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복기해보면, 애플에서 획기적으로 스마트폰이 나온 후, 일대 선풍을 일으키며 폴더형 폰을 금방 사라져버리게 만들었다. 이른바 스마트폰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전화가 가능한 손바닥형 컴퓨터인 셈인데, 손바닥만 한 컴퓨터의 세상은 그야말로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노는 것처럼 노트북보다 공간의 제약에서 더 자유로웠다. 기능은 맥 PC와 비슷했었지만 애플의 디자인이라는 게 한마디로 단순함, 간단 간편함, 기능의 압축형 고농축, 그리고 화이트. 여기에는 스티브 잡스라는 it의 혁명가가 애플의 뒤를 바티고 있었다. 잡스가 주장했던 인문학이 애플 디자인의 철학으로 나타났다. 그래서인가. 그때부터 it기업은 폴더를 접고 너도나도 스마트폰으로 따라가기 바빴다. 기술이야 비슷하게 구현하고 베낀 듯이 따라 했는데 디자인은 그 정체성이 들쑥날쑥하며 비슷하게 수렴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 이면의 디자인이란 것의 배경을 쫓다가 잡스가 인문학에서 디자인이 나왔다고 주장하니 그때부터 인문학 강의가 붐을 이루었다. 인문학이 어디 따라 한다고 해서 인문학을 통해 구현되는 감각적인 디자인을 만들어 내고 싶었던, 그 얄팍함은 한편으로는 전혀 인문학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한때의 광풍이 이내 잠잠해지고 말 것이라고 예측은 왜 빗나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래전부터 인문학은 있었는데 바람이 일든 잠잠하든 여전히 인간의 사회에 있는데 결국 인문학적 마인드를 크리에이티브화 시켜서 애플의 스마트폰처럼 잘 팔리는 물건에 관심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다시 잠잠할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은 결코 유행가 가사처럼 바람이 불었다 수그러드는 것도 아닐 텐데 여기저기서 인문학 강의가 이루어지고 인문학적 소양이 늘어나서 획기적인 제품이 나올 거라는 착각에 빠졌다. 아무리 인문학 강의를 많이 하고 유명한 인문학 강사를 초빙해서 강연을 했는데도 획기적이기는커녕 수강자는 졸기만 바쁘다. 물론 인문학 강의로 유명해진 분들인 메뚜기도 한철이 된 듯이 온통 불러냈으니 즐겁게 바쁜 비명이 높았다. 게다가 일 년에 몇 권의 시집을 사고 읽었으므로 나도 인문학적인 활동을 다했다는 착각과 강의 수강 경력에서 자위만 할 뿐 이것이 크리에이티브로 연결될 리가 없다. 다 알잖는가. 평소에 찾아다니는 그 휴머니티에 대한 갈구의 인문학이 없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갈증이 일어나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듯이 인문학을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문학이 무슨 코카콜라의 이산화탄소의 자극처럼 짜릿한 음료는 아니었던 이유이다. 철학자가 급히 달리는 걸 보았는가. 느리게 천천히 뒷짐지고 곰곰이 걸어야 사유가 나온다. 헐레벌떡 달리며 인문학으로 빨리 새로운 획기적인 제품이 튀어나와서 기업의 매출을 빨리 팍팍 올리고자 하는 조급한 기업가들의 탐욕에 인문학은 절대로 반응할 수 없는 비반응형 속성임을 알 턱이야 없었을 것이다. 인문학은 무수한 사유를 통한 실패와 연구의 반복과 사상의 탐구로 긴 시간을 요구하는 것들일 텐데 이걸 조루형 자위로 사정을 빨리 하라니 내킬 리가 없다. 쫀다고 화투장 쪼듯이 될 리가 없는 게 인문학이다. 인간의 탐구는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듯이 쫀다고 되는 게 아니다.

 

책은 인간의 전체적인 지식을 탐하는데 여전히 유용한 인문학의 도구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지역에서도 대형 서점이 문을 닫은지 한참 오래되었다. 비단 지역뿐만 아니라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한차례의 열풍이 잦아들 무렵, 이제 아름아름 천천히 인문학의 바람이 불고 있다. 뚝배기처럼 서서히 끓어오르는 작은 그릇 같은 진국이 나오는 곳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슨 성과 따위의 냄비처럼 끓어대는 것이 아니라 동네 골목길에서 만나는 인문학이 늘어난다. 작은 책방이 한두 군대씩 골목길 동네에서 자리 잡는 걸 느낄 수 있다. 같은 지역에 있는 알라딘 유저 한 분의 소개로 한번 방문하게 된 책방. "서재를 탐하다"에 들리게 되었다. 동네 골목길 사랑방처럼 서점이다. 동네 주민들, 또는 지역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려서 책을 통해서 소통하고 교류하는 공간이었다. 어쩌면 개별적인 서재와도 같고 혹은 공동의 서재의 책장에 책이 빼곡히 정렬되어 있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인문학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왠지 여기에 있으면 책 읽기의 진도가 무척 빠르게 몰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때로는 동네 주민들의 지식의 작은 네트워크의 거점이 되기도 하고 각자의 책 읽기 경험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책방이 하나 둘씩 문을 연다는 소식은 척박한 도시의 부분별한 소음으로부터 차분한 클래식의 선율이 몸과 마음을 휘감는듯하다. 대형 프랜차이즈의 넓은 매장은 돈 냄새가 진동을 하지만 작은 책방은 완연한 소박함이 핵심이다. 저예산 저 비용으로 가꾸었지만 단아한 새댁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온통 물질문명의 틈바구니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황무지를 달리다 지친 사람들이 발견해 내고야 마는 오아시스인 것처럼 책방은 자본의 대로 뒷 한편에서 발견되는 골목길의 정서를 닮았다. 현대의 개별적 파편화된 우리네 일상에서 잃어버린 골목의 정서는 곧 사람과 사람의 단절된 네트워크이다. 아무리 온라인으로 만나는 사이라 할지라도 그 숨소리와 목소리는 늘 그리운 법이다. 무미건조한 온라인이 아니라 공동의 시간을 함깨 부비는 동시간대의 만남이 책방의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네 뒤 골목길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책방이 인문학의 거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 속에 파고 들어서 항상 학문과 지식과 사유에 목이 마른 사람들에게 우물가의 물 한 바가지 같은 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역할이 동네 책방에서 추구해야 할 소명이 아닐까 한다. 어디 가서 책에 대해 토론하고 이런 토론을 통해서 서로가 교감하고 함께 연대로 나눌 수 있는 작은 거점의 역할. 세상이 온통 타락의 돈맛에 찌들려서 오늘도 갈피조차 잡지 못할 때 지나가다 만나는 책방이야말로 망망대해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등대가 아닐까 한다. 등대가 인생이란 고해의 바다를 건널 때 암초에 걸리지 않게 우리를 이끌도록 신호의 역할이다. 난파당하지 않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그래서 끝없이 우리의 인간성에 대해 따져 묻는 휴머니즘에 대한 인문학의 거점 포인트가 동네 책방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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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5 2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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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5 2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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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6 0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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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6 0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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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6 1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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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6 14: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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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6 15: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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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8 1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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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6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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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6 0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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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5-06 15: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동네마다 서점, 빵집, 레코드 가게, 슈퍼가 있었던 예전이 기억나네요... 동네마다 자신만의 색깔있는 삶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yureka01 2018-05-08 09:30   좋아요 2 | URL
동네 골목길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사람들이 모여들면..
당장 건물주가 임대료 부터 인상하게 됩니다.

가난하지만 자기 정체성 지키는 것도 위험한일입니다.
임대료 인상에 임대료 올려주지 못하면 쫒겨 나거든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생기게 됩니다..아휴.....

cyrus 2018-05-08 1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주지감 공식 카페에 이 글을 공유하겠습니다. ^^ - 두 번째 사진에 나온 손의 주인 왈-

yureka01 2018-05-08 14:09   좋아요 1 | URL
흐..물론이죠..공유가 좋지요..^^..ㅋ

강옥 2018-05-08 2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버이날을 앞둔 연휴라 아마도 따님이 다녀가셨지 싶네요.
여대생 따님은 서울살이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아빠 닮아서 인문학적 사색도 많이 하고, 독서도 많이 하는지?
우리 동네 책방 없어진 지 꽤 됐어요.... 지금은 빵집으로 변했어요 ㅠ.ㅠ
책과 빵, 참 미묘한 대비죠? ㅋㅋ
빨간 날 사흘동안 정끝별, 나희덕, 김선우, 복효근 시인을 만났어요.
머리맡에 늘어놓고 이 책 저 책 뒤적뒤적-그래도 저분들 암 소리도 안하던데요 ㅎㅎ

yureka01 2018-05-08 23:05   좋아요 1 | URL
내려 왔습니다만,,흐 ..돈이 많이 들어가더군요..
머리한다고 몇만원. 친구만난다고 또 밥값..사촌 동생 만난다고 또 얼마..
입을 옷없다고 해서 얼마..ㅎㅎㅎㅎㅎ
요즘 멋부리는 이유가 다 있더군요..한창 좋을 때라고 했습니다..

책 대신에 빵이라...하기야..빵은 너무 직접적인 양식이니 말입니다....
네 차라리 암소리 안듣는게 나을지도 몰라요..^^.

2018-05-11 1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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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2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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