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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평점 :
마태복음 6장 13절의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과연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경쟁 사회에서 시험이 없을 수가 있을까? 시험에 들게 하지 말고 악에서 구해달라는 게 가능이나 할까. 시험 자체가 어쩌면 선택의 기준이 되는 사회체제에서 시험 자체가 악과도 같다. 물론 방식은 다르더라도 말이다.
현재의 우리는 부단한 시험의 연속이다. 나부터도 작년에 늙어가는 머리를 테스트, 즉 시험하고자 자격증에 도전했었던 적이 있으니 그 과정의 고역이야 나이가 들수록 더 미칠 노릇이었다. 만약 취업에 한시라도 절박하게 해야 하는 사람의 자격증 시험은 더 치열할 것이고 보면 자격증은 생존의 테스트가 되어 버린다. 관문의 통과 여부에 따라 신분은 달라지고 삶의 방편이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서 그렇게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려고 시험을 치른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자격을 줄 수가 없다. 선발의 방식은 지독히도 한국적이다. 게다가 한국적인 자격증 제도에 있어서의 수요와 공급에 있어서 더더욱 치열하게 되다 보니 시험 문제는 배배꼬이는 문제가 자꾸 나온다. 지난 9급 모 공무원 시험 한국사 시험에서 어느 강사가 노발대발 욕설까지 해대며 그따위 문제를 내면 안된다라며 카리스마 있게 일갈도 하는 적이 있었다. 하지만 원하는 바대로 모두 인간의 조건에 따른 자격을 모두 부여할 수 없다면 여기에 어떤 선발하기 위한 제도는 계속 있어 왔다. 조선시대에 과거제도에서부터, 오늘날 대입시험과 자격과 등단과 등업에 대한 시스템들을 말한다.
마침 오늘이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9급 공무원 선발 시험이 있는 날이었나 보다. 토요 당직이라 출근하는 길에 수험장 학교를 지나는 길을 거처 왔는데 많은 수험생들이 학교로 들어간다. 긴장한 모습들이 역력하다. 합격과 불합격의 차이에 대해 얼마나 공부한 것인지 그날의 운은 얼마나 따라 주는 것인지 공부해서 아는 문제가 나올 것인지 등등 오늘날은 경쟁률이 치열하다. 예전에 입사시험과 오늘날의 입사시험은 분명 다르고 관문이 더욱 좁게 느껴진다. 물론 관문이 좁고 경쟁률이 높으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는 기도가 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통과할 문은 좁고 선발할 사람도 적고 들어가고자 하는 공급은 넘친다. 마치 난자로 향하는 정자의 경쟁만큼.
이 책은 어제 주문하고 당일 배송받고 바로 페이지를 넘겼다. 오늘 출근인데도 불구하고 새벽까지 모두 읽었다. 책을 한번 펼치면 도중에 닫는 게 좀 어려워하는 스타일의 독서라서 계속 넘기다 보니 새벽까지 넘겼다. 피곤은 쌓이며 잠도 오고 결국은 마지막 장을 덮으며 짧은 탄식의 주기도문이 터져 나온다. "주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라고." 그러나 우리 사회는 기도문처럼 절대 시험에 들게 하지 않을 방법이 아쉽게도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은 저자가 공모전 출신의 소설가이다 보니 문단에 등단 시스템과 입사시험 채용 시험과 비교 분석하고 다년간 기자로 활동하다 보니 르포 형식의 분석적 다큐 산문이다. 등단과 비등단의 입장과 등단의 시스템에 대한 설문과 인터뷰, 그리고 분석과 저자의 견해까지 두루두루 밝혔다. 아무래도 작가로 소설가나 시인으로 등단을 준비하는 분들이 많이 읽게 될 것처럼 보였던 책이다. 이런 등단 시스템에 비교 분석 대상으로 대기업의 회사 채용 시험이나 입사시험의 문제를 들추었고 나아가 각종 자격시험에 대한 문제, 이를테면 오늘날 핫한 뜨거운 감자 같은 사법시험과 로스쿨제도에 대한 문제도 다루었다. 대학 입학시험의 문제나 각종 입문 자격증 시험에 대한 언급까지. 이 책의 제목처럼 합격에 따른 게급적 신분적인 차이와 합격 후의 공고해지는 합격자들의 카르텔까지 이른바 시험의 합격과 불합격. 합격 이후의 합격자들의 태도에 대한 사회적인 비경쟁 구도의 끼리의 문제까지 파헤쳤다. 하기야 단행본 하나로 모든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암묵적인 카르텔에 대한 금기를 깨는 사회적인 공론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작가의 견해까지 들어냈다.(책을 요약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예를 들자면, 작년에 대입 수험생이었던 딸아이를 뒷바라지하면서 나도 수험생 부모의 입장을 겪었다. 수시로 갈 것인지 정시로 갈 것인지 고민부터 수시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수시 준비에 내 몰렸다. 정시는 한 번의 시험 점수로 지원하는 것과 수시는 3년 내내 꾸준한 준비의 차이였다. 수시도 포기할 수 없었고 정시도 포기할 수 없었는데 결국 정시보다는 3년 동안 준비한 것이 아까워서 수시로 지원을 했었다. 지원하고 나서 이제 협격한 학교를 선정하고 학교는 비교적 잘 다니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글쎄 수시에 입학 성적이 발표되는 걸 보니 아연 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수시는 한 분야에 꾸준한 활동과 노력 그리고 성적으로 1학년 때부터 준비해야 했었는데 수시도 다 같은 수시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게 좋아할 만한 영문학을 꿈꾸고 준비했던 영어학과는 모두 떨어졌다. 문제는 어떻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신의 진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타켓을 삼을 수가 있느냐라는 거였다. 그럼 중학교 때부터 이미 자신의 적성과 내 평생의 과목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사람의 미래의 진로는 다양성이고 어떤 것을 섭렵해서 진화해 가는 과정이라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데 한번 정해지면 바꾸기 어렵다는 것도 이상했다. 영문학은 전혀 엉뚱에게도 한 번도 따져 보지도 않았던 경영학으로 합격했으니까 놀라지 않겠는가 말이다.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어이없을 수가 있나라는 것에서부터 지금은 차라리 영문학보다 경영학이 잘 된 거라 위안을 삼는 걸 보니 좀처럼 종잡지는 못했다. 입학 성적이 공개되고 나니 가까운 대학에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었는데 눈치작전에 너무 쫄았다. 그러고 보니 인생이란 역시 운빨의 선택이라는 특정할 수 없는 장난 같은 것도 분명히 있긴 한가 보다.
따라서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 보니 우리나라의 대학 입학 제도는 얼마나 많은 부침은 거처 왔는지 모두 따져 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져 왔고 실력도 운도 모두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딸아이가 대학을 입학하고 나니 대학 입학과는 멀어졌다. 앞으로 자기 아이가 대입을 목전에 둔 부모라면 대학 입학 이후에는 거의 무관심하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자격증과도 마찬가지다. 자격증에 도전하기에 대한 입장과 합격 후의 입장은 180도 달라진다. 내가 딸아이의 대학 입학 전과 입학 후의 관심도가 전혀 달라지듯이 자격증의 합격의 이후가 그렇게 달라진다. 자격증을 합격하고 나서는 자격증의 시험은 나의 관심사에서 멀어졌고 합격 후에 그 자격증에 대한 민감도는 낮아졌다.
비슷하게 문단에서도 등단 이후의 등단에 대한 문제점과 관심은 현저히 낮아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여기서 저자의 관심을 높게 사는 대목이다. 자신이 공모전에 등단한 작가였지만 등단후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등단이란 본질에 대해 고민한 부분이었다. 선발과 채용. 그리고 그 이후의 대한 합격자들만의 끼리 동류의 의식에 대한 카르텔에 대해 부각시키려 했다는 점이다.저자는 우리나라가 이런 선발 과정이나 채용이나 등단에 대해 좀더 개방적인 정보의 오픈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로써도 적극 동의한다. 재능 없는 사람이 오픈된 정보를 통해 적극 파악하게 됨으로써 깜깜이 지원을 막고 사회 전체적으로 비용과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입사시험에서도 기업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도 제한적이고 알려져 있지 않고 수험생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 결국은 폐쇄적인 정보의 부재를 들었다. 그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서도 사직을 고민하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일단 무조건 들어가야 좋다고 했는데 막상 들어가서 직접 겪어 보니 이 업무가 자신의 생각이 나 취향에 전혀 맞지 않을 때 혹은 기대치에 비해 형편없을 때가 발생하면 그동안 합격하는 과정의 노력들은 모조리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비일 비재하지 않을까라는 점이다. 대기업에 그렇게 어렵게 입사하고 1년도 다니지 않고 사표를 내는 사람들이 그래서 생기는 이유와도 같다. 뭐 빠지게 자격증을 딸려고 공부해서 합격해서 어느 기업에 입사하고 보니 자격증이란 아무런 효과도 발휘되지 못하는 직무가 닥쳤을 때의 시행착오는 도저히 어디서 회복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합격한 자격을 가진 사람의 입장은 합격하기 전의 입장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고 자격증을 한 번만 따고 합격하면 이게 평생 죽을 때까지 효력이 발생하는 점도 문제로 들었다. 이를테면 변호사나 의사 각종 국가 자격증 등등이 합격 이후의 관리는 전무하고 자격 이후의 새로운 지식은 나태에 빠져든다는 점도 언급하였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입문의 과정과 입문 이후의 문제를 작가는 심도 있게 다루었고 어떻게 보면 이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보부재는 사회적으로도 너무 많은 정력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저자의 불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오픈되지 못할까?는 물론 합격하고 난 이후의 사람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높다란 성벽 안에 사는 사람과 성문 밖에 사는 사람의 차이. 그리고 성안에 사는 사람들끼리의 차별. 너는 서문 출신 나는 동문 출신으로 나누고 갈려서 서로의 출신에 따라 차별되는 것도 저자가 따져 묻는 질문지와도 같다. 흔히 군대서도 육사 출신이냐 삼사 출신이냐 ROTC이냐 학사 이내로 나누듯이 같은 업에서도 진골과 성골로 나누는 신라시대의 골품제와 뭐가 다른지 우리가 이 시대의 고역에 대해 아프게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 정말 답을 내기가 어려운 문제인 것만은 틀림없다는 난제에 답을 찾기란 너무 어렵다는 거. 뭐 결론이다.
"나를 잘 팔아 먹을려면 일단 간판 부터 내 걸어야 한다. 그것도 근사한 간판이라야 팔린다. "
(오늘 조카놈 결혼식과 당직이라 출근도 덩달아 겹치다보니 리뷰는 급조되었습니다. 졸속 리뷰라 두서없음에 양해를!~)
추가 : 참고로 사진도 간판이 있다. 사진관련 학교, 각종 사진공모전, 혹은 어느 대가의 문하생 이나 써보터 출신, 공모전 입상횟수, 작품전시회의 횟수에 따라 점수화된 작가협회 등록되면 작가가 되는 길이다. 나의 간판을 걸려는 조건들이다. 그러나, 철저히 간판을 무시하고도 사진은 찍을 수 있다.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