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일정으로 바깥 나들이 나가면서 챙긴 책은

<장미나무 아래의 죽음>이었다. 

기차에서 보내는 3시간이면 책 읽기에 너무나도 충분한 시간이다.

책 읽다가 바깥 경치 한 번 보다가 ......

숙소에서는 자기 전에 조금씩 읽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KTX에서 다 읽었다. 

도서관에서 시리즈를 왕창 빌려왔기때문에 부지런히 읽어야한다.^^





바로 옆 선로에서 나란히 달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반대편 선로로 달려오는 기차랑 교차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몇 분을 함께 달리다가 앞섰다.

KTX의 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12-15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15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둠 속의 갈까마귀 캐드펠 수사 시리즈 12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규율은 필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인간에 대한 가여운 마음, 배려하는 마음 또한 있어야할 것이다. 신을 섬기고, 믿음을 가진 이들을 이끌어야하는 신부에게는 그것들의 조화가 더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홀리 크로스 교구에 새로 부임한 에일노스 신부는 그렇지 못했다. 정해진 규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은 용납하지 못했던 에일노스 신부에 대한 교구민들의 원성은 높아져갔다. 수도원 원장은 중재를 하려고 했지만, 에일노스 신부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성탄절 아침 저수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지만, 교구민 그 누구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였다. 정황상 타살로 보였고, 캐드펠 수사는 수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하나의 축이라면 다른 하나는 황후파인 젊은 남자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행정관으로 있는 휴 베링어의 몫이었다. 


수도원 앞 대로에 내려앉아 사소한 작은 죄를 찾아내고 그 죄인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갈까마귀 같았다고. p93



캐드펠 수사가 에일노스 신부를 두고 한 말이었다. 사소한 작은 죄는 관대한 마음으로 융통성을 발휘해 줬다면 많은 이들을 파멸로 몰아가지 않았을테고,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 되었을텐데. 에일노스 신부는 마지막 순간 '난 올바른 일을 하도록 애썼을 뿐인데, 난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라고 생각했을까?  방관자로서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그 사람은 도덕적이든, 법적이든 책임을 져야하는걸까?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지만,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는 그 말은 섬뜩하게 들려온다. 



그러나 완벽을 향한 추구조차도 다른 이들의 권리와 요구를 침해한다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보상을 얻는 데 급급해서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고 그를 외로움과 절망 속에 버려두는 것보다는, 그를 일으키느라고 옆길로 벗어남으로써 조금 실패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혼자서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보다는, 절뚝거리고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비틀거리는 다른 이들을 붙들어주려 애쓰는 것이 더 낫습니다.-p265



똑같이 자신의 신념대로 움직였지만 니니언의 삶은 달랐다. 그들의 차이는 신념보다는 타인에 대한 사랑의 문제라고 해야할까?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142년 잉글랜드 군주자리를 두고 스티븐왕과 모드 황후가 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공간적배경이 되는 슈롭셔주는 스티븐왕의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숨어든 황후파의 젊은이를 찾아내는 것이 행정관 휴 베링어의 몫이었고, 그 젊은이가 니니언이었다. 그를 둘러싼 캐드펠과 휴 베링어의 입장을 보면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이다. 11권(11권을 건너뛰고 12권을 읽었다.)을 읽고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첫째는 당연히 캐드펠 수사가 사람을 믿음으로 대하는 방식, 뛰어난 관찰과 통찰로 사건을 해결해내는 것, 둘째는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본분을 잃지않는 캐드펠과 휴 베링어의 케미, 마지막으로는 캐드펠이 정원사, 약제사로서 허브밭을 가꾸는 모습이다. 아름다운 허브향이 전해져오는것같은 순간들이 좋다. 왠지 이 시리즈를 읽는 시간들은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5-12-10 0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리 도덕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기도 해야겠지요 그럴 수 있어야 할 텐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니기도 하지요 캐드펠 수사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군요


희선

march 2025-12-15 20:39   좋아요 1 | URL
일단 인간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을까싶어요. 원리 원칙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이지만 조금은 융통성을 발휘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2025-12-10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15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골동품 진열실 을유세계문학전집 13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막는 것은 쉽지 않다. 프랑스 혁명이후 귀족계급이 몰락해가는 과정과 사회적 변화를 볼 수 있었던 소설. 등장인물 중 집사 쉐넬의 충성, 사랑이 크게 다가왔다. 발자크의 글이 원래 그런건지, 번역 때문인지 읽기 힘든 부분들이 있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12-08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08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일본미술 순례 1 - 일본 근대미술의 이단자들 나의 일본미술 순례 1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연립서가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키요에 외에는 알고 있는 일본미술 작품은 제로에 가까웠다.예술가들의 열정은 크게 다르지않았다. 근대화가들을 다루고 있기어 식민지배하의 우리나라의 상황,예술에 대해서 생각하며 멈추는 시간들이 많았다.생소한 일본 작품들이라 작가님의 친절한 안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미술여행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12-08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08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에키 유조, 세키네 소지, 아이미쓰


읽으면 읽을수록 생소한 화가들과의 만남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서경식님의 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화가들이다. 그러고보니, 일본 미술을 소개한 책은 처음이고, 미술에 관한 책에서도 일본 우키요에 아니고서는 접할 일이 없었다. 얼마나 서양미술에 치우쳐져 있었는지 실감이 난다. 


특히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근대미술은 우리가 일본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 시점이라 일본 미술을 보고 있으면서도 우리 화가들의 그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시기에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수혜로 파리등으로 가서 서양미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우리 화가들은 일본을 통해서 서양미술을 맛보고 있었다. 

파리에서 풍경화를 주로 그렸던 사에키 유조의 작품은 아무런 정보없이 보면 일본화가의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림들이었다. 전쟁화를 주로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화가들에 비하면 정말 순수하게 그림에 미친 사람이었다고 해야할듯하다. 예술은 시대를 담는다고 했지만, 순수하게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는 자신에게 중요한 모티프, 예컨대 파리의 광고판이나 벽에 온통 마음을 사로잡혔던, 말 그대로 그림에 '미친'자였다. p73


아이미쓰의 그림을 다룬 장에서는 1989년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쇼와 시대의 미술>전시에 등장한 전쟁화의 공개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매우 인상적이어서 질지만 인용해둔다. 


그때까지 전쟁화가 본격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전쟁 피해자인 아시아 여러 민족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또 하나는 전후 가까스로 제어돠어 온 우파와 국가주의자가 전쟁기록화의 '해금'을 하나의 신호로 여겨 다시 활성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스스로 '평화국가'를 자임해 온 전후 일본의 미술계. 교육계, 매스컴 등이 전쟁 프로파간다 회화가 왕성히 제작된 꺼림칙한 과거를 직시하고 싶지 않았던 의식도 가로놓여 있지는 않았을까? 당사자인 미술가 중에서도 패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는 연합국에게 전범으로 추궁받을까 걱정하며 침묵했다.(후지타 쓰구하루는 대표적인 예외로 하더라도) 자신의 전쟁화 제작 이력에 대해 입을 다물거나, 군부의 압력 속에 어쩔 수 없이 그렸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변명을 늘어놓는 사례도 많았다. 한마디로 전쟁기록화는 "없었던 일"로 치고 숨겨 두고 싶은 역사 자료였던 셈이다. 하지만 1989년 당시 덴노 히로히토가 죽자 '쇼와'라는 연호로 묶였던 시다(1926~1989)의 종언과 발맞춰 "온전히 미술적인 관점에서 ("정치적 관점이 아닌 "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으리라)"라고 신경질적이라 할 정도의 이유를 붙여가며 전쟁화의 대표작 일곱점을 공개했다. 봉인보다는 공개가 바람직하다는 점에는 나 역시 이견이 없지만, 염려했던대로 '정치적 이유'로 봉인해 온 미술의 '명작'이 드디어 해금되었다고 파악하는, 참으로 '이데올로기적'반응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반응을 "미술적 관점에서" 작가나 작품을 진지하게 검토한 결과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p112


일본인이 쓴 일본 그림에 관한 글이었다면 내가 관심을 가졌을까?  재일조선인으로서 보는 것은 아마도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본 근대미술에 대한 글은 생소하지만 흥미롭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5-12-05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도 화가가 있겠지요 일제 강점기 때 화가를 보면 한국 화가가 생각나기도 하겠습니다 정치와 상관없이 그림만 그린 사람도 없지 않았겠지요 전쟁 때는 예술을 이용하기도 하는군요


희선

march 2025-12-07 23:15   좋아요 1 | URL
일본 미술은 전혀 모르는 분야였어요. 나름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네요. 예술을 시대와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