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희가극 <해피엔드> 리허설이 시작되었을 때, 브레히트는 자기가 생각하는 행복한 결말은 무엇인지 보여준다. 자기 애인 엘리자베트 하우프트만이 쓴 작품에서,마침 베를린에 있었던 또다른 애인 카롤라 네어가 주연을 맡고,아내 헬레네 바이겔은 조연은 맡는다. "회색 부인"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역할이었다. 남자 주연은 테오 링겐이 맡았는데, 전 부인 마리안네 초프의 새 남편이자 자기 딸 한네의 계부다(그렇다, 이곳에서 전체를 조망하기가 늘 쉽지만은 않다). 자기 여자들이 모두 한 자리에서 동시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브레히트의 가학적인 욕망은 무대 위에 오를 준비가 되었다.-p23


이 정도면 정상의 범주에 넣을 수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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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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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유서로 이 책은 시작한다.

<...모든 나의 친구들에게 인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원컨대,친구 여러분들은 이 길고 어두운 밤 뒤에 아침 노을이 마침내 떠오르는 것을 보기를 빕니다! 나는,이 너무나 성급한 사나이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슈테판 츠바이크, 페트로폴리스, 1942년 2월 22일 >

18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부유한 유태인 가정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츠바이크는 브라질에서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 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나의 운명이 아니라, 한 세대 전체의 운명이다'라고 했듯이 자서전 형식을 빌어 자신이 살아냈던 그 시대를 바라보는 책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19세기 말 언제 파괴될지도 모르는 일상의 편안함,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편리함으로 핑크빛 미래를 꿈꾸고 대비하며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던 그 시대 사람들이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일을 생각하며, 그는 '우리의 문화와 문명이라는 것은 다만 표면의 엷은 층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은 어느 때고 심층 세계의 파괴적인 힘에 의해 와해될 수 있는 것' 이라고 말했던 프로이트를 떠올렸다. 지금의 우리도 저러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시대라고는 하지만,곳곳에서 분쟁,테러가 일어나고,자국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지금, 이러한 안정된 세계가 어느 순간 무너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의 제목은 <어제의 세계>이지만, 바로 <내일의 세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크게 두가지 축으로 읽혔다.문학가로서의 창작에 대한 이야기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너무나 큰 시련이었던 양차대전을 바라보는 시각들.결국 츠바이크라는 한 사람의 일생으로 녹아들었다.

 

 그는 유태인이었기에 자기가 바라본 부모님과 유태인 가정의 모습들을 통해 유태인의 생각과 생활방식, 세기말 예술과 문화의 도시였던 빈의 모습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짐나지움 시절에 정해진 틀에서 배우던 교육에 싫증을 느끼고,뜻이 맞는 친구들과 극장,문학,예술에 심취했고,커피 하우스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영혼의 파악력과 정신적인 것으로의 약진은,정신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시기에만 단련할 수 있는 것이고, 일찍부터 영혼을 넓게 펼치는 것을 배운 사람만이 나중에 세계를 자기 가슴 속에 포용할 수 있다'는 생각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는 '내면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맘이 그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었다. 빈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는 마지막 학기에 시험을 쳐서 졸업을 하는 것 외에는 의미를 두지 않았다. 스스로 인생대학이라고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창작활동을 하는데 전념하게 된다. 세상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많은 것을 보고 배우기 위해서 수 많은 여행길에 오른다. '라테나우'와의 대화를 통해 그는 더 큰 세상을 만나기 위해 인도,미국으로의 여행도 하게 된다. 그가 만났던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행길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는 자극들은 그가 문학가로서 살아가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독자로서의 우리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인사들의 면면들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수많은 창작물이 탄생하게 된 배경, 문학가로서의 자세, 문학의 역할등 그의 문학가로서의 모습들을 보는것은 흥미로웠고.대단한 수집가였던 것을 알 수 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전쟁이라는 것이 평범한 민중은 아무런 의사결정권도 없이 ,정치권자들의 권력싸움,국가간의 힘겨루기 등으로 일어나지만, 그 피해를 보는 것은 힘없는 민중들의 몫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룻밤 사이에 광신적인 애국자로 변하고 피냄새에 취해가는 과정을 바라보기도 한다.히틀러가 서서히 수면으로 올라와서 어떻게 정권을 잡아가는 지를 보면 한 인간이 어떻게 저런 힘을 가지고,세상을 엎을 수 있는지 이해하긴 힘들었다.하지만,지금 우리 정권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되기도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는 말했다. 1차 대전 중에는 말이 아직은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1939년에는 한 시인의 발언은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1차대전 중,1차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평화로웠던 10여년,2차 대전이 발발하고 그 속에 있던 몇 년동안의 이야기들. 평화주위자로서의 그가 사랑하는 고향 유럽이 붕괴되어 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마음이 고스란히 책 속에 담겨있다.

 

 자신의 문학관처럼 자서전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졌는데,정말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꼭 필요한 에피소드들을 넣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들로만 꽉꽉 채워져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문체를 보면 담백하고,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그 험난한 세월을 살아내고 지켜봐야했던,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인한 미국의 참전으로 충격을 받아 자살을 선택했던, 그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만나도 전혀 고루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나가야하는 지 강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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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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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심리묘사는 이 책에서도 빛났다. 쏙 빠져들게 만드는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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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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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고 읽는 츠바이크다. <어제의 세계>로 처음 만났는데, 첫 만남 이후로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전기 작가로 유명하지만, 소설들에서 보여주는 심리묘사는 정말 탁월하다.  츠바이크는 소설의 제목을 '우체국 아가씨 이야기'로 정했는데 1982년 독일에서 원제는 '변신의 도취'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2011년 <크리스티네,변신에 도취하다>로 출간된 책의 판권이 만료되어 빛소굴에서 재출간되었다는데, 빛소굴에서는 츠바이크의 뜻을 존중하는 제목을 붙인건가싶다.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 우체국에서 일하는 28살 크리스티네가 주인공이다. 시간적 배경은 1926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다. 전쟁으로 아버지와 오빠도 잃고,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으로 찌든 초라한 삶을 살고 있다. 청춘은 모두 빼앗겨버렸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지지 않은 채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녀에게 이모의 초대장이 날아오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알프스 최고급 휴양지에서의 며칠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고, 호화롭고 풍요로운 생활에 젖어들게했다.  하지만, 그녀를 시기질투했던 한 여자로 인해 그녀에 대한 평판은 달라졌고,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들통날까 두려웠던 이모는 크리스티네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일장춘몽이라고 해야할까? 고향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돌아가셨고, 가난하고 희망도 없는 원래의 삶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유한 생활을 경험했기에 눈 앞에 있는 현실에 화가 났고, 타인에게 그 분노를 발산했다.  그녀는 형부의 전우였던 페르디난트를 알게 되었다. 그도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하루 하루 연명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가까워지는데, 그들에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살을 결심하는데, 그 순간 새로운 희망(?)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기로 하는데......여기서 소설은 끝이 났다.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이 소설은 츠바이크가 1942년 자살한 이후에 유고 더미에서 발견된 것으로, 츠바이크 전문가들은 미완성이라는 의견에 모두 동의하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 뭔가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이유였나보다. 하지만, 열린 결말로 이후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계획대로 이루어져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진정한 행복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너무나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부잣집 남자를 만나 신분상승(?) 을 하는 걸까싶었는데 동화와는 달랐다. 남자들은 자신에게 불이익이 오겠다고 싶을 때는 과감히 물러났다. 뭔가 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는 순간 기대는 무너졌다. 그렇지. 그렇게 단순하게 끝날 이야기가 아니지.  이모도 결국 자신의 안위를 챙기기에 바빠서 조카를 버린거나 다름없었다. 사탕을 줘서 단맛을 알게 한 다음 과감히 뺏어버리는. 차마 주지 않은 것보다는 못한 처사였다. 페르디난트와의 만남에서도 뭔가 해피엔딩을 가져오려는 장치인가 했는데, 자신이 처한 위치를 더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사람일 뿐이었다. 츠바이크는 그런 쓸데없는 희망을 주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다른 소설에서도 그랬던 것같다. 주인공 입장에서 카타르시스적인 해피 엔딩을 쉽사리 안겨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돈의 위력을 실감했다. 돈은 있을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없을 때는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따라서 ,돈은 '자유'라는 거룩한 선물을 주기도 하지만,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단념해야 할 일이 생기면 분노가 솟구치게 된다.-p356



그 분노는 누구를 향하게 되는 것일까? 결국, 자신을 죽이거나 타인에 대한 위해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총성없는 전쟁 속에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현 사회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개개인의 분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소설 속 크리스티네가 그랬고, 그들이 하려고 하는 일도 타인을 고통 속에 빠트리는 일일뿐이니까.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크리스티네의 감정 변화가 너무나도 리얼하게 전해져왔다. 마치, 내가 크리스티네가 된듯한 기분이 들정도로. 후반부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페르디난트의 등장으로 사회문제를 꼬집었다. 페르디난트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전쟁 후 오스트리아 사회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현 사회를 꼬집는듯한 느낌이었다.  권력, 부를 가진 집단과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대비. 그렇게 만드는 사회구조. 가난한 여인의 인생 역전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 츠바이크를 잠시 잊고 있었나보다.  언제나 그랬듯 그의 글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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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대자연을 바라보며 여자는 마치 땅을 갈아엎는 쟁기처럼 인간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여행의 힘을 실감했다. 여행은 일상의 삶에 익숙해져 단단하게 굳어버린 영혼의  껍질을 단번에 벗겨버리고,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변신을 향한 욕망에 언젠가 열매가 열릴 씨앗을 심어 놓는다. -p 60


그 순간,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에 휩싸여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흔들린 여자는 난생처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의 영혼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고 탄력 있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단 한 번의 체험만으로 무한히 커질 수 있고, 그 비좁은 공간에 온 세상을 담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 p 111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은 편하게 읽히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글들이 많다.그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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