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틸라 요제프 시선 : 일곱 번째 사람 - 개정증보판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3
아틸라 요제프 지음, 공진호 옮김, 심보선 서문 / 아티초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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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정판을 읽다 구판을 꺼내었다. 첫 구매 감사카드가 꽂혀 있었다. 그 카드를 받을 무렵, 꽤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열일곱 편의 시가 추가된 개정판의 표지는 여전히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이다. 아틸라와 빈센트의 곤궁한 삶과 예술성이 통하는 바 있기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번역이 다듬어져 더 부드럽게 다가오는 시들은 전보다 더 마음을 울린다. 심보선 시인의 서문을 읽으며 꽤 오래 생각에 잠기었다. 아틸라 요제프는 서른두 살이 되던 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른 둘…. 아아, 서른 둘…….


가난은 시인이 세상에 날 때부터 함께 해온 벗이기에 시에는 가난이 배어 있다.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지긋지긋한 존재. 거기 존재하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나는 곤궁…. 아껴 먹던 빵에 곰팡이 슬어 던져 버린 후, 며칠 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시인은 펜을 든다. 이 가난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머리가 울리고 뱃속이 요란해도 내 마음은 깨끗하고 아름다우리. 가진 것 이십 년 세월의 인생, 역사가 다이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잃지 않는다. 시를 읽으며 전해오는 따스함이 아련히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세탁부였던, 가난과 노동 때문에 젊음이 달아났던 그 여인, 늘 구부리고 일하던 모습의 어머니와 미국으로 떠난 아버지. 아틸라는 가족의 가난으로 인해 고아원에서 자라다 입양되었지만 그 집도 상황은 비슷했다. 일곱 살에 이미 돼지치기 일을 시작해 성인이 될 때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아틸라가 쓴 〈자기소개서〉는 그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인생은 이 청년에게 신경쇠약증을 남겼다. ‘삶은 나를 강인하게 단련시킨 반면 더 이상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다.’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소설 『시스터 캐리』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세상은 항상 스스로를 표현하려고 애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지요. 그래서 천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이는 음악으로 그들의 욕망을 표현하고 또 어떤 이들은 시로 그렇게 하지요. 연극으로 하는 이들도 있고요.”(629쪽) 그렇다. 예술은 타인의 표현을 빌려 내 마음을 보살피고, 때로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하므로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시를 새롭게 쓰는 행위일는지 모른다. 아틸라 요제프의 언어는 번역가를 통해 새로 씌어지고, 독자의 가슴에 와 박히되 각기 다른 의미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예술은 새로운 곳에서 계속 발전하는 것이다. 사랑하던 이를 상실하고, 꿈꾸던 이상은 좌절되고 남은 것은 가난, 외로움 그리고 설움뿐이던 시인. 그가 쓴 시는 긴 울림을 남긴다. 시집을 들고 나갔다가 우연히 좋아하는 얼굴을 보았다. 그를 볼 때 입안에 맴돌던 시어들은 뭉클하기만 하였다.


하늘도 땅도

침묵은 가난한 자들의 것이라더라


안개와 침묵은 빛나지 않아

나는 그것들을 내 것으로 삼았지


〈안개 속에서, 침묵 속에서 〉중,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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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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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읽기 전부터 아주 기대했었다. 반년 전, 『읽는 인간』을 읽고 위로를 얻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작가 인생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고른 단편들은 초기, 중기, 후기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초기 작품들은 오에의 청년기를 반영하는 듯 보다 선연한 색채와 개성이 보인다. 중기의 연작들은 모두 실리진 않았지만 서로 유기성을 보인다. 장애를 가진 장남 히카리(소설에서는 이요)와 아버지인 자신의 관계와 ‘읽기’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는 노력들이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후기 소설은 중기 작품들보다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많이 덜어졌고,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초기 작품들은 모두 무척 재미있다. 이 시기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고립된 이미지들이다. 오에가 청년기를 보낸 1950년대 이후의 일본 사회 분위기를 예상케 하는 일종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독서 중 떠오른 단어들은 개인과 공통체, 무지와 이해, 폭력과 울분 그리고 무기력이다. 「남의 다리」에서의 구분짓기, 「사육」에서의 고립과 야만적 시선,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 전복, 「인간 양」에서 느껴지는 끝없는 수치, 「세븐틴」에서의 정치와 성의 문제... 작품에서 드러나는 현시성을 생각하면 이 작품들이 1957년에서 1961년 사이에 발표되었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진다.


문제는 중기 작품들이다. 『읽는 인간』에서 언급된 맬컴 라우리와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들을 탐독하는 시기이다. 오에의 읽기는 개인적 상황과 더불어 작품 속에 녹아든다. 대체로 현실을 소설에 반영하되 그 경계를 흩트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독서에서 얻은 문장과 사유를 발전시키는 과정에 글쓰기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인 트리’ 연작은 오에의 관심사가 모두 담긴, 그만큼 밀도가 높은 작품이기에 읽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이 단편선에서 어떤 작품을 읽어야겠느냐 묻는다면 이 연작을 추천하겠다. 이 작품은 다케미쓰 토오루에게 작곡의 영감을 주었고, 소설에서 음악 발표회에 참석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장남 이요의 머리에 있는 수술 자국은 오에 자신이 어릴 적 얻은 상처와도 비슷한데, 소설 속에서 유년 시절 황어 떼를 보려고 잠수했다가 익사할 뻔 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요 역시 의도했는지 모르겠으나 잠수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 한다. 겐자부로는 어릴 적 사고에서 어머니가 구해주셨음을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정작 장남이 목숨을 잃을 상황에서는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블레이크의 시를 떠올리는 것이다. 오에는 죽음에 대해 그리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는 술을 마시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힘이 빠지면 그대로 죽고 싶다는 충동을 행동에 옮기고 이타미 주조(친구이자 아내의 오빠)의 목소리로 깨어나게 된다.


이렇듯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해 보이는 오에를 붙든 것은 (해설에서 언급되듯이) 장남 히카리라고 볼 수 있는데, 아들의 장애는 이십대 후반의 그를 절망에 몰아넣었다.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꿈을 꿀까 하는 것은 작가이자 아버지에게 어떤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그를 이해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딸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조용한 생활’ 연작에서도 드러나는데, 이요는 모두에게 부담인 동시에 삶의 활력이자 사랑 그 자체다. 예상치 못한 순간,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 이요의 한 마디는 오에에게 구원을 준다. 「불을 두른 새」의 마지막 대사처럼 말이다.


오에 겐자부로를 모르고, 그의 작품과 일생동안 벌인 활동을 잘 모르기에 위대한 작가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글 잘 읽고 왜 딴지냐 하면, 오에의 청년 시절 잘 구비된 세계 문학들을 통해 『읽는 인간』에서 느낀 일본 문화의 자양분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울분이 슬금슬금 피어오르다 중기작품에 등장하는 ‘원폭 난민’이라는 단어 때문에 터졌기 때문이다. 파리 현대미술관에서 이 ‘원폭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행위예술가의 오리가미 뭐 그런 전시를 마주친 기억이 났다. 그 전시가 있는 그대로 와 닿지 않았던 이유는, 비판의식이 결여된 인류애로 포장한 서양인의 예술 활동이 결국 전범국을 미화하는데 한 몫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 역함이 일었던 것일까. 동행한 이도 같은 의견이었다.


「거꾸로 선 '레인트리'」에는 핵 폐기 운동과 관련하여, 등장인물 간 논쟁과 결과가 묘사된다. 이 대목에서 해당 사안에 대한 오에의 입장을 짐작케 하는데... 오에가 9조회 활동과 일본 왕가로 상징되는 폭력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혀 왔으나, 원자폭탄 투하라는 사안만을 고려한다면 과연 일본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있냐는 의문이 들었다. 원폭으로 인한 피해자들(개인)과 그 결과를 생각하면 이는 단연 비극이고, 반복되지 않아야 할 역사이다. 그러나 그가 참여하는 핵 폐기 운동이 ‘일본은 피해자’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전범국의 역사를 미화하는데 어떠한 영향도 없을 것인가?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작가에게 실례이겠으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은 위키의 발언을 참고하였다. 그러나 의문은 작품을 읽고 떠오른 것이며 오에의 다른 저작을 읽지 않았고,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글을 썼음을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집은 오에 겐자부로 입문서로 더할 나위 없다. 초기 단편들부터가 아주 훌륭하고, 진입장벽은 후기작품으로 갈수록 높아지니 부담이 덜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작가 인생을 오에 스스로 정리하는 의미에서 작품들을 추려내고 개고하는 노력을 들인 선집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시간을 들여 좀 더 깊이 읽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움과 의문은 뒤로 하고, 지성의 역사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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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3-25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익사를 읽으면서 너무 이해가 잘 안갔었는데 그의 삶을 전반적으로 설명해주는 거 같아요. 다 읽고 다시 올께요

에이바 2016-03-25 16:52   좋아요 0 | URL
이 선집으로도 왠만큼 커버가 가능한 듯 해요. 기회가 닿으면 만엔원년의 풋볼, 개인적인 체험 이 정도 작품만 더 읽어 보려고요. 익사, 제목만 들어도 숨이 막히네요 ㅜㅜ 본문에 쓴 일화와 관련이 있으려나요?

CREBBP 2016-03-25 18:27   좋아요 0 | URL
리뷰에 언급하신 중기 작품들의 내용과 후기 작품 내용이 익사의 일화들과 꽤 겹쳐요

맥거핀 2016-04-16 0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나온 소설들만 보자면 오에 자신도 아마 그런 고민들을 내내 해왔던 것 같습니다. 가해자이자 현재에도 어떤 군국주의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일본인으로서 반전과 반핵을 이야기한다는 것의 내재한 어떤 위험들 말입니다. 이런 행보가 본인들은 원치않을지라도 또한 군국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일본정부에 이용되는 것도 사실이구요. (비슷하게 소설에도 반전과 반핵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쫓아버렸다는 한 일본남성의 이야기가 나오죠.) 말씀하신대로 한국인으로서 껄끄럽게 여겨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과연 간단하게 말해서 그럼 일본인으로서 반전과 반핵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다른 것을 덮기 위한 시도인가, 라고 묻는다면 또 그것에도 예스라고 답하기는 어려운 것도 분명 사실인 듯 합니다. 가해자로서의 일본과 피해자로서의 일본, 그 둘 사이는 분명히 분리하여 짚고 넘어갈 지점이 있지만, 그것이 단순히 분리되지만은 않으니..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마 이 경우에는 단순화시키는 것이 보다 위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부분이 소설에도 복잡하게 남아있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리뷰 예전에 읽었는데, 시간이 나서 다시 댓글달러 들렀습니다만..처음에 리뷰를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과는 무엇인가 다른 얘기만을 하고 가는 것 같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

에이바 2016-04-17 11:56   좋아요 0 | URL
맥거핀의 말씀과 비슷한 내용을 리뷰에 썼다 지워버렸는데요. 그 이유는 원폭 피해자와 반전, 반핵문제에 대한 저의 지식이 피상적이라 느껴서 입니다. 정보를 찾다 겐자부로 위키에서 박유하의 저서 발췌문을 봤는데 가져오면- 한국에서 열린 강연에서 한 청중이 원폭피해에 대한 글은 결국 일본이 피해자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자 오에가 말하길, 글쎄요 한국인 피해자도 그렇게 말할까요?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답변에서 파생되는 의문은 해당 위키에 잘 전개되어 있고 일부 답변도 되어 적당히 참고하였습니다만 의견을 전개하여 밝히기엔 제가 아는 것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글을 읽으며 가끔 두려워지는 것은 나의 읽기가 오독이진 않을까 하는 것인데요. 오에 겐자부로의 글은 이번이 두 번째라 판단할 깜냥이 되질 않고, 그에 대한 인상은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에 대한 존경이고요. 그렇기에 편견, 그러니까 일반화할 수 없는, 일본인과 그 사회에 대한 저의 체험과 오에 겐자부로의 글과 인생에 대한 몰이해가 부당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좀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제 체험을 밝히고, 의문점을 제시했는데요. 감정적이군요... 아무튼 이 단편집을 읽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기에 반핵운동에 대해 공부할 의욕도 타오르질 않고 무엇보다 아주 방대하더라고요.

그러면 적어도 오에 겐자부로가 쓴 히로시마 노트를 읽어봐야지 했는데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마는 저의 단점이 발현하여 그만...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당시에 떠오른 생각은 오에 겐자부로가 성찰하는 지식인이기는 하나 일본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편견을 제하고 조심해서 접근하고 싶다 해도 한국인이기에, 저를 구성하고 있는 정체성에서 오는 한계점이 있듯이 (비교하긴 송구하나) 오에 겐자부로라는 대작가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말씀하셨듯이 복잡한 문제이기에 단순화시키고 싶지 않았고요. 다음에 관련 글을 읽게 되면, 혹은 이 책을 재독하면 지금의 심정과 다르겠지 하는 마음에서, 훗날의 저를 위해 저 문단을 남겼습니다. 맥거핀님의 댓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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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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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채워지지 않는 꿈. 정신을 갉아먹고 유혹하는 이 허망한 환상은 우리를 손짓하며 부르고, 손짓하고 또 부르다가 마침내는 죽음과 소멸이 그 힘을 녹여버리고 눈먼 우리를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보낸다. (383쪽)


이 작품의 미덕은 일단 아주 재미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19세기 말, 20세기 초 도시화되는 미국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케이크를 한 조각 깨끗이 잘라 접시에 올려 내듯이, 아주 예리한 시선으로 사람들의 욕망과 허위를 포착해낸 그야말로 칼날 같은 소설이다. 당시엔 ‘저속하고 문란한 책’이라는 악평을 받았으며, 그 여파로 인해 드라이저의 두 번째 소설은 십년이 지나고 출간된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니, 역사의 승리자라 할 것이다. 반발이 거세 사장되기를 기다렸던 초판은 1008부가 제본되었다고 하는데 왠지 중국인들이 좋아할 숫자라는 생각을 좀 했더랬다.


주인공은 열여덟 소녀 캐리. 고향마을을 떠나 시카고에 도착해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지만 생활비를 보태야 할 언니네 집의 검약적 분위기에 곧 주눅이 든다. 겨우 구한 일자리는 집세를 내고 나면 교통비도 모자라는데 그마저도 비를 맞고 앓아누워 잘리고 만다. 귀향해야 할 상황에 만난 드루에는 캐리를 데려다 인형 놀이를 시작한다. 그의 집에서 가장 반짝이는 가구가 되어, 그의 욕망을 채워주는 캐리. 그녀는 똑똑하지는 않지만 감성이 풍부했고, ‘쾌락을 좇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드루에는 경제적 원조와 환경을 통해 문화를 제공함으로써, 그녀에게 우아한 몸짓과 태도를 학습시킨다.


한편 시카고의 성공한 이들이 모이는 술집 지배인 허스트우드는 처자식을 속물처럼 여기지만, 자신의 삶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드루에의 초대로 캐리를 만난 그는 딸뻘인 그녀를 유혹하려 애쓴다. 언제나 더 나은 것을 지향하는 캐리는 허스트우드의 노련한 매너에 끌린다. 우연히 출연한 연극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캐리를 보고 드루에는 그녀를 재평가하며, 결혼할 마음을 먹는다. 허스트우드 역시 그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아내의 의심이 한껏 깊어진 상태였다. 결국 그는 캐리를 거짓으로 불러내 뉴욕으로 데려가 새로운 시작을 희망하지만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캐리는 예쁘고 감성적이며 성공 후에도 친절함과 고운 심성을 잃지 않는다. 혼전동거를 하게 된 것에는 캐리의 욕망도 작용하였지만, 그녀와 결혼하겠다던 남자들의 기만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 어려 경험이 부족한 여성을 손에 넣은 후, 불성실해진 남성들의 변화는 캐리의 젊음과 열정과 대비되며 그녀가 이 관계를 종료하는데 힘을 실어준다. 결국 캐리를 ‘준비’시켜 인생이라는 무대로 내보낸 선생은 드루에와 허스트우드였던 것이다. 두 남자에게서 얻은 교훈으로 캐리는 성공한 여배우가 된 이후 찾아오는 어리석은 유혹들에 반응하지 않는다. 또한 에임스를 통해 그녀가 갖지 못한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욕망하게 된다.


시카고에서의 캐리가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었다면, 뉴욕의 허스트우드는 성공했던 삶이 어디까지 추락하는지를 보여준다. 이혼은 경제적 몰락을, 범죄는 사회적 몰락을 가져온다. 인생의 절정기, 장년을 넘긴 허스트우드의 변화는 서서히 이루어진다. 그 나름대로 분투하나 옛 광영에는 이르지 못하며, 분명한 위기에 대처하기보다는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자리를 구하려던 노력은 경제 불황으로 인한 노동쟁의와 맞물려 그를 좌절시킨다. 결국 허스트우드는 현실을 부정하며 과거에 취해 낮에도 백일몽을 꾸며,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가 궁핍과 비참의 세계에 들어서는 과정은 너무도 생생하며, 캐리의 성공과 대비되어 비극성을 더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욕망에 이끌리는 삶을 산다. 해외여행과 경마장 정기권으로 상류층이 되고픈 욕망을 드러내는 허스트우드의 가족들, 아름다운 여성을 유혹하고 만족을 얻는 드루에,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욕망하며 사회적 지위를 팽개치게 되는 허스트우드,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감성에 안주하는 캐리에 이르기까지... 욕망에 따라 행동한 누구는 부와 명예를 누리고, 누구는 몰락하는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 세계관에서 인간은 결정적인 운명에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인데, 사회상을 충분히 녹였기에 설득력을 얻는다. 그리고 수동적인 캐리, 욕망에 충실한 캐리가 성공의 길에 이르는 장면에서 고개 돌려 비난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녀의 성장을 지켜봐온 데서 오는 연민도 있을 테지만, 그러한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정직한 노동이 보수가 적고 견디기 힘든 것이라면, 그 길이 너무나도 멀고 멀어서 발과 마음만 지칠 뿐 아름다움에는 결코 닿을 수 없다면, 아름다움을 좇는 끌림이 너무나 강렬하여 칭찬받는 길을 버렸다면, 그래서 자신의 꿈에 빨리 닿을 수 있는 멸시받는 길을 택했다면, 그 누가 먼저 돌을 던질 것인가? 악이 아니라 더 나은 것에 대한 갈망이 그릇된 길로 이끄는 경우가 더 많다. 악이 아니라 선이, 이성적인 사고에는 익숙지 않고 느낄 줄만 아는 정신을 유혹하는 일이 더 많은 것이다. (651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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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3-24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막 끝냈어요. 초 중반에는 좀 지루했는데, 반 넘어가서는 너무 재밌어서 밤새도록 읽었다는. 인터넷 치면 원문 Audiobook 이 있어요. 가끔 그거 들으면서 들었어요.

에이바 2016-03-25 12:33   좋아요 0 | URL
방대한 분량임에도 힘들이지 않고 읽었어요. 별 다섯 주려다 참았다는... 이번 리뷰도 부족함이 많군요.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못 쓴 듯... 리뷰 읽으러 갈게요
 
미크로메가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0
볼테르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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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데 아마도 그가 18세기의 키보드 워리어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물론 농담이다. 아마 그의 이름이 익숙하게 느껴짐에도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 그랬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어떤 출판사 버전으로 읽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미크로메가스』가 함께 실린 문학동네 판으로 구입했고 또 책장에 꽂아둔 채로 한참의 시간을 보내버렸다...

 

먼저 『미크로메가스』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하고 넘어가자면, 이 익살맞은 단편에 볼테르는 외계출신의 거인 둘을 등장시킨다. 철학 우주여행 중인 미크로메가스와 토성 난쟁이(미크로메가스에 비하면 난쟁이라는 얘기)는 지구에 도착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작아 이 행성에 생명체가 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때 그들에 부딪친 한 탐사선에 좀벌레 철학자(...)들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랍게도 지성언어인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거인들은 인간들에게 ‘겉으로 보이는 것을 근거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남기고 떠나버린다. 그가 남긴 사물의 궁극이 담긴 책은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는 순진한 청년 캉디드가 등장한다. 볼테르는 이 불온작품을 가리켜 자신은 어느 독일인의 원고를 번역하였을 뿐이라고 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발뺌이지 않은가! 독일 베스트팔렌의 아름다운 성에 살고 있던 캉디드는 자신의 세계가 언제나 최선의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팡글로스 선생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촌누이 퀴네공드와 키스했다는 죄로 쫓겨난 캉디드는 불가리아의 군대에 들어가 고문을 받다가 겨우 살아나 포르투갈로 넘어가는데 거기서 종교재판을 받는가 하면, 사랑하는 이들과 재회 하지만 살인을 저질러 도망을 쳐야한다. 도주한 라틴아메리카에서 엘도라도를 발견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보물들을 잃어버리는 등 다사다난한 모험을 겪는다.

 

종교재판, 고문, 살인, 식인종, 거짓말, 자연재해 등 인간이 만든 제도의 문제점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캉디드는 의문한다. ‘과연 이 세계는 최선의 결과인 걸까?’ 이러한 의문에 응답하는 이로는 그 생각을 심어준 팡글로스(낙관주의자)와 마르틴(비관주의자)이 등장한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퀴네공드와 재회한 캉디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하는 사람이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에 캉디드는 수도승과 어느 선한 노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깨닫게 된다. ‘노동을 통해 권태, 방탕, 궁핍에서 멀어질 수 있’으며, ‘자신의 정원은 자신이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낙관주의는 볼테르와 동시대를 살아가던 라이프니츠의 낙관론(신은 전지전능하기에, 그가 만든 세상은 최선의 세계이다)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비판이며, 현실적인 악과 부조리 앞에 캉디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낙관주의는 나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광기야.’(135쪽) 세상 풍파에 시달리며 정신을 단련한 캉디드는 더 이상 낙관주의니 비관주의니 하는 것에 휩쓸리지 않는다. 자신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타인의 생각을 제한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의견의 차이를 인정하고 삶의 지혜를 받아들인다. 캉디드의 모험이 콩트처럼 이어지고, 종자와 함께 여행한다는 점에서 『돈키호테』가 떠오르기도 했다. 철학 이야기를 떠나 버디물, 로드 트립으로 읽어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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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9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3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마의 일인자 1~3 세트 - 전3권 (본책 3권 + 가이드북)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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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시작은 기원전 110년 신임 집정관의 취임식에 참석하려는 카이사르 집안의 소개로 시작된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의 가장 오랜 피를 이었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위엄을 가진 가문의 가장. 그는 아마도 마지막 ‘카이사르 원로원 의원’이 될 것이었다. 다른 이들처럼 자녀들을 입양시키거나 부유한 집안과 결혼시키지 못했기에 재산은 한 세기 마다 쪼개져 왔던 것이다. 카이사르라는 이름과 귀족의 혈통은 짐이 되었지만, 로마의 기원에까지 이어지기에 그만큼 영예롭다. 이제 그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아들들과 딸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권력과 재산을 쥐어주고 로마의 중추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결정, 아니 거래 그리고 로마의 역사를 바꿀 결합. 이는 훗날 그의 이름을 물려받을 손자, 위대한 시저, 짜르. 카이사르라는 이름을 역사에 길이 새길 ‘그’를 위한 발판이 된다.

 

그것은 바로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혼인으로서 결합하는 것이었는데, 가이우스 율리우스는 이 거래가 마리우스에게 ‘디그니타스’를 줄 것이라 얘기한다. 디그니타스, 즉 ‘위엄’은 한 개인의 인격적 가치와 가문의 가치를 합한 것으로, 원로원 내부에서 그 개인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높은 가문 출신들은 더 높은 위엄을 지녔으며, 지배계층은 이 위엄을 드높일 것을 기대 받았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리아, ‘영광’을 획득해야 했는데, 로마에 있어 가장 큰 영광은 전쟁에서 군대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었다. 원로원의 승인으로 이루어진 개선식에서 군대는 포로들과 전리품을 과시하며 로마 시내를 통과한다. 로마 시민들의 확인을 통해 개선장군은 ‘위엄’을 획득한다. 콜린 매컬로의 작품 내에서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들이 개선식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위엄과 영광’은 엘리트 계층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는데, 위대한 선조를 둔 후손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이미 이름에서 가문명(위엄)이 강조되고 있는 파트리키 집안에 자리한 선조들의 마스크는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지만, 후손들의 눈으로 확인하는 개선식이기도 했다. 후손들은 어릴 때부터 선조들의 업적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것이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마음을 다잡을 때 선조들의 마스크를 보는 것도 괜한 것이 아니다. ‘위엄과 영광’을 달성하라는 요구는 결국 로마 엘리트끼리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후손들을 정복전쟁에 몰두하도록 한다. 또한 로마인의 생활과 정치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엘리트 계층은 자유민들과 ‘보호자와 피보호자(피호민)’ 관계를 맺었는데, 피호민에 대한 지원은 귀족인 보호자의 ‘위엄’을 위해 중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엘리트 계층 간의 전쟁, ‘영광’에 대한 갈망은 로마를 팽창시켜 군벌을 탄생시키고 내란을 불러온다. 공화정의 영광을 드높이고, 공화정의 몰락을 가져온 군벌. 그들이 바로 《로마의 일인자》의 주인공,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이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아르피눔 출신의 부호이자 원로원의 신진세력으로 타고난 지휘관이며 여러 전쟁을 통해 군 통솔력을 확인받았다.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집정관 선거에 출마하지 못한 것은 ‘라티움 혈통’ 과 유력가문 출신인 메텔루스의 방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우스의 부족한 ‘혈통’은 율리아 카이사르와의 혼인으로 채워졌으며, 그의 재정 지원으로 카이사르 가 아들들은 정계에 입문한다. 이러한 결합은 카이사르 가문이 로마 공화정 정점에 이르게 하는 바탕이 된다. 한편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파트리키 출신이지만 가문이 몰락하여 빈민가에서 자라났다. 영민한 두뇌와 아름다운 외모를 갖추었으나 주위엔 그를 탐하는 이들만 있을 뿐이었다. 야망을 간직한 술라는 율릴라 카이사르가 엮어준 ‘풀잎관’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그녀와 혼인하여 마리우스와 카이사르라는 든든한 뒷배를 얻는다. 인척으로 엮인 마리우스와 술라는 각각 집정관과 재무관으로 선출된다.

 

누미디아의 유구르타 왕과의 전쟁, 아프리카 원정을 떠나기 위해 신임 집정관은 군대가 필요하다.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시행한 군제 개혁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이후 로마의 최대 문제인 농지 개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로마군은 모두 자영농으로 구성되는데, 재산을 소유하였고 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기에 징병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다수가 전사하거나 땅을 돌보지 못해 파산하게 된다. 빚진 이들은 노예가 되었으며 그렇게 로마의 근간을 책임지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었다. 전통적 방식의 징병이 불가했기에, 마리우스는 최하층민들을 대상으로 ‘모병’을 실시한다. 이는 커다란 반발을 불러오는데, 로마 5계급에 들지 못한 최하층민들은 의무가 없기에 책임도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국 마리우스는 최하층민 병사들을 이끌고 출정한다.

 

문제는 최하층민 병사들이 전쟁 후 귀환했을 때이다. 그들은 노련한 군인으로 이전과 같은 대우는 참지 못할 것이기에, 이들을 로마에 정착하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마리우스는 사투르니누스를 호민관으로 만들고, 농지 개혁 법안을 추진한다. 아풀레이우스 토지법은 최하층민 퇴역군인들을 외국의 로마 공유지에 정착하게끔 하는 것이 골자였다. 마리우스는 이탈리아인 병사들에게 시민권을 주기를 원했고, 이는 원로원의 반발을 불러온다. 두 번째 토지 법안에서 명시한 공유지에는 알프스 너머 갈리아 땅이 속해 있었는데, 이는 많은 이들이 탐내던 땅이었다. 이 법안으로 인해 마리우스의 가장 열렬한 지지계층인 기사계급마저 돌아서게 되며, 마리우스는 이후 사투르니투스와 글라우키아의 급진성으로 인해 정치적 위기를 겪는다. 또한 공유지 확보 과정에서 속주에 무리한 세금을 징수하게 되고,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로마시민 전수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이는 2부 《풀잎관》에서 펼쳐지는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의 배경이 된다.

 

다시 군대 얘기로 돌아와, 자영농으로 구성된 로마군들은 식량을 실은 수레와 노예, 노새를 가지고 참전했다. 그러나 재산이 없는 최하층민들은 군장을 지고 행군하였기에, 그 속도는 자연히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노련한 마리우스는 경험이 없는 병사들을 이끌었음에도 아프리카 원정에 성공하고, 유구르타 왕을 생포함으로써 영웅이 된다. 이 때 게르만족과 붙은 로마군이 참패하게 되는데, 마리우스는 유일한 ‘구원자’로 떠오르게 된다. 로마 시민들은 법을 고쳐 집정관 연임이 가능하게 했으며, 로마에 부재중이라도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모든 것은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집정관으로 만들어 임페리움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점술가 마르타의 예지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언에 따르면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일곱 번이나 집정관으로 당선될 것이었다.

 

한편 마리우스의 재무관으로서 술라의 활약도 상당하다. 그는 유구르타 왕의 생포에 큰 공을 세웠으며, 아프리카 원정을 성공적으로 보좌한다. 작품에서 술라는 송곳니를 숨긴 위험한 존재처럼 그려진다. 고귀한 혈통이지만 빈민가인 수부라에서 자랐기에 거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반신반인의 혈통이기에 성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대담함을 지닌 것으로 그려지는 게 아닌가 한다. 이를 통해 다가올 미래에 독재관이 될 술라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전쟁에서는 본성을 감출 필요가 없기에, 술라는 일종의 역할놀이를 즐기고 있다. 그 정점은 술라가 게르만족 행세를 하며 그들과 어울리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장면이다. 게르만족 여성 헤르마나와의 삶은 의무로부터의 해방을 암시하지만, 술라는 로마의 문명 세계로 돌아와 ‘위엄과 영광’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배우의 역할을 지속하게 된다.

 

특히 이 게르만 원정에서는 작가 콜린 매컬로가 ‘게르만족의 이동’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 감탄하게 된다. 20년 가까이 알프스 산맥 등지를 돌아다니는 게르만족의 이동경로를 지도로 첨부하여 이해를 돕는 것은 또 어떠한가. 게르만족은 작물재배를 하지 않으므로, 인구 증가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이동을 시작한다. 그들이 원한 것은 이탈리아의 풍부한 자원이었기에 로마와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이들 무리에 잠입한 술라와 세르토리우스에 따르면, 게르만족은 이동의 편이를 위해 일정 조건에 맞지 않는 이들은 죽인다고 한다. 따라서 무리 대부분이 강인한 젊은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게르만족 원정을 성공으로 이끌면서 그의 여섯 번째 집정관 임기를 마무리한다. 이탈리아 촌놈이라고 조롱당하던 인물이 로마를 위기에서 구해낸 ‘제3의 건국자’이자 명실공히 ‘로마의 일인자’가 된 것이다.

 

《로마의 일인자》에서 보여주는 로마는 비단 정치·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로마인의 생활에 깊이 녹아든 점술과 예언 그리고 건축과 요리, 미술도 아주 상세하며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특히 로마 도로와 수로에 녹아든 기술력과 군대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자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관련 페이퍼) 콜린 매컬로는 로마 여성들의 삶 또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로마의 가정에서 차지하는 가장의 권위가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가장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자녀의 혼인과 아기를 가정에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했으며, 극단적으로는 성인이 된 자녀를 노예로 만들거나 죽임을 명할 수도 있었다. 파트리키 계층의 혼인은 주로 정치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혼과 재혼이 빈번했다. 부모가 다른 형제가 한 가정에서 자라는 경우도 있었는데 1부에서의 코타와 2부에서의 카토를 예로 들 수 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율리아 카이사르와 혼인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한다.’ 25년을 함께 한 아내 그라니아는 이에 반발하지 못했으며, 가져온 지참금과 함께 떠난다. 신부가 가져오는 지참금은 이혼할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한다.

 

가장의 권위는 리비아 드루사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가장인 리비우스 드루수스의 명령으로 원치 않는 스키피오 2세와 혼인해야 했는데, 리비아의 사례가 더 가슴이 아픈 이유는 그녀가 혼인 이전에 파트리키 여성으로서도 극히 제한된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사례 때문에 드루수스는 여동생을 단속하기에 여념이 없었기에, 리비아는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더군다나 혼인에 반발한 후 방에 갇혔으며, 오빠의 ‘명령’으로 남편에게 ‘순종’해야 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리비아는 당시 기준에서도 파격적으로 자유로웠던 아우렐리아와 비교되면서 그 비극을 더한다. 기본적으로 로마 파트리키 여성들은 가정에 종속되었고, 순종할 것을 기대받았다. 여성은 대외적인 활동에 참여할 수는 없었으나 종교에 귀의하여 사제로 사는 것은 가능했다. 술라와 관계를 형성하는 클리툼나와 니코폴리스는 파트리키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으며, 헤르마나를 통해 그려지는 게르만족 내 남녀의 역할 기대와도 비교해 생각해볼만 하다.

 

젊은 파트리키 여성으로서 아우렐리아도 비중있게 다뤄진다. 아름다운 외모와 지혜로움, 위엄있는 혈통과 상속금은 그녀를 로마 최고의 신붓감으로 만들지만 구혼자가 너무 많아 골치다. 삼촌의 안배로 아우렐리아는 스스로 남편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카이사르 가 차남과 결혼하게 된다. 독립적인 성향의 그녀는 파트리키의 저택이 아닌 인술라(다세대주택)의 안주인으로 자리잡기를 택한다. 그녀의 인술라가 빈민가인 수부라와 맞닿아 있는 것은 파트리키인 그녀가 서민들의 삶 깊숙이 자리잡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신혼부부는 오래지 않아 이 동네 주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는데, 이 부부의 아들은 단연 모두의 애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알고 있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라는 서민적 이름이 괜히 붙여진 것이 아니었다. 아우렐리아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 코르넬리아라는 점은 당시 파트리키 여성들에게 기대되었던 역할모델을 짐작케 한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아우렐리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만 자신의 아내 율릴라와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술라가 정치적인 행보와 마찬가지로 사적인 생활에서도 지극히 가부장적인 인물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그는 순종하는 아내를 바랐는데 율릴라 이후 맞이하는 아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2부 《풀잎관》에서 딸 코르넬리아가 불화를 알리자 술라가 분노하는 지점도 ‘사랑하는 딸’이 아닌 ‘코르넬리우스의 딸’이라는데 맞춰져 있다. 반면 율릴라는 파트리키 여성상에 미치지 못하는 충동적인 인물이며, 카이사르의 이름을 가졌기에 ‘사랑’으로 이루어진 결합을 꿈꾼다. 막내딸에 대한 아버지의 무른 애정은 비극적인 결혼과 결말로 이어지는데, 술라가 ‘위엄과 영광’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엄격한 인물이라는 점은 아내의 방만함을 참을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인 것이다. 술라와는 다르지만 아우렐리아의 남편인 젊은 카이사르 또한 보수적인 인물인데, 아우렐리아는 이에 요령껏 대처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로마의 일인자’에 등극하는 과정은 독자의 흥분과 쾌감을 이끌어내며, 배경인 로마는 생생하기만 하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읽으며 내린 결론은 로마의 매력은 민주적이고, 도덕을 부르짖으면서도 어느 한 순간에 야수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찬란한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키고 향유하는 변덕스러운 시민들,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원로원 의원들과 신관들, ‘위엄과 영광’을 재현하려는 파트리키의 욕망, 이 모두는 ‘로마’의 영속을 위해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콜린 매컬로의 펜 끝에서 재탄생한 이천년 전의 역사는 번역이라는 프리즘 너머로도 광채를 드러낸다. 역사를 뛰어넘은 인물들의 생생한 카리스마에 압도당하고, 또 해체되어 무력함을 느끼면서도 이끌림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로마 공화정의 찬연한 마지막을 장식할 영웅들의 부상과 몰락, 인간적 일화와 초월한 일면들을 활자 위로 돋아내게 만드는 필력. 콜린 매컬로 여사께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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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3-06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책을 못읽어서 마지막 문단만 읽었어요. 글 완전 좋아요 다른 분들도 잘 쓰셨겠지만 덕후 기질이 여실히 드러나는 에이바님 글이 심사위원들 눈에 확 띌 것 같아요. Good luck. 상품도 크던데 ㅎ

에이바 2016-03-06 22:09   좋아요 0 | URL
로마의 일인자 뒷권들 아직 안 보셨어요? 진짜 재밌어요 기네스님 더 늦기 전에 빨리 보셔요 왜냐면 6월에 3부가 나오거든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는데 다른 분들도 잘 쓰긴 것 같아서...ㅜㅠ

한수철 2016-03-06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추해 보건대, 리뷰대회 출품작인 모양입니다. 에이바 님이 안 받으면 도대체 누가 받는 건지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겠습니다.ㅎㅎ^^그나저나 저는 얼마 전에 풀잎관 1권을 읽다가 포기. 요새 음... 책 자체를 읽지 못하는 이유도 있고, 등장인물이 존...너무 많이 나와서 짜증도 났던 것 같고...^^

에이바 2016-03-06 22:54   좋아요 0 | URL
틈틈이 썼는데 마감일이라 에라 모르겠다 하고 제출했습니다. ㅎㅎ 한수철님도 로마의 일인자 읽으셨군요! 반갑네요ㅎㅎ 저도 요즘 통 집중을 못 하는데 이 로마 시리즈는 펼치면 또 너무 재밌게 읽는다는 거죠. 등장인물들이 나이들어가는 걸 보면서 인생무상...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하고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