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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서점 믹스테잎 - 종이에 녹음한 스물일곱 곡
초사장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3월
평점 :
초원서점 믹스테잎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꾹꾹 눌러쓴 시 한 편을 전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서 조심스레 건네곤 한다.
4년간 음악서점을 운영했던 작가님이 고마웠던 분들에게 건네는.
믹스테잎같은 에세이다.
그래서 제목도 <초원서점 믹스테잎>
마테오스톤맨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많은 음악가와 음악, 그 속에 숨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새벽에 즐겨듣곤 했던 라디오 프로 같다고나 할까. 새로운 음악, 그리고 즐겨듣던 음악, 눈물나게 하는 음악,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들이 시대에 맞춰, 큐알코드로 담겨 있다.
아날로그같은 감성과 이야기에 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지만, 그 큐알코드 덕에 음악을 감상하며 글을 읽을 수 있어 더 좋았다.
막연히 좋은 음악도 있고, 그냥 좋아서 들었는데 시대정신을 반영하거나 혹은 슬픈 사연, 또는 반전의 이야기가 담기기도 한다.
1969년 8월 베델농작의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울려퍼졌던 지미 핸드릭스의 미국 국가는 반전을 담은 노래로 변신한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알지만, 그 순간 지미 핸드릭스의 손에서 너무나 낯설게 들렸을 그 노래는 베트남전의 민낯을 노래한다.
“50만 개의 후광은 진흙탕과 역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조물주가 흘리는 기쁨의 눈물로 싯고 마셨으며,
진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사랑은 우리 모두를 감쌌고 음악은 마법이었다.
우리가 마음의 장벽을 넘어섰을 때,
손에 손을 잡고 평화로운 인류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을 때,
우리는 하나였고,
음악과 공간의 움직임을 타고
진주 방울 같은 비를 맞으며 춤을 췄다.
우리는 한데 모여
진주처럼 떨어지는 빗방울과 더불어 춤을 추었다.
음악은 마법이고
마법은 인생이다.” (지미 핸드릭스의 시 중에서... 106페이지)
https://youtu.be/wo_ijYTcu3A
키다리 미스터 김이 단신의 독재자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짓말이야 가 불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고, 어둡고 몽환적인 이유로 수많은 곡들이 잘려나가던 시절, 불법 음반을 내던 정태춘과 아예 가사를 지운 연주곡으로 반항한 서태지의 <시대유감> 이야기도 담겨있다.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을 들으며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가난과 힘든 삶을 드러내는 것은 아! 대한민국의 그 시절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30년대 초반 유행한 만요 라는 장르는 풍자와 해학이 가득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쾌한 시골영감> <오빠는 풍각쟁이> <세상은 요지경>등이 이 장르에 해당되며, 만담 형식으로 불리는 노래였다.
전화로 사랑을 고백하는 신식노래인 <전화일기>는 다양한 언어가 가사에 들어가며, 중일전쟁으로 전시체제에 들어간 일제에 의해 금지곡이 되었다. 정말 재미있고 웃긴데다가, 그 시절의 모던보이들의 행태가 드러난다.
https://youtu.be/ZIcIThm1A2s
뉴올리언스와 부두교를 대표하는 음악가이자,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론 적재적소에서 음악을 펼친 닥터 존.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나 승려가 된 레너드 코헨의 <Amen>
<접속>에 삽입되면서 낭만적인 노래의 대명사가 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는 보컬 루 리드와 셰리 밸빈의 사랑이야기지만, 실제론 그리 낭만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으로 끝난 이야기라고..
실제로 벨벳 언더그라운드 하면 노래보다 내겐 앤디워홀의 표지그림이 먼저 떠오른다.
신랄하게 세상을 비난했던 엘비스 코스텔로지만 우리에겐 낭만적인 노팅힐의 <She>로만 알려져 있다는 것.
요즘 모 드라마에서 “나를 추앙해”를 외친다던데, 이보다 먼저 “나를 존중해!”를 외쳐 여성과 흑인인권의 대명사가 된 아레사 프랭클린의 <Respect>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지비스 코커의 <Common people>
“너는 가난이 멋있어 보이는 거잖아. 인생이 무의미하고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갈 곳조차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어떤 감정인지 넌 절대 이해 못 해. 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겠지. 그리고 그들이 열과 성을 다해 사는 동안 넌 구저 왜들 그러나 싶을 거야.” (242페이지)
시인이 되고싶었던 14살 소년노동자 장덕수가 쓰고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
흑인들의 고난과 인종차별의 힘든 삶을 위로하기 위해 “환난의 한 가운데, 박해의 한가운데에서 내 곁에 머무르라”는 성경구절을 따서 만든 가스펠송 <Stand by me>는 스티븐 킹의 소설에 의해서 다시 한 번 대박이 난다.
삶이 고달플 때, 누구나 옆에 있어주길 바란다. 힘든 그 삶속에서 내 손을 잡아주고 위로가 되어주는 누군가...그래서 이 노래는 이렇게 오랫동안 불려지고 사랑받는게 아닐까.
누구나 위로가 되는 노래 한 곡쯤은 있을 것이다. 울고 싶을 때 듣는 노래, 즐거울 때 듣는 노래, 혹은 누군가와 함께 떠오르는 노래.
친구랑 하굣길, 버스에서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끼고 들었던 음악들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이승환 서태지 유희열 유재하 동물원 신해철 휘트니 휴스턴 마이클 잭슨 빌리 조엘 엘튼 존 그리고 수많은 노래들..이 내 믹스테잎을 채우고 있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