면, 자신 있는 대답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관심'은 과도한데, 풍부한 지식과 정보에 기초한 체계적인 이해는 너무도 부족한, 그래서 무지와 오해가 난무하는 상황이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p.246

 

혼술도, 혼밥도 익숙하고, 기괴한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는 일본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개인주의가 매우 희박한 사회라고 한다. 소속 집단보다 개인이 더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보통의 일본인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개인주의 혹은 개인이 강한 사회로, 그것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만들어 냈다. 일본은 시위도 없고, 국민들의 정치 행동 또한 자주 일어나지 않는 나라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여론 정치의 나라로 여전히 민심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일단 이것은 저자의 견해다) 한국이 민심의 나라라면 일본은 엘리트, 그중에서도 야쿠닌(관리 혹은 공무원)의 나라이다. 역사상 1000번에 가까운 외침을 받은 한국은 지정학적 지옥이고, 지진을 비롯해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은 지질학적 지옥이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해 강화도조약부터 메이지유신까지, 김옥균부터 사카모토 료마까지, 한일 근대사의 주요 장면과 인물들을 되짚어 본다.

 

저자는 무시와 두려움이라는 콤플렉스에 발 묶여 있는 한일 상호 인식을 역사와 현실에 비추어 이야기한다. 오늘날 한국인이 말하는 ‘반일’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아쉬운 점은 한일 상호 인식을 역사에 비추어 차근차근 들려 주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같은 시국에 '한국은 일본을 경시하는 맨 마지막 나라가 돼야 한다'는 외침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본에 대한 이야기들이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담겨 있고, 막연한 반일과 혐한 대신에 상대에 대해 저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맞다. 일본에 대한 비판은 무력한 공포탄이 아니라 뼈 때리는 비판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화를 거부하고 불편한 진실도 직시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는 없었던 책이다. 어쩌면 더 다양한 담론을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하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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