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굴 - 영화 [퇴마 : 무녀굴]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7
신진오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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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제주도의 김녕사굴에서 시작한다. 산악자전거 동호회 매드맥스의 일곱 멤버가 제주도 라이딩을 하고 유명한 사굴을 탐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동굴의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둠은 짙어지고, 공간은 좁아진다. 그리고 어느 정도 들어갔을 무렵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한두 개가 아닌, 여러 개의 방울이 동시에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가. 그리고 갑자기 대원들 모두 돌처럼 굳어버린 채 가만히 서서 동굴 안쪽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의 몸은 마네킹처럼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고, 유일한 홍일점인 희진만이 동굴 안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에 당황하고 있다. 차츠랑- 차츠랑- 차츠랑- 방울 소리는 점점 증폭되듯 크게 들려오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두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리고 순식간에 어둠이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

그렇게 매드맥스의 멤버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9개월 후. 진명은 대학 선배인 주열의 빈소를 찾아간다. 진명은 레지던트 과정을 하다 중간에 그만두고, 현재는 퇴마사로 일하고 있다. 귀신을 쫓거나 귀신 들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이다. 진명은 병원에 있는 동창에게 부탁해 영안실에서 주열을 만난다. 그리고 주열의 혼령이 자신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걸 보고, 영력을 이용해 사고 당시의 기억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난 원인은 다름아닌 무녀 귀신 때문이었던 거다. 무당 귀신은 정말 흔치 않은 존재인데, 귀신의 저주를 받은 건지 진명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열은 그렇게 진명에게 자신의 아내와 딸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이후 주열의 아내 세연의 주변에서 악몽 같은 일이 시작된다.

너무 무서웠지만 본능은 그만 그녀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것이 바로 등 뒤에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향해 한 쪽 팔을 쭉 뻗고서.....

"꺄악!"

비명은 방 안에서 울렸다.

제주 김녕사굴에서 실종된 매드맥스 회원들 중에 6개월만에 희진이 살아 돌아오지만 상태가 좋지 못하고, 퇴마사를 취재하고 싶었던 케이블 티비의 박혜인과 병원의 관계자들은 진명을 부른다. 아무래도 희진에게 빙의된 귀신이 무당인 것처럼 보이고, 희진이 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꼭 무당이 굿을 할 때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희진의 담당 의사가 은사였기에 진명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퇴마 의식을 진행하기로 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퇴마 의식 장면에 대한 묘사는 가히 무시무시하다. 희진을 조종하고 있는 원혼의 힘은 매우 강력해 결구 수사 담당이던 형사와 검사를 죽게 만들고, 진명에게도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그 원혼이 금주에 대해 말하는 걸 듣게 되는 진명은 당황한다.

 

과연 매드맥스 회원들을 죽게 만든 원혼과 금주의 주변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을 벌이는 원혼은대체 무슨 목적인 걸까. 영화로 치자면 한 씬으로 끝낼 장면이지만, 책에 묘사된 꽤 많은 페이지의 퇴마 의식은 굉장하다. 소름 끼치게 무섭기도 하지만, 그것 외에도 매우 흡입력 있게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장면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를 방해하면 누구든 가만 안 둬. 그게 너라도..... , 잊을 뻔했네. 금주한테는 내가 곧 찾아간다고 전해줄래?"

그녀는 실실 웃었다. 진명은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같은 영가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직접 그녀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이야.

"왜 하필 그 사람이지? 말해. 대체 무슨 관계야!"

이 작품은 제주의 김녕사굴 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제주의 한 동굴에 은거하던 커다란 구렁이에게 열다섯 살이 된 처녀를 제물로 바치다, 신임 제주 판관이 구렁이를 죽였으나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했다는 설화이다. 설화를 바탕으로 매우 현대적인 공포 소설이 만들어졌는데, 그 중심에 '퇴마사'라는 이색적인 캐릭터가 있다. 한때 이우혁의 <퇴마록>에 빠졌던 기억이 있지만, 그 이후로는 퇴마 관련된 소설도, 영화도 거의 보지 못했던 터라 우선 소재에서부터 독특함을 발산한다. 아마도 그래서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말이다. 김휘 감독의 영화 <퇴마:무녀굴>은 지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폐막작으로 먼저 상영이 되기도 했는데, 아직 개봉전이라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꽤 높은 걸로 알고 있다. 예고편으로 봤을 때도 꽤나 섬뜩하고 무섭게 보이긴 했다.

워낙 공포, 추리, 미스터리 분야의 작품들을 많이 접해와서 웬만큼의 강도가 아니면 이제 꿈쩍도 하지 않는 나이건만, 이 작품은 일부러 낮에만 읽었을 정도로 오싹했다. 밤에 혼자 방에 앉아서 읽는다면 등골이 서늘해질 만한 대목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영화도 책 만큼의 완성도를 보일 수 있기를 바라고, 그래도 올 여름 무더위를 쫓아버리기엔 공포 소설이 제격이라는 걸 잊지 말자. 이 책을 읽다보면 에어컨이 필요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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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5-08-01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전 영상으로는 약한데, 활자에는 강해요. 한창때 이우혁 퇴마록 시리즈도 두루 섭렵했었는데 말이죠.추억을 떠올릴수 있어서 잠시 미소지었습니다~^^

피오나 2015-08-01 17:55   좋아요 0 | URL
공포는 영상보다는 활자화된 것이 훨씬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님은 대단하신데요^^

cyrus 2015-08-0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새벽에 읽었는데 세 시간 만에 다 읽었어요. 마침 그 시간에 강정호 출전 메이저리그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어요. 중계를 보면서 책을 읽었는데, 강정호가 적시타 치는 장면을 놓칠 정도로 이야기 몰입에 푹 빠졌어요. 중계방송 안 보고 제 방에 혼자서 읽었다면 무서운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새벽에 책 읽을 때 너무 조용해서 좋긴 한데, 가끔 무서울 때가 있어요. ^^

피오나 2015-08-01 20:52   좋아요 0 | URL
하핫..야구 중계방송 보면서 새벽에 읽는 것 괜찮겠네요ㅎㅎ 이 책 몰입도가 좋더라구요. 저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가 넘어갔어요 ㅎㅎ 저는 강정호 출전 경기 새벽꺼는 맨날 놓쳐요. 아침에 할때만 겨우 봅니다ㅋㅋ
 
마라 다이어 1
미셸 호드킨 지음, 이혜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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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글거리는 하이틴 로맨스는 딱 질색이다. 반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미스터리는 완전 사랑한다. 그런데 그 미스터리가 로맨스랑 만나면 어떨까? 어찌 보면 그렇게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쓰인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 분명 기본 플롯은 미스터리인데, 그 속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말 그대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로맨스이다. 여주인공은 대책 없이 들이대는 남주인공에게 겉으로는 싫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 없고, 그들을 질투하는 친구들 보란 듯이 남주인공이 위기에 빠진 여주인공을 구해낸다. 마치 백마 탄 왕자라도 된 듯.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의 여주인공 주변에서는 이상한 사건들이 끊이질 않는다. 이유 없이 사람이 죽고, 기억나지 않은 시간이 있고, 죽은 사람들이 환영으로 나타나고. 그럴 때는 또 오싹한 호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풀리지 않은 비밀이 있는 것 같은 스토리 전개에 미스터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은 판타지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꽤 많은 부분은 10대 남녀의 달달한 로맨스에 치중되어 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곧바로 고개를 들었는데 피가 얼어붙은 듯 소름이 끼쳤다. 주드의 웃음소리였다. 주드의 목소리도 들렸다. 천천히 일어서서 울타리를, 밀림 같은 미개발 지역을 마주하고 철조망 사이에 손가락을 끼우고서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나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했다. 주드는 죽었으니까. 클레어처럼. 레이첼처럼.

낡은 병원 건물이 무너져 단짝 친구인 레이첼과 남자 친구인 주드, 그리고 그의 동생 클레어까지 모두 죽고 혼자만 살아 남은 마라 다이어. 하지만 그녀는 자신들이 왜 거기에 갔는지, 거기서 뭘 했는지 도무지 그날 밤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후로 마라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악몽을 꾸고 헛것을 보았고,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하기로 한다. 하지만 새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마라는 역시 환각을 본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고, 화장실 거울 속에서 클레어의 모습이 나타나고, 교정의 가장자리에 있는 울타리를 따라 가다가 주드의 웃음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던 와중에 모든 여자 아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노아라는 독특하지만 매력 있는 남학생이 마라에게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다가 온다. 마라는 그에게 관심 없는 척 하지만,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여자였기에 서서히 그의 매력에 빠져 든다. 결정적으로 노아의 전 여친이었던 안나가 마라를 질투해 친구들 사이에서 망신을 주려고 하는 순간에 노아가 마라를 구해주고, 그들 사이는 급속하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평소에 너무도 허름한 옷차림으로 다니는 노아의 집이 마치 영화 촬영장같이 호화로운 대저택인데다, 지나치게 적극적인 그의 태도도 어딘지 의문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마라에게 접근했을 수도 있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하지만 마라는 자신의 생각과 달리 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노아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겨우 몇 센티미터 앞으로. 꾀죄죄한 턱수염 속에 감춰진 주근깨가 보였다. 노아가 덧붙여 말했다. "점잖게 굴게." 노아가 속눈썹에 살짝 가려진 눈으로 쳐다보자, 나는 황홀해서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나는 노아를 흘겨보며 말했다. "넌 악마야."

그 응답으로 노아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내 코끝을 살짝 두드렸다.

"넌 내거야."노아가 이렇게 말하고는 저쪽으로 가버렸다.

노아와 마라의 달달한 로맨스 한 편으로 진행되는 플롯은 초자연적인 미스터리, 혹은 판타지 성향을 띤 호러이다. 마라가 학교에서, 집에서 자주 죽은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그렇고, 자신이 증오하거나 미워한 인물들이 바로 자신이 상상한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게 되는 사건도 반복된다. 설마, 그들의 죽음에 자신이 무슨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마라는 점점 두려워진다. 그리고 건물 붕괴 사건이 나던 그날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대체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날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이후에 그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일들은 또 무슨 이유에서 일까?

<마라 다이어>가 시리즈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라, 이야기는 '다음 권에서 계속됩니다'로 끝이 난다. 책을 읽는 내내 시리즈 인줄 모르고 집중해서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순간 당황했다. 2권이 나올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싶어서. 모든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 그렇듯 이 작품은 완벽하게 독자들을 미끼로 낚아 궁금증을 한 무더기 남겨 주고 끝이 났다. 두 번째 시리즈를 보지 않을 수 없도록 말이다. 마라의 정신 상태에 이상이 있는 건지, 아니면 마라에게 정말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능력이라도 있는 건지, 노아가 마라에게 접근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그녀의 특별함에 이끌리는 마음 말고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닌지, 그리고 사고 현장에서 끝내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던 주드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건지,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궁금한 것 투성이다. 빨리 2권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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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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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하퍼 리의 작품이 오로지 <앵무새 죽이기> 단 한 편인 줄 알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사실 그녀의 첫 작품은 <파수꾼>이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작중 인물인 진 루이즈의 아버지 애티커스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했고, 그래서 그녀는 스카웃이라는 어린이의 일인칭 목소리로 소설을 다시 썼고, 그것이 바로 <앵무새 죽이기>가 된다. 인기와 명성을 바라지 않았던 그녀는 이 작품의 너무나도 큰 성공으로 인해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기에, 올해 초까지만 해도 그녀의 작품은 단 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변호사에 의해 이 원고가 발견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파수꾼>이 세상과 드디어 만나게 된다. 그러니 이 작품은 <앵무새 죽이기>의 전작이자 후속작이며, 하퍼 리의 첫 작품이자 최후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앵무새 죽이기>와 이어지는 이야기이면서도 소소한 설정 상의 차이가 있어 더욱 흥미롭기도 하다. 흑인 청년에 대한 유죄가 무죄로 바뀌고, 손자가 아들로, 여동생이 누나로 바뀌고, 가장 중요한 아버지 애티커스의 가치관이 다르게 보여져 살짝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이 두 작품을 독립적인 작품으로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기도 하다.

진 루이즈가 생각할 수만 있었더라면, 아주 옛날부터 있던 돌고 도는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바라봄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와 관련된 중요 사건은 2백 년 전에 시작되어 현대 역사상 가장 피를 많이 흘린 전쟁과 가장 가혹한 평화도 파괴시키지 못한 당당한 사회에서 펼쳐졌고, 이제는 어떤 전쟁도 평화도 구할 수 없을 문명의 황혼기로 되돌아와 개인의 장에서 다시 펼쳐질 참이었다.

흑인 인권 운동의 움직임이 크게 일렁이던 1950년대 중반, 뉴욕에 거주하던 스카웃은 고향인 메이콤으로 돌아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게 된다. 특히나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정의'에 대해서 그녀가 아빠와 맞서는 대목이다. <백인은 백인이고 흑인은 흑인이야. 지금까지 그렇지 않다고 나를 설득시킨 주장을 들어 본 적이 없어>라고 말하는 애티커스라니,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상상도 못할 만한 일이지 않나. 전작에서 오누이의 영웅이었던 아버지 애티커스는 미국 전체의 상징적인 멋진 백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흑인들에게 차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다수의 백인들처럼 그려지고 있다. 루이즈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서 배신감마저 느끼고 당혹스러움과 실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마도 전작이 어린이의 시점으로 쓰여진 3인칭 소설이라 당시 스카웃의 눈을 통해서 본 아버지는 영웅이었기에 결점이 보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면, 뭐 이번 작품에서의 설정이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아이들은 보이는 그대로를 고스란히 믿지만, 사실 어른들의 모습은 보이는 그대로가 전부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이렇듯 이 작품은 많은 부분을 전작에 기대고 있지만, 또 많은 부분이 전작에서 벗어나 있어 재미있다. 게다가 전작에서 우리의 어린 주인공이 그랬듯, 20대가 된 주인공도 역시나 많은 에피소드들에서 그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빙긋이 웃게 만들어준다. 루이즈가 열두 살 때, 자신이 임신한 줄 알고 불안해하던 에피소드는 사실 너무도 귀엽다. <앨버트는 진 루이즈의 입에 혀를 집어넣었다. 진 루이즈는 임신했다> 친구들을 통해 결혼하지 않아도 생리를 시작한 뒤로는 아기 낳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사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에 그녀는 자신이 정말 임신을 했다고 믿었다. 무려 10개월 동안이나. 매일 아침 갓난아기가 나왔는지 찾아보았고, 계산해 봤을 때 아기가 10월에 나올 예정이었으니, 자신은 9 30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되겠거니 했다. 그러다 읍내의 물탱크에 뛰어 들려고 하던 때, 헨리가 그녀를 붙들고 뭐 때문에 그리 속상한 거냐는 그의 물음에 <나 아기를 낳게 됐어!> 라고 말하는 순간은 픽 웃음마저 나온다. 그녀의 무지와 지나친 순수함이 너무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눈이 멀었거나, 그게 내 모습이다. 나는 눈을 뜬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려 한 적이 없다. 얼굴만 살짝 봤을 뿐이다. 완전히 눈이 멀었다, 돌처럼... 스톤 목사. 스톤 목사는 어제 예배에 파수꾼을 세웠다. 그는 내게 파수꾼을 세워 주었어야 했다. 손을 잡아 이끌어 주고, 매 정시마다 보이는 것을 공표해주는 파수꾼이 나는 필요하다.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저것을 의미한다고, 가운데 줄을 긋고 한쪽에는 이런 정의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저런 정의가 있다고,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해 줄 파수꾼이 나는 필요하다.

<파수꾼> <앵무새 죽이기>의 초석과도 같은 작품으로,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인 진 루이즈 핀치(스카웃) 20대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라고 작품 소개 문구가 있는데 사실 이 작품이 재미있는 이유 중의 많은 부분이 <앵무새 죽이기>에서 나온다. 사실 이 작품이 <앵무새 죽이기>보다 먼저 쓰였으나 안에 담긴 내용은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편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앵무새 죽이기>를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만한 부분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니, 그다지 부담을 갖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9살이던 주인공은 이제 26살이 되었고,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던 초등학생은 지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만큼의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하퍼 리의 두 작품은 당시의 추억과 새로운 깨달음도 함께 안겨 주었다. 어린 나의 시선과 어른이 된 나의 시선은 분명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날 테지만, 좋은 책이란 그런 것 같다. 어린이의 눈높이에서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어른이 된 시점에서도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 수십 년의 시간에 걸쳐 그런 책을 만나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라, 올해 나는 이 두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되어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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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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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내가 지금 "한국 사람들을 죽이자. 대사관에 불을 지르자."고 선동하는 게 아니잖아? 무슨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태극기 한 장 태우지 않아.

한국에서는 더 이상 못살겠다고 말하는 계나는 스스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고.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롭고 말이다. 3년이 조금 넘는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출퇴근 때문에 매일 울면서 다녔다. 아침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는 길은 일명 '지옥철'이니 말이다. 그녀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고...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너희들은 무슨 죄를 지었니?> 그녀가 다니던 회사 또한 그냥 대기업 다 떨어지고 아무 데나 넣어서 된 회사란다. 친구들이 다들 자격증도 없이 어떻게 금융회사에 취직했냐고 물을 만큼의 취업이었다. 사실 이 회사가 아니라 다른 데 붙었더라도 아무 데나 갔을 거라고. 물론 그랬다면 또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한국에서는 더 이상 비전도 없고, 지긋지긋한 이 생활 하루라도 더 하고 싶지 않아서 외국으로 가서 살겠다는 계나의 생각은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되지만, 또 어느 정도는 속없는 젊은이의 허황된 꿈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다니는 회사가 재미있을 리 만무하고, 회사에 정을 주지 않고 뚱하니 앉아만 있으니 그 생활에 무슨 미래를 꿈꾸겠으며, 외국으로 나간다고 한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어가 출중한 것도 아닌데 지금의 생활과 달라진 들 얼마나 달라지겠냔 말이다. 하지만 계나가 대단한 것 하나는 누구나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그 허황된 생각을 직접 실천에 옮겼다는 것이다. 불평불만 투덜대며,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어하는 직장인들은 널렸지만, 그렇다고 진짜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나가서 살겠다는 용감한 사람은 흔치 않다. 그녀는 그렇게 부모의 반대를 무릎 쓰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지면서 호주로 떠난다.

재인이 뻐기면서 "한국에서는 아직 목소리 큰 게 통해. 돈 없고 빽 없는 애들은 악이라도 써야 되는 거야."라고 하더라. , 정말 그런 거야? 돈 있고 빽 있고 막 떼쓰고 그러면 안 되는 것도 되고 막 그러는 거야. 여기서는?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악다구니도 못 쓰는 사람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계나는 어찌어찌 어학원을 수료하고 회계학 대학원에 입학해 호주에서의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 나간다. 그러던 중에 한국에 두고 왔던 남자 친구 지명에게 청혼에 가까운 고백을 받는다. 그 순간 지명은 <마치 자기를 구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하며 빌딩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사람 같았다> 내가 인생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은 너 하나 뿐이라며, 당장 한국에 돌아오지 않더라도 평생 기다리겠다는 고백을 받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다른 사람과는 좀 달라 보이던 계나도 그런 고백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만큼 동요한다. 고백을 듣는 내내 가슴이 진정이 안 되게 두근두근 뛰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두 달 동안의 방학을 지명과 한국에서 함께 보내기로 한다. 그녀가 호주에 간 사이 지명은 기자 시험에 합격하고, 집을 나와 아파트를 구해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마치 신혼 부부라도 된 것처럼 함께 지낸다.

"조금만 돈이 있으면 한국처럼 살기 좋은 곳이 없어. 내가 평생 너 편하게 살게 해 줄게."

한국에서 살더라도 그냥 전업주부로 살고 싶지 않았던 계나는 그 두 달 동안 이 회사 저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많이 냈지만 어지간한 회사는 다 서류에서 떨어진다. 아마도 나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직장을 구하지도 못했고,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그녀는 고민한다. 돈 걱정 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그냥 이대로 지명이랑 같이 살아야 하는 걸까. 한국에서 살면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그런 것들 말이다. 결국 그녀는 한국에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명과 다시 헤어지기로 한다. 그리고 다시 불확실한 미래의 호주행을 선택한다. 단지 행복해지고 싶어서. 처음 그녀가 호주로 떠날 때는 많은 것들을 한국에 버리고, 혹은 그냥 놓아두고,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외국으로 가는 것에 대해 약간 반신반의했다. 한국에서 별 볼일 없던 사람이 호주로 간다고 갑자기 뭔가 달라지겠어? 한국에서 행복하지 않은데, 호주에서는 과연 행복할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그녀가 두 번째 호주로 떠날 때는 그녀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어떤 사람에게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고, 또 어떤 사람에게 행복은 하루하루 순간의 즐거움이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면서 하루를 버텨낸다. 자신의 행복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계나의 선택을 지지한다. 아마도 그녀는 호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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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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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뉴어크의 여름, 첫 번째 폴리오는 가난한 이탈리아인 동네에서 발병했다. 폴리오는 뚜렷한 원인 없이 아이들이 주로 걸리는 병으로, 어른들 역시 감염될 수도 있는 전염병이다. 호흡기 근육 마비로 죽음에 이르거나, 마비를 일으켜 걷는 데 문제가 생기게 하는 병이다. 아직 가정용 냉방장치가 출현하기 전이라 저지대인 뉴어크의 여름 날씨는 푹푹 찌는 지옥 같은 더위와 싸워야 했다. 전염원을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이 병이 전염성이 아주 높아 감염된 사람 가까이 있기만 해도 옮을 수 있다고 해서 도시의 감염자수가 꾸준히 늘어가자 동네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공공장소에 가는 것을 금지시키곤 했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아이들 중의 일부는 놀이터에서 게임에 게임을 거듭하며 강렬한 더위 속을 뛰어 다녔다. 그 해 여름, 놀이터의 감독은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극소수의 청년이었던 버키 캔터였다.

그는 물어보고 싶었다. 하느님에게는 양심이 없나요? 하느님의 책임은 어디 있지요? 또는, 하느님은 한계를 모르시나요? 그러나 그는 이렇게 물었다. "놀이터를 닫아야 할까요?"

"감독은 자네야. 닫아야 하나?" 닥터 스타인버그가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진주만에서 미국 태평양 함대가 일본의 기습 폭격으로 박살이 났을 때, 버키는 스무 살, 대학 2학년생이었다. 그 나이 또래의 몸이 튼튼한 남자들은 모두 일본이나 독일과 싸우기 위해 훈련을 받으러 갔고, 그 역시 참전을 위해 징병 사무소에 갔지만 두꺼운 안경을 써야 하는 형편없는 시력 때문에 그는 어디서도 합격할 수 없었다. 전쟁과 징병 때문에 학교에 남자 체육 교사 자리가 아주 많았고, 그는 챈슬러 애비뉴 학교의 자리를 점 찍어 두었다가 여름 놀이터 감독으로 계약했다. 그의 목표는 챈슬러 옆에 문을 연 웨퀘이크 고등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고 코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공부 만이 아니라 운동을 통한 스포츠맨 정신과 놀이터에서의 경쟁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하도록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키는 작지만 몸이 다부지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버키는 전쟁터에 나갈 수 없어 낙담했지만, 또래들이 전쟁에 참전하는 동안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책임감 있게 돌본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 폴리오에 감염되어 몸이 마비되거나 목숨을 잃게 되면서 사람들이 점점 동요하기 시작하자 그도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침 인디언 힐의 캠프에 교사로 가 있던 그의 여자친구 마샤가 여름 나머지 기간에 물놀이 감독을 할 자리가 비었다며 그에게 놀이터 감독을 그만두고 인디언 힐에 오라고 그를 설득한다. 유행병 한 가운데서, 그 모든 아이들하고 그렇게나 더운 도시에 있지 말라며, 여기 오면 폴리오를 피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책임감 때문에 뉴어크를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때에는 더더욱 떠날 수 없다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없는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피했을 텐데, 그는 반대로 기회가 왔는데도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운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누구의 인생이든 우연이며, 수태부터 시작하여 우연-예기치 않은 것의 압제-이 전부다. 나는 캔터 선생님이 자신이 하느님이라 부르던 존재를 비난했을 때 그가 정말로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무모하거나 미련해 보일 정도의 책임감이라니, 어찌 보면 쓸데없어 보일 정도의 죄책감은 답답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다 충동적으로 마샤에게 떠나지만, 그는 도착하자마자 격렬한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뉴어크에는 하룻밤 새에 새 환자가 일흔아홉 명이나 생기고, 위케이크에서만 서른 명, 놀이터에서의 아이들도 입원하고, 죽고.. 결국 시장이 놀이터마저 폐쇄하기로 결정한다. 그 소식을 전해 들으며 그는 놀이터가 문을 열고 있는 한은 그곳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자책한다. 자신이 유일했던 자신의 의무를 버리고 떠나와 아이들을 배반했다고 생각하던 그는 신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분노를 표출한다. 하느님이 애초에 왜 폴리오를 만든 건지, 대체 그걸로 뭘 증명하려던 건지, 지상의 우리에게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건지 말이다.

버키의 어머니는 그를 낳다 죽었고, 그에게 나쁜 시력을 물려준 아버지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돈을 훔친 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이 년을 복역한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없는 대신, 할아버지에게서 삶의 지침을 얻으며 자랐다. 그의 삶은 애초에 시작부터 불운에서부터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폴리오 유행병이 돌았던 것도 그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일이니 책임감 여부를 따질 수 없는 게 당연하고 말이다. 하지만 버키는 할아버지를 통해 정직함과 용기와 희생이라는 이상을 배웠고, 그것은 폴리오 사태 이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그의 삶을 바꾸어 버리고 만다.

필립 로스는 2012년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 “저는 다 끝냈습니다. 『네메시스』가 제 마지막 책이 될 겁니다.” 그래서 지금 이 책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꼭 읽어야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간의 우쭐대는 행위에 대한 신의 보복을 의인화한 네메시스라는 이 작품의 제목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섬뜩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가 두어 달 동안 겪은 메르스 사태도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네메시스의 복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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