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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도그
토머스 새비지 지음, 장성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평점 :
드넓은 초원의 산들 사이에서 개를 발견했다. 쭉 뻗은 듯한 그 산의 모습은 영락없이 개를 닮았다. 달리는 개를 보며 필과 함께 웃었을 브롱크 헨리, 어쩌면 필에게 브롱크 헨리는 모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었을까
완벽주의자와 이기주의자, 까칠한 모습, 모든 것에 자기가 정한 규정이 있다. 털도 없는 새하얀 몸에 거친 손을 가진 목장주 필이다. 여전히 소년같은 몸을 가졌고, 소년의 놀이에 탐닉한다. 첫 장면에서 소들을 거세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필은 브롱크 헨리가 눈앞에서 죽던 날, 아니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던 그 날, 스스로를 거세시킨 것인줄도 모른다. 거세된 필은 여전히 소년으로 머물며, 자신의 틀 안에서 사람들을 나눈다. 카우보이인가 아닌가. 남자인가 아닌가, 암사내인가 진짜 사내인가. 필은 사실 자신을 가장 경멸하는지도 모른다. 초원을 가르며 말을 달리고, 산과 구름과 갖가지 지형 지물들을 보며 상상력을 발휘해 온갖것을 만들어 내던 시절,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을 느끼던 그 시절을 도려냈다. 도려내진 그 시절을 철조망에 걸쳐놓은들 까마귀가 쪼아댈까, 땅에 던진 들 개들이 먹을까.
그런 필과 다른 이들이 있다. 다정함을 가지고 태어난 의사 조니와 필의 동생 조지다. 둘 다 웃음이 아름다운 로즈를 사랑한다. 먼저 로즈를 사랑했던 조니는, 필에게서 받은 모멸감을 이기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남겨진 아들 피터는 종이꽃을 접는 소년으로 자란다. 조지와 로즈는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한다. 그리고 필의 모멸속에서 로즈는 비틀거리고, 자신을 잃어간다. 웃던 로즈도, 선량하고 착했던 로즈도 정직했던 로즈도 술병에 기대 엎어지고 분해된다. 사라져서 먼지가 되어버릴 듯 로즈는 위태롭다. 필에게 그런 로즈는 걸림돌이었고, 피터의 걸림돌은 필이었다.
이 소설의 끝은 해피엔딩일까. 표독하고 잔인했던 필이 자꾸 생각이 난다. 로즈는 숨겨둔 술병들을 제자리로 갖다놓을까. 피터는 자라서 다정한 아빠를 닮은 의사가 될까.
소떼를 몰고가는 흙먼지와, 카우보이들의 장화가, 음정이 맞지 않는 로즈의 피아노 소리가 황량한 그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아름답고 멋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