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생과 함께 엄마, 아빠를 모시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치매 증상도 있으시고, 걸음이 불편하셔서 집에서조차 쇼파를 떠나지 않는 엄마를 위해서였다.

단풍도 예쁘고 하늘도 너무 예쁘다며 좋아하셨다.

확실히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정신도 맑아지시고 식욕도 좋아지시는듯했다.

뿌듯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한달 전쯤 아들이 독립서점에 들렀다가 너무 좋아서 샀다고, 엄마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그려진 그림들만 모은 책이었다. 

화가와 그림 제목만 적혀있고 그림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림 사이에 20여페이지 짧은 글들이 담겨있는 단순한 구성이었다. 

말 그대로 그림책. 

그냥 아무데나 펼쳐도 웃음이 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림책이다.

마음 한 쪽이 아파오기도 했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마가 나를 어떤 맘으로 키우셨을까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떨어뜨릴까봐 안고 계단도 올라가길 두려워하고,

아이가 밤에 열이라도 나면 놀라서 응급실로 뛰어갔던 어린 엄마였었는데,

이젠 정말 나이를 많이 먹었다.

그새, 나와 같은 맘으로 나를 키웠을 늙은 엄마를 보면 여러 마음이 오고 간다.


"엄마" 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들이 정말 정말 많았으면 좋겠고,

"엄마"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시간들도 오래 오래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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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2-05 0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좋기는 한데, 지금 생각하니 엄마는 저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이 든 엄마도 있는데, 하는 생각이... 그런 그림 본 적 있던가 하는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겠습니다 어머니 초상 같은 건 있겠군요 엄마를 생각하는 건 나이를 먹어서기도 해서 이런 생각을 하나 봅니다


희선

march 2024-12-06 08:08   좋아요 0 | URL
희선님 말씀처럼 나이든 엄마도 있는데, 이 책에서는 젊은 엄마들의 모습이 가득해요. 나이 든 엄마는 할머니의 모습으로....나이를 먹어갈수록 엄마에 대한 애틋함이 자꾸 커져가는 것같아요.
 

인상주의라는 말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미술책을 읽다보면 정말 많이 만나긴 하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다.

최근 읽은 책 두 권에서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진실은 뭘까?

난 왜 이것이 궁금한걸까? 

















모네는 고향 르아브르 해안에서 바닷가에 떠 있는 배, 멀리 보이는 항구를 비롯해 그 어떤 것도 형체를 분명하게 하지 않고 그저 붉은 하늘과 물에 비친 잔영들의 '인상'을 빠른 붓놀림으로 그렸습니다.그런데 전시회를 찾은 예술평론가 르루아는 모네의 그림을 가리켜 "마치 총에 물감을 넣고 쏜 것처럼 그리다 만 그림을 봤다. 화가는 해가 뜨는 장면을 그렸다지만, 본질에서 벗어나 짧은 순간의 인상만을 그린 것 같다"고 혹평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모네는 '짧은 순간의 인상을 그렸다'는 르루아의 표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림의 제목인 '해돋이'에 '인상(impression)'이란 단어를 붙여 넣었지요. 그러면서 "인상을 그린다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것이다. 그것은 햇빛의 시간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인상이다"라고 했습니다. 모네의 말은 그대로 전시회를 연 화가들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인상파'기 태동한 것이지요.-p385~386


















이 전시회는 총 165점의 작품을 선보였고 모네의 1872년 작품 [인상: 해돋이]가 포함되었다. 이 작품은 배와 굴착기, 공장의 회색 실루엣 뒤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스케치한 작품으로 빛이 아래쪽 물과 위쪽의 하늘을 복숭앗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모네의 작품 제목에 주목하여 이 단체를 인상파라고 불렀다. 이것은 칭찬이 아니었다. 단지 인상, 즉 무언가를 살짝 본 듯한 느낌, 스케치만 했다는 뜻이었다. 면밀하게 계획된 구도의 완성된 작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쥘 카스타냐리 같은 다른 비평가들은 조금 더 관대했다. '풍경이 아니라 풍경이 만든 감각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그들은 인상주의자라 하겠다'라고 그는 썼다. '인상파'라는 이름은 고착되었고 1877년 세 번째 전시회가 열릴 무렵에는 예술가들 스스로 이 명칭을 받아들였다. -p24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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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도둑 - 예술, 범죄, 사랑 그리고 욕망에 관한 위험하고 매혹적인 이야기
마이클 핀클 지음, 염지선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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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한아름 책을 안고 왔다.  <그림값 미술사>를  읽는 중에 스테판 브라이트비저의 이름이 등장했다. 전설적인 그림 도둑.  2페이지에 걸쳐 짧게 언급된 브라이트비저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던걸까? 그를 다룬 책이 <예술 도둑>이었다. 저자는 10년 이상을 스테판 브라이트비저의 이야기를 모았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집에는 그의 마음을 빼앗는 많은 예술품들이 있었다. 예술품에 대한 애정은 그때부터 생겼던 걸까? 잘 어울리지를 못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그는 상담을 받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박물관에 가면 변덕이 가라앉아 부모는 박물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단둘이 살게된 그는 아버지가 모든 가구과 예술품들을 가지고 가버려 공허함을 느꼈다. 처음 도둑질에 성공한 이후 그는 대담해졌고, 다락방은 예술작품으로 채워졌다. 아버지보다 더 나은 작품을 갖기를 원하고, 다락 벽을 찬란하게 꾸밀 수 있기를 바라며, 아무 죄책감 없이 많은 사람들이 누려야할 예술 작품들을 훔쳤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자신을 정당화했지만 실제로도 그랬을까?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예술 도둑들의 사례들을 보면서 결국은 돈을 위한 것이 아닐까싶었다. 브라이트비저는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품들에 둘러싸여 즐기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며 다른 예술 도둑들과는 다른 부류라고 스스로는 말하지만, 어떤 거창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던 도둑에 불과한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상습적인. 8년동안 200여회에 걸쳐 300점이 넘는 작품을 훔쳤다.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훔친 것에 비해서는 처벌이 가볍게 느껴졌다. 많은 예술품들이 분실이 되기도 하고 상하기도 했는데 말이다. 브라이트비저에 대한 심리분석 사례들이 있었다. 자기애성 인격장애, 반사회적 인격장애, 유혹을 참지 못하는 성향등. 

사실 박물관에서는 누구나 브라이트비저와 같은 생각을 한다. '아, 이 그림을 내 방에 걸고 싶다. ' 차이가 있다면 브라이트비저는 이 비합리적인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잠깐 스치는 바람 같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암벽처럼 버티고 있다. -p 100~101

모네 수련 전시를 보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대부분 상상으로만 그치는 것을 하고야 말았던 브라이트비저. 형을 살고 나와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이 있었지만 참을 수 없었던 도둑질 탓에 그의 인생은 망가져버렸다. 가벼운 처벌은 도리어 해가 되는 법이었다. 후반부에서는 제 버릇 개 못준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인물인듯도 싶었다. 그가 도둑질 할 때 망을 보기도 하면서 도움을 주었던 여자친구, 잘못을 해도 아들을 감싸고 돌기만 했던 엄마의 모습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들의 진실은 무엇이었을지 브라이트비저보다 더 파악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한 편의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은 그들의 이야기. 브라이트비저는 현재 어떻게 살고있을까?  예술이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도난당한 작품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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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1-19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대단합니다 많은 예술 작품을 훔치다니... 그런 걸 다른 쪽에 썼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잘못된 길로 가면 벗어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사람도 다르지 않네요 안 좋은 버릇은 잘 고치지 못하니 말이에요 예술 작품을 훔치려고는 하지 않는군요 큰 돈을 들여서라도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더 양심이 있는 거네요


희선

march 2024-11-30 23:02   좋아요 1 | URL
저렇게 많은 작품을 훔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관리가 허술했다는 것인데. 지금은 저렇게 쉽지는 않겠지요. 아무리 좋은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도둑질은 도둑질인데..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함박웃음이 아니라 은근한 미소.

맘이 편안해지고 행복한 기운이 가득 차는 느낌이다. 그런 모네의 수련과 함께한 가을이었다.

10월에 친구들이랑 도쿄로 여행(10.21~10.24)을 다녀왔다. 

테마를 미술관 투어로 잡고 도쿄 미술관을 집중적으로 가보기로 했다.

가보고 싶은 미술관은 많았지만 숙소가 있는 긴자 주변의 미술관으로 범위를 좁히고,

몇 년 전에 들렀던 국립 서양 미술관은 다시 들러보고 싶어서 포함시켰다.

네즈 미술관,롯폰기 힐즈 모리 미술관, 국립신미술관, 산토리 미술관, 21_21 디자인 사이트,국립 서양 미술관.

가고 싶은 곳만 정했을 뿐 정확한 정보는 찾아보지도 않았다.

이런! 네즈 미술관은 우리가 도착했던 21일부터 11월 1일까지 휴관이었다.

과감하게 포기.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런데, 큰 행운도 있었다.

알고 일정을 잡았던 것도 아닌데(6월에 여행 예약을 해두었다), 모리 미술관에서는 루이즈 부르주아 전시(2024.9.25~2025.1.19)가, 국립 서양 미술관에서는 모네의 수련 전시(2024.10.5~ 2025.2.11)가 열리고 있었다.

포스팅 제목이 <모네의 수련과 함께한 가을>이니 수련 이야기만 하는 걸로.


1. 도쿄 국립 서양 미술관


모네 전시의 인기가 대단했다. 전시관마다 사람이 가득했으니까.

3개의 전시관에 작품들이 있었는데, 그 중 1개 전시관과 전시관 입구에 있는 작품들만 촬영이 가능했다.

집에 와서 도록을 살펴보니 수련을 포함하여 총 65작품이 전시되었다.

국내에서도 모네의 전시를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수련과 함께 모네의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처음이었던 것같다.

스탕달 신드롬까지는 아니지만 벅차오르는 느낌이 있었다.

그 전날 국립신미술관에서 봤던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느낌.

모네 티켓으로 상설관까지 관람할 수 있어서 상설관의 좋은 작품들도 많이 만나고 왔다.








2. 구라시키 오하라 미술관


정말 가보고 싶은 미술관이었다. 평소 내가 하는 말을 잘 기억하고 있었는지 남편이 오하라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는 여행 상품을 덜컥 예약을 하는 바람에 열흘 만에 또 일본에 가게 되었다(11.4~11.7). 오하라 미술관에는 르느와르, 피카소, 엘그레코,고갱등 유명화가들의 작품이 많이 있는데, 모네의 수련도 한 점 있었다. 작품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작품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본관 작품들만 보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오하라 미술관에서는 특별한 모네를 만날 수 있었는데, 바로 진짜 수련이었다. 모네의 수련 연못이 있었다. 오하라 미술관의 수련은 코지마토라지로가 1920년 가을에 지베르니를 방문해 모네로부터 직접 구입했고, 그 연을 계기로 오하라 미술관 개관 70주년을 맞은 2000년에 지베르니의 정원에 있는 수련을 받아왔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그림에 그려져있는 수련의 손자일거라는 말이 재미있었다. 







3. 나오시마 지중미술관 (地中美術館)


안도타다오가 설계한 지중 미술관에는 세 예술가의 작품만 전시되어 있었다.클로드 모네,월트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 당연히 전시관 내부는 촬영 불가. 미술관 들어가는 입구만 촬영이 가능했다. 지중미술관으로 가는 길엔 모네의 집 수련 정원도 재현해두고, 꽃길을 만들어 두었다.지베르니는 아니지만 느낌을 살려본듯했다.  

네 개의 벽면에 다섯 점의 수련이 있었는데, 남편이 한 작품을 가리키며 우리 집에 있으면 참 좋겠다고 했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이번 가을엔 모네의 수련을 원없이 만났다. 


 궂즈샵에서 구입한 엽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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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1-19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들과 미술관을 주제로 일본에 다녀오셨군요 멋지네요 한곳은 쉬었지만, 그래도 여러 곳에서 여러 그림을 만나셨겠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분하고 다른 미술관에 가셨군요 모네의 수련을 많이 만나셔서 그것도 좋으셨겠습니다 언젠가 가고 싶다 했는데, 그게 바로 올해였군요


희선

march 2024-11-30 23:00   좋아요 0 | URL
올 가을은 어쩌다보니 미술관 여행이 되었어요. 오하라 미술관은 책에서 보고는 너무 너무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의 추진력 덕분에 생각보다 더 빨리 다녀오게 되었어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10월(10.21~10.24), 11월(11.4~11.7) 2번의 일본 여행에서 사가지고 온 일본 원서들이다.
우에노에 있는 국립 서양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네의 수련 전시회를 보고 산 도록.
무거웠지만 일본어 공부도 할겸 데리고 왔다.







좋아하는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가 이세영과 함께 한 드라마 소식을 들었다.
일본 남자, 한국 여자의 사랑이야기.
쿠팡 플레이에서 하고 있어서 드라마를 볼 수는 없어서 책을 샀다.
남자의 이야기는 츠지 히토나리가, 여자의 이야기는 공지영 작가가 썼다고 했는데,
츠지 히토나리의 책만 구입.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라는 예쁜 표지의 책을 발견했는데,
그 책은 얼마 전에 읽었던  <あの繪>のまえで의 작가 하라다 마하의 책이었다.
그래서, 이것도 원서로 읽어보기로.

10월 도쿄 여행에서 세 군데의 서점에 들렀는데 한강 작가의 책은 구할 수가 없었다.
다 팔리고 그 다음주쯤 입고 될거라고 미안하다는 말만 들었다.
없다는 말에 아쉬움보다는 왠지 뿌듯한 맘이 들었다. 
11월 여행에서 또 서점엘 들렀는데, 그곳은 약간 소도시여서인지 책이 있었다.
<소년이 온다>를 읽어보고 싶었는데, 그 책은 없어서 <흰>을 골랐다.
우리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한 책은 처음인데 어떻게 표현했을지 정말 궁금하다.
이건 단지 궁금증에서 구입한 것일 뿐, 
노벨상 수상 작가의 책을 번역이 아닌 우리 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뭔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일본 서점에서는 책을 사면 이렇게 포장을 해준다.




서점에 있던 한강 작가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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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1-14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츠지 히토나리와 공지영 소설 읽기는 했어요 그걸 드라마로 만들다니... 냉정과 열정 사이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써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일본에 두번이나 다녀 오셨군요 요새 무슨 일이라도 있나 했습니다 일본에 다녀 오신 거였군요 즐거운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한강 작가 책이 다 팔려서 없다고 하다니 한국 사람은 그 말 기쁘게 여기겠습니다


희선

march 2024-11-15 20:39   좋아요 1 | URL
저는 드라마 소식 듣고 알게 되었는데 오래 전에 나온 책이었네요. 츠지 히토나리는 같은 방식으로 한 번 더 소설을 썼네요. 어쩌다보니 열흘 간격으로 . . .여행은 여행대로, 집에 있는 것은 또 그대로 좋네요.^^ 맞아요. 괜히 뿌듯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