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망치는 말 아이를 구하는 말 - 1만 명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범죄심리학자가 전하는
데구치 야스유키 지음, 김지윤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우리 애 잘 되라고 한 말이죠." 비행청소년 보호자들에게 이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릅니다. "자식 교육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 학대한 적도 없고, 부족하지 않게 먹여 살리려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아이를 위해서, 내 아이 잘되라고 잔소리 좀 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부모가 참 많았습니다. 그들은 경찰로부터 자녀의 범죄 사실을 들었음에도 충격받은 표정으로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어"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그렇다면 잘 되라고 한 부모의 행동과 말이 왜 아이의 비행과 범죄로 이어지는 걸까요?         p.18

 

지극히 평범한 중학교 2학년인 와타루는 지금까지 특별히 무시당하거나 따돌림 당하는 일 없이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 그의 고민은 자기주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부모님이 말버릇처럼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라고 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친구들 기분을 살피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의견을 말하기 전에도 눈치를 보았고,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습 절도범인 미쓰야와 비밀을 공유하게 되면서 그와 함께 장난처럼 대형 서점에서 책을 훔치기 시작한다. 이후 버릇처럼 절도 행위가 이어지게 되는데, 부모의 말을 잘 듣던 온순한 중학생을 이렇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부모의 생선가게 일을 도우며 자랐던 유카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항하고, 곧바로 식품회사에 취직한다. 그런데 회사 공금을 횡령하다 3년째 회계 감사에서 범행이 발각당하게 되는데, 남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씨의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 외에도 이 책에는 의대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코우지는 3D 프린터로 만든 총으로 부모를 공격하고,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삼남매의 장녀가 어느 날부터 원조교제를 시작해 결국 소년분류심사원에 들어가게 되고, 하나밖에 없는 손녀 교육에 온 정성을 다한 할머니의 사랑을 받던 손녀가 대학생이 되어 노인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유도해 500만 엔이라는 거액의 사기를 치는 등 이 책에는 별다른 문제 행동이 없던 아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부는 재구성되었지만, 모두 실제 비행 사례들이다. 

 

 

 

아무리 훌륭한 부모라도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육아죠. 사는 일이 바빠 여유가 없으면 "빨리 좀 해!" 재촉하게 되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니?" 하며 아이에게 감정을 폭발하는 일도 있기 마련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실수하고 실패도 하면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부모가 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의 성장과 함께 부모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아이에게 심한 말을 하거나 기분 나쁜 말투로 쏘아붙였다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바로 아이에게 솔직히 사과하세요... 부모와 아이 모두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p.229

 

자식의 범죄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주위에서도 '그렇게 착한 아이가 도대체 왜?', '보기만 해도 부러울 만큼 이상적인 가족이었는데...'라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의 비행 행동에 이르는 심리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이유'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1만 명이 넘는 범죄자와 비행청소년의 심리를 분석해온 범죄심리학자이자 아동심리학 교수이다. 그는 폭력이나 방임, 빈곤 등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이 비행과 연관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문제 행동 기저에 ‘부모가 던진 말 한마디’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정한 말이 아이의 개성을 파괴하거나, 걱정의 말이 아이의 공감능력을 방해하는 등 부모가 옳다고 믿는 것이 반드시 아이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이 책을 읽고 있는 부모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을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무심결에 던진 말 한마디가 아이의 미래를 잘못된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부모들이 알게 된다면, 더 늦지 않게 아이와의 신뢰관계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가정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육아환경도 다르다. 하지만, 부모와 아이의 단단한 신뢰관계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가정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은 평범한 아이가 비행을 저지르게 된 실제 사례를 분석해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어긋나게 된 결정적인 말, 즉 ‘아이를 망치는 말’에 대해서 알려준다. 아이의 마음과 행동이 궁금한 부모부터 사춘기가 시작되며 아이와 소통이 막막해진 부모 모두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잘되라고 한 부모의 행동과 말이 왜 아이의 비행과 범죄로 이어지는 것인지, 부모가 자녀에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나카무라 쓰네코.오쿠다 히로미 지음, 박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쿠다 : 불필요한 인간관계는 늙음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50대부터 하나씩 내려놓으면 편해질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사회인으로서 생활하는 것도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녀들은 부모 품을 떠나 독립하니 지켜야 하는 것들이 점점 적어지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제껏 무리해서 만나야만 했던 사람도 줄어들겠죠.
나키무라 : 그래요. 나이를 들수록 생활을 위해, 자녀를 위해, 가족을 위해 참을 일이 점점 줄어들지요...                p.83~84

 

'늙음'은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다. 하지만 의료기술의 발달로 고령화 사회가 되자, '100세 시대'라는 말로 미리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은 듣기에는 좋지만, 노년기는 한참 일할 때와는 다른 고민과 심신의 변화가 찾아오게 마련이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우리 몸의 시스템은 40대 이후로 확연하게 달라진다고 하던데, 주위를 둘러보면 40대가 되면서 확실히 체력이며, 건강이 달라진 걸 느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40대가 되면 성호르몬과 신체활동량이 줄어들면서 근육 및 근력이 저하되고 생체 효소의 활성도 떨어짐에 따라 다양한 생리적 변화가 일어난다는데.. 이는 50대, 60대가 되어가면서 점점더 가속화 될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종종 하지만,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좀더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에너지 넘치게 삶을 대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한해 한해 지나며 책임감도, 스트레스도 누적되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지니 말이다. 그러니 나 자신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금 더 현명하게 나이 드는 것의 즐거움을 배우고, 그로인해 얻게 되는 것들에 대해 배울 필요도 있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두 저자가 나이를 먹으면서 늘어나는 삶의 경험, 세월과 함께 켜켜이 쌓인 연륜을 고스란히 대화에 담아내고 있어 40대 이후의 독자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

 

 

 

나카무라 : 그렇지요.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는 것만큼은 피하는 것이 좋답니다.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마음껏 해보면 좋겠어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요. 보통 우리는 동조 현상에 휘둘리기도 하는데요. 조금이라도 주위 사람과 다르게 행동하면 '괴짜'라고 부르기도 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고 말해요. 사회 분위기상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는 게 더 좋지 않다는 걸 염두에 두었으면 해요.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간다면 평균수명보다 짧은 생을 맞이하더라도 후회는 남지 않을 거예요.               p.145~146

 

이 책은 90대의 정신과 전문의와 50대 정신과 전문의가 만나서 '어떻게 나이 든 삶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담고 있다. 나카무라 쓰네코는 90세까지 풀타임으로 진료 업무를 계속 했고, 이제 92세로 은퇴하고 평온한 여생을 보내는 중이다. 오쿠다 히로미는 원래 내과 전문의였으나 2000년에 나카무라 쓰네코 선생님을 만나 정신건강의학과로 전과했고,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두 사람은 일적으로도 삶적으로도 선배이자 후배로 깊은 교감을 나누는 관계라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책 속 질문과 조언이 더없이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중년과 노년의 변곡점에 서 있는 오쿠다 히로미가 중장년층을 대신해, 90대의 삶도 적극적으로 꾸려가고 있는 나카무라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고, 의견을 구한다. 두 사람 사이에 무려 40여 년이라는 세월의 차이가 있지만,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른 것을 뛰어 넘어 공감되고 교차되는 부분들도 많아서 더욱 훌륭한 대화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요즘은 나이와 상관없이 정정하게 계속 일을 하고, 활동을 해내는 노년들이 많은 편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다 싶으면서도, 어느 순간 아직 남아 있는 인생이 더 길구나 새삼 느껴진다.  그렇다면 긴 인생, 나는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노화, 고독, 관계, 죽음 등 누구나 노년을 앞두고 고민하게 되는 부분들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이든다는 것의 의미,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처스 크로싱
존 윌리엄스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자연에는 미묘한 자력(磁力)이 있다고 믿었다. 오래전부터 가졌던 믿음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따르기만 하면 그 자력은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고, 그 방향은 그가 걸어온 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이 그토록 단순하게 펼쳐진 부처스 크로싱에서 지낸 단 며칠 동안, 자연이 가진 강박적인 충동의 힘은 너무나도 강해서 그의 의지, 습관, 생각에 충격을 주기 충분하다는 걸 느꼈다... 아직 그 강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그 강이 그의 본능이 추구해 왔던 자연과 자유를 그 자신과 갈라놓는 광대한 경계선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60~61

 

대학생인 윌 앤드루스는 자연주의에 빠져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가진 돈을 모아 서부로 향한다. 그리고 캔자스 산골 마을 부처스 크로싱에 도착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하고 평원으로 나가면 신세 망친다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연을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냥하는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삶에서 친숙했던 모든 것 아래 잠재되어 있는 그것, 세상의 원천을 찾고 싶어서 이곳에 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사냥꾼인 밀러를 찾아가 서부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하고, 그에게 들소 사냥에 대해서 듣게 된다.

 

마침 밀러는 작은 규모로 사냥대를 꾸릴 생각이었기에, 앤드루스는 가진 1400달러 중 거의 반인 600달러를 그에게 투자하기로 한다. 그들은 로키산맥에 숨겨져 있다는 들소 떼의 은신처를 습격해 한몫 크게 잡아 보기로 한다. 마을을 떠나기 전 만났던 창녀 프랜신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요, 돌아오겠죠. 하지만 그때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 거예요. 젊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졌겠죠." 라고. 어쩌면 그녀의 이 말은 앤드루스를 기다리고 있을 내일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이러한 조언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그들은 긴 여정을 시작하고, 들소 사냥은 앤드루스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경험을 그에게 선사한다. 겨우 조금 전만 해도 당당하고 고귀하며 생명의 위엄으로 가득했던 존재가 속절없이 가죽이 완전히 벗겨진 채 죽은 고깃덩이가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그는 자기 안에 있던 무언가가 파괴되는 걸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가파른 산이 사방을 에워싼 넓고 굽은 고원에서 수 개월을 보내면서 그는 점점 시간 감각을 상실하고, 인간성을 잃어간다.

 

 

 

"젊은 사람들은." 맥도널드는 업신여기듯 말했다. "찾아낼 무언가가 있다고 늘 생각하지... 글쎄, 그런 건 없어." 맥도널드가 말했다. "자네는 거짓 속에서 태어나고, 보살펴지고, 젖을 떼지. 학교에서는 더 멋진 거짓을 배우고. 인생 전부를 거짓 속에서 살다가 죽을 때쯤이면 깨닫지. 인생에는 자네 자신, 그리고 자네가 할 수 있었던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자네는 그 일을 하지 않았어. 거짓이 자네한테 뭔가 다른 게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지. 그제야 자네는 세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 그 비밀을 아는 건 자네뿐이니까.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어. 이미 너무 늙었거든."              p.306

 

<스토너>라는 작품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던 작가 존 윌리엄스의 마지막 미번역작이 출간되었다. 존 윌리엄스는 일평생 단 네 편의 소설만 발표했는데, 데뷔작인 <오직 밤뿐인>부터 <부처스 크로싱>, <스토너>, <아우구스투스>까지 모두 국내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번에 나온 <부처스 크로싱>은 존 윌리엄스가 <스토너>를 쓰기 5년 전에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택하고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는데, 기존에 만났던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 어떤 이야기와도 달랐기 때문이다. 잔혹한 들소 사냥, 대자연 속에서의 험난한 야생 생활, 지옥과도 같은 산속의 겨울을 버텨내고 다시 부처스 크로싱으로 돌아왔을 때 보스턴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던 대학생 앤드루스는 무엇을 얻었을까. 그에게 무엇이 남았을까.

 

'부처스 크로싱'은 존 윌리엄스가 만든 가상의 산골 마을이다. 하지만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 전반에 걸친 자연에 대한 그림같은 묘사는 우리를 1870년대 캔자스 서부로 데려간다. 2,3000마리나 되는 들소가 이동하는 장면은 페이지로 읽어도 장관이었다. 빽빽하게 자란 소나무 아래, 검은 얼룩이 계곡 위를 움직이는 풍경이라니, 얼룩 전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도에 움직이는 거대한 바다처럼 흔들리는 것이다. 들소가 나타나기 바로 전 광경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땅의 고요와 정적, 완전한 평온같은 시간이었기에 이 대비는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잔혹하지만 우아하고, 고요함 속에서도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를 느끼게 해주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긴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이었다. <스토너>의 감동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 박물관 붉은 박물관 시리즈 1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 '붉은 박물관'이 법망을 피해 도망치는 범인을 막아 내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궁에 빠진 사건의 증거품이 여기 오면 나는 그 사건을 한 번 더 검토하지. 물론 검토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아. 그러나 아주 드물게도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어. 그런 관점을 바탕으로 사건을 바라보면 해결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거야."
히이로 사에코가 늘 수사 자료를 읽고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재수사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p.51

 

전 여자친구인 마이코에게 반년 만에 연락이 왔다. '이런 문제로 상담할 수 있는 상대는 당신밖에 없다'는 그녀의 말에 다카미는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한다. 그런데 아파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제복 차림의 경찰관이 서 있었다. 4층에 사는 사람이 자기 집에서 뒷마당으로 떨어졌다는 거였다. 불길한 예감에 이름을 확인했는데, 마이코였다. 누군가 그녀를 베란다에서 밀어 떨어뜨린 거였다. 돌아오는 길에 다카미는 노트를 한 권 사서 오늘 있었던 일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마이코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경찰은 믿을 수 없었고, 법학부 학생으로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은 쭉 해 왔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생각이다. 그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범인을 추적하고, 그 과정을 담은 일기를 남긴다. 그러나 '붉은 박물관'에 증거품으로 들어온 그 일기 안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는데, 이는 <복수 일기>라는 작품이다.

 

1987년 12월 젊은 남자의 피살체가 하천부지에서 발견된다. 둔기에 의해 구타당한 흔적이 있었고, 피해자의 옷에 다른 사람의 피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용의자가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범인을 알아내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십육 년이 지난 현재 한 당시와 같은 나이의 대학원생이 동일한 장소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시체 유기 현황부터 상황, 둔기의 형태, 사망 추정 일시 등 모든 정황이 이십육 년 전 사건과 일치하는 걸로 미루어 수사팀은 동일범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다. 수사1과는 '붉은 박물관'에 방문해 미제 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가져가고, 다시 수사가 시작된다. 과연 동일범이 이십육 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두 번 벌인 범죄일까, 아니면 과거의 사건을 그대로 따라한 모방 범죄일까? 범인이 검거되고 나서 이후에 밝혀진 범행 동기가 전혀 예상 밖의 그것이라 다소 당황스러웠던 작품이다. 그럼에도 그 임팩트가 상당해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구나 감탄했던 작품으로 <죽음에 이르는 질문>이라는 작품이다.

 

 

 

교환 살인의 공범자가 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돌아가는 JR 사이쿄선의 전차 안에서 사토시는 생각을 해 봤다. 교환 살인의 공범자들은 서로 신뢰 관계를 구축한 운명 공동체라는 점에서는 부부와도 비슷했다. 아니, 부부보다도 더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졌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이혼할 수도 있지만, 교환 살인의 공범자들은 헤어질 수 없는 것이다. 헤어진다는 것, 즉 상대를 배신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범죄가 발각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결혼식에서 등장하는 이 표현은 부부보다도 오히려 교환 살인의 공범자들에게 더 잘 어울릴 것이다.            p.232

 

경시청 부속 범죄 자료관, 통칭 '붉은 박물관'은 관내에서 일어난 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사건 발생 이후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 보관하고, 그것을 조사, 연구 및 수사관 교육에 활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붉은 박물관의 직원은 아름다운 외모의 관장 히이로 사에코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수사 1과에서 좌천되어 온 조수 데라다 사토시 두 명뿐이다. 히에로 사에코는 커리어라는 고위직 경찰임에도 이곳에서 수년 째 근무 중이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에 인형같이 차갑고 단정한 외모로 천재적인 추리 능력을 가졌지만 타인과의 의사 소통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진다. 데라다 사토시는 형사를 천직으로 여겼기에 언젠가는 수사 현장으로 돌아갈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어떻게든 범죄 자료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두 사람은 과거 사건 관련 정보들을 등록해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작업을 하는 중인데, 수사 서류를 검토하다 미제 사건의 재수사를 하게 되고, 그들의 활약으로 수십 년 동안 감춰졌던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수록된 다섯 작품 모두 예측 불가능한 반전과 트릭, 치밀한 구성과 복선,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수준 높은 추리 과정도 매우 흥미로웠고, 다섯 가지 사건이 연작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두 완성도가 뛰어나다. 오야마 세이이치로는 본격 미스터리의 거장으로 <붉은 박물관>은 두 차례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붉은 박물관’은 작가가 영국의 범죄 박물관, 통칭 ‘검은 박물관(Black Museum)’이라 불리는 곳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가상의 범죄 자료관인데, 굉장히 흥미로운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미제 사건을 다루는 추리 소설은 많이 있어 왔지만, 이렇게 범죄 자료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는 거의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독특한 성격의 관장 히이로 사에코도, 그의 조수 데라다 사토시도 생생하게 잘 구축된 캐릭터라 시리즈로 계속 이야기가 이어져도 좋을 것 같다고 읽는 동안 생각했다. 다행히 이미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 나와 있다는 반가운 소식에 벌써부터 설레이는 마음이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기억 속의 유괴>도 곧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어서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엘러리 퀸 스타일의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간 모자, 피노키오를 줍고 시체를 만났습니다 옛날이야기 × 본격 미스터리 트릭
아오야기 아이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만에. 자경단장님, 아무튼 전 피노키오의 오른팔과 밤새 같은 침대에 있었어요. 제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겠죠?"
"이런 일은 처음이군!"
조제프 자경단장은 오징어 모자 밑의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머리는 빨간 모자의 범행을 증언하지만 오른팔은 무죄를 증명한다? 범행 목격자와 부재 증명의 증언자가 동일하다니,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했다고!"              p.35~36

 

빨간 모자는 숲 속 깊은 곳에 사는 사냥꾼 아저씨의 집에 쿠키와 포도주를 갖다 주러 가는 길에, 나무로 만든 인형의 팔을 줍는다. 손가락 부분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그것은 인형의 오른팔이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여 펜을 쥐어 줬더니 자신은 제페토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피노키오로 학교에 가는 길에 서커스단에 스카우트가 되었는데, 억지로 하기 싫은 공연을 1년 동안이나 하고 있는 중이라며 자신을 구해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빨간 모자는 피노키오의 오른팔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엄지 공연단'이 있다는 람베르소 마을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피노키오의 공연을 보고 돌아온 다음 날, 빨간 모자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가 되는데..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살해된 사람은 서커스 단원인 여우 안토니오였고, 피노키오가 우연한 목격자로 빨간 모자를 범인으로 지목한 거였다. 자, 빨간 모자는 다음날 공연 시작 전까지 안토니오를 죽인 진짜 범인을 데려와야만 자신에 대한 의혹을 풀 수 있다고 한다. 공연장에서 공개 처형될 위기에 처한 빨간 모자는 진범을 밝혀낼 수 있을까.

 

 

빨간 모자를 위협하는 공연단장 엄지 공주, 그리고 빨간 모자에게 도움을 준 거짓말쟁이학 박사 질베르토 폰뮌하우젠 남작, 그리고 빨간 모자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준 피노키오의 팔, 틈만 나면 다투는 수박 장수 할아버지와 가면 장수 할머니...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재미를 더해준다. 빨간 모자는 이후 피노키오의 부탁으로 피노키오의 몸통과 왼팔, 두 다리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된다. 백설 공주와 난쟁이가 사는 숲 속부터, 온종일 음악을 연주하는 도시 하멜른을 거쳐, 아기 돼지 삼 형제가 늑대를 무찌른 뒤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도시 부히부르크에 이르는 이 여정은 동화 속 배경에 미스터리의 트릭을 절묘하게 연결시켜 범죄 사건들의 한복판으로 빨간 모자를 데려 간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쥐를 쫓아내 준 뒤 약속한 보수를 주지 않아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으로 끝이 났던 동화 속 이야기 그 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사이 좋은 아기돼지 삼 형제의 파격적인 변신을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동화 속 캐릭터들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도 이 시리즈만의 독창적인 부분이라 지루할 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될 것이다.

 

 

"백설 공주, 넌 왜 이렇게 빵을 잘 만들어?"
"어릴 때 돌아가신 엄마가 가르쳐줬으니까."
"그럼."
빨간 모자는 검지를 들어 백설 공주의 코끝을 가리켰습니다.
"백설 공주, 네 범죄 계획은 왜 그렇게 허술해?"
백설 공주는 대번에 말문이 막힌 듯했습니다. 그러나 빨간 모자는 백설 공주의 눈빛이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는 걸 놓치지 않았습니다.             p.135~136

 

아오야기 아이토의 '옛날이야기 × 본격 미스터리'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자 '빨간 모자'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의 1권과 3권은 일본 전래 동화를 기반으로 했고, 2권과 4권은 서양 동화를 기반으로 했는데, 옛날 옛적.. 시리즈와 빨간 모자... 시리즈를 각각 별도로 읽어도 상관없다. 전작이었던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에서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잠자는 숲속의 공주, 성냥 팔이 소녀의 동화 속 세계를 변주했었다면, 이번 작품 <빨간 모자, 피노키오를 줍고 시체를 만났습니다>에서는 피노키오, 백설공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엄지 공주, 아기 돼지 삼 형제, 브레멘 음악대 등의 작품을 본격 미스터리의 세계로 가져왔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가 범죄의 증거가 되고,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이 밀실 살인의 배경이 되는 등 기발한 발상과 동화의 색다른 해석으로 재미를 주었던 전작처럼 이번 작품 역시 본격 미스터리 트릭의 다양한 묘미를 보여준다. 이번 작품에서 빨간 모자는 몸이 조각난 목각 인형 피노키오의 잃어버린 다른 몸 조각들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이번에도 갖가지 기이한 사건들을 마주하며 조수 피노키오와 함께 명탐정으로 사건들을 해결한다. 빨간 모자 시리즈의 첫 작품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는 최근에 넷플릭스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영상 버전으로도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아오야기 아이토는 옛날 옛적.. 시리즈와 빨간 모자... 시리즈를 교차로 내고 있는데, 올해 일본에서 시리즈 5권이자 옛날 옛적.. 시리즈 3권과 빨간 모자... 시리즈 3권이 각기 나온다고 하니 국내에서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익숙한 동화 속 세계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살인과 실종, 독살 사건이 벌어지는 색다른 미스터리가 궁금하다면 이 시리즈를 읽어 보자. 동화 속 주인공 '빨간 모자'와 함께 다양한 동화 속 세상을 여행하며 신선하고, 기발한 미스터리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