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저널 - 제38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혼조 마사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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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가끔 인터넷이나 뉴스를 통해서 놀라운 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글이 사실일까? 한번쯤 자문하게 된다. 지금은 '사실루머사이 분별이 어려운 정보화 시대이니 말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는 그것이 더할 수밖에 없다.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저널리즘의 추락이 만연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러한 혼돈과 무질서야말로 저널리즘에 부여된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

-한 가지 사건에 관해서 온갖 사람들이 취재한 것을, 독자적인 관점에서 검증하고 비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널리즘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신념을 가진 저널리스트는 많지 않다. 그러니 신문을 읽는 우리도 쓰여 있는 기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항상 의문을 품고 읽어야 한다.

세키구치 고타로는 7년전, 아동 유괴 살인 사건 취재 중에 살아 있는 아이에 대해 '시신 발견'이라는 오보를 한 탓에 본사에서 밀려나 지방으로 좌천되어 지국에서 근무 중이다. 고타로 외에도 당시 사건과 관련된 이들은 모두 처분을 받았다. 신문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보도한 죄는 마땅히 크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아 유괴 미수 사건이 발생한다. 영리 목적은 아닌 듯 보여 돈보다는 성폭행이 목적일 것 같고, 범인이 2인조인 것 같다는 목격담까지 더해져 고타로는 7년 전 그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역시 7년 전 그 사건 이후로 본사에 남아 있지만 입지가 자꾸 밀려나고 있는 특별 취재팀의 후지세 유리와 정리부의 마쓰모토 히로후미가 있다. 그나마 유리는 아직 취재팀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당시부터 고타로의 애제자로 여겨졌던 탓에 동료들로부터 집요하게 따돌림을 당해 거의 노이로제에 걸리다시피 한 히로후미는 스스로 정리부로 가겠다고 했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유리는 고타로에게 연락을 받고 당시 사건과 관련된 것 같다는 얘기에 취재를 시작하고, 마쓰히로는 자신은 사회부와 관계가 없다며 외면하려 하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아동 유괴 사건이 연쇄적으로 벌어진다는 설정이지만, 사실 사건은 매우 더디게 진행된다. 유괴 미수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무려 200페이지가 되어서야 초등학생이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터지고, 거기서 또 60페이지가 지나서야 행방불명된 여자아이가 시신으로 발견이 된다. 그렇다면 대체 540여 페이지가 넘는 이 두툼한 페이지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일까. 이야기는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의 입장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들에게서 정보를 알아내서 그것을 보도하려는 기자의 입장에서 진행된다. 세상의 수많은 사정에 의해서 숨겨지고 뒤틀리는 진실을 찾아내서 그것을 알리겠다는 기자로서의 사명감, 만약 7년 전의 공범이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면 그건 당시 사건을 취재하고 오보를 했던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책임감, 그리고 사회부 에이스 자리를 되찾고 싶어하는 자존심... 기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사건 취재에 나선다.

취재는 씨앗을 뿌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몇 번이나 드나들면서 인사를 하는 것으로 씨앗을 뿌리고, 잡담을 나누면서 싹을 틔워야 겨우 정보가 된다. 씨앗에서 싹이 나는 것도 큰일이지만, 실제로는 싹이 튼 다음 키워 가는 쪽이 더 고생스러운 경우가 많다. 기껏 속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기사를 쓰면 입을 딱 다물어 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가혹한 신입 교육이나 소득 없는 야간 취재를 되풀이하는 구식 취재 수법, 신문사나 경찰조직 내부의 주도권 경쟁 등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건, 작가인 혼조 마사토가 전직 기자 출신이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발로 뛰었던 경험이 없었다면, 절대 그려낼 수 없을 만큼 리얼한 세계를 이 작품 속에서 구축해내고 있다. 실제로 기사의 지면이 어떻게 구성되고 메워지는지, 사건이 벌어지면 경찰로부터 그것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알아내는지, 제대로 된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시간을 다 투자하고, 무시 당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서 겨우 한마디를 얻어내는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진짜 리얼한 기자들의 팩트가 이 작품 안에서 고스란히 그려지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의 커다란 과정이 두루뭉실하게 그려지는 게 아니라,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랄까. 조직 내의 갈등과 상하관계, 일에 대한 사명감과 개인의 삶 사이의 괴리감, 좋지 않은 일에 말려 들까봐 몸을 사리고, 거짓 정보를 흘려 방해 공작을 펼치는 등의 그것은 사실 고개를 돌려보면 우리네 일상의 그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자들 역시 사람이니까 말이다.

매 순간 취재하는 상대를 믿느냐 마느냐, 의심 속에서 살아야 하는 기자들의 세계. 상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고 싶지 않으니 순간은 매번 진검 승부가 되어, 상대가 꺼낼 법한 말을 미리 헤아리고, 태도 하나에도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온 힘을 다해 살펴야 하는 전쟁과도 같은 일상. 인터넷 보급으로 인해 신문의 역할도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현장에 나가서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하는 기자가 있어야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믿는 신념. 요즘처럼 시시각각 폭탄과도 같은 소식들이 터져 나오는 뉴스의 시절이라면, 언론의 보도를 믿고 싶지 않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불신과 거짓의 시대, 그러나 어딘가에는 이들처럼 기자의 양심을 걸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발로 뛰는 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세상 그 모든 '진짜' 기자들을 위한 논픽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작품은 픽션이지만, 기자들의 진정한 저널리즘을 보여준다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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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 크로니클 셜록 시리즈
스티브 트라이브 엮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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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시즌 4가 드디어 끝났다. KBS의 외화 더빙에 투덜거리면서 보고, 며칠 뒤에 다시 자막 버전으로 찾아서 다시 보고... 3년을 기다린 것에 비하면 3화라는 횟수는 너무 짧기만 하다. 심지어 셜록 시즌이 마지막이라는 루머마저 무성해서.. 그 아쉬움은 더 컸다. 물론 이번 시리즈의 내용이 워낙 파격적인 부분이 많았기에, 그걸 두고 여기저기서 탄성과 한숨이 오가긴 했지만 말이다. 메리 왓슨의 죽음으로 시작해, 셜록의 사이코패스 여동생 등장에다, 가족간의 치열한 데스게임(?)으로 번진.. 암튼 좀 충격과 파격을 오가는 시즌 4였던 것 같다. 제작사 측에서는 시즌 5도 기획중이라고는 하던데.. 배우들 스케줄 때문에 2년 뒤가 될지, 3년 뒤가 될지.. 알 수가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말이다.

셜록 시즌1(Sherlock) |2010.07.25~2010.08.08|

1화 분홍색 연구

2화 눈 먼 은행가

3화 잔혹한 게임

 

셜록 시즌2(Sherlock) |2012.01.01~2012.01.15|

1화 벨그레이비어 스캔들

2화 배스커빌의 사냥개들

3화 라이헨바흐 폭포

 

셜록 시즌3(Sherlock) |2014.01.01.~2014.01.12|

1화 빈 영구차

2화 세 사람

3화 마지막 서약

 

셜록 시즌4(Sherlock) |2017.01.02.~2014.01.16|

1화 여섯 개의 대처상

2화 병상의 탐정

3화 마지막 문제

 

셜록 홈스를 연기한 역대 수십명의 배우 중에 캐릭터보다 더 희한한 이름을 지닌 유일한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분한 21세기 런던에서 셜록의 활약을 그린  BBC 드라마 <셜록>은 현대적이지만 매화 같은 이름의 원작에서 출발한다. 물론 너무 많이 변형되어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재탄생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덕분에 셜록 원작을 다시 한번 들추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온갖 판본의 셜록 홈즈를 다 읽어왔는데, 서재에 보관하고 있는 건 딱 세 버전이다. 가장 긴 버전, 가장 짧은 버전, 휴대가 편리한 버전이다. 가장 긴 버전은 당연히 '주석 달린' 셜록 홈즈 시리즈이고, 가장 짧은 버전은 '미니북' 버전의 셜록 홈즈, 그리고 휴대에 중점을 둔 것은 바로 이북 버전 되시겠다.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은 원작이 아직도 너무 많기에, 베네딕트의 셜록이 조금 더 많이 만들어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살짝 해보며.. 하핫..

암튼.. 고대하던 시즌4가 이미 방송이 되고, 여러 번 본 상태에서 이 공허함을 달랠 수 있는 것은 바로 책이다. 시즌1과 시즌2를 아기자기하게 구성해 담아 놓은 <셜록:케이스북>과 시즌1부터 시즌3까지 완벽하게 분석한 <셜록:크로니클>이 있으니 말이다.

 

케이스북은 판본도 그렇고, 구성도 그렇고 아기자기한 면이 많아 셜록 시리즈에로의 입문을 수월하게 만들어 준다. 우선 각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의 역할에 대한 깨알 같은 코멘트도 만나볼 수 있다. 마틴 프리먼은 <왓슨은 셜록의 도덕적 지표>라고 말했다. 셜록은 대부분 옳고 그름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왓슨이 꼭 필요하다는 것.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셜록은 말도 안 되게 무례하고 소시오패스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뭐든 꼼꼼히 해야하고, 온갖 일에 짜증을 내고, 기분 내키는대로 감정을 표현하니 말이다. 라라 펄버는 <셜록과 아일린은 서로 거울을 들여다보듯한 관계>라고 말한다. 그들의 문자 로맨스(?)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앤드류 스콧은 <모리아티는 셜록만큼이나 총명하고 두뇌회전이 빠르지만 고독하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촬영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고전 원작 코난도일의 <셜록 홈스>시리즈와 실제 드라마 <셜록>과의 비굑 분석도 재미를 준다. 볼때마다 웃음이 나게 하는 셜록과 존의 포스트 잇 대화, 사건에 대한 단서와 분석 들은 물론 모든 시리즈들이 꼼꼼하게 분석되어 있어서, 셜록 시즌 1,2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완벽한 선물세트같은 구성이다.

 

나는 셜록 크로니클 원서를, BBC에서 출간하고 바로 구입을 했었는데, 영어를 줄줄 읽어대지 못하더라도 하드커버 전체 올 컬러에 묵직한 무게감의 화보로서도 엄청난 퀄리티였기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방대한 분량의 읽을 거리 또한 가득이었기에, 어서 한국판이 나오길 기다렸었고, 그렇게 만난 셜록 크로니클 한국판은 완벽한 퀄리티로 기다림을 보상해주었다. 원서와 거의 한치의 오차도 없을 만큼 멋진 퀄리티를 고스란히 뽑아내어 책장에 나란히 두면 어떤 것이 원서이고, 어떤 것이 번역본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셜록 케이스북도 그랬지만, 비채의 빵빵한 사진 퀄리티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이 책은 촬영 현장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들과 가감없는 배우들의 모습과 제작 전후의 스토리, 그리고 대본 전개, 캐스팅, 세트, 의상, 소품 등에 이르는 전반적인 모든 것까지 마치 셜록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책이다. 물론 기존에 출간되었던 셜록 케이스북도 소소한 볼거리들과 깨알같은 정보들이 가득했지만, 케이스북에 비해서 크로니클은 두 배 이상의 엄청난 분량과 커다란 판형의 폼나는 하드 커버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시크릿 화보들까지 풍성해 그야말로 셜록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책을 보면 '작가를 위한 바이블'이란 항목에 셜록은 원작대로 오만하고, 자신이 원할 때는 얼음처럼 냉담하지만 까불고, 현대적이고, 재미있게 표현할 것. 이라고 되어 있다. 무엇보다 빅토리아 시대에서 동면에 들었다가 2009년에 깨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명심할 것. 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여기는 존에 대한 설명이 훨씬 더 긴데, 그도그럴 것이 기존에는 존의 역할이 매우 약소해서 마치 책 여백에 끄적거린 낙서 신세로 전락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를 훨씬 중요한 3차원적인 인물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존은 딱 부러지게 이해하긴 더 힘들지만 하나하나가 다 중요한 인물.이라는 설명으로 시작하는데, 방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작가 여러분은 존을 통해서 모험을 살릴 필요가 있고, 역시 존을 통해서 셜록을 알 필요가 있다. 최대한 셜록과 존을 묶어두어야 하고, 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이라는 부분 말이다.

 

캐스팅에 관한 비하인드도 흥미로운데, 사실 처음에 베네딕트의 어머니는 아들의 코가 셜록과 아주 달라서 셜록이 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톤먼트>에 출연한 그를 보고는, 보자마자 감이 잡힌 듯 완벽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베네딕트는 셜록 홈스 소설을 읽으며 성장하지도 않았고 스토리를 다 알지도 못하지만, 등장인물과 장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고, 대본을 읽어보자 정말이지 셜록 홈스 숭배자들이 썼다는 것이 바로 느껴졌습니다. 라고 말한다. 이걸 보면 그가 얼마나 영리한 배우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 동안 수많은 배우들이 셜록 홈즈를 연기해왔었기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개성을 가진 21세기의 괴짜 셜록을 탄생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마틴에 관한 일화도 재미있다. 마틴은 평범한 것도 한 편의 시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는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이고, 매우 평범한 사람인 척하는 데에 전문가이고, 실제로 존 왓슨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거다. 게다가 마틴이 연기하는 방식이 베네딕트의 연기 방향을 바꾸기 시작하기까지 했다고 이들은 말한다. 셜록 시즌이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마틴 역시 베네딕트처럼 엄청난 스타는 아니었지만, 영화 호빗 시리즈를 통해 시리즈 중간에 더욱 부각이 되면서 숨겨졌던 그만의 매력이 셜록에서도 더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책에는 이렇게 캐스팅 뒷 이야기뿐만 아니라, 베네딕트와 마틴이 각자의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서로의 파트너 쉽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까지 실려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배우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듣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오직 크로니클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정보들이라 더욱 소중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제작자와 감독, 존의 블로그를 맡아 쓴 작가, 특수효과 전문가, 의상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들의 뒷이야기와 BBC <셜록> 제작팀의 은밀한 기록보관소는 물론, 대본과 삭제 컷, 콘셉트아트, 스토리보드까지 엄청난 볼거리와 읽을 거리들이 잔뜩 무장하고 있으니 셜로키언들에겐 최고의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셜록 시즌4는 이미 끝났어도, 기다림은 계속 된다. 시즌5가 과연 제작이 될런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셜록 케이스북과 셜록 크로니클과 함께라면 그 추억을 무한 반복 재생해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셜록 케이스북을 추천하지만, 사실 셜록 크로니클을 실제로 본다면 가격 이상의 가치를 하는 고퀄리티에 홀려서 이걸 먼저 구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최상의 선택은 두 가지 모두 구입하는 것이고 말이다. 왜냐하면 케이스북에 있는 아기자기한 것들은 크로니클에는 없고, 크로니클에 있는 시즌 1~3까지의 철저한 분석과 해부는 여기서만 만날 수 있는 내용들이니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얼마 전에 방송된 시즌 4가 추가되어 이 시리즈가 하나 더 출간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 가격이 얼마든 당장 구입할텐데 말이다. 어쨌건 셜록 크로니클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보아도 화보 같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은 재미가 있다. 셜록 시즌이 끝나서 아쉬운 당신에게 완벽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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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기쉐기몽쉐기 2017-01-31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은데 품절 되었네요 흑 ..

피오나 2017-01-31 12:25   좋아요 0 | URL
아정말요? 품절이라니...ㅠㅠ 지금보니 케이스북은 아직 판매하네요. 케이스북도 정말 멋지답니다^^

쉐기쉐기몽쉐기 2017-01-31 13:17   좋아요 0 | URL
오호! 가볼게요 :) 즐거운 오후 되세요 ~~^^
 
분서자들 1 -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마린 카르테롱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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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전형적인 교실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바닥에서 10미터 이상 높이에 나 있는 불룩한 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근사해 보이는 철 계단을 이용해야 손이 닿을 둥그런 벽면에 책이 가득 꽂혀 있고, 바닥에는 양탄자와 쿠션, 소파, 낡은 잉크병들, 낮은 책상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한편, 꽤 많은 진열장과 선반에 희한한 물건들이 전시돼 있었다.

 

열네살 오귀스트 마르스, 주변 사람들로부터 위험한 비행청소년으로 불린다. '폭력 가중처벌, 절도, 불법침입, 방화'라는 죄목으로 전자 발찌 부착 명령을 받고, 거주지에서 100미터 이상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무고하다고 말한다. 무죄를 증명하려면 결사단의 존재와 분서자들이 꾸미는 음모를 세상에 폭로해야 하는데, 자신은 비밀을 지키겠다고 목숨을 걸고 맹세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거다. 맹세를 깨고 2500년에 걸쳐 이어지는 해묵은 비밀을 폭로하던가, 아니면 자신이 위험한 비행청소년이라는 걸 묵인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열네 살 소년이라니. 대체 결사단은 뭐고, 분서자들은 뭔지 궁금하지만, 어린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게 수월할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이 작품은 마치 15세 관람가로 책정된 어드벤처 영화처럼 어린 소년, 소녀들이 주인공이 되어 대단한 활약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남매인 오귀스트와 세자린이 그 뒤를 이어 책을 수호하는 비밀 결사단의 멤버가 되기까지의 배경 설명과 시작을 그리고 있는 것이 바로 시리즈의 첫 번째인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귀스트의 자폐증 여동생 세자린은 일곱 살로 계산과 측정, 그리고 숫자와 관련된 모든 걸 암기하는 재능이 빼어나 걸어 다니는 컴퓨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이고, 매우 비사교적이고, 황당한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굉장히 똑똑하기도 하다. 이들은 엄마와 함께 파리를 떠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라 코망드리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오귀스트는 낯선 새 학교에 도착하는 날부터 어쩌다 보니 학교 교장에게 폭력적인 면모를 과시하다 찍히게 되고, 꾀죄죄한 옷차림의 깡마른 소년 네네를 만나게 된다. 네네는 곧 그의 베스트프렌드가 되며, 교장은 사사건건 그를 못살게 구는 최악의 적이 되면서 오귀스트가 앞으로 부딪히게 될 수많은 문제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앞의 두 가지 정의와 달리 마지막 정의(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사전)는 책이 '읽히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하기 바란다. 여기서 종이에 쓰인 글을 기술적으로 묶어놓은 '물건'은 독자를 찾은 경우에만 책이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읽히지 않는 책은....... 책이 아닌 것이다!"

 

독특한 매력의 드베르지 선생님, 집안 대대로 이들과 원수인 몽타그 형제들, 오귀스트가 첫눈에 반한 소녀 이자벨 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 그리고 알렉산드르스 대왕의 비밀 도서관, 십자군, 템플 기사단 그리고 집안 대대로 이어져오는 임무. 책을 지키는 결사단의 수호자와 전파자, 추적자라는 역할. 고고학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걸 맞는 흥미진진한 설정들이 이야기가 제대로 굴러가기도 전에 푹 빠져들게 만들어주고 있다. 매번 문제만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소년과 단순하지만 논리적인 사고로 뒤에서 아빠가 남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자폐증 소녀의 조합이 이상하게 잘 어우러지면서, 잔잔한 재미를 선사해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프랑스 투르 대학에서 예술사와 고고학을 전공한 마린 카르테롱의 데뷔 소설로 2017년 현재 65000부가 넘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화제가 된 작품이다. 애초에 3부작으로 계획되고 구성된 시리즈라 첫 번째 이야기인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만 보아서는 제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매우 흥미롭게 쓰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의 시리즈 작품들이 첫 편에는 항상 발단, 전개만 조금 보여주다 그냥 끝나 버려서, 꼭 두 번째 작품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처럼 이 시리즈의 첫 편에도 특별한 클라이막스 없이 이야기가 펼쳐지다가 그냥 끝나버린 감이 없지 않아 있어 다소 맥 빠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는 존재에 대한 무한 애정이 페이지 곳곳에 드러나서 그저 이 시리즈를 응원하고 싶어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본격적으로 전 세계의 비밀 결사단 멤버들이 드러나게 되는 다음 시리즈에서는 더욱 흥미진진한 모험과 스릴이 등장할 것 같아 기대도 되고 말이다. 게다가 시리즈의 재미 중에 반은 캐릭터에서 오는 것이기에, 분서자들 시리즈는 끝까지 만나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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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시선 - 합본개정판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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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노릇은 예술가 노릇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불안정하고, 위선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며, 남들이 자신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빠져 사는 어머니들.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고, 초인적인 인내심을 보여주는 어머니들. 아이들을 위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방과 후 놀이거리를 끊임없이 만들고 또 만들어내는 사람들. 그레이스는 그런 엄마들의 삶이 상당히 불행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레이스 로슨은 사진 현상소에서 가족 사진을 찾아온다. 그녀는 부모를 일찍 여의었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이들이 어머니를 생생히 기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려 무던히 애썼다. 그래서 가족 사진도 부지런히 찍었고 말이다. 그런데 찾아온 사진을 보던 중에 이상한 사진을 한 장 발견한다. 다른 사람의 사진 한 장이 직원의 실수로 잘못 전달된 걸까. 오래되어 보이는 그 사진 속 사람들 차림을 봐서는 십오 년이나 이십 년 전쯤 찍은 사진 같아 보였다. 남자 두 명, 여자 세 명, 모두 십대 후반이나 이십 대 초반 정도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사진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다 가슴 한복판이 찌릿했다. 그 중 한 남자가 남편의 얼굴처럼 보였던 것이다. 정말 이 남자가 잭일까? 저녁때 집에 돌아온 남편은 사진을 보고 당황하더니 밖으로 나가버린다. 문제의 사진과 함께. 처음에는 그저 쇼핑이라도 나간 건 줄 알았지만 그날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고, 그레이스는 경찰에 신고하지만 범죄로서의 단서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경찰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줄리 만무하다.

그렇게 그레이스의 시선을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들과 동시에 진행된다. 코벤의 작품들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우리는 이 두툼한 책의 반 정도까지 와서도 대체 이야기의 방향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 벌어지는 그것이 어떤 연관이 있는 거 같긴 한데,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체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는 건지, 범인의 동기는 무엇이고, 현재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의 원인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레이스는 십오 년 전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죽었던 보스턴 대참사의 생존자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현재 남편의 실종과 그 어떤 연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당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남자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어 유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지만, 그게 그레이스의 남편 잭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대부분의 스릴러 작품에서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면 전체 플롯이 대충 짐작이 되게 마련이다.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정도의 예상이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범인이나, 이해할 수 없는 범죄의 동기에 대한 의혹과 함께 적당한 균형을 맞춰 준다고 할까. 하지만 코벤의 작품은 대다수 그 예측할 수 없음에 두꺼운 페이지들을 넘기는 원동력이 주어진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마치 중독처럼 자꾸만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 후반부에 그 모든 퍼즐 조각들이 한번에 쫙 맞춰지면서 결말에 이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 번의 반전. 콰쾅. 이러니 우리가 코벤의 작품을 매번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대 뻔하지 않으니까.

만약 그가 오늘을 피해 찾아왔더라면 비트리스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우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 인생을 확 바꿔놓는 것은 대부분 우리가 알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는 작고 무의식적인 일들이었다. 운명이라고 불러도 좋고 확률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으며 신의 장난으로 봐도 무방했다. 어쨌든 우는 그런 것들을 즐겨 떠올렸다.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고 싶은 진실이 과연 사실인가.에 있다. 코벤의 작품 속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한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어난 '사실'과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거짓' 사이에서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방황한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욕망을 위해 가짜 진실을 만들어내는 것도 서슴지 않고, 또 누군가는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도 한다.

할런 코벤의 작품은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다. 수많은 등장 인물은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있고, 결국에는 퍼즐처럼 연결이 된다. 복잡하고 다채로운 플롯은 막판에 가서야 단순하게 정리가 되며, 끝을 향해 달릴 때까지 지루할 틈이란 단 한 순간도 없다. 그러니까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탄 것처럼. 서서히 상승하는 이야기가 클라이막스에 치달을 때까지 계속 더 높이, 더 높이 가다가 어느 순간 일시에 해소가 되는 스토리이다.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모든 캐릭터와 사건이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페이지가 아무리 두꺼워도 멈추고 쉴만한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의 작품들은 대개 독자들과의 암묵적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한 판 게임이다.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약속된 장르의 법칙 아래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것이니 복잡하다고 토 달지 말고, 어디서 본듯한 설정이라고 비웃지도 말라는 선언에 동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코벤 표 롤러코스터의 레일을 성실하게 따라가면서 즐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니까. 코벤의 작품에서는 평범한 설정과 익숙한 스토리마저 결국 우리네 삶을 비추는 예리한 거울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그저 공감하고, 감탄하고, 뜨끔하다가, 서글펐다가, 당황하고, 마지막으로 안도하면 된다. 사실 그게 우리네 삶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 아닌가.

 

 

이번에 할런 코벤의 작품 목록을 정리 하다 보니, 스포츠 에이전트 탐정 '마이런 볼리타' 시리즈가 생각보다 꽤 많이 출간되었다. 그를 인기작가로 급부상하게 만든 시리즈라 그런지 농구선수이자 전직 FBI 수사관 출신의 주인공 '마이런 볼리타'에 대한 작가의 애정도가 충실한 것 같다. 물론 국내에는 무려 이십 년 전에 두 편이 출간되고는 이후 소식이 없지만 말이다. 국내에는 스탠드 얼론 작품들이 주로 출간되고 있는데, 어딘 가에서는 코벤의 시리즈 작품들도 좀 순서대로 출간해주시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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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2017-01-26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위험한 계약을 읽었는데
그냥 그럭저럭 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손 놓고 있었는데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운 좋게 페이드어웨이는 소장하고 있는데 밀약은 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피오나 2017-01-26 08:24   좋아요 0 | URL
저도 위험한 계약은 당시에 그럭저럭이었던 거 같아요. 오래돼서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면 다를래나요? 그나저나 페이드 어웨이도 가지고 계시군요. 부럽ㅋ
저는 비채의 모중석 시리즈로 만나면서 코벤의 작품에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쭈니 2017-01-2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운좋게 알라딘 매장에서 2000원쯤 주고 샀습니다.
근데 워낙 오래전 책이라 상태는 좋지 못합니다.




피오나 2017-01-26 08:46   좋아요 0 | URL
근데 뭐 출간된지 이십 년쯤 되면.. 새책을 사도 상태가 썩 좋지 않더라고요^^;;

물감 2017-01-26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런 시리즈는 호불호가 많더라구요~ 그래도 스탠드얼론은 평점이 좋은편이라 모으는 맛이 있네요^^

피오나 2017-01-26 09:13   좋아요 0 | URL
오..마이런 시리즈는 호불호가 있는 작품이었군요. 호불호가 있다고 하니 어쩐지 다시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ㅋㅋ 가지고 있는 책부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디자인 유어 라이프
빌 버넷.데이브 에번스 지음, 김정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당연히 디자인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고 실체이기 때문에, 목적과 의도를 선택하여 합리적으로 구성하는 창조활동의 결과물, 그 실체가 곧 디자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학적 측면이나 사물의 외관은 디자이너들이 특히 많은 공을 들이는 분야지만, 단 하나의 정해진 답이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제품 디자인을 하는 저자는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디자인 사고가 우리 앞에 놓은 삶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도와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최상의 방법이 될 거라고 주장한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든 것처럼, 페라리가 잘 빠진 스포츠카를 만든 것처럼, 당신의 인생도 훌륭하게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이 어떤 사람이고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나이가 얼마인지는 전혀 상관없다. 이 책을 통해서 당신의 인생에서도 디자인 사고의 혜택을 확인하게 된다면, 당신 역시 잘 디자인된 인생을 찾게 될 테니 말이다.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아래 세 가지 항목에 대해, 저자는 시작부터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전공이 경력을 결정한다? 아니다. 전체 대학 졸업생의 75퍼센트는 전공과 관련 없는 분야에서 경력을 쌓는다. 그렇다면 성공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아니다. 참된 행복은 자신에게 맞는 인생을 디자인하는 데서 나온다. 어쩌면 이미 너무 늦었다? 아니다. 좋아하는 인생을 디자인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이 책은 여섯 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이틀 밤에 걸쳐 진행한 스탠퍼드 디자인스쿨의인생 디자인세미나에서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수업에 몰입한 나머지, 강의가 끝난 후에도 떠나기를 거부했고 결국 강의실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헤어졌다. 이후 학생들의 끈질긴 요청 끝에 정식 강의로 개설되어, 지금까지 2천여 명의 학생들이 수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대체 어떤 강의였길래 이런 놀라운 인기를 얻게 된 걸까.

"학생들이 대학 시절은 물론이고 졸업 후의 인생을 디자인하는 사악한 문제에 디자인 사고의 혁신적인 원칙들을 적용하도록 도움을 주는 과목을 가르칩니다."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내기 위해 디자인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인생을 디자인하려면 우선 디자이너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디자이너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길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인생을 디자인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다섯 가지 사고방식은 호기심, 행동 지향성, 재구성, 인식, 극단적 협력이다. 이 사고방식으로 무장할 때 원하는 삶은 물론이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1.호기심을 가져라.

2.시도하라.

3.문제를 재구성하라.

4.인생 디자인이 과정임을 이해하라.

5.도움을 요청하라.

끝없는 호기심은 잘 디자인된 인생의 핵심이다. 행동 지향적인 사람은 무슨 일로도 수렁에 빠지지 않는다. 재구성은 관점이 변하는 것이고, 거의 모든 디자인 문제는 관점의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 인생 디자인이 과정임을 인식한다는 것은 좌절하거나 길을 잃지 않으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극단적 협력은 인생 디자인 과정에서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렵지 않다. 다섯 가지 사고 방식이 전부다. 이런 사고방식을 당신의 삶의 방식에 적극적으로 적용해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 책에서는 인생을 디자인하는 여러 단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행복 일기> 라는 항목이었다. 일상 활동들을 일기로 기록하는 건데, '깊이 관여하고 에너지가 샘솟는 때가 언제인지, 혹은 관여하고 에너지가 샘솟는 순간에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확인'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매일 작성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며칠에 한번은 일기를 작성하고, 그 훈련을 3주간 계속하게 되면 '관여시키고 에너지를 생성시켜준 활동과 그렇지 못한 활동을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건 꼭 시간을 내어서 직접 실행해보고 싶은 항목이었다.

 

 

 

인생은 많은데, 시간은 부족하다. 그러니 먼저 향후 5년에 대한 각기 다른 세 가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2년은 너무 짧아서 미래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는 불안감을 유발하고, 7년은 너무 길어서 그때쯤이면 상황을 변화시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때문에 5년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기간을 예로 들면, 유년기, 미취학 연령기, 10대 초반, 부모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청소년기로 이뤄진다.   

인생을 디자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여러 삶을 디자인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매력적이었다. 향후 5년에 대한 각기 다른 인생 경로를 상상하고 글로 표현하는 것을 '오디세이 계획'이라 부른단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시나리오가 최소 세개는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고 말이다.

 

 

 

잘 디자인되고 균형 잡힌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하루를 네 조각의 파이처럼 생각해보자. 각 조각은 일, 건강, 가족과 친구, 놀이와 즐거움을 의미한다.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삶의 영역이 어디인지는 자신만이 알 것이다.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후회, 그 모든 것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옅어진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삶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건지, 대체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건지 의심이 드는 건 어느 위치에 있건 마찬가지일테니 말이다. 인생을 디자인하라. 삶을 디자인하라. 디자이너처럼 생각하라. 그냥 말로 하긴 쉽다. 하지만 이들처럼 이렇게나 구체적이고, 상세하고, 실제로 해볼 수 있도록 문서화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들만 고스란히 따라가더라도, 당신의 내일이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질 테니 말이다. 이 책은 특히  대학에 진학했지만 미래에 자신이 없는 학생들, 그리고 오랜 직장 생활에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매일 쳇바퀴 돌듯이 생활하고 있는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다. 당신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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