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에 걸린 소녀 밀레니엄 (문학동네) 4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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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그 라르손은 원고만 출판사에 넘긴 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그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밀레니엄 시리즈는 2005년부터 3년에 걸쳐 스웨덴에서 출간된 후, 전 세계에서 출간되어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국내에 출간된 것은 2011년이었으니, 내가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은 지도 어느 덧 6년이나 되었다. 애초에 우리가 이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이 작가의 사후였으니, 밀레니엄 시리즈를 처음 읽을 때부터 이 작품은 내게 시리즈 3부작이 완결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니...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아마도 시리즈로 된 작품을 사랑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그들은 고난과 역경을 물리치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나는 항상 그 다음이 궁금했다. 특히나 리스베트 같은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를 만나고 나니, 당연하게도 그녀의 다음 행보가 궁금했다. 나는 리스베트라는 캐릭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나이 들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던, 그녀의 팬이었으니 말이다.

 

"이거 완전히 미친년이잖아?"

"그래, 어쩌면." 그녀가 차갑게 대답했다. "난 남들한테 공감능력도 없고, 폭력 충동이 한번 일면 걷잡을 수 없으니까."

이렇게 말하며 리스베트는 아르비드의 손을 꽉 잡았다. 엄청난 아귀 힘에 그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새로운 시리즈를 만나기 위해 나는 지난 시리즈 세 편을 모두 복습했다. 분권으로 출간되었다 이번에 통합되어 출간이 되었는데,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688,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784, <벌집을 발로 찬 소녀> 856쪽 되겠다. 이 엄청난 분량의 이야기를 왜 다시 꺼내어 읽었을까. 나는 그게 밀레니엄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독자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러 번 다시 읽게 만드는, 되풀이해 거듭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들을 사랑한다. 물론 한 편으로는 그런 작품들 때문에 또 다른 새로운 작품들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은 짜증스럽기도 하다. 내가 아무리 부지런히 책을 읽어도, 인간의 평균적인 수명 아래 최대한 읽을 수 있는 한계치란 뻔하니까 말이다. 이 책, 밀레니엄 시리즈는 그 중에서도 아마 상위권에 놓아두고 싶은 작품이다. 매번 읽을 때마다 매혹적인 미스터리로 애태우고, 몰입하게 만들고는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휴가와 추석연휴가 뒤섞여 오히려 정신 없이 바빴던 그 와중에, 나는 무려 2,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밀레니엄 전작을 다시 읽었다. 이미 여러 번 읽었지만, 또 오랜 만에 읽은 것이지만 이 시리즈는 여전히 최고의 만족감을 주는 멋진 작품들이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 작품은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으므로 당연히 '픽션'이다. 그리고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을 보살피는 최고의 복지 시스템이 갖춰진 곳이라는 것은 '팩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종종 픽션과 팩트 간의 그 경계를 알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야말로 여성 차별, 약자에 대한 폭력, 기득권 세력들의 탐욕에 대해 고발하고 응징하는 사회파 추리 소설로서의 최고 정점에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 엄청난 시리즈의 바톤을 이어 받은 작가는 바로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이다. 국내에는 <나는 즐라탄이다> <앨런 튜링 최후의 방정식>이라는 작품으로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도 스티그 라르손처럼 스웨덴의 언론인으로 범죄 사건 전문 기자로 활약했던 이력이 있다. 유족과 출판사에서 공식 작가로 지정했으니 그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할 테고, 나는 그가 리스베트라는 매우 이상하면서도, 흥미롭고, 전에 없이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캐릭터를 어떻게 재탄생시킬지가 매우 궁금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리스베트 살란데르에 대해서 잠깐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신장 154, 몸무게 42키로, 거식증 환자처럼 삐쩍 마른 몸매로 코와 눈썹에 피어싱을 하고, 용문신을 한데다 짧게 커트한 머리는 새카맣게 염색하고 다닌다.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어떤 종류의 고등 교육도 받은 적이 없지만, 사진 기억력을 가지고 있고, 컴퓨터에 관한 천재적이며, 전설적인 해커로 통한다. 오토바이와 컴퓨터에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한번 받은 모욕은 절대 잊지 않는다. 불쾌한 짓거리를 당하고 있느니,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싸우는 인물이며, 천성적으로 절대 누군가를 용서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반드시 복수를 한다. 그 작은 체구로 오토바이 갱단 두 명을 맞상대해서 해치우는 무서운 폭력성도 가지고 있으며, 머리에 총알 세례를 받고도 살아남는 끈질긴 생명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를 가만히 놔두는 사람이나 점잖게 구는 사람에게는 절대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사람들의 오해처럼 미친년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만약 누군가 그녀를 도발하거나 위협하면 극도의 폭력으로 응수하는 무서운 여자이긴 하지만 말이다. 가녀린 체격과 외모 안에 감춰진 무시무시한 폭력성이라는 상반된 성격을 과연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는 어떻게 그려낼까.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도 만만치 않은 캐릭터이다. 그는 오는 여자 막지 않는 자유 연애주의자로 여자들을 대할 때의 능글맞음과 인간의 기본 윤리에 어긋나는 것을 못 참는 강직한 성격으로 인해 일에 몰입할 때의 집요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물이니 말이다. 그는 권력의 압박에 굴복한 적도, 이상을 포기하고 타협한 적도 없는 기자였다. 과연 그의 고집스러움은 계속 밀어붙일 수 상황이 될까.

사실 밀레니엄 시리즈는 3부작으로 사회문제를 제기하는 미스터리 측면은 거의 모두 다루었고,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재벌총수 문제부터 거대 자본 세력에 대한 비판과 비밀 경찰 조직을 통한 국가의 비리와 거대 신문사에 대한 비판까지 말이다. 남은 것은 여전히 미스터리한 리스베트라는 인물의 과거와 주변 인물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그녀가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모든 악에 대한 트라우마는 아버지인 살라첸코와, 이복오빠인 로날드 니더만의 죽음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 알 수 없는 것이고, 그녀의 쌍둥이 여동생 카밀라에 대한 부분은 스티그 라르손이 아직 많이 언급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시리즈 네 번째 작품에서 서로를 증오하는 쌍둥이 자매, 카밀라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낼 거라고 해서 매우 기대가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더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지옥에서 부활해 더 커졌죠. 이제 그녀는 치명적으로 강력한 존재가 됐어요. 그리고 분명 자기가 당한 일을 하나도 잊지 않았을 거예요. 모든 게 그녀 안에 새겨졌을 거라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녀의 어린 시절을 휩쓴 광기가 지금 이 모든 엿 같은 일들의 근원이 됐고요."

, 이제 새로운 작가의, 새로운 밀레니엄 시리즈를 만나볼 차례이다. 인공지능 연구에서 전설적인 존재인 컴퓨터 공학자 프란스 발데르는 자신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도둑맞고 보안 문제에 관해 편집광처럼 변해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그와 함께 개발 과정에 참여했던 조수가 그런 상황을 걱정해 미카엘을 찾아 온다. 그를 둘러싼 해커 조직과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뭔가 있는 것 같다고 프란스를 만나 보기를 권하지만, 미카엘은 자신이 IT분야 기자가 아니라며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 프란스가 만났다는 여자 해커가 등장하고, 그녀가 리스베트가 아닐까 생각한 미카엘은 프란스를 만나보기로 한다. 하지만 그와 만나기로 약속한 새벽, 프란스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고 현장에는 그의 아들 아우구스트만 남아 있다. 살인범이 아들을 살려준 이유는 아우구스트가 자폐아라서 목격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우구스트는 서번트로 수학과 그림에 천재성을 지닌 아이였다. , 아이가 살인이 일어나던 그 상황과 범인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낼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이런 이야기가 펼쳐질 당시,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상황은 어땠는지 살펴보자. 이 작품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의 시대는 끝났다'는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시작했다. <밀레니엄>은 살라첸코 사건 이후로 특종이 거의 없었고, 재정적 위기도 겪고 있는 상태에서 그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기업에게 지분을 30퍼센트나 매각한다. 세르네르 기업은 점차 편집에 관여하며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미카엘을 런던 특파원으로 내보내겠다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니 그가 <밀레니엄>에 남아 자신의 뜻대로 기사를 쓸려면, 다시 한번 스웨덴 언론을 뒤흔들 뭔가를 찾아야 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리스베트는 자신의 아버지, 살라첸코가 모종의 방식으로 계속 살아남아 있지는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단순히 살라첸코가 리스베트의 어머니를 죽이고 그녀의 어린 시절을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보다 더한 사회적 악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범죄조직을 이끌었고, 마약과 무기를 팔았으며, 여자들을 착취하고 능욕하며 평생을 보낸 인물이다. 리스베트는 살라첸코가 남긴 유산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개인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살라의 젊은 부하였던 시그프리드가 속한 조직이 프란스의 인공지능 기술을 훔쳐 다국적 회사에 팔았다는 루머를 접했고, 결국 프란스를 찾아가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스웨덴 최고의 과학자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들이 나눈 베일 속의 대화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미카엘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또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프란스의 아들 아우구스트를 보호하기 위해 미카엘과 에리카, 그리고 리스베트가 동분서주하고, 그 과정에서 부블란스키를 필두로 한 경찰청과 스웨덴 국가안보기관 세포, 미 국가 안보국 NSA, 그리고 해커 조직 스파이더 소사이어티까지 연결되어 이야기는 복잡하면서도 탄탄하게 흘러 간다. 사실 리스베트에 대한 갈망이 컸기에, 그녀가 처음 등장하기 전까지 백 여페이지 정도는 사실 조금 지루했다. 하지만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로서는 미카엘과 리스베트를 비롯한 밀레니엄의 주연들 외에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등장하게 되는 인물들에 대한 상황 설계가 필요했을 것이므로, 그 부분은 감안할 만했다. 그리고 드디어 만나게 된 리스베트의 등장! 이상한 건 행동은 기존 시리즈에서와 유사했지만 어딘지 그녀가 조금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통제불능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이미지가 조금 수그러들고, 조금 참고 계획적으로 분노를 폭발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나는 그녀가 시리즈 첫 편에 등장했을 때가 스물넷이었고, 시리즈 세 번째 작품에서 스물일곱이었으니 그 엄청난 사건을 겪으면서 삼 년이나 흘렀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이 작품은 거기서 다시 일년 뒤에 시작하는 이야기이니, 리스베트가 어떤 면에서든 성장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라는 작가의 놀라운 면모를 발견하고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새로운 밀레니엄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놀랍게도 같은 인물들을 전혀 다르게 구축한 세계에 데려다 놓으면서, 시간이 흐른 만큼 그들을 성장시켰다. 물론 굉장히 기대했던 그녀의 쌍둥이 동생 카밀라 살란데르는 너무 잠깐 등장해서 그 존재감을 보여주기엔 조금 미비했지만, 이어지는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뭐 사실 나는 리스베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해서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쳤을 정도이니, 다시 돌아온 리스베트와 미카엘을 향해 축배를 건네고 싶다.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의 밀레니엄 시리즈는 총6권까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원래 스티그 라르손이 기획했던 대로 10부작이 완성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지만, 우선 지금은 다음 이야기인 밀레니엄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을 손꼽아 기다려야겠다.

혹시 당신이 아직까지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지 않았다면,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말아야 할만한 그런 작품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나는 이렇게 뛰어나고 완성도 있으면서도, 재미있고, 스릴 넘치고, 도전적이고, 매혹적인 작품을 만나본 적이 없다. 잘만 쓰인다면 범죄소설이 사회를 해석하는 하나의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리스베트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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