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 시선 : 해협의 로맨티시즘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8
임화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임화의 시집 제목에서의 〈해협〉은 현해탄을 가리킨다. 보통 대한 해협을 떠올리지만 정확히 그 바다는 아니며, 일본의 큐슈 앞 바다라 한다. 현해탄은 일본식 한자를 독음한 것으로 〈검은 바다〉라는 뜻이다. 임화는 카프와 월북시인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의 작품을 모아둔 시집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여느 시들과 달리 임화의 시는 시간을 들여가며 읽었다. 수월하게 읽히지 않기도 했지만 그의 모습을 그려보니 이런 저런 생각에 복잡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카프 서기장답게 대부분의 시는 사상의 결집이 담겨있다. 아무래도 문학을 사상의 도구로 사용했던 만큼, 저항 문학의 성격을 그의 작품과 분리할 수는 없다. 그런가 하면 낭만적인 시들도 있다. 함께 실린 임화의 평론은 문학에 있어 로맨티시즘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문학, 예술에 대한 그의 고민을 보여주는 글이다. 아티초크 시집답게 함께 실린 사진자료, 그림, 동료 문인들에 대한 글은 임화의 생애와 문학 활동을 소개하며 이해를 돕는다. 문학사의 커튼 뒤에 묻혔던 시인을 알게 되는 기쁨이 지극하다. 인상 깊었던 시 중에 현해탄을 보자면 임화는 당시 일본을, 아니 일본을 배워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단 모양이다. 식민지 청년이 적국으로부터 근대 문화를 배워 조국을 일으키는 열정은 예로부터 파고로 유명한 현해탄에 맞서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끝내기는 아쉬워 어떤 노래를 함께 추천할까 고민하다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를 보고 떠올린 엔카를 함께 소개한다. 임화가 살았던 조선의 치열함, 그 속의 낭만을 떠올리기 위한 도구를 일본어와 멜로디로 선택하는게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시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와도 어울리기에..



 

이 바다 물결은
예부터 높다.


(중략)


아무렇기로 청년들이

평안이나 행복을 구하여,
이 바다 험한 물결 위에 올랐겠는가?


첫 번 항로에 담배를 배우고,

둘째 번 항로에 연애를 배우고,
그다음 항로에 돈맛을 익힌 것은,
하나도 우리 청년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늘

희망을 안고 건너가,
결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느티나무 아래 전설과,
그윽한 시골 냇가 자장가 속에,
장다리 오르듯 자라났다.


그러나 인제

낯선 물과 바람과 빗발에
흰 얼굴은 찌들고,
무거운 임무는
곧은 잔등을 농군처럼 굽혔다.


나는 이 바다 위

꽃잎처럼 흩어진
몇 사람의 가여운 이름을 안다.


[현해탄] 중에서

 

주리라! 죽음의 악령이여! 네 탐내는 모든 것을 . . .
가을의 산야가 네 위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눈 속 깊이 내어 맡기듯 . . .


[주리라 네 탐내는 모든 것을] 중에서

 

나는
시꺼먼
갈빗대 속에
굼틀거리는
밤의 그
대담한 의지를
한량없이
사랑한다


(중략)


나는

태양과 더불어
별들을
낮과 더불어
밤 밤을
사랑하고
한밤중
죽어가는
낡은 세계를 위하여
미칠 듯
조종을
난타한다


역시 나는
밤의 시인이다


[밤의 찬가] 중에서

 

나는 영원히 생명력을 가지고 독자에게 영향을 주고, 독자로부터 기억되고 애호될 조선문학을 위하여, 생생한 낭만주의를 가져 자기를 반성할 것을 성실한 작가들에게 제안한다.

 

평론 [위대한 낭만적 정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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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1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작가의 ‘그 여자네 집’을 보면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임화의 시 ‘하늘’의 뒷부분을 들려줍니다. 혹시 ‘하늘’이라는 제목의 시도 있습니까? 사실 이 시의 전문을 보고 싶어요.

에이바 2015-08-18 19:30   좋아요 0 | URL
하늘은 실려있지 않아 따로 페이퍼에 올렸어요.. cyrus님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저도 생각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