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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
평점 :
언어에 대한 시선이 흥미롭고, 문체가 깔끔하고, 이야기도 재미나고, 술술 읽힌다는 친구의 말에 덥썩 데려왔다. 어머니 이야기가 나와서 마음이 아프겠다 싶다는 말을 덧붙였는데, 읽다보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저자의 이름은 문지혁, 주인공의 이름도 문지혁. '작가와 주인공의 거리가 가까워 손에 잡힐 듯한 실감을 선사한다'는 추천의 글을 읽으며 저자의 사적인 일은 모르겠지만, 동일한 이름 때문인지 주인공에 저자를 오버랩 시키며 읽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온지 1년 6개월 만에, 미국에서 두 번째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아시아 학과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하게 된 문지혁. 그냥 뚝딱하고 현재의 내가 된 경우는 없다.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과거의 많은 일들을 돌이켜보는 주인공의 차분한 시선과 현재를 담담히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서는 한없이 쓸쓸함이 묻어났다. 난 주인공의 모습에서 세 가지 와닿는 부분들이 있었다.
첫 번째, 가끔 궁금해졌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어떻게 가르치는 걸까? 그들의 눈에는 한국어가 어떻게 보이는걸까? 지혁의 강의실에는 한국계 학생도 있지만, 한국에는 무지한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모음, 자음, 구개음화와 같은 문법, 간단한 인사말을 가르쳐나갔다. 지혁의 초급 한국어 수업 재미있었다. 한글에 대해 이런 시각으로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한국의 문화를 모르니 지혁이 가르치는 문장에 웃음이 쏟아지기도 했다. 편하게 쓰고 있는 모국어를 이해시키는 것의 어려움을 실감하는 순간들이었다. 유학 생활자,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이런 모습들과 닿아있지 않을까?
두 번째. 어머니, 가족과의 관계,첫 수업을 힘들게 끝낸 날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뇌졸중과 혈관성 치매. 엄마의 간호를 맡고 있는 여동생 지혜는 간호하는 딸은 몰라보고 오빠 이름만 부른다며 억울해한다. 친구의 말이 이거였구나. 엄마는 40대에 뇌졸중이 왔고, 2~3년 전부터 혈관성 치매가 시작되었다. 동생들은 생업이 있으니 가까이 있는 내가 아빠를 도와 케어하고 있는 중이라 지혜의 맘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주인공 남매와는 달리 우리 남매는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지치는 날엔 괜히 원망 섞인 맘이 들기도 한다. 당장 엄마에게 달려갈 수 없는 지혁은 엄마와의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들을 위해 했던 행동이었음을 알게 되는 지혁. 시간이 지나면 이해가 되는 것들이 있다. 왜, 우린 지나고 나서야 진심에 다가가게 되는걸까? 그 시간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 번째. 내가 되고 싶은 것. 지혁의 지금 소망은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영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같은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여자 친구 은혜와는 7년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 순간, 끊임없이 좌절하는 순간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맘. 그는 많은 고민 속에서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부럽다고도 느껴진다면 너무 이기적인 걸까? 무언가 꿈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깊이 생각하게 하고, 진지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주저앉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같다. 그런 힘이 인간에게는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초급 한국어>란 제목이 유치하게(?) 느껴져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었다. 친구 덕분에 좋은 책을 만났다. 언어, 가족, 꿈 등 조용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지혁이란 작가를 알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다. 초급을 뗐으니 중급으로 넘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