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시선 - 합본개정판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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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노릇은 예술가 노릇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불안정하고, 위선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며, 남들이 자신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빠져 사는 어머니들.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고, 초인적인 인내심을 보여주는 어머니들. 아이들을 위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방과 후 놀이거리를 끊임없이 만들고 또 만들어내는 사람들. 그레이스는 그런 엄마들의 삶이 상당히 불행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레이스 로슨은 사진 현상소에서 가족 사진을 찾아온다. 그녀는 부모를 일찍 여의었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이들이 어머니를 생생히 기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려 무던히 애썼다. 그래서 가족 사진도 부지런히 찍었고 말이다. 그런데 찾아온 사진을 보던 중에 이상한 사진을 한 장 발견한다. 다른 사람의 사진 한 장이 직원의 실수로 잘못 전달된 걸까. 오래되어 보이는 그 사진 속 사람들 차림을 봐서는 십오 년이나 이십 년 전쯤 찍은 사진 같아 보였다. 남자 두 명, 여자 세 명, 모두 십대 후반이나 이십 대 초반 정도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사진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다 가슴 한복판이 찌릿했다. 그 중 한 남자가 남편의 얼굴처럼 보였던 것이다. 정말 이 남자가 잭일까? 저녁때 집에 돌아온 남편은 사진을 보고 당황하더니 밖으로 나가버린다. 문제의 사진과 함께. 처음에는 그저 쇼핑이라도 나간 건 줄 알았지만 그날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고, 그레이스는 경찰에 신고하지만 범죄로서의 단서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경찰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줄리 만무하다.

그렇게 그레이스의 시선을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들과 동시에 진행된다. 코벤의 작품들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우리는 이 두툼한 책의 반 정도까지 와서도 대체 이야기의 방향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 벌어지는 그것이 어떤 연관이 있는 거 같긴 한데,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체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는 건지, 범인의 동기는 무엇이고, 현재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의 원인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레이스는 십오 년 전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죽었던 보스턴 대참사의 생존자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현재 남편의 실종과 그 어떤 연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당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남자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어 유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지만, 그게 그레이스의 남편 잭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대부분의 스릴러 작품에서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면 전체 플롯이 대충 짐작이 되게 마련이다.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정도의 예상이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범인이나, 이해할 수 없는 범죄의 동기에 대한 의혹과 함께 적당한 균형을 맞춰 준다고 할까. 하지만 코벤의 작품은 대다수 그 예측할 수 없음에 두꺼운 페이지들을 넘기는 원동력이 주어진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마치 중독처럼 자꾸만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 후반부에 그 모든 퍼즐 조각들이 한번에 쫙 맞춰지면서 결말에 이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 번의 반전. 콰쾅. 이러니 우리가 코벤의 작품을 매번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대 뻔하지 않으니까.

만약 그가 오늘을 피해 찾아왔더라면 비트리스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우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 인생을 확 바꿔놓는 것은 대부분 우리가 알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는 작고 무의식적인 일들이었다. 운명이라고 불러도 좋고 확률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으며 신의 장난으로 봐도 무방했다. 어쨌든 우는 그런 것들을 즐겨 떠올렸다.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고 싶은 진실이 과연 사실인가.에 있다. 코벤의 작품 속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한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어난 '사실'과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거짓' 사이에서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방황한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욕망을 위해 가짜 진실을 만들어내는 것도 서슴지 않고, 또 누군가는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도 한다.

할런 코벤의 작품은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다. 수많은 등장 인물은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있고, 결국에는 퍼즐처럼 연결이 된다. 복잡하고 다채로운 플롯은 막판에 가서야 단순하게 정리가 되며, 끝을 향해 달릴 때까지 지루할 틈이란 단 한 순간도 없다. 그러니까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탄 것처럼. 서서히 상승하는 이야기가 클라이막스에 치달을 때까지 계속 더 높이, 더 높이 가다가 어느 순간 일시에 해소가 되는 스토리이다.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모든 캐릭터와 사건이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페이지가 아무리 두꺼워도 멈추고 쉴만한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의 작품들은 대개 독자들과의 암묵적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한 판 게임이다.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약속된 장르의 법칙 아래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것이니 복잡하다고 토 달지 말고, 어디서 본듯한 설정이라고 비웃지도 말라는 선언에 동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코벤 표 롤러코스터의 레일을 성실하게 따라가면서 즐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니까. 코벤의 작품에서는 평범한 설정과 익숙한 스토리마저 결국 우리네 삶을 비추는 예리한 거울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그저 공감하고, 감탄하고, 뜨끔하다가, 서글펐다가, 당황하고, 마지막으로 안도하면 된다. 사실 그게 우리네 삶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 아닌가.

 

 

이번에 할런 코벤의 작품 목록을 정리 하다 보니, 스포츠 에이전트 탐정 '마이런 볼리타' 시리즈가 생각보다 꽤 많이 출간되었다. 그를 인기작가로 급부상하게 만든 시리즈라 그런지 농구선수이자 전직 FBI 수사관 출신의 주인공 '마이런 볼리타'에 대한 작가의 애정도가 충실한 것 같다. 물론 국내에는 무려 이십 년 전에 두 편이 출간되고는 이후 소식이 없지만 말이다. 국내에는 스탠드 얼론 작품들이 주로 출간되고 있는데, 어딘 가에서는 코벤의 시리즈 작품들도 좀 순서대로 출간해주시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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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2017-01-26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위험한 계약을 읽었는데
그냥 그럭저럭 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손 놓고 있었는데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운 좋게 페이드어웨이는 소장하고 있는데 밀약은 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피오나 2017-01-26 08:24   좋아요 0 | URL
저도 위험한 계약은 당시에 그럭저럭이었던 거 같아요. 오래돼서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면 다를래나요? 그나저나 페이드 어웨이도 가지고 계시군요. 부럽ㅋ
저는 비채의 모중석 시리즈로 만나면서 코벤의 작품에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쭈니 2017-01-2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운좋게 알라딘 매장에서 2000원쯤 주고 샀습니다.
근데 워낙 오래전 책이라 상태는 좋지 못합니다.




피오나 2017-01-26 08:46   좋아요 0 | URL
근데 뭐 출간된지 이십 년쯤 되면.. 새책을 사도 상태가 썩 좋지 않더라고요^^;;

물감 2017-01-26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런 시리즈는 호불호가 많더라구요~ 그래도 스탠드얼론은 평점이 좋은편이라 모으는 맛이 있네요^^

피오나 2017-01-26 09:13   좋아요 0 | URL
오..마이런 시리즈는 호불호가 있는 작품이었군요. 호불호가 있다고 하니 어쩐지 다시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ㅋㅋ 가지고 있는 책부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