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클래식 리이매진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티나 베르닝 그림,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이드를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목격자인 하녀의 주인조차 그를 고작 두 번 봤을 뿐이고, 그의 가족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으며, 그가 찍힌 사진 한 장 없었다. 그의 생김새를 설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도 보통의 목격자들이 그렇듯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오직 한 가지 점에서만은 모든 이들의 진술이 일치했다. 그 도망자는 어딘가 모르게 기형인 듯한 인상을 풍기는데, 한 번 보고 나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p.67

 

균형 잡힌 거구에 얼굴에는 수염 자국 하나 없는, 유능하고 다정한 인상의 남자와 창백하고 난쟁이처럼 작달막하고, 어딘가 기형인 듯한 인상을 주는 흉악한 인상의 남자가 동일 인물일 수 있을까. 이는 바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두 인격의 한 모습이다. 도덕적이고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지킬 박사와 괴물 같은 외모로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하는 하이드가 동일 인물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 작품은 타락을 향한 욕망으로 터질 듯한 내면을 철저히 억누른 채 겉으로는 점잖은 척 교양과 아량을 두른 지킬의 이중적 면모를 분열된 두 인격 간의 갈등으로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 톨의 연민도 없는 인간의 얼굴, 한번 내비친 것만으로도 마음에 오래도록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한 하이드의 모습은 누구나의 내면 한 켠에 가지고 있는 약하고, 추악한 부분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도 같다. 물론 대부분은 그러한 면모를 깊숙이 넣어 두고, 도덕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말이다. 그 감춰진 욕망이 현실로 발현되어 실제로 활동을 하고 다닌다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지옥을 향해 갈지도 모른다.

 

 

누구나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외에 또 다른 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두 인격은 다소 극단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선과 악이라는 대비를 보여주기에 이만큼 매력적인 선택도 없었을 것이다. 선과 악의 경계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불분명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사소한 욕망이나, 나약한 이기심에 굴복하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고, 태어날 때부터 선한 것이 인간이라 하여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어 조금은 물들게 되는 순간도 올 수밖에 없고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선과 악이 너무도 자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물론 그것이 한 사람의 내면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작품이 오랜 시간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싹한 고딕 추리소설이자 뛰어난 심리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선과 악의 대립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지킬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지만 그 말을 뱉자마자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지더니 더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의 표정이 뒤따랐다. 창문 아래에 있는 엔필드와 어터슨의 피까지 얼려버릴 듯 했다. 순식간에 창문이 확 닫혔기에 그 표정을 목격한 건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으로도 충분했기에 두 사람은 아무 말없이 몸을 돌려 안뜰을 떠났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눈빛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p.102~103

 

이 작품은 1886년에 처음 출간되었지만, 영화와 뮤지컬, 연극, 오페라 등을 통해 수없이 변주되어 오면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 세기를 훌쩍 넘기면서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니 말이다. 나 역시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여러 버전으로 만나 왔는데, 이번에 만난 버전은 정말 특별하다. 세계적인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알려진 티나 베르닝이 시각적으로 해석해내는 컬렉터용 버전으로 강렬한 일러스트들이 너무 흥미로웠다.

 

 

티나 베르닝의 그림들은 각각의 상황을 생생하게 드러내거나 은근슬쩍 감추기도 하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독특하고 세밀한 터치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이미지들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색채와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텍스트에 담기지 않은 부분까지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 독특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소소의 책에서 '클래식 리이매진드' 시리즈로 나오는 첫 번째 작품인데,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독특한 시각적 해석을 담은 컬렉터용 하드커버 에디션이다. 앞으로 이어질 클래식 리이매진드 시리즈의 작품들도 매우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