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가을을 보내줬다. 




나는 그 애의 컷과 컷 사이가 좋고방심할 때마다 나오는 시 같은 문장이 좋다하지만 무엇보담도

자신을 믿고 묵묵히 나가는 모습이 가장 좋다



# 그녀의 플레이 리스트
















오노 나츠메 * 박희정 * 마츠모토 타이요



not simple

오노 나츠메의 그림은 흡사 북유럽의 풍경이다. 흔히 알고 있던 일본풍의 그림체를 깨고 나왔다. 강하고 굵직한 선은 파격적이고 복잡한 서사를 잘 받아낸다. 충격적인 가족사에서 한 남자아이가 바라본 풍경을 담는다. 충격적인데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 괜찮을거라고 믿게 되는 힘이 있다.


호텔 아프리카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작가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


죽도 사무라이

장정이 매우 아름답다. 이렇게까지 책을 만들다니, 애니북스에게 놀랐다. 만화는 저 고정된 사각의 틀에서 잘도 움직인다. 붓으로 그려 결이 그대로 나타나는 선으로 일본 에도시대의 풍경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글은 원전이 있고, 작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 시대의 골목을 함께 걷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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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기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소년이 온다>, <무의미의 축체> 

리뷰를 이렇게 못 쓸줄 몰랐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읽기와 쓰기가 즐거웠고,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잘 읽힙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본 느낌. 

<느리게 배우는 사람>은 흥미로웠지만 보다 더 정갈한 다음 작품을 보고 싶었습니다. 

<자유로운 삶>은 무척이나 무미건조한 소설입니다.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가지 써는 것"

<소년이 온다>는 가장 여러 번 읽었습니다.

<미국의 목가>는 읽기도 어렵고 쓰기도 어려웠습니다. 아주 불편했던 책입니다. 

<기 드 모파상>은 엄청나게 재미있는 책인데, 그 매력의 반에 반도 쓰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투명인간>은 읽을 거리가 무척 많은 소설입니다. 어렵지도 않고요. 뒤가 좀 허술하지만 그것도 매력같아요. 

<무의미의 축제>는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신중한 사람>은 단편으로도 좋지만 전작을 더 그립게 하는 힘이 있었고 

<제르미날>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는, 고래를 정말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 14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소년이 온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제르미날>입니다.



3. 같은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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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4-10-1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 평이 좋네요. <무의미의 축제>를 가장 좋은 책으로 꼽으셨는데.. 할말이 없다는 면에서는 격하게 공감해요 ㅎㅎ

봄밤 2014-10-15 14:48   좋아요 0 | URL
으앗!!! 가장 ˝기억˝에 남는 책입니다. 그 책은 정말이지 할말이 없어요. 아 ㅋㅋㅋ

알라딘신간평가단 2014-10-2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님! (봄밤은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단어라 봄밤님이 괜히 더 좋은!)
좋은 활동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래는 읽으셨나요? 정말 재밌는 책인데, 꼭 읽어보세요!! :)

봄밤 2014-10-31 00:37   좋아요 0 | URL
더 미룰 수가 없군요. 고래를 읽어야겠습니다! 정말로. 신간평가단 님(ㅠㅠ)의 추천까지 받았으니, 꼭 읽어볼랍니다! 14기,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10-31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래 추천합니다.
 

 

 

 

 

 

 








벽 위의 국화 그림자

 

 

국화가 다른 꽃들보다 뛰어난 점이 네 가지 있다. 늦게 피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향기로운 것,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 이 넷이다.

 

국화를 사랑하기로 세상에 이름이 났거나 국화의 멋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그 사랑하는 점이 이 네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네 가지 외에 벽에 비친 국화 그림자를 특별히 좋아한다. 밤마다 국화 그림자를 보려고 벽을 치우고 등촉(燈燭)을 켜고 고요히 그 앞에 앉아 스스로 즐겼다.

 

하루는 윤이서*에게 가서 말했다.

 

"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자면서 함께 국화를 구경합시다."

이서가 말했다.

"국화가 아무리 아름답지만 어떻게 밤에 구경할 수 있겠나?"

그러면서 몸이 좋지 않다고 사양하므로, 내가 말했다.

"한 번만 구경해 보십시오."

그러고는 굳이 청하여 함께 집으로 왔다.

 

저녁이 되자, 일부러 동자에게 국화분 하나 앞에 등촉을 가까이 갖다 대고 있게 한 다음, 이서를 이끌고 가 보여 주면서 말했다.

 

"기이하지 않습니까?"

이서가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자네 말이 이상하이. 나는 기이한 줄 모르겠네."

그래서 나도 그러시냐고 하였다.

 

조금 뒤에 다시 동자에게 제대로 한번 해 보게 했다. 옷걸이와 책상같이 어수선하고 들쭉날쭉한 물건들을 치우고, 국화의 위치를 벽에서 약간 떨어지게 정한 다음, 적당한 곳에다 등촉을 둔 뒤, 불을 비추었다. 그랬더니 기이한 무늬, 이채로운 형상이 홀연 벽에 가득했다.

 

108

 

 

(중략)

 

국화 그림자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즐기는 다산. 33세 때의 글이다.

 

*윤이서_고산 윤선도의 직계 후손이며 윤두서의 증손으로 다산의 외육촌이다. 다산보다 열 살이 많았으나 매우 친분이 두터웠다.

 

정약용 산문 선집, 박혜숙 편역,다산의 마음, 돌베개. 2008. 6.

 

  












 

 

와유(臥遊)



안현미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

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

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

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에 취하리

 

 

안현미, 이별의 재구성, 창비, 2009. 9.

 

 



 

다산의 서른 셋. 이마 반듯하고 환한 얼굴로 밤중에 국화를 보자며 형을 이끈다. 그 당기는 팔이며, 벽에 국화 그림자와 함께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며, 그 밤 고요했을 불빛이며. 풀벌레 소리여. 흔들림 없는 밤이다. 그 밑에 <와유>라는 시를 문간방에 놓으면 다산이 보시고 좋다. 하셨을 것이다. 이것 좀 보라, 도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시간 다산의 집 담에 기대고 있으면 홀로 켜진 방안에 그와 윤이서와 벽에 그려진 국화 그림자의 탄성이 말 없이 들릴 것인데. 바다의 바깥으로 밀려가는 물의 움직임처럼 나는 그곳에서 점점 멀어지기만 할 뿐이라. 가을, 옛 글을 앞에 두고 국화 없이 취한다.

 

 

 

국화, 깨끗하지만 차갑지는 않은 것. 목이 가는 국화가 놓이는 모양을 생각하다가 저 멀리 떠내려가 이제는 무엇으로도 잊는지 알 수 없는 사월을 시월에 놓는 일이 있다. 국화나 가을이나 그런 것이 다 무엇일까. 시간 앞에 취할 수 없는 이들이 모여 있다. 그 광장.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그곳이 마치 훌쩍 들려 물러났다는 듯이, 작고, 조용하고, 멀다. '그 까닭을 생각한다'. 라고 쓰는 자판의 두드림에 스탠드에 걸린 노란 리본이 가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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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0-07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님, 이 글을 읽으니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술에 취한 것 같습니다.
맑은 술에 국화 한 잎 떨어뜨려 천천히 마시다, 그렇게 취해버린 것 같아요.

봄밤 2014-10-07 12:43   좋아요 0 | URL
진동하나요, 국화가 가을에 피는 탓입니다. 헤헷. 다락방님 취하신 기분으로 조금 더 기분 좋은 하루시기를 바라요. 가을이 이만큼 더 있어도 좋겠어요.
 


















나는 나기철의 시작 태도에서 일종의 문학적 금욕주의랄까요, 염결성과 청빈 등의 고전적 덕목을 떠올리게 하는 시적 태도를 봅니다. 이것은 그것이 사물이든 상념이든 시적 대상을 대함에 있어 정중함이나 조심스러움을 잃지 않고자 하는 태도로 나타나지요. 또 시어나 표현에 있어서도, 쓰는 사람의 욕구 위주로 일방적으로 언어를 '사

용'하려 하지 않지요. 이런 조심스러움은 얼마간 소극적이거나 소승적인 감각이기 쉬워서 현실의 격동을 시의 문면(文面)에서 실답게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삶과 언어를 대하는 이러한 마음가짐과 품위는 매우 귀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김사인,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대담 중에서. 창작과 비평 2014 여름호.





 그냥 지문 같은 거라고. 인주 붉게 눌러졌으므로 그 결이 나타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노릇이라고. 그래서 느린 산같은 결에는 같이 눕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게 글이 좋다는 게 아닐까. 숙명처럼 말의 부름을 받는 이들의 대관절,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읽는 태도는 무엇인가. 여름끝에 받아온 이 차가 영영 식지 않기를. 손을 공손히 앞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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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릅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바로 당신 입으로, 완벽한, 그리고 전혀 쓸모없는 공연...... 이유도 모른 채 까르르 웃는 아이들..... 아름답지 않나요 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p. 147




리뷰 못 쓰는 이야기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는 것은 그것을 독서라고 불러도 될까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꺼내 놓아야 했던 '일'이었다. 이상한 체험이었다. 이것을 쓴 사람의 기운을 생각하고 읽는 것만으로도 깔아졌던 '나'까지 생각하는 일은 쉬웠으나. 이때를 지나온 사람들과, 그때 있었으나 이곳으로 넘어오지 못했던 사람들과, 나 역시 사람. 임을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거대한 마음에 대하여. 악다구니. 내 손으로 활자를 만들어 소화시킬 여력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읽느라고 모두 소진된 마음은 그것에 대해 한 바닥 써야 할 이유도 알기 어려웠다. 나를 통과해서 다른 색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느니만도 못한 것이 될 염려가 아주 컸던 책이었다. 한 달 동안 세 번 읽었으나 세 번 모두 책을 읽는 것으로 그냥 끝났다. '그냥'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만 역시 마땅히 설명을 붙이기 어렵다. 이 마음에 듦을 나중에 자세히 설명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리뷰 못 쓰는 이야기 2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역시 리뷰를 쓰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좀 더 리뷰를 쓸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으로 기운다. 독서 외에는 이 글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내게 없고, <소년이 온다>와는 다른 이유에서 "리뷰를 쓰고 싶지 않음" 거부, 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소년이 온다>를 이해하기 위해 내 몸을 나 이상으로 부풀려서 읽었던 것에 비해 이 책에게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 보통의 나보다 아주 협소한 부분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배꼽'이란 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잘 웃지 않은 것임을 생각하면 나의 움직이려 하지 않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는 있을 것이다. 책에 대해 다르겠지만, 말하고자 하는 마음 너머로 이해할 수 있고, 하려는 이가 있고 책이 읽으라고, 친절하게 써 내려간 제목조차도 이해하기 어렵거나 이해하지 않으려는 이들도 있다. 아둔을 고백하고 싶지 않지만 불행하게도 이 책에 대해서는 후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뻣뻣하게도 다시 공들여 읽고 싶은 마음도 없다. 서툴게나마 확신하는 것은, 쿤데라는 자신의 짧은 글을 어려운 행간에 버려 둠으로 인해 이해 할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책 이상의 독서를 선사하려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 뿐이다. 두 번 읽었고 두 번 그리워졌다. 폭 좁은 행간을 만들어 주느라 많은 말을 쏟았던 그와 두꺼운 독서에서 마음 충분히 흔들렸었던 날들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오랜만에 기억했다.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고 한다. 내게는 몇 개의 밤이 더 필요합니까. 




*김경주,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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