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 - Movie Tie-in 펭귄클래식 139
솔로몬 노섭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08년 뉴욕에서 태어난 솔로몬 노섭은 ‘자유인’으로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일거리가 뜸해지는 시기에 나타난 두 사내는 서커스단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찾는다며 후한 삯을 약속한다. 다른 도시로 가기에 앞서, 자유인이라는 증서를 발급받으라는 충고를 한 그들을 신뢰하는 솔로몬. 건네받은 술 한 잔에 정신을 잃었던 그가 깨어난 곳은 워싱턴 DC, 아이러니하게도 국회의사당을 마주본 건물의 지하였다. 자신이 법의 수호를 받는 자유민임을 알리자 돌아온 것은 심한 매질이었다. 그는 자유를 기다리며 적당한 때를 기다린다. 그 적당한 때는 12년이 지나서야 선의의 이름으로 찾아온다.

 

솔로몬 노섭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흑인이었기 때문에 노예로서 경험한 대우, 그 비참한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었다. 실제 그의 구명을 위해 주고받은 편지들은 이 글이 상상이나 과장이라 할 만한 논란을 불식시킨다. 특히 목화와 사탕수수 재배를 설명하는 챕터를 보면 사실적인 기술에 놀라게 된다. 노예는 재산, 동산이라는 말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죽이려고 개 떼를 푼 작업반장으로부터 달아나, 뱀과 악어가 득실거리는 늪을 지나는 생고생을 하고서도 다시, 주인집 앞에 서야했던 그에게 어찌 이런 말을 하겠는가. '자유를 열망하면서 왜 도망치지 않았냐'고. 기적 같은 만남으로, 12년 만에 자유를 되찾은 솔로몬은 노예상인들을 고소하지만 흑인이기 때문에 증언의 효력이 없다. 이후 그는 노예 해방을 위한 운동에 투신한다. 솔로몬의 르포는 헤리엇 비처 스토에게 헌정되었다. 바로 남북 전쟁을 일으킨 문학으로 함께 손꼽히곤 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작가이다. 솔로몬은 노예주를 탓하기보다는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노예 제도의 존재가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더 악화시키는 것 같았다. 날마다 인간이 고통받는 모습을 목격하면 잔인하고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노예들이 괴로워 내지르는 비명을 듣고, 무자비하게 채찍질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죽어 관도 없이 묻히는 모습을 보는데, 어떻게 인간의 목숨을 중히 여길 수 있겠는가. 물론 어보이엘르 교구에도 윌리엄 포드처럼 선하고 착한 사람은 많았다. 전지전능한 신께서 창조하신 그 어떤 생명의 고통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마음 여리고 착한 타지인처럼 이들도 노예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고 아파했다. 노예 상인의 잔인함은 개인의 잘못이 아닐 제도의 잘못이다. 개인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관습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노예의 등을 채찍으로 내리치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어릴 때 고착된 인식은 좀처럼 바꾸기 힘든 법이다. [14장 중에서]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관습과 문화는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기 어렵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고 하지만 이 명제에서 말하는 인간이라는 단어는 일부 인간에게만 적용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이미 '구별짓기' 되는 것이 아닌가... 『노예 12년』의 이야기는 비단 흑인들만의 이야기라 볼 수 없다. 솔로몬은 노예시장에서 자유인이었던 ‘동양인’도 만났다. 그 시절이었다면 ‘나’도 ‘노예’로 팔려 조금이라도 채찍질을 피해보려 몸을 웅크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뉴욕에 살 때 솔로몬이 ‘다른 흑인’들이 노예로 고통 받는 사실에 무감했던 것처럼, 일상 속에서 나 역시 ‘차별’로 인한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지는 않은가 생각해본다. 윌리엄 포드처럼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내 안위와 이익을 위해 눈감고 모른 체 하는 일들... 차별은 나 혹은 우리의 범주에 넣을 수 없는 집단을 '범주화'하는 행위이다. 요즘에는 차별보다 혐오라는 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청사에서 남부군 국기를 내린다는 기사를 봤다.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6월, 찰스턴 시 교회 총격사건 가해자가 인종전쟁을 일으키겠다며 남부군 국기 앞에서 찍은 사진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을 주도했던 주였다. 놀랍지 않은가. 남북전쟁이 끝난 지 150년인데 공공장소에 떡하니 걸려있는 남부군 국기라니... 노예제는 더 이상 '합법'이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방법만 달리할 뿐 다른 의미의 노예제는 여전하다는 생각도 든다. 노동과 경제는 뗄 수 없는 문제이니 이제는 인종, 문화, 성, 연령에 따른 인권 문제로 부상하는 듯하다. 진정한 글로벌이라 해야할까... 사회가 진보해도 여전히 제자리일 수 밖에 없는 걸까. 55년 전 쓰인 『앵무새 죽이기』가 오늘날 여전히 미국 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니, 어쩌면 편견/구별짓기는 사회가 발전한다고 해서 쉽게 타파될 수 없는 것일지도. 솔로몬이 지적하는 자연스러운 관습의 문제점과 타자화를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더불어 교육도...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5-08-28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고착된 인식은 좀처럼 바꾸기 힘든 법이다` 를 보니,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네요. 에이바님도 리뷰 말미에 쓰셨고요..

에이바 2015-08-28 11:46   좋아요 0 | URL
여러 갈래로 생각해봄직한 이야기죠. 씁쓸하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에서 이미지 좋은 북유럽 복지와 평등도 교육에서 시작되고요. 인간이 부단히 배우는 존재이니 더 많이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요.

sijifs 2015-08-2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전 영화를 보다가 솔로몬 노섭이 자유인인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평온함때문에 그를 풀어주지 않은 ˝착한˝백인이 솔로몬을 납치하거나 비인권적으로 대한 ˝나쁜˝백인보다 더 싫었습니다. 이 글을 읽다 갑자기 그 착한 백인이 생각나네요

에이바 2015-08-28 11:53   좋아요 0 | URL
시지프스님 말씀에 중도는 XX이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결국 침묵은 동조라는 얘기겠죠... 근데 솔로몬은 그 백인 `주인`을 좋아했어요. 이해도 좀 하고... 당사자 일이 되면 아무래도 그렇겠죠.

sijifs 2015-08-28 17:26   좋아요 0 | URL
솔로몬의 주인이었던 사람 중에서 그나마 제일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던 사람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래도 욕하고 때리는 사람보다야 인간적으로 대해주려고 한 사람이 나으니까요

에이바 2015-08-28 19:0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래서 솔로몬이 어쩌면 자유인이라고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도 솔로몬을 악덕 주인에게 팔아요. 솔로몬을 아낀 것은 어쩌면 인간이라기보단 가치재이기 때문일지도... 한계가 있죠...

2015-08-28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8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8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9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5-08-29 20:13   좋아요 0 | URL
저도 막 4부 시작하는 중인데.. 앞부분이 너무 지루해서 진도가 안나가더군요. 이제 막 재미있어지기 시작한 게 비록 전에 쓰여 프리퀄이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아버지의 정체성이 드러나게 되었자나요. 흥미로와지고 있었는데 낮에 스크린 채널에서 타임 패허독스란 영화를 봤는데 갑자기 중산부터 봐서 원작이 있나 살피다가 sf 세트 네권짜리를 사버렸어요. 이북으로.. 단편이라 살짝 새치기 중.. 제가 이래요. 이거 읽다 저거 읽다.. ㅎ

2015-08-29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5-08-29 20:24   좋아요 0 | URL
앗 그영화 알고 계시군요. 전 중간부터 봤는데 놓쳐서 얼마나 아쉬운지.. 얼핏 자막 올라가는 거 버니까 로버트 하인라인이라구 본 것 같아서 책 뒤졌더니 dvd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운좋으면 4권짜리 단편 중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거의 처음 읽는 본격 sf장르라 새롭네요. 얼마전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자젤도 사 놓고 못봤는데 아 읽을 욕심은 많은데 잡다구리한 일은 많고 주말이면 많이 읽으려고 벼르지만 먹고 치우고 씻고 뭐하러 이리 쓸데없이 낭비하며 살아야 되나 싶어 짜증이 나네요

2015-08-29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5-08-29 21:02   좋아요 0 | URL
이런 세계가 있었군요. 단편일 거라 예상은 햇지만 이렇게 짧을 줄은 헐
. 감사합니다. 에이바님에게 물어보면 뭐든 해결되네요 ㅎㅎ

2015-08-29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8-2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미국의 노예 차별 문제가 동성애 이슈보다 더 오래 갈 것 같아요. 미국 대통령이 흑인인데도, 일부 지역에서는 비인간적 차별이 잔존하고 있으니까요.

에이바 2015-08-28 19:07   좋아요 0 | URL
인종 차별이요? 아무래도 그렇죠. 어떤 성별에 끌리느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 있지만 피부색과 생김새는 그럴 수 없으니까요... 말씀대로 흑인 대통령 집권기에 유색인종 강경진압 등 차별 문제가 불거지고 있죠... 어쩌면 그동안 봉합해 온 문제들이 터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요..

cyrus 2015-08-28 22:27   좋아요 0 | URL
흑인 차별인데 제가 실수로 ‘노예 차별’로 잘못 썼어요. ^^;;
 
로마 공화정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
데이비드 M. 귄 지음, 신미숙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그대로 제국 이전, 공화정 시기의 로마를 다루고 있다. 건국 신화를 통해 도시국가 로마의 기원을 살펴보고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변화하게 된 계기를 설명한다. 공화정 체제가 안착한 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지배세력이 된다. 이 시기의 로마는 ‘디그니타스와 글로리아’ 즉, ‘위엄과 영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선조들의 업적을 모방하고 능가하라는 요구는 후손들이 정복전쟁에 몰두하도록 채찍질한다. 로마에 있어 가장 큰 영광은 정복 전쟁 후 개선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마르스 평원과 대경기장을 지나 유피테르 신전에서 희생제물을 바침으로써 끝나는 여정이다. HBO TV 시리즈인 『롬Rome』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자. 카이사르 시해를 망설이는 브루투스를 설득할 때, 카이사르의 ‘독재’를 과거의 ‘왕’에 비유한다. 브루투스의 직계 선조가 왕을 끌어내린 주역, 공화정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젊은 귀족들은 정복전쟁에 몰두하게 되고, 팽창한 로마는 내부의 모순을 견디지 못한다. 공화정의 몰락을 불러온 셈이다.

 

로마의 지배층을 지배한 ‘위엄과 영광’은 로마인의 생활과 정치,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파트로누스와 클리엔스’라는 ‘보호자와 피보호자(피호민)’이라는 관계형성은 로마시민의 계층화를 불러온다. 자영농 군인, 노예와 도로망 구축에 따른 정복전쟁과 무역의 번성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계층은 로마인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로마인의 두번째 이름인 씨족명은 사회적 서열을 나타낸다. 또한 이름을 통해 가문의 역사와 형제 중 맏이인지를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로마의 종교는 주신(유피테르: 그리스의 제우스)이 따로 있었지만 새로운 신에 개방적이었다. 이는 만신전으로 확인된다. 외국신을 로마에 흡수함으로써 정복지와의 유대감을 확립하면서 로마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세 번의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 공화정은 중요한 변화를 맞이한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등장으로 공화정 최초로, 한 개인의 권위와 영광이 원로원의 집단 지배권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스키피오 이후 나타난 기사계층과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들로 인한 빈부 격차는 그라쿠스 형제의 농지개혁 시도를 불러온다. (이들의 농지개혁은 실패하지만 이후 카이사르가 계승한다.) 잇따른 군사적 위기는 군사지도자, 군벌의 출현을 불러온다. 그 시작은 가이우스 마리우스였고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와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이어진다.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가 다루는 시기이다.)

 

공화정기 문화의 절정은 기원전 1세기의 카툴루스와 키케로가 수립했는데, 키케로는 마리우스처럼 아르피눔 출신의 신진세력이었다. 위대한 웅변가였던 그는 군사적 재능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천재였으며 로마 하면 떠오르는 문장가이기도 하다. 당시 로마인들의 가치와 세계를 반영한 예술과 건축, 회화와 조각 등도 소개하고 있다.

 

로마 공화정은 5백 년 동안 지속된 체제이다. 왕의 추방에서 시작하여 황제의 등장으로 끝나는 로마의 비극은 외부의 공격이 아닌, 내부 투쟁에 의한 것이었다. 앞서 밝혔듯이 귀족간 경쟁, ‘영광’에 대한 갈망은 로마를 팽창시켜 군벌을 탄생시키고 내란을 불러온다. 『로마 공화정』에서는 제정 시기로 넘어간 로마도 살짝 다루고 있다. 제국으로의 변모는 로마시민권의 확대를 불러왔고, 4세기 기독교가 로마에 뿌리내리면서 공화정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등장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화정의 역사와 영웅 이야기는 성경에 반영되었고 기독교 교부들의 저술이 키케로의 자리를 대신했다. 14세기, 르네상스 시기 로마 공화정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마키아벨리와 셰익스피어는 로마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켜 여러 저술을 남긴다. (셰익스피어의 경우는 희곡) 흥미로운 것은 로마 공화정이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인데 그 부분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공화정 시기의 로마를 정리하기에 제격인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더버빌가의 테스》를 쓴 토마스 하디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첫 작품이라길래 궁금해졌다. 캐리 멀리건이 출연하는 영화도 있고... 1874년에 쓰인 소설이지만 현대의 로맨스 구도와 아주 유사하게 흘러간다. 여주인공과 그녀를 둘러싼 세 남성의 이야기인데 당시 사회나 종교적 함의를 더 알았다면 좀 더 색다르게 읽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밧세바는 좋은 교육을 받고 외모도 뛰어난 젊은 여성이지만 재산이 없어 숙모 댁에서 일을 돕는다. 같은 마을의 자영농 가브리엘 오크가 청혼하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얼마 후 가브리엘은 사고로 재산을 모두 잃게 되고 삼촌의 유산을 상속받은 밧세바는 부유해진다. 가브리엘은 밧세바의 농장에서 양치기로 일하게 된다. 밧세바는 방종한 관리인을 내쫓고 직접 농장을 관리하는 한편, 이웃 볼드우드에게 장난으로 발렌타인 카드를 보낸다. 볼드우드는 진지하게 구애를 하고,  이에 놀란 그녀는 자신이 경솔했다며 진심으로 사과한다. 꽤 슬기롭게 농장을 꾸리던 밧세바는 잘생긴 군인 트로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주변인들 몰래 결혼한다. 트로이는 도박에 빠져 농장을 빚더미에 올린다. 주인공이 어리석은 결혼을 후회하고 있을 무렵, 남편의 옛 애인이 주검이 되어 나타나고 이어 남편도 실종되는 등 한바탕 사건이 벌어진다.

 

소재만 보면 호러가 따로 없다. 죽음, 살해, 사형, 화재 등 벌어지는 사건들은 모두 주인공 밧세바의 ‘허영’을 벌하기 위한 장치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허영은 있지 않은가. 하물며 외모가 뛰어나고 좋은 교육을 받은 인간이라이라면 더욱! 밧세바가 손거울을 보는 모습을 지켜본 가브리엘은 이를 허영이라고 평가한다. 혼자 있다고 생각한 순간까지 ‘평가’받아야 하는 여성의 운명이여! 밧세바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거울 좀 봤기로서니... 그녀에게 구애한 세 남자 모두 밧세바의 외모를 칭찬하고 인정하지 않는가. 물론 밧세바가 충동적인 구석이 있긴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대부분의 경우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엄청난 결점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지역사회에서 존경받고 나이도 지긋한 볼드우드는 농장을 팽개치고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트로이의 실종 후 조용히 살고 있는 밧세바에게 자신의 마음을 강요하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볼드우드의 모습은 소름이 끼친다. 트로이와 패니, 아기 문제와 농장, 사람들의 시선에 ‘밧세바 볼드우드’라는 이름표가 달린 혼수들이 빼곡한 방이 합세하니... 밧세바의 어리석음을 탓하다가도 불쌍해지는 것이다. 그녀의 ‘허영’을 벌하고 교훈을 주기 위해서라 해도 너무 가혹한 일들이 아닌가.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보는 입맛이 쓰게 느껴졌다. 오크가 스스럼없이 ‘아내’라 지칭하고 주위의 축하를 받지만 밧세바가 웃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부분 말이다. 이례적으로 독립적이라 평가받던 여성도 결국 누군가의 ‘아내’로 끝난다. 이 소설이 페미니스트 문학으로 꼽히는 이유가 밧세바의 '독립심'이라는 이유라는데 여러모로 시대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나마 신부가 마냥 웃지 못했다는 것, 결혼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쉬운 점을 조금 달랜다.

 

이 소설은 로맨스를 다루면서도 자연 풍경을 훌륭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과 상호작용이 아주 섬세하다. 토마스 하디가 중요하게 여긴 요소인 듯하다. 그런 점에서 가브리엘 오크는 밧세바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가브리엘은 종교를, 오크는 자연을 상징한다. 소설 초반부에서 그가 말 없이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과 교회성가대의 베이스를 맡은 신앙심을 떠올려보자. 더불어 밧세바를 향한 헌신과 의리는 그 ‘모든’ 일을 겪은 여주인의 애정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재산도 좀 모아진 터라 신분 차도 이전보다 줄어들었고 말이다. 다만 궁금한 것은 왜, 토머스 하디가 여주인공에게 밧세바라는 이름을 주었을까 하는 것이다. 밧세바는 성경 속 우리야의 아내로, 다윗 왕의 눈에 들어 동침해야 했던 안타까운 여인이다. 남편은 심지어 전장에 나가 죽지 않는가.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본 건 다윗인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탕녀가 되어버린 인물, 주변 남성에 의해 평가된 소설 속 여주인공의 모습과 겹친다면 비약인걸까.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5-08-24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책 읽으려고 사뒀기 때문에 이 리뷰를 읽지 않으려고, 첫 단락만 읽고 그냥 패스하려고 했는데, 다 읽어버리고 말았어요. 하하하하하. 그나저나 마지막 단락의 성경속 밧세바 얘기가 더 흥미롭네요. 저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성경을 읽어야 하는걸까요? 흐음.

에이바 2015-08-24 13:06   좋아요 1 | URL
아뇨아뇨 다락방님 제가 말씀드릴게요. 짧은데 기억에 의존하는 거라 디테일은 틀릴 수 있어요. 다윗이 거인 골리앗에게 짱돌 던져서 이긴 건 아시죠. 그 다윗이 왕이 되고 시간이 흘러 늙고 지쳤던가 그래요. 그러다 어느 밤 옥상을 걷다가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욕정을 느껴요. (이 부분이 어디선 유혹이라고 해석되는데 제가 본 이야기는 밧세바는 다윗이 보는 걸 몰라요.) 밧세바는 유대민족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던가 그래요. 남편은 우리야 장군이고 금슬도 좋았어요. 다윗은 밧세바를 불러 동침하죠. 애가 생겨요.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으려 우리야를 전장에서 소환해요. 충신인 그가 집에 돌아가 동침하지 않은 걸 알고 죄를 덮으려 우리야를 가장 치열한 전장에 보내 전사시켜요. 밧세바를 아내 삼고요. 이로 인해 신이 노해 벌을 내리고 태어난 아이는 죽어요. 결국 다윗의 욕심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결국 권력에 대항 못한 밧세바(남편과 아이의 죽음)는 벌을 받고 다윗은 용서받아요. 참고로 다윗과 밧세바의 둘째 아들이 솔로몬 왕이에요.

그러고 보니 등장인물들의 포지션과 겹치는 부분이 있네요... 관음하는 장면도 그렇고요. 어느 이야기에서나 밧세바는 참 안 됐어요...

one fine day 2015-08-24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로 봤는데요. 영화의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 꺼리짐한 스토리는 다 패스가 되더라구요. 여주가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주체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었습니다. 영화에서 밧세바와 볼드우드의 함께 노래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전 그장면에서의 밧세바가 참 아름다웠어요. 뭐랄까.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고 격정적인 사랑도 다 빛을 바래지만, 그 순간만큼은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주는 듯 했죠.
원작이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영화보다는 책이 더 좋을 때가 많은데, 이 소설은 책으로 보면 많이 답답하지 않을까 싶어 망설여지네요.

에이바 2015-08-24 13:54   좋아요 1 | URL
one fine day님 말씀처럼 수긍할 만한 전개였어요. 아무래도 페미니즘 문학이라 생각하고 읽었기 때문에 순전히 밧세바 입장에서 쓴 리뷰이고요... 사실 글을 읽으며 밧세바가 별난 여성으로 여겨질지언정 어디 감히 여자가 이런 느낌이 들진 않아서 좋았어요. 세 남성 모두 밧세바에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적어도 말로는 말이죠. ^^;; 글의 전개는 속도감 있고 명쾌해서 말씀하신 부분들이 답답하진 않았어요. 초기작이니만큼 덜 다듬어진 맛은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이 얼마나 섬세한지... 영화를 좋아하셨다면 원작도 괜찮다고 느끼실 거예요. 저는 배우들 모두 제 상상보다 예쁘고 멋져서 좀 슬펐어요.

프레이야 2015-08-24 14:09   좋아요 0 | URL
영화제목은 무엇인지요?

에이바 2015-08-24 14:16   좋아요 1 | URL
영화 제목도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입니다. 캐리 멀리건이 밧세바로 나오고요. 가브리엘과 볼드우드가 잘생겨서 슬프더라고요. ㅠㅠ 로맨스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프레이야 2015-08-24 14:25   좋아요 1 | URL
캐리 멀리건‥ 아 그러고보니 제목 본 기억이 납니다. 찾아서봐야겠어요.~^^

one fine day 2015-08-24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마스하디 작품은 워낙 테스에서 질려버려서 좀 망설였는데 읽어보겠습니다 ^^
영화제목은 책 제목과 같구요. 제가 아름답게 본 장면의 배경의 음악이 유튜브에 있길래 퍼왔습니다 ^^.

http://youtu.be/WCm1XNVD_0c

에이바 2015-08-24 14:28   좋아요 0 | URL
테스보다는 혈압이 덜 올라요. 테스는 정말 ^^^^^^^^^^^^^^!!! 캐리 멀리건은 노래도 잘 하네요. 영상도 아름답고... 잘 봤습니다.^^

꼬마요정 2015-09-05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서... 좀 찝찝했어요. 그 시대에 여자 혼자 살기 힘들어 결혼을 해야 한다면 그래도 오크가 낫긴 하죠. 나름 신의도 있고... 볼드우드는 무서웠어요. 얼마 전 기사에서 본 애인을 살해한 남자 같다고나 할까요.. 여튼 재미있게 읽었어요. 불쌍한 밧세바..

에이바 2015-09-08 14:4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볼드우드의 집착이 섬뜩했어요. 밧세바가 가진 것 없는 여성이었다면... 음... 그래도 오크가 제일 낫죠. 이러쿵저러쿵 대는 하인들도 단칼에 정리하고 성실하고요. 한편으론 밧세바를 위해 준비된 남자라는 생각도 들었어요.ㅋㅋ
 
임화 시선 : 해협의 로맨티시즘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8
임화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임화의 시집 제목에서의 〈해협〉은 현해탄을 가리킨다. 보통 대한 해협을 떠올리지만 정확히 그 바다는 아니며, 일본의 큐슈 앞 바다라 한다. 현해탄은 일본식 한자를 독음한 것으로 〈검은 바다〉라는 뜻이다. 임화는 카프와 월북시인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의 작품을 모아둔 시집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여느 시들과 달리 임화의 시는 시간을 들여가며 읽었다. 수월하게 읽히지 않기도 했지만 그의 모습을 그려보니 이런 저런 생각에 복잡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카프 서기장답게 대부분의 시는 사상의 결집이 담겨있다. 아무래도 문학을 사상의 도구로 사용했던 만큼, 저항 문학의 성격을 그의 작품과 분리할 수는 없다. 그런가 하면 낭만적인 시들도 있다. 함께 실린 임화의 평론은 문학에 있어 로맨티시즘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문학, 예술에 대한 그의 고민을 보여주는 글이다. 아티초크 시집답게 함께 실린 사진자료, 그림, 동료 문인들에 대한 글은 임화의 생애와 문학 활동을 소개하며 이해를 돕는다. 문학사의 커튼 뒤에 묻혔던 시인을 알게 되는 기쁨이 지극하다. 인상 깊었던 시 중에 현해탄을 보자면 임화는 당시 일본을, 아니 일본을 배워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단 모양이다. 식민지 청년이 적국으로부터 근대 문화를 배워 조국을 일으키는 열정은 예로부터 파고로 유명한 현해탄에 맞서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끝내기는 아쉬워 어떤 노래를 함께 추천할까 고민하다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를 보고 떠올린 엔카를 함께 소개한다. 임화가 살았던 조선의 치열함, 그 속의 낭만을 떠올리기 위한 도구를 일본어와 멜로디로 선택하는게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시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와도 어울리기에..



 

이 바다 물결은
예부터 높다.


(중략)


아무렇기로 청년들이

평안이나 행복을 구하여,
이 바다 험한 물결 위에 올랐겠는가?


첫 번 항로에 담배를 배우고,

둘째 번 항로에 연애를 배우고,
그다음 항로에 돈맛을 익힌 것은,
하나도 우리 청년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늘

희망을 안고 건너가,
결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느티나무 아래 전설과,
그윽한 시골 냇가 자장가 속에,
장다리 오르듯 자라났다.


그러나 인제

낯선 물과 바람과 빗발에
흰 얼굴은 찌들고,
무거운 임무는
곧은 잔등을 농군처럼 굽혔다.


나는 이 바다 위

꽃잎처럼 흩어진
몇 사람의 가여운 이름을 안다.


[현해탄] 중에서

 

주리라! 죽음의 악령이여! 네 탐내는 모든 것을 . . .
가을의 산야가 네 위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눈 속 깊이 내어 맡기듯 . . .


[주리라 네 탐내는 모든 것을] 중에서

 

나는
시꺼먼
갈빗대 속에
굼틀거리는
밤의 그
대담한 의지를
한량없이
사랑한다


(중략)


나는

태양과 더불어
별들을
낮과 더불어
밤 밤을
사랑하고
한밤중
죽어가는
낡은 세계를 위하여
미칠 듯
조종을
난타한다


역시 나는
밤의 시인이다


[밤의 찬가] 중에서

 

나는 영원히 생명력을 가지고 독자에게 영향을 주고, 독자로부터 기억되고 애호될 조선문학을 위하여, 생생한 낭만주의를 가져 자기를 반성할 것을 성실한 작가들에게 제안한다.

 

평론 [위대한 낭만적 정신] 중에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8-1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작가의 ‘그 여자네 집’을 보면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임화의 시 ‘하늘’의 뒷부분을 들려줍니다. 혹시 ‘하늘’이라는 제목의 시도 있습니까? 사실 이 시의 전문을 보고 싶어요.

에이바 2015-08-18 19:30   좋아요 0 | URL
하늘은 실려있지 않아 따로 페이퍼에 올렸어요.. cyrus님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저도 생각이 나요.
 
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일본이 참 부러운게 풍부한 번역이다. 외국문학을 공부함에 있어 모국어로 먼저 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일본문학이 세계문학 속에서 높이 평가받는 것은 이러한 문학적 토양에서 성장한 덕도 있다고 본다. 1950년, 오에 겐자부로 선생이 열여섯 되던 해에 서점에서 만난 문학작품들만 해도 말 다했다. 윤동주 시인도 문학 공부를 위해 도쿄로 갔다지 않았나. 당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의 문화가 얼마나 다채로웠는가 예상해본다. 그 시기 우리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화도 난다.. 어쨌든 일본문학이라고는 문화 해금 이후로 한창 유행이던 몇 작품을 읽은 것이 다다. 일문학 특유의 탐미주의, 신경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그 예민함은 거북할 따름이라 장르소설을 제외하고는 멀리해왔다. 그래서 오에 겐자부로 선생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은 읽은 적이 없다. 강연을 모은 이 에세이가 첫 만남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읽는 인간》을 읽는 도중에 조금 울었다. 최근 속상해하던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그깟 일로 속상해하지마, 그런 목소리가 들린 건 아니었다. 나보다 더 힘든 일들로 가득한 팔십 노인의 옛 이야기에서 위로를 느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울었냐고? 오에 겐자부로가 정말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읽고, 또 읽고. 색깔별로 줄치면서 읽고, 원서와 대조하며 읽고. 연구서를 찾아 읽고, 배우고, 읽고, 외우고 또 읽고.. 그쯤 읽고 고민했으면 전문가다 생각해도 될 텐데, 선생은 자신을 아마추어라 한다. 1950년,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이라는 책을 만나고 〈에드거 앨런 포〉의 시집을 읽으며 문학에 눈을 뜬 소년.. 어떻게 보면 《읽는 인간》은 오에 겐자부로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그 많은 문인과 작품들, 인생의 사건들이 함께 소개되기 때문이다.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다. 오에 선생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깊이를 내 말과 글로 옮길 수 없음이 하나요, 직접 읽으며 오에 겐자부로의 〈작가들〉을 만나보기를 권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이 나열하는 작가와 작품들, 외는 원문과 해석들을 보며 잠시나마 꿈을 꾸었다. 언제나 고전은, 시대를 막론하고 전해지는 힘이 있는 법이다. 최근에 읽은 작품들이 더러 있어 아주 공감했다.. 오에 선생처럼 책에 밑줄을 치고 외지는 않지만, 원문과 번역을 비교해 읽기 때문이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고, 논문 검색도 쉽다. 번역 노트는 없지만 따로 워드에 감상과 번역을 저장해둔다. 원문을 읽고 얻는 감상은 아무리 잘된 번역에도 비교할 수 없는 법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정말 치열하게 읽는 사람이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읽는데 여기에도 나름의 패턴이 있다. 재독, 삼독은 기본이고 모르는 단어에 색깔별로 박스를 입히는 등 그 나름의 방식(책에 자세히 소개)에 따라 읽는다. 3년마다 작가를 바꾸어가며 읽는데, 한 작품에 발을 들이면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는다고 한다. 또 틈틈이 저작활동을 하는데, 당시 읽는 작가의 영향으로 문체가 달라진다고 한다. 이것은 오에 선생이 의도하는 것이기도 하며 말 그대로 흡수하여 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말 놀라울 뿐이다. 소개되는 작가와 작품은 아주 많아서 모두 소개할 수 없다. 간단하다면 리뷰에 써보겠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터라 오에 선생의 의도 그대로 옮길 수가 없다.. 그래도 조금만 소개해보자면, 오에 겐자부로가 쉰 살이 되던 해에 지나간 고전을 다시 읽기로 마음먹은 것이 단테의 《신곡》이다. 특히 이 작품을 얘기하면서 오에 선생은 고전을 젊은 시절에 많이 읽어둘 것을 권한다. 살다보면 아니 열심히 읽다보면, 인생의 고전이라 할 만한 작품이 다가온단다. 고전을 통해 얻는 풍부함과 심오함은 어디에도 비할 바 없으니 여유가 있을 때 많이 읽으라 한다..

 

《신곡》의 연옥, 자살한 사람들의 가시나무를 소개하면서 등장하는 이타미 주조는 선생의 오랜 친구이다. 그의 여동생이 선생의 부인이 되었으니 가족이기도 하다. 이타미는 오에 선생에게 랭보의 시- 프랑스어 원문을 소개하고, 후에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이라는 책의 저자가 도쿄대 교수라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문학〉의 길에 접어들게 한 장본인이다. 학창 시절, 문학보다는 답이 정해진 수학이 좋았다니, 이타미의 역할이 아니었다면 오에 겐자부로의 작가 인생은 조금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선생의 작품 속 분신인, 코기토(Cogito)의 또 다른 반쪽 역할을 하는 것도 이타미이다. 그는 2007년 《수상한 이인조》라 이름붙인 3부작에서 등장한다.. 그의 자살로 괴로워하던 선생이 술을 마시고 바다에서 수영하면 힘이 빠져 죽겠지하는 생각에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타미의 꾸짖음이 들렸다 하니.. 오에 겐자부로의 인생에 또 다른 면을 차지하고 있는 친우는 에드워드 사이드.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오리엔탈리즘〉에 녹아든 편견을 지적한 학자다. 제국주의를 염려한, 오에 선생과 오랜 우정을 나누며 옳다고 생각한 일을 위해 앞장선 지성인이었다. 사이드와의 서간, 일화는 책에 자세하게 소개되고 2부 8장은 그를 위한 강의다.. 

    

어떤 책은 리뷰를 쓰기 힘들다. 정말 좋은 책인데.. 이 책을 통해 더 많이 얻으려면, 오에 선생이 소개하는 작품들을 모두 읽어야하지 않을까 한다. 다행히도 번역가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을 뒤에 실어주었다. 안타깝게도 1950년의 일본에는 있었던 모 작가의 번역본이 2015년 한국엔 없다.. 목록의 다른 작품을 읽고나서도 번역이 안 되었다면 원문으로 도전해야지 별 수 있겠는가.. 오에 선생의 육십년 《읽는 인생》은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내용의 깊이에도 불구하고 전혀 딱딱한 글이 아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문학소녀, 문학소년(언제나 우리 마음 속엔 소년과 소녀가 살고 있지 않는가?)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글들이다. 문학과의 첫만남, 인생이 힘든 고개에 접어들 때 만난 작품들, 장애가 있는 장남과 소통하고 노력하는 일화들.. 〈문학이 그를 어떻게 구원하였는가〉를 섬세하고 겸손하게 풀어내는, 팔십의 나이에도 배우려는 노력을 가진 노작가는 대가라는 말로도 부족할만큼 존경스럽다.. 오에 겐자부로의 글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셔서 오랫동안 활동하시면 좋겠다.

 

 

*《신곡》얘기에 나오는 존 라스킨은 존 러스킨John Ruskin이다. 번역가가 맨 처음에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옮긴다고 하였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8-03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본 출판시장이 불황에 힘들다고 해도 언제든지 반등할 수 있는 힘이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서양 문화를 빨리 받아들여서 그런지 독자들이 안 읽을 것 같은 서양문학 작품들이나 사상서적들을 단행본으로 출간했어요.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에 소개된 외국 서적들 절반은 지금도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못했습니다.

에이바 2015-08-07 21:27   좋아요 1 | URL
일본친구가 별의별 작품을 다 봤다길래 신기했는데 다 번역이 되어있다더군요. 다치바나 책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고전 목록을 보면.. 그런 점은 부럽습니다.

moonnight 2015-08-09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신문에 소개되어있어서 읽고싶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읽으시고 리뷰까지@_@;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에이바 2015-08-17 12:15   좋아요 1 | URL
아주 좋은 책이었어요. 독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단발머리 2015-10-09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어야겠군요.
로마의 일인자 시리즈 2, 3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를,....
하지만 이 책을 외면하기 어려우니, 오에 겐자부로님이 조금 기다리셔야 될 듯.
고령이신데 괜찮으시려나....
에이바님 덕분에 나만 바쁜 일 나섰습니다..... 끄응~~~~

에이바 2015-08-17 12:18   좋아요 2 | URL
로마의 일인자 최고지 않나요? 저는 2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읽는 인간도 꼭 읽어주셔요 참 좋답니다

[그장소] 2016-01-22 0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우리문학이 일본에 빚을 지게 되는군요.번번히...
안타깝게도...어째서 독자적 노력이 부족한지....

에이바 2016-01-22 10:12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댓글이 이해되지 않아 제 글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혹 윤동주 시인에 대한 언급 때문에 그러신가요? 윤동주 시인은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만... 제 글에서 이런 인상을 받으신 부분을 알려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거든요...

[그장소] 2016-01-22 10:20   좋아요 0 | URL
아...에이바님 ㅡ글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어요.
제 개인의 생각에 불과한데 .혹시 불쾌하시거나
이 글들에 맞지 않으면 지울수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일본에서 ㅡ교육 알고있었는데
새삼 문제될게 아니고요. 우리문학은 어째서 서양문학을 바로 번역하는것을 하지 않나.
일본을 통하나 ㅡ 싶어서 말예요.
물론 아주 안하는건 아니지만 ㅡ아직 미약하단 얘기죠. 일부 소설가분들이 번역으로 앞장서고
개중에 자신의 소설도 역으로 외국으로 내고있으니...앞으로 기대하면 되겠죠.
제가 이 문학판에 실망을 너무해서 그런가봐요.
에이바님 글엔 전혀 문제가없답니다. 괜한 실례를 ...죄송해요.^^;;;

에이바 2016-01-22 10:46   좋아요 1 | URL
아... 중역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그러셨던거군요. 아닙니다. 댓글을 지울 필요까지는 없으세요. 역사적으로 인문학적 토대의 맥이 끊긴 상태에서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가깝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본의 연구에 기댄 건 사실이지만 요즘은 원전 번역을 선호하죠. 학계는 본토에서 수학한 교수들이 대부분이고, 학부생들도 다녀오잖아요. 또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는 독자들이 많고, 굳이 번역서를 통하지 않고 원서를 보는 이도 많고요. 따라서 이전엔 발전을 위해 많은 자료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중역이 대다수였다고 보는게 어떨까 합니다. 또 중역이 다 잘못된 것만은 아니었거든요. 번역 작업하는 과정에서 타언어로 진행된 연구를 참고하기도 하니까요. 어떤 때는 중역이 나을 때도 있고요.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주제 사라마구 책도 중역이더라고요. 결국 전공자 수의 부족, 번역에 대한 관심과 평가의 부족- 이 부분은 출판사 입장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았나 합니다... 순전히 저의 생각입니다..

[그장소] 2016-01-22 12:35   좋아요 0 | URL
중역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죠.
문제는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먼저 읽게 되는 첫 독자가 누구였을까 하는점 입니다. 이제는 발빠른 독자 개개인이 있고 인터넷과 컴퓨터가 있어서 활발한 독서가 ㅡ또 책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좋아졌지만 ..예전엔 아마도 출판 관계자들이 먼저 아니었을까..그래서 문학이 지금 이런것이 아닌가...뭐 ㅡ잠깐 ㅡ그랬네요..
그냥 ㅡ다른 일 하느라 답이 늦어 죄송합니다.
그저 그것도 한 역할이지 안았을까..하고.

에이바 2016-01-22 16:21   좋아요 1 | URL
중역은 사실 지양해야하는 것이지요. 외국어를 현지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굳이 렌즈를 하나 더 씌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장소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한국의 현대문학을 잘 모르기에 코멘트하기 어렵지만 어떤 면에서는 일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고있다는 생각이요. 그 말씀이시죠? 신경숙 사태도 그러했고요. ( 일본스타일의 감상적인 글을 쓰는 소설가를 일부러 띄웠다 이런 글도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나요) 음악, 영화, 소설, 그림, 시... 어떤 작품이 되든 이제는 예술하는 사람들의 선구자적 시각, 계몽적 시각이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보의 창구가 많아져서 다들 다른 채널로 이미 접하고 있거든요. 너희만 보고 듣고 읽는게 아니라는거죠... 창작이란게 모방없이 일어날 수 없다지만 노골적인건 우리도 이제 안다는 거죠ㅎㅎ 우리문학계에 대한 그장소님의 애정과 고민이 느껴집니다. 저는 잘 몰라서... 다만 요즘은 일본어 중역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영어나 타언어 중역이 눈에 띄더라구요.

[그장소] 2016-01-22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어렵게 에두른 말을 시원하게 꼬집어 주셔서 편합니다. 일부에선 이부분은 굉장히 터부이기때문에
건들이기 쉽지않아요. 어쩌면 이대로 굳어버릴까..저는 지금이 더 걱정입니다. 많이들 알지만 ..그런다고 뭐 달라
진게 없어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틀이 고스란히
베껴지는것은 어쩌나...싶고..
어떤 면에서가 아니라 실제 그래왔죠.공공연하게 모른 제가 좀 바보같은데..그간 우물안 개구리여서 일문학을 무시한 ..경향이...있었거든요. 그 무시의 시간동안 무럭무럭 자랐더라고요. 양으로 음으로..오마쥬라거나
인용이라거나 하면 이해하겠는데..그런게 아니어서 애정이 갈데없어요.

에이바 2016-01-22 16:4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저는 문학계 사정은 잘 모르지만 일상 생활, 우리 문화에도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고 느껴요. 분류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밀착되어 있지 않나... 문제를 인식하고 탈피하는 과정, 생각하고 무언가 만들어내는 행위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겠죠... (덧붙임)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입니다. 여전히 일문학은 피상적이라 생각하는데 생각을 조금 고칠 필요가 있겠군요.. 역시 아는만큼 보이나 봅니다. 씁쓸해요...

[그장소] 2016-01-22 16:4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ㅡ이 부분이 신경숙작가와 그 백낙청님인지 만 도려내어져 돌을 맞아서 끝 ㅡ그럴 일이 아녔거든요. 더 많고 더 크고 시스템적인 라인이 문제인데.....아직 살아있으니...버젓이..에이바님 말씀처럼 ㅡ확실히 비난 ㅡ비판에만 열을 낼게 아니라
이제 이 판을 들어서 어떤 모색을 해나가야 하느냐 하는걸로 가얄텐데 ㅡ그냥 굳히기ㅡ네요..일본 과 이쪽 문화의 차이는 사회 경제 문학 음악 그 모든 쪽에 두루두루 엮인 채 끌려 가고있어요..안타깝게도...그래도 그럴수록 더 지켜봐야한다 고 저를 달래는 중인데....실망스러운 것만 자꾸 생겨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