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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커피 한 잔 - 원두의 과학 ㅣ 완벽한 한 잔 1
래니 킹스턴 지음, 신소희 옮김 / 벤치워머스 / 2017년 9월
평점 :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아서 커피를 좋아하게 된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역시 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릴 적 부엌에서 큰 주전자에 믹스커피를 가득 담아서 끓이고 마시던 모습을 아직도 선연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비록 아라비카 커피를 구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믹스커피라도 진하게 설탕도 빼고 드셨으니 그래서일까, 아버지는 한창 젊은 나이에 미군에서 근무했다. 요즘 말로 치면 카투사 1세대였던 셈이다. 한국 전쟁 때 미군에서 복무를 했었기에 오죽 커피를 많이 마셨을 것이고 커피의 각인은 그 때부터였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콜레스테롤과 설탕을 떡칠한 믹스커피에서 시작한 커피의 달달함이 이제는 신맛과 쓴맛, 그리고 향기(아로마)로 전이되는 경험은 근자에 들어서였다. 무심코 마셨던 커피가 인식이 없었을 때와 인식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의 차이는 결국 무엇으로 나타나는지 가름하는 기준은 역시 책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사진을 인식하면서부터 사진 책이 늘어나듯이 커피를 인식하면서부터 커피에 관한 책이 한 권 두 권 읽게 되는, 그러니까 좋아지게 되면 파고 들어 가려는 습관은 사진에서 그랬듯이 커피도 마찬가지였다. 좋아하는 분야가 각성되면 책부터 찾게 되는 것. 커피도 예외가 아니었다.
왜 이렇게 커피가 사방 팔방으로 퍼져 나갔고 커피가 각광을 받고 유독 다른 음료도 많은데 해필 커피일까? 커피는 노동의 음료이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 흔히 사무실에도 하루에 커피를 얼마나 많이 마시는 건지 나도 헤아려 본 적은 없지만 보통은 서너 잔 이상은 마셔왔다. 최근엔 설탕 없는 커피 한 잔은 아침 출근 후부터 마시는 편이고 보면 일을 시작할 때 꼭 커피를 찾는다. 습관이 습성처럼 굳어진다. 커피를 마시기 전에는 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와도 같고 커피를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업무가 시작된다.
커피는 고농도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카페인은 각성제의 일종이다. 각성을 시킨다는 말은 주의력을 높이고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흔히 술을 마시면 취하고 주의력이 떨어지지만 커피는 취하지도 않으면서 각성을 시키고 주의력을 높이게 한다. 그래서일까 일반 사무실이든 커피는 무제한으로 공급되어도 누구 하나 아깝단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거 같아서이다. 커피 마시는 것이 일을 더 잘할 거라는 주의력 향상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바로 커피값을 아끼지 않는 원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커피는 노예의 음료였고 아프리카의 눈물이라고 커피 인문학에서 설파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일이든 생산력을 증대시키거나 업무의 효율성을 따지는데 있어서 투자하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느려지게 하고 흐트러져서 실수를 유발하는 것은 철저히 금지시키는데 커피는 여기서 정말 비켜서 있으니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이야말로 생산성을 더 높이게 한다면 커피에 구입하는 비용에 토를 달지 않는 원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침에도 커피 한 잔은 결국 각성시켜 일을 더 많이, 빨리 그리고 실수 없이 할 수 있게 하고 자본주의 시대에 아주 안성 맞춤인 음료가 된 원인이다. 결국 이 원인이 문화로 자리 잡고 문화가 습관이 되고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시지 못하면 허전하게 되는 원리가 숨어 있다. 점심때 밥을 먹고도 테이크 아웃으로 커피 한잔 빅 사이즈로도 마시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식후의 노곤함을 커피로 카페인을 넘김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면 커피는 자본가들에게는 아주 대단한 발견이 아닐까.
유명한 커피 광고에서 나오는 "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카피는 얼마나 교묘히 사고방식을 오도하게 하는지 섬득하다. 커피를 한잔 마실 때의 짧은 시간적인 여유는 곧 커피 한잔의 카페인으로 각성된 효율로 화나게 일해야 하는 팩트를 왜곡한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일어나서 몸이 부서질 정도의 기지개를 켜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려 낸 커피의 향은 하루의 시작과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낭만으로 오독하게 한다. 마치 담배물고 말을 달리며 소떼를 몰고 있는 카우보이의 마초적 이미지나 별반 다르지도 않다. 도시인의 삶이란 아침부터 일어나서 정신없이 출근 전쟁에 도착한 사무실에서 아침의 시작은 커피라는 공식이 주는 효율성에 이러 저리 치이는 삶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갈수록 착잡하기까지 한다. 유행을 만들고 문화로 자리 잡고 습관처럼 습성으로 인식하게 된 그런 이면의 원인은 아닐까.
머릿속의 뇌는 하루 종일 피곤하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카페인은 피로증상을 차단시켜 버리고서, "아니야 넌 피곤하지 않아, 더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야지. 그래야 가족도 건사시키고 생활할 수 있잖아. 피곤하면 자자 커피를 또 한잔 더 마시도록 해. 피로가 사라질 거야"라는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으로 보인다. 그러니 또 커피에 손이 가고 마시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악마의 유혹은 곧 자본가들의 유혹처럼 들리기도 한다. 커피의 한잔 여유가 곧 낭만이라는 법칙은 부드러운 유혹이자 향기로 전파된듯하다. 커피 한 잔의 휴식은 고강도의 효율에 대한 던진 미끼인 셈이다. 떡밥에 물린 미끼가 사람에겐 커피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이 미끼 떡밥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더 잘 마시게 할 수 있을까라고 하는 사람들은 온갖 잔머리를 굴려서 맛을 만들어 내는 기술로 발전시켜 왔다. 커피를 추출하고 갈아서 어떻게 적정 온도에 커피를 내리면 맛나게 할 것인가라는 숙제는 커피 기술자들에게 해내야 할 자본 세상의 명령이자 과제였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만들고 커피 맛 감별사를 만들고 이런 수요와 공급에 맞추는 별도의 거대한 커피 시장은 또 하나의 자본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유통되는 커피는 과연 얼마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커피를 마시는, 이 광범위하고 거대한 커피 제국을 구축했는지를 말이다. 이처럼 커피가 아주 싼 가격에 공급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온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인간의 감각 중에 향기를 맡는 감각은 개만도 못하다. 진화가 아주 덜된 감각일수록 각성은 더 진하다. 향기의 배척과 환영은 극명하고 거의 본능적이다. 시체가 썩는 냄세를 아주 강렬하게 배척하듯이 커피의 향기는 언제나 환영한다. 커피는 환영받기 딱 좋은 유혹이다. 감미로운 향기가 비로소 마시면 그 씁쓸함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쓴맛인데도 마시고 나면 입안에 청량감이 감도는 화사한 멘톨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옛날의 시인들은 술을 빚어 시를 지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작가들은 커피를 내려 글을 쓴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당장에 이 글을 쓰면서도 몇 잔의 커피를 계속 홀짝거리면서 써 나간 것인지 머그잔을 들고 내렸던 숫자가 글자의 숫자로 치환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취하면서 나온 시와 내려서 마신 글과의 차이는 어떤 의미일까. 커피를 마시면서 향기에 독하게 취해서 커피를 질근질근 까야 하는, 이 커피에 대한 글이 묘하게 모순된다. 칭찬할 수가 없을지언정 그렇다고 이 유혹에 안 넘어갈 수가 없다. 커피 카페에 딱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맡을 수 있는 커피의 향기는 그날의 대화에 기름칠을 하고 집에서 내린 커피는 온 집안의 미세한 잡스러운 냄새를 커피 향이 전부 물리쳐 제거시킨다. 집안에 은은하게 감도는 커피 향기에 각성된 마음이 글을 잘 쓰던 못쓰던 지면을 매우게 하는 힘을 주고 있다. 이 개만도 못한 코를 킁킁대며 커피 잔에 대고 올라오는 수증기는 곧 악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음을 글을 쓰면서도 느낀다.
이럴 바에 이왕 마시는 커피, 더 빡세게 중독되어도 무죄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원하는 취향의 커피를 마시게 할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커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일독을 강추한다. 물론 중독되어도 선택은 당신 책임~ㅎㅎㅎ
PS : **비 님 덕에 커피 내리는 기술 레벨 +1 UP !~. 커피 책 잘 마셨습니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