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아가씨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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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고 읽는 츠바이크다. <어제의 세계>로 처음 만났는데, 첫 만남 이후로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전기 작가로 유명하지만, 소설들에서 보여주는 심리묘사는 정말 탁월하다.  츠바이크는 소설의 제목을 '우체국 아가씨 이야기'로 정했는데 1982년 독일에서 원제는 '변신의 도취'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2011년 <크리스티네,변신에 도취하다>로 출간된 책의 판권이 만료되어 빛소굴에서 재출간되었다는데, 빛소굴에서는 츠바이크의 뜻을 존중하는 제목을 붙인건가싶다.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 우체국에서 일하는 28살 크리스티네가 주인공이다. 시간적 배경은 1926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다. 전쟁으로 아버지와 오빠도 잃고,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으로 찌든 초라한 삶을 살고 있다. 청춘은 모두 빼앗겨버렸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지지 않은 채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녀에게 이모의 초대장이 날아오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알프스 최고급 휴양지에서의 며칠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고, 호화롭고 풍요로운 생활에 젖어들게했다.  하지만, 그녀를 시기질투했던 한 여자로 인해 그녀에 대한 평판은 달라졌고,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들통날까 두려웠던 이모는 크리스티네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일장춘몽이라고 해야할까? 고향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돌아가셨고, 가난하고 희망도 없는 원래의 삶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유한 생활을 경험했기에 눈 앞에 있는 현실에 화가 났고, 타인에게 그 분노를 발산했다.  그녀는 형부의 전우였던 페르디난트를 알게 되었다. 그도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하루 하루 연명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가까워지는데, 그들에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살을 결심하는데, 그 순간 새로운 희망(?)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기로 하는데......여기서 소설은 끝이 났다.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이 소설은 츠바이크가 1942년 자살한 이후에 유고 더미에서 발견된 것으로, 츠바이크 전문가들은 미완성이라는 의견에 모두 동의하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 뭔가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이유였나보다. 하지만, 열린 결말로 이후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계획대로 이루어져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진정한 행복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너무나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부잣집 남자를 만나 신분상승(?) 을 하는 걸까싶었는데 동화와는 달랐다. 남자들은 자신에게 불이익이 오겠다고 싶을 때는 과감히 물러났다. 뭔가 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는 순간 기대는 무너졌다. 그렇지. 그렇게 단순하게 끝날 이야기가 아니지.  이모도 결국 자신의 안위를 챙기기에 바빠서 조카를 버린거나 다름없었다. 사탕을 줘서 단맛을 알게 한 다음 과감히 뺏어버리는. 차마 주지 않은 것보다는 못한 처사였다. 페르디난트와의 만남에서도 뭔가 해피엔딩을 가져오려는 장치인가 했는데, 자신이 처한 위치를 더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사람일 뿐이었다. 츠바이크는 그런 쓸데없는 희망을 주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다른 소설에서도 그랬던 것같다. 주인공 입장에서 카타르시스적인 해피 엔딩을 쉽사리 안겨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돈의 위력을 실감했다. 돈은 있을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없을 때는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따라서 ,돈은 '자유'라는 거룩한 선물을 주기도 하지만,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단념해야 할 일이 생기면 분노가 솟구치게 된다.-p356



그 분노는 누구를 향하게 되는 것일까? 결국, 자신을 죽이거나 타인에 대한 위해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총성없는 전쟁 속에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현 사회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개개인의 분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소설 속 크리스티네가 그랬고, 그들이 하려고 하는 일도 타인을 고통 속에 빠트리는 일일뿐이니까.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크리스티네의 감정 변화가 너무나도 리얼하게 전해져왔다. 마치, 내가 크리스티네가 된듯한 기분이 들정도로. 후반부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페르디난트의 등장으로 사회문제를 꼬집었다. 페르디난트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전쟁 후 오스트리아 사회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현 사회를 꼬집는듯한 느낌이었다.  권력, 부를 가진 집단과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대비. 그렇게 만드는 사회구조. 가난한 여인의 인생 역전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 츠바이크를 잠시 잊고 있었나보다.  언제나 그랬듯 그의 글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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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대자연을 바라보며 여자는 마치 땅을 갈아엎는 쟁기처럼 인간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여행의 힘을 실감했다. 여행은 일상의 삶에 익숙해져 단단하게 굳어버린 영혼의  껍질을 단번에 벗겨버리고,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변신을 향한 욕망에 언젠가 열매가 열릴 씨앗을 심어 놓는다. -p 60


그 순간,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에 휩싸여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흔들린 여자는 난생처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의 영혼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고 탄력 있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단 한 번의 체험만으로 무한히 커질 수 있고, 그 비좁은 공간에 온 세상을 담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 p 111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은 편하게 읽히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글들이 많다.그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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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갈증 페이지터너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빛소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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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의 작가로만 알고 있던 미시마 유키오를 <사랑의 갈증>으로 만났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고싶었지만 남편의 외도는 에쓰코를 질투심에 떨게했다. 남편이 장티푸스에 걸려 죽은 후에는 시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갔다.  시아버지는 그녀를 탐했고, 시아버지에게 몸을 허락했다. 이게 가능하다고? 혼자서 열받고 생각만해도 스멀거리는 느낌이었다. 사랑이 담기지 않은 육체적인 관계는 아무런 의미도, 거부감도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에쓰코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는 에쓰코는 어린 하인 사부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을 모두가 알았지만 사부로만은 알지 못했다.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사부로가 그런 인물이었는데, 만약 사부로가 사랑을 알았다면 소설의 결말은 달라졌을까? 그의 아이를 임신한 미요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낀 에쓰코는 미요를 쫓아내기까지 하지만, 사부로는 그런 사실에도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무책임하다니,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군. 


에쓰코의 감정은 정확하게 무엇이었을까? 진정한 사랑을 원했던 것이라고 해야할까? 그렇다면. 그녀가 원했던 진짜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복잡미묘한 감정을 따라가려니 힘들었다. 에쓰코가 원하는 것을 얻었나 생각한 순간 단순하지 않은 인간의 감정이 수면으로 올라왔다. 그러한 감정선을 표현해내는 작가의 글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제목은 사랑에 대한 갈증이었지만, 질투라는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 사랑에 질투의 마음이 자리하면 위험하다는 친구의 말에 적극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는 일 따위는 쉽게 할 수 있어. 사랑하지만 않는다면......-p97


이처럼 사랑이란 감정이 생겨버리면 거기엔 수 많은 감정들이 따라온다. 행복과 긍정의 감정도 있지만, 질투와 소유욕, 불안이라는 부정적인 감정까지.'사랑은 때로 행복보다 고통에 가깝다.(뒷표지)'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은 처음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생각났다.  줄거리는 그다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문장의 아름다움만은 강하게 남아있는데, 이 소설도 그랬다. 풍경 묘사, 감정 묘사 등 다시 읽고싶어지게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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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뱅쿼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 등장하는 인물. 유령이 되어 맥베스를 괴롭힌다)를 부르신다고요? " 오드리가 이렇게 말하자 , 그녀의 남편은 크리스마스란 원래 떠들썩하게 노는 날이라고 말했다.- p179


내일 연극 [맥베스]를 보러 간다. 그래서, 더 반가웠던 뱅쿼였다. 다시 맥베스를 읽어보고 있다. 연극은 오랜만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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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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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라는 첫 문장은 놀라웠고, 너무 너무 궁금해졌다. 읽고 쓸 줄 모르는 것이 살인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상황인걸까? 문맹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당사자가 문맹을 끔찍하게도 숨기고 싶어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지는 거였다. 유니스는 누구보다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어했고,누군가에게 밝혀질듯한 상황이 오면 공포감에 어쩔줄 몰라했다. 그런 사람이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가족에게 그 사실을 들켰고,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사람은 말로, 표정으로, 문자로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이의 생각을 알게됨으로써 공감하는등 인간으로서의 다양한 감정들을 공유한다. 문맹이라는 것은 그런 인간적인 감정들의 부재로 이어졌다. 어쩌면 글을 모른다는 그 자체보다도 그것이 더 큰 문제였다. 모든 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사람도 있다는 것. 우리는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건 내 입장에서마, 사회적 통념으로서만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무엇인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렇지 않은 것은 혐오를 일으킬 수 있다. 나아가 누군가에게는 굴욕과 고통이 될 수도 있다.-  김상욱, 물리학자 (뒷표지)


깊게 생각해볼 만한 문장이었다. 


커버데일 가족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이렇게 살인이 일어났구나!  커버데일 가족은 그녀의 야무진 살림솜씨등 좋은 면을 보려고 했고, 최대한 배려하려 했다. 문맹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유니스를 무시할 큰 의미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딸 멜린다는 글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오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안주인인 재클린이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보고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려하지 않아서 유니스를 집에 들였다. 첫 만남에서 '마님'이라고 부른 것에 만족감을 느끼고 더 이상 알아보려 하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허영심이 유니스와의 인연이 끈이 되어버렸다고도 할 수 있겠다. 성격적 결함을 눈치채고 내 보낼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있었는데, 결론을 알기 때문에 매 순간 안타까운 맘이 들었다. 또, 유니스가 조앤을 만나지 않았다면 일가족 학살이라는 큰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유니스에게 불을 지르는 역할을 했으니까. 만나선 안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만남도 커버데일 가족의 죽음에 큰 역할을 해버렸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그래서 중요하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문맹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약점으로 작용하고, 공포가 될 수 있으며, 모든 감정들을 눌러버리기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뭔가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오만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루스 렌들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범인을 밝히기 위해 추리해나가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끼는 것이 추리소설의 묘미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선 안되겠지?), 첫 문장에 답은 나와 있었다. 오히려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인 유니스가 잡히는 과정은 흥미가 덜했다. 궁금증으로 인해 살인이 일어나기까지 너무 몰입해서 읽은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 전혀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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