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다녀왔다. 목욕을 시켜드리고 얘기를 나누다가 왔다. 치매가 점점 심해져가고 있다. 답답하고도 서글픈 마음이 이어지는 날들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블로그 친구가 보내 준 책을 펼쳤는데,엄마를 떠올리고 말았다.
형이 전화에 대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더 견디기 힘드실 것 같다고. 나는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으로 서둘러 출발했다. 아침 일찍 차를 몰았는데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어머니와 나 사이가 아득하게 느껴져서 가는 내내 서러웠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누워서 눈을 깜박거렸다. 어머니의 손을 만지자 물기 없는 피부에서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어머니 등 뒤로 조심스럽게 팔을 넣어 끌어안았다. 마지막으로 엄마 품에 안겨보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어리광을 피워보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사는 일의 고달픔을 일러바치고 싶었는데, 한없이 가벼워진 어머니를 가만히 껴안아 주는 것으로 그 모든 희망을 갈음했다. 병원 앞 화단에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하늘하늘 피어서 무심히 흔들리는 무렵이었다.-p 25
나를 잊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고모 이름으로 부를 때가 있다. 다행히, 엄마가 좋아하는 시누이로 생각해줘서 다행이다 하면서 위로를 한다. 금방 나를 알아보긴 하지만, 언젠가 완전히 잊어버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시는 모습에 화를 내고는 금방 후회한다.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순간들의 기억이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나중에 더 많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지금 최선을 다하려하지만 여전히 내 생활을 앞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