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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 Movie Tie-in ㅣ 펭귄클래식 139
솔로몬 노섭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4년 2월
평점 :
1808년 뉴욕에서 태어난 솔로몬 노섭은 ‘자유인’으로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일거리가 뜸해지는 시기에 나타난 두 사내는 서커스단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찾는다며 후한 삯을 약속한다. 다른 도시로
가기에 앞서, 자유인이라는 증서를 발급받으라는 충고를 한 그들을 신뢰하는 솔로몬. 건네받은 술 한 잔에 정신을 잃었던 그가 깨어난 곳은 워싱턴
DC, 아이러니하게도 국회의사당을 마주본 건물의 지하였다. 자신이 법의 수호를 받는 자유민임을 알리자 돌아온 것은 심한 매질이었다. 그는 자유를
기다리며 적당한 때를 기다린다. 그 적당한 때는 12년이 지나서야 선의의 이름으로 찾아온다.
솔로몬 노섭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흑인이었기 때문에 노예로서
경험한 대우, 그 비참한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었다. 실제 그의 구명을 위해 주고받은 편지들은 이 글이 상상이나 과장이라 할 만한 논란을
불식시킨다. 특히 목화와 사탕수수 재배를 설명하는 챕터를 보면 사실적인 기술에 놀라게 된다. 노예는 재산, 동산이라는 말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죽이려고 개 떼를 푼 작업반장으로부터 달아나, 뱀과 악어가 득실거리는 늪을 지나는 생고생을 하고서도 다시, 주인집 앞에 서야했던
그에게 어찌 이런 말을 하겠는가. '자유를 열망하면서 왜 도망치지 않았냐'고. 기적 같은 만남으로, 12년 만에 자유를 되찾은 솔로몬은
노예상인들을 고소하지만 흑인이기 때문에 증언의 효력이 없다. 이후 그는 노예 해방을 위한 운동에 투신한다. 솔로몬의 르포는 헤리엇 비처 스토에게
헌정되었다. 바로 남북 전쟁을 일으킨 문학으로 함께 손꼽히곤 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작가이다. 솔로몬은 노예주를 탓하기보다는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노예 제도의 존재가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더 악화시키는 것 같았다.
날마다 인간이 고통받는 모습을 목격하면 잔인하고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노예들이 괴로워 내지르는 비명을 듣고, 무자비하게 채찍질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죽어 관도 없이 묻히는 모습을 보는데, 어떻게 인간의 목숨을 중히 여길 수 있겠는가. 물론 어보이엘르
교구에도 윌리엄 포드처럼 선하고 착한 사람은 많았다. 전지전능한 신께서 창조하신 그 어떤 생명의 고통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마음 여리고 착한
타지인처럼 이들도 노예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고 아파했다. 노예 상인의 잔인함은 개인의 잘못이 아닐 제도의 잘못이다. 개인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관습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노예의 등을 채찍으로 내리치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어릴 때 고착된 인식은 좀처럼 바꾸기 힘든 법이다. [14장 중에서]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관습과 문화는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기
어렵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고 하지만 이 명제에서 말하는 인간이라는 단어는 일부 인간에게만 적용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이미 '구별짓기' 되는 것이 아닌가... 『노예 12년』의 이야기는 비단 흑인들만의 이야기라 볼 수
없다. 솔로몬은 노예시장에서 자유인이었던 ‘동양인’도 만났다. 그 시절이었다면 ‘나’도 ‘노예’로 팔려 조금이라도 채찍질을 피해보려 몸을
웅크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뉴욕에 살 때 솔로몬이 ‘다른 흑인’들이 노예로 고통 받는 사실에 무감했던 것처럼, 일상 속에서 나 역시 ‘차별’로
인한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지는 않은가 생각해본다. 윌리엄 포드처럼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내 안위와 이익을 위해 눈감고 모른 체 하는 일들...
차별은 나 혹은 우리의 범주에 넣을 수 없는 집단을 '범주화'하는 행위이다. 요즘에는 차별보다 혐오라는 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청사에서 남부군 국기를 내린다는 기사를
봤다.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6월, 찰스턴 시 교회 총격사건 가해자가 인종전쟁을 일으키겠다며 남부군 국기 앞에서 찍은 사진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을 주도했던 주였다. 놀랍지 않은가. 남북전쟁이 끝난 지 150년인데 공공장소에
떡하니 걸려있는 남부군 국기라니... 노예제는 더 이상 '합법'이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방법만 달리할 뿐 다른 의미의 노예제는 여전하다는 생각도 든다. 노동과 경제는 뗄 수 없는 문제이니 이제는 인종, 문화, 성,
연령에 따른 인권 문제로 부상하는 듯하다. 진정한 글로벌이라 해야할까... 사회가 진보해도 여전히 제자리일 수 밖에 없는 걸까. 55년 전 쓰인
『앵무새 죽이기』가 오늘날 여전히 미국 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니, 어쩌면 편견/구별짓기는 사회가 발전한다고 해서 쉽게 타파될 수 없는 것일지도.
솔로몬이 지적하는 자연스러운 관습의 문제점과 타자화를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더불어 교육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