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임무

휴일 저녁, 딸아이 방에 있는 수험서들을 모두 정리했다.
자신의 키보다 더 높게 꺼내 놓은 책들이 제 소임을 다하고
더 이상 보관하기에는 필요도 없으니
휴지 버리는 날에 재활용 통으로 직행할 운명이다.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던 회한이었겠지.
아니 회한이라기보다는 시원함과 후련함이
먼저 앞서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의 임무는 점수였고 책의 애환은 성적이었다.
고작 일회용의 용도로 시험이 끝나는 순간 폐기와도 같고
수험용 책의 수명은 시험과 함께 결별한다.
그러고 보니 수험 책과의 이별식이 사진 한 장으로 기념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기념적 동물이니까.
점수의 애환이 책의 애환으로 녹아 있기에,
헤어지기에 그 회한을 책을 쌓아놓고 사진으로 기록한다.
'그동안 수고했어.'
다시 분해되고 재조립되어 무슨 책으로 태어나든,
책은 나무의 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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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올해 대입 수험생 59만 명이라고 한다.
59만 명이 버린 수험생용 참고서 문제집의 책들.
과연 얼마나 될까?
또한,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책이 되었을까?
혹은 다른 시험의 수험생용 책들까지 합치면,
그 량은 어마어마할 거다.
나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