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박물관 붉은 박물관 시리즈 1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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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붉은 박물관'이 법망을 피해 도망치는 범인을 막아 내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궁에 빠진 사건의 증거품이 여기 오면 나는 그 사건을 한 번 더 검토하지. 물론 검토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아. 그러나 아주 드물게도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어. 그런 관점을 바탕으로 사건을 바라보면 해결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거야."
히이로 사에코가 늘 수사 자료를 읽고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재수사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p.51

 

전 여자친구인 마이코에게 반년 만에 연락이 왔다. '이런 문제로 상담할 수 있는 상대는 당신밖에 없다'는 그녀의 말에 다카미는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한다. 그런데 아파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제복 차림의 경찰관이 서 있었다. 4층에 사는 사람이 자기 집에서 뒷마당으로 떨어졌다는 거였다. 불길한 예감에 이름을 확인했는데, 마이코였다. 누군가 그녀를 베란다에서 밀어 떨어뜨린 거였다. 돌아오는 길에 다카미는 노트를 한 권 사서 오늘 있었던 일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마이코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경찰은 믿을 수 없었고, 법학부 학생으로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은 쭉 해 왔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생각이다. 그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범인을 추적하고, 그 과정을 담은 일기를 남긴다. 그러나 '붉은 박물관'에 증거품으로 들어온 그 일기 안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는데, 이는 <복수 일기>라는 작품이다.

 

1987년 12월 젊은 남자의 피살체가 하천부지에서 발견된다. 둔기에 의해 구타당한 흔적이 있었고, 피해자의 옷에 다른 사람의 피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용의자가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범인을 알아내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십육 년이 지난 현재 한 당시와 같은 나이의 대학원생이 동일한 장소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시체 유기 현황부터 상황, 둔기의 형태, 사망 추정 일시 등 모든 정황이 이십육 년 전 사건과 일치하는 걸로 미루어 수사팀은 동일범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다. 수사1과는 '붉은 박물관'에 방문해 미제 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가져가고, 다시 수사가 시작된다. 과연 동일범이 이십육 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두 번 벌인 범죄일까, 아니면 과거의 사건을 그대로 따라한 모방 범죄일까? 범인이 검거되고 나서 이후에 밝혀진 범행 동기가 전혀 예상 밖의 그것이라 다소 당황스러웠던 작품이다. 그럼에도 그 임팩트가 상당해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구나 감탄했던 작품으로 <죽음에 이르는 질문>이라는 작품이다.

 

 

 

교환 살인의 공범자가 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돌아가는 JR 사이쿄선의 전차 안에서 사토시는 생각을 해 봤다. 교환 살인의 공범자들은 서로 신뢰 관계를 구축한 운명 공동체라는 점에서는 부부와도 비슷했다. 아니, 부부보다도 더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졌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이혼할 수도 있지만, 교환 살인의 공범자들은 헤어질 수 없는 것이다. 헤어진다는 것, 즉 상대를 배신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범죄가 발각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결혼식에서 등장하는 이 표현은 부부보다도 오히려 교환 살인의 공범자들에게 더 잘 어울릴 것이다.            p.232

 

경시청 부속 범죄 자료관, 통칭 '붉은 박물관'은 관내에서 일어난 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사건 발생 이후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 보관하고, 그것을 조사, 연구 및 수사관 교육에 활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붉은 박물관의 직원은 아름다운 외모의 관장 히이로 사에코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수사 1과에서 좌천되어 온 조수 데라다 사토시 두 명뿐이다. 히에로 사에코는 커리어라는 고위직 경찰임에도 이곳에서 수년 째 근무 중이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에 인형같이 차갑고 단정한 외모로 천재적인 추리 능력을 가졌지만 타인과의 의사 소통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진다. 데라다 사토시는 형사를 천직으로 여겼기에 언젠가는 수사 현장으로 돌아갈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어떻게든 범죄 자료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두 사람은 과거 사건 관련 정보들을 등록해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작업을 하는 중인데, 수사 서류를 검토하다 미제 사건의 재수사를 하게 되고, 그들의 활약으로 수십 년 동안 감춰졌던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수록된 다섯 작품 모두 예측 불가능한 반전과 트릭, 치밀한 구성과 복선,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수준 높은 추리 과정도 매우 흥미로웠고, 다섯 가지 사건이 연작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두 완성도가 뛰어나다. 오야마 세이이치로는 본격 미스터리의 거장으로 <붉은 박물관>은 두 차례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붉은 박물관’은 작가가 영국의 범죄 박물관, 통칭 ‘검은 박물관(Black Museum)’이라 불리는 곳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가상의 범죄 자료관인데, 굉장히 흥미로운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미제 사건을 다루는 추리 소설은 많이 있어 왔지만, 이렇게 범죄 자료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는 거의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독특한 성격의 관장 히이로 사에코도, 그의 조수 데라다 사토시도 생생하게 잘 구축된 캐릭터라 시리즈로 계속 이야기가 이어져도 좋을 것 같다고 읽는 동안 생각했다. 다행히 이미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 나와 있다는 반가운 소식에 벌써부터 설레이는 마음이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기억 속의 유괴>도 곧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어서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엘러리 퀸 스타일의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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