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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사람들
헨리 제임스 지음, 김윤하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난해한 작가라고 들었는데 잘 읽혀서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작가는 율리시스를 쓴 '제임스 조이스'. 제임스 조이스의 책도 읽은 적 없지만 헨리 제임스도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여인의 초상','나사의 회전' 제목은 많이 들었는데 이제서야 헨리 제임스의 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본문만 704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70~80 페이지를 넘는 순간 속도가 붙었다. 어떤 결말에 다다를까 너무너무 궁금했다.
미시시피 출신의 변호사이며 보수주의자인 베이질 랜섬은 먼 친척이며 여성 참정권 운동가 올리브의 초대로 보스턴에 오게 되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연설을 하는 버리나에게 그들은 모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랜섬은 사랑의 감정으로, 올리브는 동지의 감정으로. 하지만, 올리브에겐 동지의 감정만 있었던 갓은 아니었다. "세 남녀의 기이한 삼각관계로 그려낸 격변하는 시대의 초상"이라는 소개글처럼 삼각관계가 시작되었다. 미국의 사회사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말은 여성 해방, 참정권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였던 것같다. 올리브는 버리나에게 지적인 소양을 쌓을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여성 운동가로서 큰 역할을 해내기를 바라고 있었다. 버리나에게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소양은 충분했지만, 랜섬에게 끌리는 것이 문제였다. 너무나 보수적인 랜섬을 감화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불가능해보였다. 오히려, 버리나는 올리브와 함께 추구했던 것을 뒤로한 채 사랑을 택했다.
딱히 원하는 결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사랑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을거라고 추측은 했지만, 버리나의 선택에 실망하고 말았다. 은근히 신념을 따라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버리나는 그냥 분위기에 휩쓸렸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신념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사람을 끄는 연설을 하는 자질이 있었고, 그것을 이용하는 부모가 있었고, 더 더욱 올리브가 그 능력을 키우기를 원했고. 책장을 덮었을 때는 그녀에 대한 반감이 강했는데,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택한 그녀를 대견해 해야하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뭔가 외곬수로 보이고, 보수적인 랜섬에게 너무나 가혹하게 대하는 올리브를 보면서 저럴 필요까지 있을까 했는데, 차라리 신념을 지키는 올리브에 마음이 갔다. 버리나가 사랑을 선택하는 순간 올리브는 버리나의 자리에 대신 섰다. 수줍음이 많다고, 연설을 못한다고 했던 그녀였지만 버리나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을 스스로 이뤄나가기를 응원했다.
올리브와 버리나의 동지면서 동성애적인 요소, 랜섬과 버리나의 사랑등 로맨스가 하나의 축이라면, 다른 축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들이었다. 소설 속에서 오가는 상황들과 현 상황들을 비교해보면 문제점들은 여전하고 커다란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같다. 하지만, 이런 논의들이 계속되는 한 그 자리에 머물기만 하지는 않으리라고 믿고싶다. 헨리 제임스 소설 중에서 그다지 비중있는 소설로 다뤄지지는 않는 것같다. 그래도, 헨리 제임스와의 첫 만남이어서 나에겐 정말 의미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