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서자들 1 -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마린 카르테롱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전형적인 교실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바닥에서 10미터 이상 높이에 나 있는 불룩한 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근사해 보이는 철 계단을 이용해야 손이 닿을 둥그런 벽면에 책이 가득 꽂혀 있고, 바닥에는 양탄자와 쿠션, 소파, 낡은 잉크병들, 낮은 책상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한편, 꽤 많은 진열장과 선반에 희한한 물건들이 전시돼 있었다.

 

열네살 오귀스트 마르스, 주변 사람들로부터 위험한 비행청소년으로 불린다. '폭력 가중처벌, 절도, 불법침입, 방화'라는 죄목으로 전자 발찌 부착 명령을 받고, 거주지에서 100미터 이상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무고하다고 말한다. 무죄를 증명하려면 결사단의 존재와 분서자들이 꾸미는 음모를 세상에 폭로해야 하는데, 자신은 비밀을 지키겠다고 목숨을 걸고 맹세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거다. 맹세를 깨고 2500년에 걸쳐 이어지는 해묵은 비밀을 폭로하던가, 아니면 자신이 위험한 비행청소년이라는 걸 묵인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열네 살 소년이라니. 대체 결사단은 뭐고, 분서자들은 뭔지 궁금하지만, 어린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게 수월할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이 작품은 마치 15세 관람가로 책정된 어드벤처 영화처럼 어린 소년, 소녀들이 주인공이 되어 대단한 활약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남매인 오귀스트와 세자린이 그 뒤를 이어 책을 수호하는 비밀 결사단의 멤버가 되기까지의 배경 설명과 시작을 그리고 있는 것이 바로 시리즈의 첫 번째인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귀스트의 자폐증 여동생 세자린은 일곱 살로 계산과 측정, 그리고 숫자와 관련된 모든 걸 암기하는 재능이 빼어나 걸어 다니는 컴퓨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이고, 매우 비사교적이고, 황당한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굉장히 똑똑하기도 하다. 이들은 엄마와 함께 파리를 떠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라 코망드리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오귀스트는 낯선 새 학교에 도착하는 날부터 어쩌다 보니 학교 교장에게 폭력적인 면모를 과시하다 찍히게 되고, 꾀죄죄한 옷차림의 깡마른 소년 네네를 만나게 된다. 네네는 곧 그의 베스트프렌드가 되며, 교장은 사사건건 그를 못살게 구는 최악의 적이 되면서 오귀스트가 앞으로 부딪히게 될 수많은 문제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앞의 두 가지 정의와 달리 마지막 정의(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사전)는 책이 '읽히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하기 바란다. 여기서 종이에 쓰인 글을 기술적으로 묶어놓은 '물건'은 독자를 찾은 경우에만 책이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읽히지 않는 책은....... 책이 아닌 것이다!"

 

독특한 매력의 드베르지 선생님, 집안 대대로 이들과 원수인 몽타그 형제들, 오귀스트가 첫눈에 반한 소녀 이자벨 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 그리고 알렉산드르스 대왕의 비밀 도서관, 십자군, 템플 기사단 그리고 집안 대대로 이어져오는 임무. 책을 지키는 결사단의 수호자와 전파자, 추적자라는 역할. 고고학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걸 맞는 흥미진진한 설정들이 이야기가 제대로 굴러가기도 전에 푹 빠져들게 만들어주고 있다. 매번 문제만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소년과 단순하지만 논리적인 사고로 뒤에서 아빠가 남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자폐증 소녀의 조합이 이상하게 잘 어우러지면서, 잔잔한 재미를 선사해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프랑스 투르 대학에서 예술사와 고고학을 전공한 마린 카르테롱의 데뷔 소설로 2017년 현재 65000부가 넘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화제가 된 작품이다. 애초에 3부작으로 계획되고 구성된 시리즈라 첫 번째 이야기인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만 보아서는 제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매우 흥미롭게 쓰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의 시리즈 작품들이 첫 편에는 항상 발단, 전개만 조금 보여주다 그냥 끝나 버려서, 꼭 두 번째 작품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처럼 이 시리즈의 첫 편에도 특별한 클라이막스 없이 이야기가 펼쳐지다가 그냥 끝나버린 감이 없지 않아 있어 다소 맥 빠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는 존재에 대한 무한 애정이 페이지 곳곳에 드러나서 그저 이 시리즈를 응원하고 싶어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본격적으로 전 세계의 비밀 결사단 멤버들이 드러나게 되는 다음 시리즈에서는 더욱 흥미진진한 모험과 스릴이 등장할 것 같아 기대도 되고 말이다. 게다가 시리즈의 재미 중에 반은 캐릭터에서 오는 것이기에, 분서자들 시리즈는 끝까지 만나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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