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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평점 :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주인공을 쫒아가는 것이다.
주인공이 듣는 음악, 그가 마시는 음료나 술, 혹은 담배와 책들, 그가 보는 예술작품들.
여기 이 책의 주인공은 나로서는 공감할 수 없는 엄청난 매력을 가진 남자다.
거칠고 쓸쓸한 바람같은 존재다. 잠시 가둬둘 순 있지만 어느 계절, 어떤 날 훌쩍 열린 틈으로 사라져 버릴 바람.
형사 해리 홀레.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할까. 마초기질에 술 담배에 바람이 나도 대부분의 여자들은 해리에게 목을 맨다. 언제든 해리와 자고 싶어하며, 해리를 믿고 지지한다.
뭐 이런 전개가 있나 싶지만, 실상 어릴적 봤던 로맨스 등도 보면 한 여자를 향한 숱한 남자들의 사랑이 있지 않은가. (트와일라잇 시리즈만 해도 뱀파이어고 늑대인간이고 간에 종을 초월한 삼각관계가 펼쳐지지 않는가)
그럼에도 이 스릴러엔 뭔가가 있다. 해리홀레의 매력뿐 아니라, 문장의 매력.
스릴러 문장이 이렇게 좋아도 되는걸까.
범죄나 스릴러이기에 앞서 상처와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해리 홀레에 대한 이야기다.
닥터 마틴, 그가 듣는 음악들, 술과 담배.
(닥터 마틴은 반가웠다. 과외비 받아서 처음 산 신발이 닥터 마틴이었다. 어찌나 질기고 튼튼한지 꽤나 오래 신었던 기억이 난다. 술과 담배는....내 절친은 슈퍼집 딸내미였다. 그래서 내 모든 일탈의 중심엔 언제나 그 친구가 있다. 몰래 갖고 나온 담배와 소주.....담배는 취향이 아니었고, 소주는.....생략한다. 첫 소주 후 다음날엔 머리가 갈라지면서 태권브이가 나오는 줄 알았다. 숙취는 끔찍하다. 그가 듣는 음악들을 찾아봤다. 내 취향은 아니다.)
스릴러 소설을 읽다보면 평범하고 지루해보이기조차 한 사람의 분노가 가장 깊고 지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류의 소설을 읽게 되면 가장 선량해 보이는 사람을 불신하게 된다.
평범하지만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가장 외로운 내면을 가졌을 사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지만, 스스로에겐 좋은 사람일 수 없는 사람.
그저 범인찾기 책만은 아니다.
끔찍한 범죄와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는 법조항들.
가해자의 인권을 위해 오히려 내팽겨쳐지는 피해자의 인권.
법과 자력구제. 머리로는 법에 맡겨야 한다하지만, 마음 속 분노는 다른 선택을 상상하게 한다.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쉽게 빠져나간 뒤 다시 되풀이 되는 범죄, 너무 빈약한 형량과 최고급 호텔같은 교도소.
77명을 죽인 노르웨이의 브레이브비크가 고작 21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게임기 플스2를 최신버젼인 플스3로 바꿔달라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 이 책 속 로아르 보르의 방식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든다.
이 책 앞부분에 잠시 데미안 허스트의 <천사의 해부학>이란 조각이 언급된다.
카미유 클로델의 재능을 높이 산 스승이자 그녀에게 로댕을 소개해 준 알프레드 부셰의 작품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지만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천사의 모습을 한 조각, 그러나 반쯤은 해부가 된 모습.
예전 과학실에 있었던 인체모형도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천사도 인간도 악마도 해부를 하면 모두 같다는걸까. 외모의 차이도 피부 한꺼풀 차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담고 있는 상념도 고통도 생각도, 그들이 하려는 일의 의미도 행하는 태도도 모두 다르다. 있어야 할 자리에 심장은 뛰고 있고, 있어야 할 자리에 꿈꾼다는 뇌가 있지만, 누군가의 심장과 뇌는 잔인한 살인과 범죄행위앞에서만 뛰고 꿈꾼다. 그런 이들의 마음을 해부해 패턴을 찾거나 미리 알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다가 < 마이너리티 리포트>속 결말이 생각나 그것도 아닌듯 하다. 찰나의 순간에도 수십번 바뀌는 마음을 어떻게 예견하고 바꿀 수 있겠는가 싶다.
( 책 속 범죄자가 칼과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느꼈다. 때와 장소 기분에 따라 각기다른 칼들에 감정을 대입하며 스스로를 강하다 느낀다. 칼처럼 날카롭고 힘이 있으며 유려하고 강인하다. 그러나 실제 그는 변호사를 통해 교묘히 사실을 왜곡하며 피하려는 미치광이일뿐이다. 그런 인간을 세상 밖으로 돌려보낸 법체계 또한 공범이다. 교화의 장소라는 교도소가 정말 이런 연쇄살인마 사이코패스에게 도움이 될까.)
잘 웃고 잘 참는다. 속내를 알 순 없지만 화를 잘 내지 않으며 친절하다. 곤란한 부탁도 잘 들어준다.
이런 사람들에게 잘하자. 괜히 분노마일리지 쌓게 하지 말고 .
그중 최고는 단연 자바산 칼이었다. 길고 얇고 비대칭인 칼, 뱀처럼 휘어지고 칼자루가 달려 있었다. 순수하고 여성스러운 아름다움, 가장 잘 드는 칼은 아닐지 몰라도, 뱀과 미녀가 홀리는 것 같은 기운이 서린 칼이라 사람들로 하여금 명령에 복종하게 했다. 그에 반해 그의 소장품에서 가장 잘 드는 칼은 "람푸리"라는, 인도마피아가 애호하는 칼이었다. 얼음으로 만든 것처럼 냉기를 내뿜고 매혹적일 만큼 못생긴 칼. 호랑이 발톱 모양의 이 "카람빗"은아름다움과 효율성이 결합된 칼이었다. 하지만 다소 지나치다 싶게 계산적이라 마치 화장을 떡칠하고 몸에 꽉 끼고 가슴이 깊게 팬드레스를 입은 창녀 같았다. 스베인 핀네는 그 칼을 좋아한 적이없다. 그는 순수한 것들을 사랑했다. 처녀성. 그리고 관념적으로 단순한 것을 사랑했다. 칼소장품에서 그가 좋아하는 칼처럼. 핀란드의 "푸코" 칼. 닳고 닳은 갈색 나무 칼자루에 어울리지 않게 짧게휘고 끝이 뾰족한 칼날이 달린 칼,
스톨레는 살인자들은 책을 읽지 않거나 읽더라도 논픽션만 읽는다는 가설을 세운 사람이다. "폴 마티우치라고 들어봤나?" 스톨레가 물었다. "심리학자이자 과학수사 자문으로, 폭력과 살인 전문이야. 그 사람은 살인자를 크게 여덟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자네와 나는 앞의일곱 가지에는 들어가지 않아. 그런데 마지막 여덟 번째에는 누구든 들어갈 수 있어. 그 사람은 그걸 ‘외상‘ 유형이라고 부르고. 우리도 우리의 정체성에 단순하지만 심각한 공격을 당하면 그에 대한 반발로 살인자가 될 수 있어. 우리는 그런 공격을 모욕으로, 그야말로 견딜 수 없는 차원으로 경험하거든. 그런 공격은 우리를 무력하고 무능하게 해서 만약 반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존재할 자격도 없는 무력한 상태가 되지. 물론 아내에게 배신당한다면 그렇게 느낄 만하지."
"음. 그러니까 내가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는 건데, 나도 필요에의해서 사람을 죽인 거야. 그래, 그들이 매일 밤 날 찾아오긴 하지만 지금도 난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겨. 매번." "당신은 PTSD에 걸린 8퍼센트예요. 자기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할 조건이 충분한데도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요. 무의식중에,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을 지울 방법을 찾는 사람들 지금도 책임을 떠안으려 하는"
"한계가 있어요. 법대로 하면 아프간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노르웨이 군인은 본국으로 송환되어 하자라족에겐 오성급 호텔 같은교도소 감방에서 짧게 복역했겠죠. 나는 그자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했어요, 해리. 할라와 유가족이 마땅히 요구해야 할 대가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자행된 범죄에 아프간의 형벌을 내린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라켈을 죽인 자를 쫓는군요. 그런데 동일한 원칙을 따른다면 노르웨이에서 자행된 범죄는 노르웨이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죠. 이 나라에는 사형제도가 없어요." 노르웨이에는 없어도 나한테는 있어요, 해리. 당신한테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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